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묘한 낙관, 9와 숫자들

9와 숫자들 〈수렴과 발산〉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9와 숫자들의 음악은 묘한 도중(途中)의 지점에 있다. 가라앉되 꺼지지 않고, 떠오르되 증발하지 않는다.

image3.jpeg

 

 

첫 앨범 <9와 숫자들>에서 주를 차지했던 신시사이저는 받쳐주는 느낌으로 남았다. 대신 기타 중심의 밴드 사운드에 때로 스트링이나(「엘리스의 섬」, 「전래동화」) 브라스 편곡(「검은 돌」, 「싱가포르」)으로 웅장함을 더하지만, 그런 장치가 금방 눈에 띄지는 않는다. 이들이 스스로의 세계관을 표현함에 있어 악기의 운용은 절대적 역할이 아니다. 우선하는 내러티브 뒤에 그것을 보듬거나 빛내는 곡과 연주가 자리하고 있다.

 

밴드 특유의 ‘아이러니’가 여전하다. 멜로디가 상승하는 와중에 보컬의 톤은 끊기거나 하강하며, 슬픔과 염세를 말하면서 음색은 아무것도 모르는 체 담담하다. 그 역설을 강화하기 위해 밴드가 힘을 싣는 것은 가사를 전달하는 보컬 쪽이다. 전작 <보물섬>이 주로 개인적 일화 같은 가사에 목표 없이 방황하는 젊은 세대의 상실감을 그려내었다면 <수렴과 발산>은 더 넓은 테마 아래 있다. 음반은 영문 제목처럼 ‘고독과 연대’, 즉 홀로일 때의 외로움부터(「전래동화」, 「사랑했던 경우엔」, 「평정심」)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거나 내민 손을 잡는 데서 오는 든든함까지 가닿는다(「안개도시」, 「엘리스의 섬」).

 

전작에 비해 거친 날것의 느낌은 줄어들었지만, 문학적 가사로 사적인 내용에 일반론을 펼쳐내는 장기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9 (송재경)의 가사는 일상적인 단어들 사이 묘하게 문어체를 삽입하며 이질감과 신선함을 동시에 뿜어낸다. 「검은 돌」의 ‘나의 별명은 낙화들의 침대, 나의 병명은 만성적인 후회’, ‘창밖의 계절은 벌써 축제와 사색의 대결’과 같은 가사가 그 예다. 별 것 없어 보이는 테마를 날카롭게, 또는 재미있게 풀어내는 재능도 「언니」, 「다른 수업」 등의 트랙에서 빛이 난다.

 

9와 숫자들의 음악은 묘한 도중(途中)의 지점에 있다. 가라앉되 꺼지지 않고, 떠오르되 증발하지 않는다. 이들의 세계관 속 ‘삶’은 언젠가 꺾여버릴, 아니 심지어 ‘이미 꺾여버린 것들’ (「드라이 플라워」)일지도 모를 어떤 것이다. 그러나 밴드는 그 비관 속에서 고독을 비난하지도, 연대를 회의하지도 않은 채 둘 모두의 역할을 긍정한다. 이 묘한 낙관이 묵직하게 다가오는 것은 앨범의 동시대성과 무관하지 않다. 단순하고 또 착한, ‘칠흑 같은 어둠은 절망을 주지만 서로의 눈빛을 모아 함께 밝혀보자던 나의 그대여’ (「엘리스의 섬」)와 같은 가사가 ‘재미는 없을’지언정, 말 그대로의 따뜻함을 주지 않는가. 시기적으로, 여러모로 위로가 필요한 2016년이었기에 더더욱.


조진영(9512aphasic@gmail.com)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오늘의 책

수학 좋아하는 아이로 키우는 엄마표 유아수학 공부

국내 최대 유아수학 커뮤니티 '달콤수학 프로젝트'를 이끄는 꿀쌤의 첫 책! '보고 만지는 경험'과 '엄마의 발문'을 통해 체계적인 유아수학 로드맵을 제시한다. 집에서 할 수 있는 쉽고 재미있는 수학 활동을 따라하다보면 어느새 우리 아이도 '수학을 좋아하는 아이'로 자랄 것이다.

나를 바꾸는 사소함의 힘

멈추면 뒤처질 것 같고 열심히 살아도 제자리인 시대. 불안과 번아웃이 일상인 이들에게 사소한 습관으로 회복하는 21가지 방법을 담았다. 100미터 구간을 2-3분 이내로 걷는 마이크로 산책부터 하루 한 장 필사, 독서 등 간단한 습관으로 조금씩 변화하는 내 모습을 느끼시길.

지금이 바로, 경제 교육 골든타임

80만 독자들이 선택한 『돈의 속성』이 어린이들을 위한 경제 금융 동화로 돌아왔다. 돈의 기본적인 ‘쓰임’과 ‘역할’부터 책상 서랍 정리하기, 용돈 기입장 쓰기까지, 어린이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소재로 자연스럽게 올바른 경제관념을 키울 수 있다.

삶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야

저마다 삶의 궤적이 조금씩 다르지만 인간은 비슷한 생애 주기를 거친다. 미숙한 유아동기와 질풍노동의 청년기를 거쳐 누군가를 열렬하게 사랑하고 늙어간다. 이를 관장하는 건 호르몬. 이 책은 시기별 중요한 호르몬을 설명하고 비만과 우울, 노화에 맞서는 법도 함께 공개한다.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