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왜 그리 농구에 몰두했을까’ 하고 생각해 보면 뭐니 뭐니 해도 환경적인 요인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니었나 싶다. 내가 다녔던 대원 남자고등학교는 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었다. 마땅한 부지가 없었던 건지, 창립자의 꿍꿍이가 있었던 건지, 이도 저도 아니면 ‘어쩌다 보니’인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꼬박 삼 년 동안 영한사전이며 실내화며 도시락도 두 개나 우겨넣은 가방을 들고 등교를 할 때마다 산악행군을 하는 기분이었다. 무겁기로는 완전군장과 승부를 겨뤄도 손색없을 가방은 양쪽으로 매면 폼이 안 나니까 주구장천 한쪽으로만 버텼으니 지금 내 오른쪽 어깨가 살짝 틀어진 것도 무리는 아니다.
운동장은 어지간한 아파트 놀이터보다 조금 큰 정도였다. 축구골대를 놓기는 어림도 없어서 핸드볼 골대를 향해 볼을 차다가 툭하면 펜스 너머 산 아래로 공이 넘어가는 바람에 주우러 가기 바빴다. 100미터 달리기 기록을 측정하는데 대각선으로 끝에서 끝까지 길이를 재도 모자라니까 대원 여자고등학교까지 뛰어가야 했던 걸 좋은 추억으로 회상하는 졸업생도 있으려나.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지, 농구코트만은 운동장 곳곳에 제대로 갖춰져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쯤 전에 ‘겨울철 실내에서 할 수 있는 구기운동을 만들어야겠다는 일념’으로 뉴잉글랜드의 어느 선생님이 농구라는 스포츠를 고안해 내지 않았다면 나의 학창시절은 상당히 우울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우리는 틈만 나면 농구공을 들고 운동장으로 달려갔다. 점심시간은 물론이고 방과 후에도 주말에도 모였다. 이긴다고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잘한다고 특기생으로 유학을 갈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매번 이를 악물고 했다. 수학을 이런 자세로 했으면 좋았으련만, 조금이라도 나아질까 싶어서 ‘에어’가 빵빵하게 들어간 조던 농구화를 두 달치 용돈과 맞바꾸고 해설을 알아들을 수 없는 NBA 경기를 눈 빠지게 들여다보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우리에게 '농구의 진정한 재미’를 알려준 사람은 스코티 피펜과 환상적인 케미를 보여주며 그전 해와 그 해, 그리고 이듬해까지 시카고 불스를 3년 연속 챔피언으로 만들어버린 마이클 조던도, 현대전자와 기아자동차가 패권을 다투던 농구대잔치에서 파란을 일으키며 연세대를 우승시켰던 이상민 선수도 아니었다. 그것은, 빨간 머리 고등학생 강백호였다.
단행본 『슬램덩크』의 후속권이 발매되면 학교 앞 서점과 문방구는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비슷한 말로 북새통이 있을 텐데 그날이 바로 그날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야간자율학습(흔히 ‘야자’라 불렀던)이 시작되기 전부터 나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싸늘하게 식은 도시락을 한 입에 털어 넣고 문방구로 뛰어갔을 때는 새 시리즈가 전부 임자를 찾아 제 갈 길로 떠난 뒤였다. 사하라 사막의 신기루처럼, 대통령을 둘러싸고 있던 독재자 아버지의 후광처럼 일말의 여지없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이 판국에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들도 5퍼센트나 모을 수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다섯 권은커녕 단 한 권도 구할 수가 없는 것인가. 후회가 물밀 듯이 밀려왔다. 저녁은 먹지말걸. 그리고 더 빨리 뛰었어야 했어.
그러나 무릇 구하는 자에게 주고,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자에게 열릴 것이라 하지 않았던가. 학교 앞 가파른 언덕을 터덜터덜 걸어서 교실에 들어왔을 때 나는 목도했다. 그 임자 가운데 한 명이 희원이라는 것을. 그는 이미 반도 넘게 읽어치운 상태였다. 발 빠르게 예약을 걸어둔 농구부 주장과 반장을 거친다 해도 앞으로 야자가 끝날 때까지 남은 세 시간 안에 내가 이 책을 볼 수 있으리란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었다. 왜냐면 희원이는 내 짝궁이었으니까. 나는 걔랑 친했으니까. 맨날 농구도 같이 했으니까. 이유는 많았고 시간도 많았다. 그리고 마침내 『슬램덩크』가 내 손으로 넘어온 순간, 일요일마다 교회에서 살다시피 하는 친구들을 한심하게 여겼던 내 입에서 터진 방언은 가증스럽게도 “할렐루야”였다.
나는 교과서에 『슬램덩크』를 포개놓고 시종일관 진지하게 정독하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바야흐로 사실상의 결승전이라 할 수 있는 ‘북산 대 산왕’전. 중학 MVP였던 정대만이 남들은 열심히 연습하는 동안 불량서클에서 탱자탱자하느라 고갈된 체력을 극복하지 못하고 교체인지 퇴장인지를 당하기 직전이다. 겨우 숨만 쉬는 상태로 경기에 임하던 정대만은 어느 순간 각성하며 자신을 마크하던 상대팀 선수에게 이렇게 묻는다. “난(헉) 누구냐(헉헉), 내 이름을(헉) 말해 봐(헉헉), 난(헉) 누구냐고(헉헉).” 거친 숨소리와 쉴 새 없이 흐르는 땀방울,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현재의 정대만과 거침없이 폭력을 행사하는 과거의 정대만이 교차로 편집되는 동안, ‘나는 누구인가’라는 소크라테스적 질문에 당황한 상대에게 기습적으로 날아든 대사는 바로 이것이었다. “그래, 나는 정대만, 포기를 모르는 남자지.”
아마도 많은 형제자매님들이 이 대목을 『슬램덩크』의 명장면으로 뽑는 데 주저함이 없을 줄 안다. 나 역시 거기에 딱히 이의는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포기를 모르는 남자지” 이후로 17점인지 20점인지를 혼자 몰아넣고 ‘백코트’하다가 롤러코스터 같은 그의 인생역정을 묵묵히 지켜봐준 동기이자 주장인 채치수와 말없이 무심하게 하이파이브를 하는, 비틀거리며 갑자기 떠올랐다는 듯 ‘툭’ 하고 주먹을 맞대는 장면이다. 일찍이 “상대도 내 마음과 같을 것이라는 내 방식대로의 생각 때문에 스스로 괴로움에 빠지는 법이니 이심전심이라 생각하지 말고 메시지를 구체적으로 전하라”는 깨달음을 설파한 정목스님도 채치수와 정대만의 이 이심전심적 장면만큼은 인정해 주실 거라 생각한다.
인생의 밑바닥까지 추락했다가 겨우 제자리를 찾은 정대만의 인생과, 이쪽저쪽 한 눈 팔지 않고 성실하게 농구만 해온 채치수의 인생이 대조를 이루며 빚어진 결과여서 더욱 빛을 발하는 이 장면은, 그러나 내 짐작과 달리 작가의 치밀한 계획이 아니라 ‘그야말로 어쩌다 보니’의 부산물이었음을 얼마 전 알게 되었다. 『만화가 시작된다』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 책은 『슬램덩크』를 읽고 인생이 홀랑 바뀌었다는 시인 이토 히로미가 이노우에 다케히코를 만나 사소하다면 사소하고 엉뚱하다면 엉뚱한 질문을 던져놓고 이러쿵저러쿵 제멋대로 떠드는 대화의 기록인데 웅숭깊은 내용까지는 아니지만 읽다보니 옛 생각도 새록새록 나는 데다가 무릎을 칠 정도의 재미는 있어서, 오늘 한 걸음 더 들어가 비하인드 스토리 위주로 몇 개를 소개할 요량이었다.
한데 몇 개는 고사하고 하나도 제대로 소개하지 못한 채 지면을 다 할애하고 말았으니 어쩔 수 없이 남은 이야기들은 다음 판에 이어갈 수밖에 없을 듯하다. 다만 내 흐릿한 기억을 좀 독려해 주십사 하는 차원에서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 당신이 읽은 『슬램덩크』 속 명장면은 무엇인가요? 아무리 시간이 오래 지났어도 ‘역시 이거지’ 하고 팍 떠오르는 게 있을 것 같은데 바쁘지 않으시면 한말씀만 해주시라.
김홍민(북스피어 대표)
미남이고 북스피어 출판사에서 책을 만든다. 가끔 이런저런 매체에 잡문을 기고하거나 라디오에서 책을 소개하거나 출판 강의를 해서 번 돈으로 겨우 먹고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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