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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엑스엑스(The XX), 총천연색 중립의 세계

디 엑스엑스(The XX) 〈I See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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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없던 시도를 선택했음에도 〈I See you〉는 어긋남 없이 빼어난 완결성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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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갯소리를 조금 보태어 디 엑스엑스(The XX)의 가장 큰 적은 제이미 엑스엑스(Jamie XX)일지도 모른다. 절세의 데뷔 음반 <XX>가 나온 이후에 제이미 엑스엑스의 솔로 커리어가 너무 성공적이었던 나머지 그룹 전체에게 돌아가야 했을 스포트라이트가 그 혼자에게 집중되어버린 감이 있었으니까. 공교롭게도 후속작 <Coexist> 마저 범작에 지나지 않았고 데뷔작의 아우라 덕분에 안 그래도 컸을 실망감은 더욱 커졌다. 여기에다가 제이미 엑스엑스의 후속 앨범 <In Colour>는 수작인 것을 보아하니, 디 엑스엑스의 명성을 깎아먹는 주범은 정말 제이미가 맞는 것 같다. 앞으로는 그룹에서 그의 비중을 좀 줄이는 게 좋지 않을까? 물론, 농담이다.

사실, 디 엑스엑스하면 단번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제이미 엑스엑스가 아니라 두 보컬인 올리버 심(Oliver Sim)과 로미 크로프트(Romy Croft)다. 제이미 엑스엑스는 최소한의 리듬 파트와 멜로디만을 가지고 두 멤버의 기타와 베이스를 받쳐줄 뿐이다. 비어있는 여백 사이에 끼어드는 것은 무기력한 올리버와 로미의 보컬이고 이 목소리가 특유의 묘한 분위기와 비감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데뷔작 <XX>가 흥행했던 요인은 이러한 미니멀리즘의 추구 속에서 자아내는 은근한 활력과 흡인력 있는 멜로디에 있었고, <Coexist>가 그저 그랬던 것도 두 멤버의 정체성에 너무 포커스를 맞춘 나머지 최소주의가 밋밋함으로 변질되면서 듣는 재미를 잃었기 때문이었다.

 

신보 <I See You>는 반대의 노선을 취한다. 제이미 엑스엑스 스스로가 존재감을 스스로 드러내는데 전에 없던 활기 넘치는 사운드를 차용하는 쪽으로 전략을 바꾼 것이다. 첫 곡 「Dangerous」부터 낯선 향기를 풍기는데 디 엑스엑스에게서 트럼펫 사운드를 듣는 것은 처음이다. 개중에는 「Performance」처럼 현악 사운드를 전면에 부각시키는 노래도 있는데, 이를 오려붙인 제이미 엑스엑스의 솜씨는 현악 세션을 기용해서 라이브를 해도 이질적이지 않을 정도로 능숙하다.

 

전에 없던 시도를 선택했음에도 <I See You>는 어긋남 없이 빼어난 완결성을 보인다. 먼저 로미와 올리버의 보컬이 한 층 풍부해지면서 불어난 사운드의 몸집에 걸맞은 노래를 선보이는데 「Dangerous」의 후렴을 들어보면 기존 색을 유지하면서도 무기력한 느낌에 천착하지 않고 힘 있는 가창을 한다. 또, ‘VCR’을 연상시키는 「On hold」같은 곡들은 샘플링으로 정겨운 정경을 그려냄과 동시에 이전 <XX> 시절의 간소하면서도 멜로디는 살아있는 음악을 들려준다.<I See You>는 음반 전체적으로 여유를 취득한 동시에 「Test me」처럼 극적인 마무리까지 보여주면서 한 앨범에 디 엑스엑스의 장점을 응축해 넣은 인상을 준다.

 

처음 디 엑스엑스가 <XX>로 주목을 받았을 때를 기억한다. 대중적 노선과는 거리를 두면서도 적당히 쉽고 상대적으로 높지 않은 인지도 덕분에 힙스터들이 서식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면서 그렇게 이들은 등장했다. 하지만 지금의 디 엑스엑스는 인디 노선을 따라가고 있을지언정 대중적 선호도에서도 그리 멀지 않은 팀이 되었다. 점점 이들은 중립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고 있다. 미니멀리즘의 기조를 유지하되 풍부해지는 사운드, 인디 감성과 대중적 취향을 동시에 충족하는 음악적 안목, 데뷔 때부터 눈에 띄던 (특정 성별에 매몰되지 않는) 성 중립적 가사까지도. 앞으로의 모습까지도 이런 중립의 길을 나아갈지는 알 수 없으나 <I See You>에서 이들은 지금 정확히 이 위치에 있다. 그것도 아주 풍부한 총천연색으로.

 

덧. 디 엑스엑스가 항상 그래왔듯이 이번 「On hold」의 뮤직비디오도 꼭 권하고 싶을 만큼 좋다. 이들이 「On hold」를 통해서 그리고 싶던 정감 어린 순간들이 무엇인지 그 시공간을 어떻게 우리에게 전하려고 하는지 그대로 보여준다. 뮤직비디오 역시 이들의 음악처럼 최소한의 것만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한다.

 


이기선(tomatoapp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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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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