“아, 뭐 그건 됐고.”
한숨을 섞어 말한 엄마는 내 옷차림에 관한 이야기를 서둘러 끝내더니 엄마네 집 근처에 생긴 빵집으로 화제를 돌렸다. 듣자 하니 도쿄 내 유명한 빵집에서 기술을 배운 주인이 혼자서 꾸려 나가는 곳인 듯했다.
“그런데 말이야, 빵은 정말 맛있는데 손님에게 내놓을 만한 과자류는 없더구나. 그 뭐니, 러스크라고 하나? 먹다 남은 프랑스빵으로 만든 것 같은 과자만 진열해놓았다니까.”
엄마의 자잘한 불평에 나는 신기하게도 속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실은 나도 러스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말상대가 다른 사람이었다면 나는 바로 “맞아, 맞아!” 하고 맞장구치면서 잠시 신이 났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요즘 러스크 인기가 많아져서 전문점이 생길 정도래” 하고 대답하는 선에서 말을 아꼈다. 그리고 더 이상 술에 취하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물을 입에 머금었다. 그 후론 유행하는 액세서리며 인테리어 이야기, 동네에 나도는 소문 등 무던한 이야기가 두서없이 오갔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엄마에게 나에 관한 이야기는 되도록 하지 않는다. 무슨 이야기를 해도 엄마는 순수하게 기뻐하지 않았다. 일이 즐겁다고 하면 그러니까 콧대 높은 여자가 되는 거라고 말하질 않나, 취미로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하면 지나치게 운동을 많이 하면 이런저런 점이 나쁘다는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엄마는 지금 내가 어떤 일을 좋아하는지는 전혀 관심이 없다. 과거로 화제가 넘어가지 않도록 하는 데도 신경을 바짝 곤두세워야 한다. 함께 살던 시절의 이야기가 나오기만 하면 엄마는 항상 “그때에 비하면 넌 정말 많이 변했어” 하고 한탄했다.
과거의 나는 그저 엄마를 슬프게 하지 않으려고 공부와 취미 활동을 열심히 하고, 엄마를 위해 학예회에서 하고 싶지도 않은 주인공을 맡겠다고 나서고, 엄마가 기뻐한다는 이유로 나와는 맞지 않는 우등생을 연기하기도 했다. 지금의 내게는 숨기고 싶은 과거다. 가능하다면 기억조차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나에겐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엄마에게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미화되어 옛날의 나는 실제 이상의 ‘착한 딸’로 추억 속에 살아 있는 것 같다. 그래서 툭하면 과거의 내 말과 행동을 들먹이면서 현재의 나를 나무란다.
“내가 커서 아기를 낳으면 꼭 우리 엄마 같은 엄마가 될 거야”.
“엄마를 빨리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
우등생이었던 과거의 나는 그런 말로 어른들을 기쁘게 했다. 하지만 그 말이 미래의 나를 괴롭히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제 와서 바꿀 수도 없는 과거의 자신과 비교당하는 일은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잠시 엄마와의 대화가 끊겼다.
어쩌면 좋지?
조심스럽게 주의를 기울이면서 어떻게 대화를 이어나갈지 천천히 궁리했다. 가게에 걸린 장식품에 대한 감상이라도 말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엄마가 갑자기 화제를 돌렸다.
“아 참, 그러고 보니 옆집에 살던 네 친구 사키 말이야. 결혼해서 이제 곧 엄마가 된다던데?”
“그래? 잘됐네. 사키는 좋은 엄마가 될 거야.”
엄마는 악의 없이 또 내 지뢰를 밟았다. 나 역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대답했다. 그러자 엄마는 대놓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정말 너는 내 품에서 벗어나고 많이 변했어. 옛날에는 고분고분하고 착해서 빨리 엄마처럼 결혼하고 싶다고 기특한 말을 하더니만. 서른세 살이나 되었는데 아직 미혼이라니, 내가 창피해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어.”
변했다고? 그래, 나는 변했는지도 모른다. 엄마와 떨어져 살면서 나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깨달았고 스트레스 없이 사는 쪽으로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 그런 내가 엄마에게는 그렇게까지 ‘창피한’ 존재일까. 엄마는 내가 살아가는 방식을 이해하려고 들지 않는다. 그러면서 부모님 눈치만 살피면 서 살았던 어린 시절의 나를 진짜 내 모습이라고 믿고 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밥을 먹고 디저트와 커피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1초라도 빨리 이 저녁 식사가 끝났으면 좋겠다고, 오로지 그 생각만 하며 끊임없이 시계를 쳐다봤다.
나는 착한 딸을 그만두기로 했다아사쿠라 마유미,노부타 사요코 공저/김윤경 역 | 북라이프
지금껏 딸이라는 호칭 앞에는 ‘친구 같은’, ‘착한’과 같은 단어들이 당연한 듯 따라붙었다. 『나는 착한 딸을 그만두기로 했다』는 엄마와 갈등을 겪고 있는 수많은 착한 딸, 아니 가족에게서 벗어나 나답게 살고 싶은 여자들을 위한 책이다.
아사쿠라 마유미, 노부타 사요코
임상심리사이며 하라주쿠 상담소 소장인 노부타 사요코와 프리랜서 작가인 아사쿠라 마유미가 만나 『나는 착한 딸을 그만두기로 했다』를 집필했다. 가족, 특히 엄마와의 갈등으로 힘들어하는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쓴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