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걸 그룹 귀환의 첫 주자로 에스이에스(S.E.S.)가 나섰다. 2002년 11월
팀의 강점이었던 보컬 하모니는 오히려 전성기의 수준을 상회한다. 개성 있는 음색은 보존한 채 여유를 더했다. 20년 전 1집
타이틀곡 「Remember」와 「한 폭의 그림(Paradise)」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그룹의 전성기를 재현한다. 멜로디 진행에 힘을 준 팝 발라드 「Remember」와 유영진과 함께 그 시절을 복원한 뉴 잭 스윙 「한 폭의 그림(Paradise)」을 앞세운 ‘쌍끌이’ 전략이다. 2000년대 언저리에 기초한 작법은 근래의 에스엠 음악과는 궤를 달리하며 팀의 정체성을 북돋운다. 동시에, 재즈를 재료 삼은 시즌 송 「Candy lane」과 최신 EDM 경향을 매끄럽게 도입한 하우스 트랙 「Birthday」, 테디 라일리(Teddy Riley)가 참여한 미디엄 템포 알앤비 「Hush」로 탄탄한 음악적 얼개를 갖췄다.
14년 공백은 ‘요정’의 스탠스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각각 여행스케치와 이수만의 곡을 재해석한 「산다는 건 다 그런 게 아니겠니(Life)」와 「그대로부터 세상 빛은 시작되고(The light)」는 30대가 된 지금 불러 한층 강한 호소력을 발휘한다. 이장우의 「Oh my love」, 노 댄스의 「달리기」 등을 불렀던 지난날의 리메이크와는 임팩트가 다르다. 특히 「산다는 건 다 그런 게 아니겠니(Life)」는 멤버들의 현재 모습과 맞물려 더욱 아름답다. 팝 적 편곡과 아기자기한 가창은 덤. 보컬 측면에서도 지난해 또 다른 이수만의 곡(「장미꽃 바람은 향기에 날리고」)을 커버했던 레드벨벳과 「그대로부터 세상 빛은 시작되고(The light)」를 비교하면 이들의 무르익은 깊이가 드러난다.
‘좋은 컴백’의 본보기다. 옛 기억만 뒤적이는 것이 아닌 시간이 흐른 그룹의 현재에 제대로 조명을 비췄다. 이벤트 차원이든 새로운 커리어의 시작이든, 이들의 재결합은 에스이에스만의 음악을 우아하게 다시 선보였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등장부터 한 발 앞서 나가며 시대를 선도했던 팀은 재결성에서도 한 수 위를 점한다.
정민재(minjaej92@gmail.com)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