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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칼럼에서 나는 모리 히로시가 다른 작가들과 학계의 비난을 예상했으면서도 '소설을 써서 자신이 벌어들인 원고료 및 인세는 물론이거니와 저서 이외의 수입'까지 몽땅 털어놓을 수 있었던 까닭은 그의 이력과 관계있는 듯하다고 적었다. 왜냐하면 그가 소설을 쓰게 된 계기가 남다르다 못해 시건방져 보이기까지 한데다가 데뷔 이후에도 이른바 문단이나 문학 에콜(분명한 정체성을 가진 집단)'과 전혀 왕래가 없었기 때문이다. 동료 소설가라고 해봐야 일본에서도 기인으로 평가받는 교고쿠 나츠히코와 세이료인 류스이 정도가 전부인 듯하다. 즉, 누군가의 눈치 볼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올해로 데뷔 20년을 맞은 작가 히로시의 첫 직장은 대학이었다. 1990년에 국립 나고야 대학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이후 같은 학교에서 조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의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과학적으로 꽤나 있어 보이는 대사를 술술 막힘없이 읊조리거나, 수학문제가 트릭의 일환으로 자연스럽게 제시되는 설정 등은 이러한 경력에 기인한다. 독자들은 이를 ‘이공계 미스터리’라고 부른다. 『모든 것이 F가 된다』의 해설을 쓴 히데아키가 지적한 대로 그의 작품 전반에는 '모두가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것을 맹목적으로 따를 것이 아니라 상식으로 여겨지는 것도 자기 머리로 검증해 봐야 한다'는 기조가 깔려 있는데 이러한 점이 모리의 작품을 ‘이공계 미스터리’로 자리매김하는 데 (좋은 의미에서) 큰 역할을 한 듯하다.
모리 히로시의 또 다른 에세이 『소설가라는 직업에 대하여』에도 나와 있지만 그는 어릴 때부터 소설을 아예 읽지 않았다고 한다. 이과적 인간의 특징이라고 할지, 학창시절에도 국어 성적이 제일 저조하여 뭘 쓰는 일에는 도통 취미가 없었다. 당연히 습작 시절도 거치지 않았고 심심풀이로도 소설을 끼적인 적은 없다. 계기가 된 것은 1995년 여름, 그의 나이 서른일곱 살의 일이다.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던 딸이 “굉장히 재밌어, 아빠” 하며 보여준 미스터리 소설을 무심코 빌려 읽게 되었다. 하지만 읽기를 마친 그의 감상은 “이 정도로 베스트셀러가 되는 일본 소설계라니 한심하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미스터리로서의 논리성이 보이지 않아서 실망했다.
모리 히로시는 '이것이 미스터리다!'라고 할 만한 소설을 딸에게 읽히고 싶다는 생각으로 소설을 써보자고 결심한다. 때마침 그가 (1) 연구의 최전선에서 한발 물러서야만 하는 나이였고 (2) 넓고 쾌적한 주거지를 손에 넣은 후 서재에서 책상과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으며 (3) 취미 용품을 구입할 용돈이 필요해졌다, 는 것도 이러한 결심에 한 몫 한다. 취미 용품을 구입할 용돈이 필요해서 저녁시간에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 비슷한 일이 뭘까 궁리하다가 소설 쓰기를 택했다는 얘기다. 대학교수 봉급도 적지는 않았을 텐데 무슨 취미에 얼마나 돈이 필요했을까, 하고 나는 좀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위키피디아에 올라와 있는 설명을 보고 바로 납득했다.
학창시절부터 철도, 비행기, 음향장치, 자동차 등에 관심이 있었던 그는 소설을 써서 벌어들인 돈으로 자신의 집에 사람이 승차할 수 있는 철도 모형을 제작하는 수준으로까지 나아갔다고 한다. 재미있게도 모리 히로시는 매일 정원에서 자신이 만든 철도 모형을 타고 노는 것이 일과의 하나다(이런 표현은 좀 그렇지만 상당히 귀여우심). 현재는 “정원 철도들을 개업하고 차량제작을 위해 대형 공작기계를 도입하는 등 본격적인 수준의 활동을 하고 있으며 철도에 매료된 작가나 편집자, 팬들에게도 승차회를 열어 타볼 수 있게 해준다”니 이 정도면 한두 푼으로는 어림없겠다는 생각도 든다.
다시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소설을 써보자 마음먹고 3일 후에 그는 정말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 첫 작품은 『차가운 밀실과 박사들』이라는 제목의 경장편인데 탈고까지 일주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쓰긴 썼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그는 서점에 나가서 눈에 띈 잡지 <메피스토> 편집부에 무작정 원고를 보낸다. 이 대목은 교고쿠 나츠히코의 데뷔와도 흡사하다. 경기침체로 인해 운영하던 회사가 망하자 딱히 할 일이 없어서 소설을 썼고 무심코 전화기 옆에 놓여 있던 출판사로 투고했는데 원고를 받은 편집자가 "고단샤 편집부의 역량을 시험해 보기 위해 미스터리 계의 대작가가 무명의 신인인 척하며 보낸 게 아닐까 의심했다"는, 교고쿠의 데뷔작 『우부메의 여름』에 얽힌 에피소드는 유명하다. 이런 인연으로 두 사람이 친하게 된 게 아닐까 잠시 웃으며 생각해 보는데 알 길은 없다.
어쨌거나 1995년 9월에 『차가운 밀실과 박사들』을 쓴 모리 히로시는 그해 10월에는 『웃지 않는 수학자』를, 11월에는 『시적 사적 잭』을, 12월에 『모든 것이 F가 된다』를 연달아 써낸다. 모두 장편소설이다. <메피스토> 편집부에서 연락이 온 건 이 즈음이었다. 『차가운 밀실과 박사들』을 읽고 모리 히로시와 만난 <메피스토>의 편집장은 그의 작품을 모조리 출판하기로 결정한다. 다만 시리즈의 첫 책은 처녀작이 아니라 네 번째로 집필한 『모든 것이 F가 된다』로 정해졌다. 작가의 의도는 아니고 편집장이 강하게 밀어붙였다는데 결과적으로 적절한 선택이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시리즈 중에서 몰입감이 가장 좋았고 현재까지도 판매면에서 월등한 기록을 세운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20년 가까이 지난 오늘까지 그가 쓴 책은 278권, 총 판매 부수는 1,400만 부, 이 책들로 벌어들인 돈은 한화로 약 155억 원이다. 각종 해설과 추천사, 영상화에 따른 부가 수입까지 합치면 모리 히로시의 수입은 200억 원이 훌쩍 넘을 듯하다. 1년에 10억 이상을 벌어들인 셈이다. 본업(대학교수로서의 강의)이 아니라 부업(소설가로서의 글쓰기)으로 말이지. 하지만 “글을 소일거리로 쓴다는 자세는 결코 아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모리 히로시는 작품을 쓸 때마다 새로움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했고 실제로 많은 독자들이 그의 작품이 나올 때마다 그 새로움에 열광했다. 돈을 벌기 위해 ‘적당적당히’ 썼다면 2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작가로 활동할 수 없었으리라. 혹자는 ‘문학을 자본주의적 관점으로만 본다’고 모리를 비난하지만 글쎄, 이런 관점을 가진 작가가 한 명쯤 있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적어도 작가입네 하며 젠 체하지 않고 솔직하다는 점만큼은 인정해 주고 싶다.
마지막으로 그 솔직함의 산물이자 동시에 “신자본주의로 무장한 막장 매뉴얼”이라는 평도 듣고 있는 에세이 『작가의 수지』에서 모리 히로시가 소설가 지망생들에게 당부한 얘기를 옮겨보겠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행운이지만, 거기에는 반드시 또 다른 측면이 있다. 그 다른 측면은 점점 크게 부각될 것이다. 그때 직업으로서 소설가라는 위치를 지탱해 주는 것은 ‘그 일을 좋아한다’는 것만이 아니라 도리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유이며 그 자유를 누리는 데 필요한 환경이다. 그 자유와 환경은 일을 해서 얻는 '보수'로 실현되는 것이다. 이 책에서 그 구체적 예를 들었다. 다른 뜻은 없다. 독자들이 인생 설계를 하는데 모쪼록 의미 있는 데이터로 쓰였으면 좋겠다.”
아울러 ‘어떻게 쓸까’가 아니라 ‘어쨌든 쓴다’가 더 중요할 수 있다는 저자의 말도 기억해 주시길. 모든, 앞으로 소설을 쓰려는 형제자매님들의 건투를 빈다.
김홍민(북스피어 대표)
미남이고 북스피어 출판사에서 책을 만든다. 가끔 이런저런 매체에 잡문을 기고하거나 라디오에서 책을 소개하거나 출판 강의를 해서 번 돈으로 겨우 먹고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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