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 출신 손현주는 사진작가이면서 음식칼럼니스트, 와인칼럼니스트다. 2010년부터 섬 안면도에 정착하여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집에서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다. 사색과 탐미, 문학적 정서로 칼칼하게 풀어내는 미식과 술 이야기는 정평이 나 있다. 익숙하지 않은 길을 걸을 때 행복하다는 그녀는 책 속에 묻혀 예술에서 역사, 인류학까지 뒤죽박죽 읽으며 영감을 얻는 새벽시간을 좋아한다. 런던과 서울 등에서 사진개인전을 열었다.
『열두 달 계절 밥상 여행』은 제철 별미를 지역별로 안내하는 맛있는 여행기로, 지역에서 나는 제철 식재료와 그 재료가 생산되는 과정, 음식을 선보이게 되는 과정(조리법)과, 한 끼 식사를 차려내는 사람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저자 손현주가 선보이는 제철 음식 여행을 떠나보자.
<서울신문>에서 나온 기사를 토대로 재단장해 나온 책입니다. 추가하거나 손본 부분이 있다면요?
2013년에 1년간, 매주 서울신문에 ‘손현주의 계절밥상여행’이라는 제목으로 전국 제철 밥상 이야기를 실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종이 신문에는 지면 제약이 있지요. 표현에도 한계가 있었고 맘껏 쓰기 어려웠습니다. 해서 이번에는 그 기사를 바탕으로 쓰고 싶은 말을 덧붙이고, 그때 소개하지 못했던 지역을 월별로 하나씩 더 넣었습니다. 책에 두툼하게 살집이 붙었지요. 아울러 중간 부록으로 ‘고집불통 맛의 비결’ 코너를 삽입해 맛의 철학을 지닌 명인들의 음식 이야기를 인터뷰 형식으로 실었습니다. 신문에는 없었던 ‘술집수첩’을 통해 해당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전통주를 다뤘고, ‘여행수첩’은 둘러볼 만한 장소를 좀 더 자세하게 설명했습니다. 계절 음식에서 여행, 술까지 알차게 즐기도록 구성의 밀도를 높인 셈이지요.
김옥종 시인, 임영수 씨 등 사람들과의 만남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중 특별히 기억나는 에피소드를 풀어서 써주시자면.
음식이라는 것이 다분히 주관적이어서 제가 아무리 특정 음식을 놓고 ‘맛이 기막히게 좋더라’라고 써도 직접 가보고 난 뒤 싫어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맛을 떠나 서비스, 청결도, 가격 등 어느 한 가지라도 소비자가 판단하여 부족하면, 그 꼬투리 하나 때문에 외면당하지요. 그래서 음식에 관련한 글이 참 어렵습니다. 허나 저는 제 소신대로 밀고 나가고자 했습니다.
책에 소개한 곳인데요. 김옥종 시인의 식당은 참 소박합니다. 그냥 동네 분들이 삼삼오오 오가며 주인이 내주는 백반을 먹고, 저녁이면 김 시인과 “오늘 안주는 뭐가 좋을까나” 의논하며 예약을 하고, 주인이 내주는 대로 술상이 벌어지는 곳이지요. 김 시인은 그 큰 몸집으로 땀을 뻘뻘 흘리며 쟁반을 나르고 탁자에 마른 행주질을 합니다. 하천 근처의 식당은 좁고 무언가가 잔뜩 쌓여 있으며 쿰쿰한 냄새도 좀 납니다. 요즘 반질반질하게 인테리어 해놓은 식당들과는 비교가 안 되지요. 그렇다고 제가 그 분하고 무슨 이해관계가 있어 취재를 한 것도 아닙니다. 번듯한 인테리어와 잘 갖춘 서비스를 원하는 사람들은 실망할 수 있겠지요.
제가 외롭게 ‘혼밥’을 택하며 먼 길 식도락에 나선 것은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는 제철 음식을 만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음식을 내주는 주인의 마음을 읽고 싶었고, 식재료 하나하나에 가치를 두는 이 땅의 식당 주인들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요리사가 넘쳐나는 시대에 김옥종 시인은 아웃사이더입니다. 유명한 요리학교를 다닌 것도 아니고 어머니 음식 만드는 솜씨를 넘겨다보며, 동네 형에게 물어보고, 실패를 거듭하며 스스로 터득한 맛입니다. 그가 전라도 사투리로 풀어내는 음식이야기는 진심이 담겨 있습니다. 그가 술 한잔 먹고 단숨에 몸에서 뿜어내는 시처럼 직설적이고 꾸밈이 없습니다.
고독한 현대인들이 그의 식당에서 그와 그의 어머니가 끓여내는 된장국을 달게 먹고 힘을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책에도 썼지만, 사진 한 장 찍자고 담벼락에 세워놨더니 그 눈빛이 얼마나 매섭던지 권투장갑을 끼워주고 싶었습니다. 솥뚜껑 같은 손에서 투박한 고향 음식이 나오더군요. 눈빛은 사람의 마음을 읽어냅니다. 이도 저도 아니면 문 닫고 술이나 먹으러 나간다는 그입니다. 다만 한가지 아쉽다면, 그의 술상을 저녁에 코 삐뚤어지게 받아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한낮에 가볍게 막걸리 놓고 취재를 한 것이 맘에 걸립니다. 그래서 또 가야 한다는 명분이 생기는 것이죠.
맛집수첩/밥상수첩/술집수첩/여행수첩 등 각 지방마다 특징과 평가를 정리했습니다. 기자 생활 당시 쓰던 수첩을 염두에 둔 작명인가요?
제가 지은 건 아닙니다. 출판사 편집자가 그렇게 정했는데, 아마 편집자도 제가 취재수첩을 들고 전국을 휘돌며 써내려 가는 그 느낌을 전달하고 싶었을 거예요. 실제로 기자생활 때부터 모아온 수첩이 한 바구니입니다. 제 취재수첩은 저만 알게 휘갈겨 쓴 암호 같은 취재 글과 그림, 전화번호들로 복잡합니다. 가끔은 하도 휘갈겨놔서 제가 쓴 글을 제가 못 알아 봐 애먹지만 말이죠. 하하.
일 년 열두 달 철에 맞는 음식과 장소를 찾았습니다. 몇 년 동안 취재한 건지 궁금하고요. 다니시면서 힘든 점은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신문의 글은 시기가 중요합니다. <서울신문>에 기고할 때는 1년을 작정하고 철마다 테마를 정해 떠돌았지요. 그 후 사진작가로 활동하며 개인전을 수 차례 하면서 활동이 바빠 잠깐 중단했었습니다. 3년이란 시간이 흘렀으니 재 취재가 불가피했습니다. 다시 방문하거나 확인하고, 추가 취재를 위해 떠돌았어요. 3년 이상 걸린 책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저는 혼자 취재 다니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예약이 필요한 집을 제외하고는 미리 연락도 하지 않거니와 신분을 밝히지도 않습니다. 불쑥 찾아가 다른 손님들처럼 돈을 내고 밥을 먹습니다. 그리고 아니라고 생각되면 미련 없이 일어서고요, 취재에 마땅한 이유를 발견하면 주인이 한가할 때를 기다려 이것저것 물어봅니다.
아무래도 여자 혼자 여행을 한다는 게 한국에서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숙소 문제가 제일 힘들더군요. 모텔밖에 없는 바닷가 동네에서는 입실할 때 ‘혼자냐’며 아래 위를 훑어보던 주인의 눈빛이 두려워서 의자랑 탁자 등 방 안의 가구를 문쪽에 밀어놓고 쪽잠을 청했던 적도 있습니다. 겨울날, 울릉도에 갈 때는 포항에서 배가 출항하지 않아 며칠을 떠돌다 겨우 들어갈 수 있었는데, 나올 때도 며칠 배가 뜨지 않았었지요. 게다가 배멀미로 초죽음이 되었던 기억도 선연하고요.
한 번은 아무 연락 없이 산채밥상을 먹을 수 있다는 정보만 들고 오지로 유명한 비수구미를 들어갔는데, 예약 없는 홀홀단신이라고 밥을 안 주더군요. 무작정 이장님 댁을 찾아가 밥도 내놓고 잠도 재워달라고 우겼는데요, 생각해보면 웃음이 나옵니다. 아마 이장님 댁에서 받아주지 않았으면 그 산속에서 애 좀 먹었을 거에요. 먹고 즐기자고 시작한 일이 제 취재 철학 때문에 죽도록 괴로운 일들이 되어 애먹은 적이 많습니다.
주방을 공개한 에피소드도 흥미로웠습니다. 공개를 꺼리는 분들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취재하시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열 수 있었던 이유가 있을까요?
전주 가족회관 김년임 명인의 경우는 자신의 주방을 자랑스럽게 공개합니다. 그만큼 청결하고 다 보여줘도 될 만큼 자신 있다는 뜻이잖아요. 그러고 보니 제가 취재한 식당들 중에는 오픈 주방이 많았던 것 같네요. 육고기와 생선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집들은 주방을 열어 보여주기가 쉽지 않습니다. 기름기나 생선 비린내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청결하게 여기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부엌을 열고 음식을 하는 집에는 후한 점수를 줬습니다. 안동 옥야식당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선지가 문 밖에 있고, 기름기투성이인 도마를 보면 정이 뚝 떨어지나 선짓국 특성상 감안해야 하는 부분이 있지요. 백발의 할머니가 도마를 차지하고 ‘그 손님 멀리서 왔으니 고기 많이 올려주라’고 인사말을 합니다. 인심이 남아 있어요. 그런 사람 냄새를 느끼고 싶어 완보로 먼 길 다니는 것 아닐까요. 대부분 취재라고 말하면 주춤거리지만, 그래도 공개하고 보여주는 집들은 의식이 있는 집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열리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립니다. 낯선 작가에게 어찌 속 이야기를 불쑥 털어놓을 수 있겠어요. 그래서 저는 바쁜 시간을 피해 오후 2시 너머 밥을 먹으러 갑니다. 바쁜 시간에 갔으면 한가해질 때까지 기다려 대화를 나누게 되는데요. 이런저런 사적인 얘기들이 오가다가 어느 순간 상대방이 마음을 툭 열 면 생각해뒀던 질문을 하지요. 사람 사는 것은 비슷해서 특별한 비법은 없다고 생각해요.
와인 전문 기자로 알려져 있는데, 막걸리 소개도 자세히 나와있습니다. 작가님이 술과 음식을 즐기는 방법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전 반주로 즐기는 술을 좋아합니다. 과거 아버지의 밥상에는 늘 술잔이 같이 올라갔지요. 취하기 위해 마시는 술이 아니고, 음식 맛을 돋우며 흐름을 좋게 하는 술이었지요. 그래서 약주였습니다. 저는 와인은 취하게 마시면 안 되는 술이라고 늘 강조합니다. 해외 와이너리에 가면 양조장 주인들은 그 지역 음식에 자기가 빚은 와인을 마리아주하여 귀하게 대접했지요. 지역 술과 지역음식은 코드가 같습니다.
와인에 비해서 우리나라는 그 지방만의 술과 음식이 많이 발굴되지 않은 느낌입니다. 지방 음식과 술을 소개하면서 바라시는 점이 있었다면요?
한국의 방방곡곡을 떠돌면서 지역의 밥상을 마주하며 저 또한 가능하면 지역 술 한 잔 곁들이는 것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식당에서 그 지역 전통주를 만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막걸리나 가양주는 유통기한이나 보급의 문제로 지역에서조차 찾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지나다가 양조장이 있으면 불쑥 들어가 막걸리 한 병 사는 것을 잊지 않았고, 우리 술을 알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지역의 우리 술을 곁들이게 된 것입니다.
그 지역의 물로 빚은 술은 그 지역의 토속음식과 대개 아주 좋은 궁합을 이룹니다. 가을날,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과 그 지역에서만 나는 술 한잔의 낭만을 누려보시면 어떨까요. 저 역시 어디로 다시 떠나야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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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달 계절 밥상 여행손현주 저 | 생각정거장
여행하며 즐기는 맛있는 여행 에세이『열두 달 계절 밥상 여행』. 이 책은 제철 별미를 지역별로 안내하는 맛있는 여행기로, 지역에서 나는 제철 식재료와 그 재료가 생산되는 과정, 음식을 선보이게 되는 과정(조리법)과, 한 끼 식사를 차려내는 사람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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