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금의 대중음악은 꾸준히 과거를 지향한다. 그중에서도 댄스 음악의 레트로 사랑은 유별나다. 특히 1980년대로 대표되는 신스팝 시대를 향한 애정은 급기야 ‘신스팝 리바이벌’이라는 하나의 조류를 만들어냈고, 레이디 가가와 처치스, 체인스모커스(The Chainsmokers) 등 많은 가수들이 유행에 가세했다. 이미 포화 상태인 복고 열풍에 영국 맨체스터 출신의 신예 싱어송라이터 슈라가 도전장을 내밀었다. 레드오션에 맞서는 그의 전략은 팝 그 자체다.
슈라의 첫 정규 앨범
앰비언트를 활용한 인트로 「(i)」를 지나면 다채로운 팝의 향연이 이어진다. 마치 전성기의 뉴 오더를 재현한듯한 신스 톤과 멜로딕한 전개가 매력적인 디스코 「Nothing’s real」, 재기 발랄한 신스팝 「What’s it gonna be?」와 리얼 드럼으로 록의 풍미를 더한 「What happened to us?」 등이 원초적 댄스 그루브를 만든다. 이 영리한 신인은 음반의 유기적 구성뿐 아니라 완급 조절에도 탁월한 감을 보인다. 자넷 잭슨의 영향권에 위치한 일렉트로 R&B 「Touch」와 「2shy」, 팝 발라드의 골격을 갖춘 「Kidz ‘n’ stuff」 등 곳곳에 배치된 근사한 슬로 잼이 몰입을 돕는다.
첫 번째 풀 렝스 앨범임에도 설익은 지점은 쉽게 찾을 수 없다. 「Kidz ‘n’ stuff」의 후미에 「Indecision」의 모티브를 배치해 자연스러운 전환을 꾀하고, 인트로 「(i)」와 인터루드 「(ii)」를 통해 부드러운 진행을 연출하는 치밀함은 수준급이다. 앨범 말미에는 실험정신이 도드라진다. 앰비언트와 레트로 신스팝, 현대적인 일렉트로니카와 로큰롤 등 다양한 장르 요소를 매끈하게 융화시킨 「White light」, 「The space tapes」는 그의 성장 잠재력이 상당함을 증명한다.
팝 본연의 캐치한 성질을 잘 살린 수작이다. 비록 댄스 음악에서 베이스와 퍼커션 등 리듬 섹션의 재미를 살리지 못한 것은 치명적이나, 잘 들리는 선율과 완성도 높은 사운드스케이핑만으로 팝 앨범으로써의 가치는 충분하다. 그가 존경한다던 선배 가수들의 영향이 진하게 묻어나는 보컬 역시 그럴싸하다. 카일리 미노그부터 셀레나 고메즈에 이르는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힘이
정민재(minjaej92@gmail.com)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