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는 들뢰즈의 세기였나?
푸코는 1977년 질 들뢰즈와 펠릭스 과타리의 공저 『안티 오이디푸스』 의 영역판에 「비-파시스트적 삶의 입문서」라는 매우 호의적인 서문을 붙여주었다. 그는 1970년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과 『의미와 논리』에 대해 논평한 「철학 극장」이라는 글에서 “언젠가 금세기는 들뢰즈의 세기였다고 말해질 것”이라고 극찬을 한 바도 있다. 이미 영미 학계에서도 많은 추종자를 거느리고 있던 푸코의 이런 찬사들은 들뢰즈가 영미 지식인 사회에 파급되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
1960년대 들뢰즈는 스피노자, 니체, 칸트, 베르그송 등, 이전 철학자들에 대한 독창적인 주석 작업으로 명성을 얻었다. 68년 혁명 이후 좌파 활동가이자 정신분석학자인 펠릭스 과타리와 만남은 들뢰즈 사상에 새로운 전기가 되었는데, 두 사람의 공동 작업은 1972년 『안티 오이디푸스』를 필두로 1979년까지 지속되었다. 특히 『안티 오이디푸스』와 『천 개의 고원』이라는 두 대작은 “자본주의와 분열증”이라는 더 큰 명목의 1편과 2편을 구성한다.
안티-라캉
『안티 오이디푸스』의 중요한 비판 대상은 정신분석학이다. 프로이트의 주된 관심은 원래 여성에게 흔히 나타나는 신경증(히스테리)의 치료였다. 초기만 해도 그는 신경증에 대한 연구를 통해 신경증의 원인은 성의 억압이며 성충동을 의미하는 ‘리비도’의 해방을 통해 신경증을 치료해야 한다는 급진적인 입장을 취했지만, 후기로 가면서 점차 문명을 위해 충동을 제어가 필요하다는 보수적인 입장으로 이동하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남성주체의 사회화 모델을 자기 이론의 근원으로 제시했다. 정신분석학 자체가 여성의 신경증 연구에서 비롯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모델은 여성에 대해서는 남성의 주체형성 과정에서 거세 공포를 상기시키는 부차적 존재로서 역할을 부여했을 뿐이었다.
프로이트 이후 정신분석학은 그 제자들에 의해 다양하게 분화되었다. 알프레드 아들러와 카를 융 같은 대표적인 제자들은 프로이트의 리비도 이론에 거리를 두며 보다 보수적인 독자적인 학파를 세웠다. 반면 또 다른 프로이트의 제자 빌헬름 라이히는 이들의 ‘탈성화’ 경향을 비판하며 초기 프로이트의 리비도 이론을 더욱 급진화 시키고 마르크스주의와 결합을 시도했다. 그는 성적 억압이 자본주의 체제의 억압적 성격과 연결되어 있다고 보았으며 성해방이 혁명의 주요과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1960년대 프랑스에서 자크 라캉이 “프로이트로 돌아가자”는 구호를 내세우며 큰 호응을 얻었다. 라캉은 소쉬르의 언어학을 정신분석학에 도입하여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새롭게 해석했다. 그에 따르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아버지의 법이라는 상징적ㆍ언어적 질서로 편입과정이며, 욕망은 그 속에서 생겨나는 원초적인 결핍이다. 즉, 언어질서 속에 기표로 표현된 ‘나’와 실재 인간인 ‘나’의 괴리는 근원적인 결핍과 상실로 나타나고 그 결과 결코 충족될 수 없는 욕망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들뢰즈와 과타리는 이러한 프로이트와 라캉의 이론이 사회적 문제인 정신적 병리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같은 가족 내부의 개인적 문제로 환원시키는 근본적으로 보수적 이론이라고 비판한다. 그들에 따르면 욕망은 결핍이 아니라 생성적인 흐름이며, 정신적 병리현상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체제의 문제이다. 자본주의 체제는 화폐자본의 이익이 되는 욕망의 흐름은 열어놓는 반면 그렇지 않은 흐름은 강력하게 억압하는 본질적으로 분열증적인 사회이며, 체제의 당연한 산물인 분열증 환자를 “정상화”시키려는 주류 정신분석학은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반면 들뢰즈와 과타리는 분열증 현상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를 벗어나는 흐름으로 나아가게 하는 “분열-분석”이라는 급진적 대안을 제기한다.
욕망은 초역사적인가
이러한 비판적 입장에도 불구하고 들뢰즈와 과타리 역시 욕망을 초역사적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프로이트-라캉과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개별적이고 구체적 대상에 대한 욕구가 아니라, 무한에 대한 결코 충족될 수없는 지향인 욕망이 전면에 드러나게 되는 것이 자본주의 체제의 주요 특징인 세계시장의 등장과 과잉생산물의 범람과 과연 무관한 것일까? 예컨대 자본주의 시스템이 생래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산의 과잉은 그 시스템의 무한 순환운동을 위해 끝없이 욕망을 자극해야 한다. 따라서 욕망 자체가 자본주의의 역사적 산물이 아닐까?
프로이트주의에 대한 들뢰즈ㆍ과타리의 태도는 라이히와 유사한데, 라이히도 그들처럼 오이디푸스 모델에 비판적이었으며 그들 역시 라이히처럼 욕망과 무의식의 발견자로서의 프로이트는 높이 평가한다. 실제로 『안티 오이디푸스』에는 라이히에 대해 긍정적 언급이 많으며, 들뢰즈와 과타리의 관점으로 볼 때 라이히의 문제는 자신의 전제를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욕망이란 것이 자본주의적이기도 한 것이라면, 욕망을 해방의 동력으로 보는 라이히 유의 이론들은 자유주의를 넘어서기 힘들 것이다.
『안티 오이디푸스』가 큰 호응을 얻은 1970년대는 유럽과 북미에서 성정치와 성해방의 물결이 넘실거리던 시대였다. 그러나 이는 혁명이나 해방적 측면보다는 소비 자본주의와 성 상품화로 귀결된 측면이 컸다. 1960~70년대의 페미니스트들 역시 여성의 성해방을 중요한 과제로 내세웠지만 성적 자유주의는 많은 경우 여성에게 폭력적인 경험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이후 페미니즘 운동은 성적 자유주의와 점차 다른 길을 걸어갔다.
이는 욕망에도 결국 역사와 성차가 있음을 보여준다. 프로이트주의가 19세기 유럽 백인 중산층 남성의 욕망을 반영한 것이라면 라이히 유의 욕망 해방론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욕망의 해방을 논할 때 그 욕망은 여전히 주류 남성의 욕망일 가능성이 높으며, 뤼스 이리가라이 등 많은 페미니스트 이론가들은 들뢰즈ㆍ과타리의 이론이 성차를 무시함으로써 은연중에 여성을 배제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요컨대 이들의 이론 역시 여성을 타자화하는 남성 중심적인 욕망이론이라는 것이다.
포스트구조주의의 형이상학
『안티 오이디푸스』는 극히 읽기 힘든 책이다. 논리적인 서술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들뢰즈는 자신이 사용하는 개념들을 명확히 규정하지 않고 그냥 흘러가게 내버려 둔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의외로 상당히 체계적으로 구성돼 있다. 1장 “욕망기계”는 일반적인 존재론이라고 할 수 있다. 2장 “정신분석과 가족주의”에서는 이에 기초하여 오이디푸스 이론을 비판하고 있으며, 3장 “미개, 야만, 문명”은 일종의 역사이론을 제시한다. 4장 “분열-분석 입문”은 실천적 대안으로서 분열- 분석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파리 8대학에서 들뢰즈에게 직접 사사한 일본학자 우노 구니이치는 자신이 쓴 들뢰즈 개론서에 『들뢰즈 유동의 철학 (ドゥル-ズ 流動の哲學)』이라고 제목을 붙였다. 들뢰즈에게 세계의 기본적인 존재방식은 유동이다. 욕망은 이러한 유동하는 흐름 중 가장 원천적인 흐름이다. 그러나 인간 사회의 인위적 질서는 그러한 흐름을 가로막는 영토화, 코드화와 같은 고착을 만들어낸다. 들뢰즈ㆍ과타리에 따르면 원초적 흐름인 욕망과 그것을 막는 인간 사회의 역사적 특징에 따라 그에 대응하는 고유한 정신적 병리가 나타나는데, 미개 시대에는 도착증, 전제군주가 지배하는 야만 시대에는 편집증, 자본이 지배하는 문명 시대에는 분열증이 중심적인 병리현상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가장 일반적인 존재론으로부터 인간의 역사와 사회를 포괄하는 커다란 이론체계를 구축해가는 들뢰즈와 과타리의 방식은 자신의 이론들이 새로운 형이상학이 되는 것을 철저히 경계한 데리다와 푸코에 비해 전통적인 형이상학에 가깝다. 들뢰즈는 자신의 존재론을 유물론적 존재론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런 방식이 과연 유물론적인 것인지 매우 의심스럽다. 예컨대 속류화된 마르크스주의의 변증법적 유물론은 양질전화, 부정의 부정 같은 몇 가지 추상적인 법칙으로 세계를 재단하는 사이비 유물론, 혹은 유물론으로 위장한 관념론적 존재론이라는 비판을 흔히 받곤 하는데, 들뢰즈의 존재론 역시 유사한 문제점을 갖고 있을 수 있다. 무엇보다 그들의 자본주의 분석은 유물론적인 현실 분석이라기보다 여전히 철학적이고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보인다.
들뢰즈의 시대
들뢰즈와 과타리는『안티 오이디푸스』의 속편으로 1979년 『천 개의 고원』을 출간했지만 전작만큼 큰 호응을 받지 못했다. 이후 들뢰즈는 과타리와 공동 작업을 중단하고 80년대에는 자본주의나 혁명 같은 주제보다는 주로 미술과 영화 같은 예술에 대한 분석으로 관심을 돌렸다. 이는 아마 1970년대가 아직 혁명의 열기가 식지 않은 자유주의적 시대였던 데 비해 80년대가 보수적이고 암울한 시대였음을 스스로 반영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과연 푸코의 예언처럼 20세기는 들뢰즈의 세기로 기억될 것인가? 세기가 바뀐 지금 되돌아 볼 때 별로 그럴 것 같진 않지만 적어도 한국의 90년대는 들뢰즈의 시대로 기억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특히 80년대의 마르크스주의자 상당수는 90년대 소련과 동구권 몰락 이후 알튀세르, 푸코를 거쳐 들뢰즈에서 최종적인 대안을 찾은 경우가 많았다.
사실 더욱 자유주의적인 푸코에 비하여 보다 들뢰즈의 정치적 입장은 언제나 보다 전통적 좌파와 가까웠다. 들뢰즈의 사상은 당대에도 68혁명 당시 나타난 자주관리 운동과 연관성을 가진다고 보는 사람이 많았고, 이탈리아 공장평의회 운동의 대표적 이론가였던 안토니오 네그리는 들뢰즈의 철학을 기초로 독자적인 이론체계를 구축하기도 했다.
미국 학자 그렉 렘버트는 『누가 들뢰즈와 가타리를 두려워하라』라는 책에서 들뢰즈의 사상이 미국 지식인 사회에 수용되는 과정에서 프레데릭 제임슨 같은 미국 학계의 대표적인 마르크스주의 학자가 드러낸 커다란 경계심에 대해 썼다. 애초부터 문학이론으로 수용된 데리다에 비해 들뢰즈는 확실히 마르크스주의의 경쟁이론으로 인식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푸코나 데리다와 달리 꽤 체계적이고 포괄적인 이론 체계를 가진 들뢰즈는 그런 두려움대로 저항담론이 반드시 마르크스주의적일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로 받아들여졌을 수 있다. 그리고 최소한 한국에서 90년대 들뢰즈 수용은 분명 마르크스주의의 대체물로 기능한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들뢰즈ㆍ과타리의 이론이 68혁명의 새로움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은 틀림없지만 그 한계까지 극복하고 있는 것인지는 자못 의심스러운 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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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 오이디푸스쥘르 들뢰즈,펠릭스 과타리 공저/김재인 역 | 민음사
20세기 철학의 위대한 성취, 철학자 질 들뢰즈와 정신분석학자 펠릭스 과타리가 68혁명 이후의 현재적 상황을 반성적으로 사유한 끝에 내놓은 정치철학서 『안티 오이디푸스』를 새로운 번역으로 만난다.
이정인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다양한 사회활동 틈틈이 추리소설, 교양서를 한국어로 옮기는 작업을 했다. 한 번 글을 썼다 하면 정해진 원고 분량를 훌쩍 넘기며, 수많은 고유명사를 흩날리고, 뒷부분으로 갈수록 말투가 경직되는 그는 진정한 90년대 필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