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험가 남영호 “사막은 나에게 성지 같은 곳”
사막은 길이라는 것 자체가 없잖아요. 그런데 아무런 길이 없는, 모래만 쫙 깔린 곳이 나타나니까 이상하게 자신감이 생겼어요. 이제는 그냥 길을 만들면 되니까요. 가겠다는 방향만 있으니까 이제부터는 자유롭게 가면 되더라고요.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진짜 사막을 만나고 나서는 그렇게 자유로울 수가 없었어요.
글ㆍ사진 신연선
2016.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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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을 자세히 보면 황홀감이 들 정도로 다양한 색을 가지고 있다. 사막을 이루는 모래알 성분에 따라 때로는 흰색, 회색, 노란색, 붉은색, 푸른색을 띠기도 하고 해가 지고 뜨는 동안 햇빛의 온도와 양과 방향에 따라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뿐 아니라 사막은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곳이기도 하다. 모든 것을 스스로 완벽에 가깝게 정화시킨다.(202쪽)

 

유라시아 대륙 18,000km 횡단(2006), 타클라마칸 사막 450km 종단(2009), 갠지스 강 2,510km 완주(2010), 고비 사막 1,100km 횡단(2011), 그레이트빅토리아 사막 1,400km 횡단(2012), 아라비아 엠프티쿼터 사막 1,000km 횡단(2013), 깁슨 사막과 그레이트샌디 사막 1,670km 횡단(2014), 알타이 산맥과 고비 사막 2,400km 횡단(2014), 치와와 사막 1,200km 종단(2015).  사막 탐험가 남영호 대장의 기록이다. 모두 30,430km, 지구의 둘레가 약 40,000km라고 하니 그 엄청난 거리가 압도적으로 다가온다. 아니다. 도무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게다가 그가 걸은 곳은 전부 험지가 아닌가. 한낮의 강렬한 햇빛과 한밤의 차가움이 공존하는 곳, 시작과 끝조차 불분명한 곳, 시시각각 모습을 바꾸는 세상의 끝. 그런데 남영호 대장은 그곳을 다녀와도 또 그리운 곳이라고 말했다. 사막이 자신의 성지라고 말했다. 인간 대표로서 지구 한 곳의 특별한 대표가 한 자리에서 기를 나누는 느낌이라고, 그는 말했다. 


인터넷으로 온 세상을 관찰할 수 있고, 실시간으로 세계와 접속할 수 있는 세상. 21세기에 탐험이란 어떤 의미인지 그에게 물었다. “저 같은 애가 하나 있는 것도 재미있잖아요.” ‘21세기 탐험가’가 웃으며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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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나밖에 없다


사막을 ‘피하려 해도 들어갈 수밖에 없는 존재’라 했는데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아요. 결국 피할 수 없는 존재란, 왜일까요?


프롤로그에 왜 탐험을 하고, 왜 집밖으로 뛰어 나가야 했는지 구체적이진 않지만 약간 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요. 물론 탐험가가 꿈이기도 했지만요.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사실 사람과의 관계를 피하고 싶은 마음이 굉장히 많았어요. 사막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이미지가 텅 빈 곳, 막막한 곳인데요. 정말 그 끝을 한 번 보고 싶었던 거예요. 내가 겪고 있는 게 별 것 아니라는, 진짜 막막함이 무엇인가라고 하는 걸 경험해보고 싶었어요. 처음엔 그런 오기가 있었죠. 그렇게 갔지만 사막을 걸으면서 전혀 몰랐던 사막을 봤어요. 사실 자연현상이 주는 감동은 생각보다 그렇게 크지 않은 것 같아요. 물론 대자연의 감동이 있죠. 그렇지만 너무 텅 비어있기 때문에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오히려 결국 기대할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죠. 내가 놓고 온 인연들에 대한 생각을 한 것이 의미가 있더라고요. 강도를 만나고, 온갖 일을 겪으면서 정말 미워했던 가족들이 그리워졌어요. 과연 내가 이곳에 있었다면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었을까? 그래서 사막을 다녀오면 항상 그곳이 또 그리워요.

 

사막이라는 공간에서 오롯이 혼자가 되는 경험을 하는 거군요.


사막이 가진 가장 큰 힘은 아마 씻어낼 수 있다는 것일 거예요. 너무 완벽하게 비어있는 곳이라 아주 근본적인 생각들을 좀 더 깊이 있게 하도록 해주는 것 같거든요. 또 사막 자체가 자정능력이 굉장히 뛰어난 곳이에요. 아시죠? 정말 깨끗한 곳이잖아요. 밥을 먹고 나면 바람이 그릇에 남은 모든 것을 다 말려주고, 모래가 나머지를 다 씻어줘요. 그런 모습처럼 그곳을 걷는 저조차도 모래알로 씻는 듯한 느낌을 받죠. 처음엔 몰랐어요. 막막하고, 고립된 느낌도 들었고요. 두 번, 세 번, 걷는 시간이 점점 쌓일수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가기 전엔 정말 오기였는데 말이죠.

 

처음 한 번은 오기, 도전으로 갈 수 있죠. 그러나 이곳을 계속해서 갔단 말이에요. 마치 ‘돌아가는’ 것처럼요.


모르겠어요, 예민한 사람들은 한 번을 만나도 많은 것을 느끼고 감동 받겠지만요. 저는 좀 무뎠어요. 계속 사막을 간 이유는 모르니까 궁금했던 거죠. 산은 그렇죠. 베이스캠프를 가고, 1캠프, 2캠프, 3캠프를 올라서, 루트를 따라가면 정상이 나오고, 올라갔던 길로 하산하는 건데요. 사막은 뭐랄까, 처음부터 끝까지 알 수 없었어요. 하루 중에도 클라이맥스가 있을 수 있고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거죠. 그거였어요.

 

처음 만났던 사막은 어떤 모습이었어요?


제일 막막했던 게 처음이었어요. 2009년 타클라마칸 사막 갔을 때인데요. 일생 첫 사막이었고, 사막에 대한 동경, 호기심, 오기, 남들은 안 한 걸 해보겠다는 조금은 쓸데없는 자신감 같은 것들이 있었죠. 갔는데 공안의 조사를 받았어요. 감금 상태로요. GPS를 잃어버렸죠. 그 안에 내 사막을 건널 수 있는 모든 게 들어있었거든요. 그걸 잃고 나니 가야하나 싶더라고요. 그런데 내가 선택한 거잖아요. 어렵게 왔고요. 이렇게 끝나는 건 너무 아쉬운 거죠.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는데 그냥 사막에 갔어요. 무작정. 나침반이 있긴 하지만 심리적 위안 이상도 이하도 아닌 상태였고요. 사막은 길이라는 것 자체가 없잖아요. 그런데 아무런 길이 없는, 모래만 쫙 깔린 곳이 나타나니까 이상하게 자신감이 생겼어요. 이제는 그냥 길을 만들면 되니까요. 가겠다는 방향만 있으니까 이제부터는 자유롭게 가면 되더라고요.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진짜 사막을 만나고 나서는 그렇게 자유로울 수가 없었어요. 사막은 그런 면에서 되게 단순해 보이지만 아주 창의적인 곳이기도 하죠.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너무 많은 것이 있고요.

 

흥미로운 일화가 있어요. 처음 탐험을 시작하려고 했을 때 한 선배에게서 “너무 늦었다, 다른 일 알아봐라”라는 말을 들었다고요.


그분은 산악인이나 저 같은 일을 하는 동료들에게 아주 대단해 보였던 분이에요. 제가 이걸 직업으로 택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는 저도 잘되고 싶은 욕심을 갖게 되잖아요. 그래서 제일 잘된 분에게 용기 얻을 수 있는 한 마디를 듣고 싶었어요. 그랬는데 그런 말을 들었죠. 제게는 오히려 그게 전화위복이 됐고요. 만약 “그래, 잘할 거야”라는 말을 듣고 시작했다면 처음부터 좌절을 계속 맛봤을 것 같아요. 제가 남홍길(웃음)이 되지 못한 것에 대한 비애를 진하게 느꼈을 것 같고요. 오히려 하지 말라는 말이 다른 면에서 자극이 됐죠. 그런 의미에서는 그분이 정말 고마워요.

 

사막에서의 경험이라고 하는 것이 대개는 고통스러운 것들이잖아요. 강도를 당하기도 하고, 죽음의 고통을 느끼기도 하고요.


정말 고통스러웠죠. 주변에서 볼 때는 말도 안 되는 일을 하겠다는 거였고요. 사막을 간지 이제 십 년이 됐는데요. 여전히 저한테 물어봐요. 결혼은 했냐고요. 탐험가로 산다는 게 어떤 건지 도무지 일반적인 상식으로 가늠이 안 되는 거겠죠. 그렇지만 전 행복해요.

 

저자에게 감정이입하면 그 마음이 충분히 공감되면서도 주변인이라고 생각하면 느낌이 확 달라지거든요. 사랑하는 사람의 안위를 걱정하는 마음은 누구나 마찬가지겠죠. 그런 부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정말 그 사람을 생각하고 사랑한다면 그 사람을 살려야 하잖아요. 자연사를 제외하고 저 같은 경우 죽는 방법은 두 가지일 텐데요. 강도를 만나거나 험한 일을 당해서 죽을 수도 있지만 더 힘든 건 서서히 죽는 거거든요. 평생 하고 싶었던 이 일을 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다른 길을 선택했을 때, 삶에 대한 만족 등 여러 면에서 실패한 자의 느낌을 떨칠 수 없을 것 같아요. 물론 다른 생활에서 다른 보람을 찾을 수는 있겠죠. 반드시 이게 아니면 아니라는 건 아니지만요. 제 경우 일반적이지 않은 꿈을 꾸는 것, 그것을 실천하는 것 자체가 이미 놓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죠. 아내 입장에서는 위험이 많다는 것을 알지만 불상사가 없기를 바랄 뿐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도록 지켜봐주는 것 같아요.


좀 다른 것 같아요. 젊은 친구들이 ‘무작정’이라는 말을 많이 쓰더라고요. 저는 아주 조심해야 할 표현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무작정 사표를 내고 무작정 이 길에 뛰어들진 않았어요. 이 일을 하고 싶어서 지난 시간을 건너온 거거든요. 적어도 내 인생에 책임감을 갖고 사랑하는 분이라면 절대로 무작정은 있을 수가 없죠. 삶에 대한 진지한 생각을 가지고 선택을 하고 나면 위험 부담이라는 건 어느 분야에든 다 있는 거예요.

 

사막과 일상 사이의 균형을 잘 유지하는 것도 무척 중요한 일일 것 같아요.


이곳에 있는 동안에도 모든 일이 사막과 관련되어 있을 수밖에 없죠. 몸은 사막을 떠났지만 한국에 있는 6~7개월 동안 어딘가에 가서 사막 이야기를 하고 있고, 사막을 파악하고 있죠. 모두 그 연장선상에 있는데요. 사막에 있는 동안은 제가 가족을 잘 챙길 수 없잖아요. 기껏해야 전화를 하거나 이런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전혀 없어요. 그래서 이곳에 있는 동안은 최대한 아이, 아내와 시간을 많이 가지려고 해요. 저는 출근을 안 하니까 밖에 생산적인 일이 있지 않은 이상 집에서 최대한 못했던 이야기를 나누고요.

 
사실 분리라는 게, 다른 직장인 아빠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저는 좀 오랫동안 회사에 갔다가 와서 또 오랫동안 있는 거니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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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는 결코 사막을 질주하지 않는다


생각의 변화도 중요한 부분일 것 같은데요. 어느 순간 ‘내 앞의 사막을 좀 더 행복하게 만끽하고 싶다’고 했거든요. 완주 자체가 아니라 과정의 중요함을 이야기했어요.


처음에는 말씀드린 대로 오기와 투지밖에 없었어요. 그러니까 몸이 무겁더라고요. 사고도, 몸도 경직됐어요. 어깨가 정말 찢어지는 줄 알았어요. 배낭을 내려놓을 때마다 근육이 파열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거의 눈물이 날 정도였으니까요. 오기로만 다니니까 재미가 없는 거예요. 막막하기만 해요. 그래서 걷는 재미를 발견하고 싶다는 생각을 몇 번 가고부터 하게 된 거죠. 처음에는 무조건 완주해야 하고, 빨리 도착해야 하고, 횡단 소식을 알리고 싶은 바보 같은 마음이었어요. 남한테 보여주는 것에 집착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허무하더라고요. 분명히 사막을 많이 걷긴 했는데 사막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요. 왜 걷는지 자괴감마저 드는 시점이 왔었어요. 좀 더 재미있게 걸어보자, 애정을 갖고 걸어보자, 이왕 걸어야 할 나의 사막이라면 좋아하면서 가야하는 것 아닌가, 생각했죠. 그래서 요즘에는 가기 전에 나름대로 공부를 해요. 칼라하리 사막 같은 경우는 다이아몬드 산업에 대한 공부를 조금 했고요. 그곳에 살고 있는 ‘부시맨’, 그들의 역사, 문화에 관한 책도 읽어보고요. 그러고 나니까 훨씬 재미있더라고요. 하나하나가 허투루 보이지 않는 거예요. 모르면 스쳐지나갔을 법한 것들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요. 사막을 좀 더 알게 됐어요. 아주 기분 좋을 때는 하루나 이틀 텐트를 치고 그 자리에 머물기도 해요.

 

지난 시간에 대한 아쉬움에서 비롯된 생각이었네요.

 

전에도 아쉬움은 있었어요. 그때의 아쉬움은 ‘여기 언제 다시 올까’하는 아쉬움이었고요. 지금은 ‘너무 빨리 스쳐지나가는 것 같다’ 하는 아쉬움이에요. 더 보고,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말이에요. 그건 애정도가 좀 달라졌다는 말이겠죠.

 

책에서 한 문장을 꼽는다면 ‘낙타는 결코 사막을 질주하지 않는다’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정말 중요한 삶의 태도라는 생각도 들고, 독자가 이 말은 꼭 가져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말은 책의 많은 부분에 해당될 것 같아요. 사막에서 도망칠 수밖에 없던 라이언도 그렇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두려울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러니 조급해지고, 결국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가 없게 돼요. 라이언도 그러다보니 사막을 질주하게 된 거였어요. 어떻게 보면 책을 쓰면서 저도 다시 배운 것 같아요. 제목을 사막은 인생의 지도라고 썼지만, 앞서 나의 사막이라고 말씀 드렸던 것도 사실은 제 삶 자체를 그렇고 보고 있는 거거든요. 사막보다 더 척박한 삶이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 사막에 애정을 느끼고 있죠. 그러면, 살아가려면 이왕이면 행복하게 살아야 하잖아요. 그 전까지는 남들이 뭐하면 그게 하고 싶었던 거고, 남들이 뭘 가지면 그게 갖고 싶었던 거였는데 어느 날부터 내 인생을 남의 인생처럼 사는 게 지겨워진 거고, 스스로 부끄러워진 거예요. 내 인생을 내 색깔로 재미있게 살아보고 싶다, 그런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강의도 많이 하시잖아요.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뭐예요?


몇 가지가 있어요. 먼저 왜 하필 사막이에요, 하는 건데요. 저는 그 질문 너무 싫어요. 좋은 질문이긴 하지만요. 또는 경제적인 건 어떻게 해결하느냐고 묻고요. 사막에서는 뭘 먹는지, 짐은 어떻게 가지고 가는지, 그런 것들을 많이 질문해요. 사람들이 사막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가 너무 로맨틱해요. 그게 문제라고 생각해요. 석양이 모래 언덕 너머로 쫙 펼쳐져 있고, 거기에 하얀 캔버스 텐트가 있고, 양탄자가 깔려 있고, 와인잔에 화이트 와인이 기포를 올리고 있는 상상들 있잖아요.(웃음) 오아시스의 환상적인 면이요.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사막의 아름다움은 그렇게 만들어놓은 곳이 아니라 진짜 별 것 아닌 데서 느끼거든요. 강연의 청중들이 사막에 대해 잘 모르니까 단순한 호기심으로 질문하시는 것들이죠. 제가 사진을 보여드려요. 탐험가의 식사 장면이요. 정말 남루하거든요. 그렇지만 표정들은 다 행복하죠. 진지하고요. 엄숙하기까지 하죠. 그런 생생한 모습을 보여드리면 좀 실감하시는 것 같아요.

 

사막에서의 생활은 최대한 문명에서 멀어진 상태잖아요. 그것을 경험한 삶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삶은 완전히 다를 거예요.


차이가 분명 있겠죠. 제 경우 아주 일상적이지 않은 환경에 떨어져 있을 때 쾌감을 느껴요. 어떤 거냐면 ‘내가 여기 있는 거 아무도 모르겠지’예요. 그리고, ‘여기 와본 사람이 전 세계에 몇 명이나 될까’죠. 지금 이 순간 모두가 다 스마트폰을 보고 있을 때, 나는 그걸 떨치고 이곳에 와 있는 거잖아요. 특별한 존재라는 쾌감이 굉장히 컸었어요. 인간의 발걸음이 닿지 않은, 망가지지 않은 원래의 모습이 주는 매력은 정말 단순히 매력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힘이 있어요. 지구가 탄생한 뒤 인간에 의해 결코 모습이 변하지 않은 사막이라는 곳에는 대단한 에너지가 있거든요. 정말 대단해요.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이런 것 같아요. 인간 대표와 지구의 어떤 특별한 곳의 대표가 한 자리에 있는 듯한, 그래서 서로의 기를 나누는, 그런 느낌을 받아요. 진짜 그 느낌은 어떤 대단한 소설가도 글로 표현하지 못할 거예요.

 

그 공간에서 어떤 해방감을 느끼나요?


뭐랄까, 자유롭게 떠나왔고, 자유롭게 걸어가면 되는 거죠. 그런데 그 자유는 그냥 막 걷는다고 자유는 아닌 것 같아요. 오히려 스스로에 대한 책임감이라든지 보이지 않는 규율이 분명히 있죠. 자유롭지만 그 자유를 갖기까지 무던히 많은 노력과 좌절을 느꼈거든요. 그러면서 서서히 제 안에서 나도 모르게 내가 지키는 규율이 생겨난 것이죠. 그런데 그게 전혀 불편하지 않아요. 아주 즐겁게 지킬 수 있어요. 그런 규율이 없이는 자유가 자유로 과연 느껴질까요?

 

서서히 형성된 나만의 규칙이라는 건,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인가요?


글쎄요, 작은 제목들에 들어간 말들이 그것일 텐데요. 사막에 함께 갔다가 중간에 대원을 보낼 수밖에 없던 경우가 몇 번 있었어요. 원정은 서로 100%, 가깝게가 아니라 완전히, 신뢰해야 가능해요. 힘든 곳이잖아요. 다양한 불확실성이 있고요. 때문에 원정대라는 특수성이 있죠. 그러려면 스스로가 준비되어야 해요. 이곳에 왜 왔는지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하고요. 스스로 목표나 동기가 단단하지 않은 상태라면 원정이 힘든 순간 지속하기가 어려워지죠. 몇 번 아픔을 겪고 나니 동료에 대한 생각도 달라지더라고요. 같이 간다는 게 뭘까, 생각을 많이 했어요. 내가 손을 잡고 출발했으면 손을 잡았을 때의 마음을 절대로 잊지 말자 생각했고요. 혼자 갈 수 있는 길이면 왜 손을 잡았겠어요. 끝까지 놓지 않고 가자, 서두르지 않고 행복하게 길을 만끽하며 걷자, 생각해요.

 

혼자 걷는 길이 아니라 더 중요한 규칙들이네요.


걷는 건 혼자라 하더라도 현장에서, 한국에서 저를 지원하는 분들이 계시고요. 경우에 따라 스태프들도 있고요. 어쨌든 우리는 같은 목표로 같은 곳에서 같은 일을 하는 거죠. 혼자서 되는 건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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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아주 성스러운 곳


이런 세상, 모든 정보가 공개되고 실시간으로 연결되는 지금 탐험을 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어떤 철학을 갖고 계시는지 궁금해요.


저도 그런 생각을 했어요. 21세기 탐험가, 과연 존재 가능한 것이냐. 저는 존재 가능 여부를 떠나 이것이 굉장히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모든 것을 실시간으로 다 보고 있고 그래서 다 안다고 생각해요. 때문에 결과적으로 우리는 눈 먼 사람들이에요. 남이 찍은 사진을 SNS에서 보고, 구글맵을 보고, 못 볼 데가 없죠. 다 안다고 생각하고요. 그러니 거기에 멈춰버려요. 그 사진과 화면을 본들 그곳의 바람과 촉감, 냄새와 빗방울을 알진 못하거든요. 결코 알 수 없죠. 단지 그런 느낌을 떠나서라도, 아직 발견할 곳들이 정말 많아요. 탐험의 본질적인, 순수한 의미에서 본다 하더라도 탐험은 지속되어야 하는 것이죠. 누가 보면 무모한 도전이죠. 그런데 우리 시대에는 영웅이 필요해요. 저 같은 애가(웃음) 하나 있는 것도 재미있잖아요.


사막에서는 진짜 소통, 진짜 고백을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사막은 저한테는 성지 같은 곳이에요. 아주 성스러운 곳이에요.

 

다음 탐험 일정은 언제예요?


10월 말에 출발해요. 파타고니아라는 곳에 가요.

 

기간이 얼마나 되는데요?


그건 몰라요.(웃음) 대략 석 달이 넘진 않을 거예요. 뒤를 모른다고 하면 못 돌아오게 될까봐(웃음) 무서워서 그렇게 얘기할게요. 60일에서 70일 정도 되지 않을까 싶어요. 굉장히 재미있는 모험이에요.

 

사진을 직접 찍으시는데, 걷는 중에 사진 찍기가 어려울 것 같거든요. 탐험가의 하루를 묘사해주신다면 어떨까요?


어쨌든 사진 전공이라 찍고 싶은 순간이 분명히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못 찍어요. 솔직히 얘기하면 고돼서요. 카메라 꺼내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어요. 모험과 사진 작업을 병행하기는 참 어려워요. 요즘은 사진을 찍기 위해 시간을 좀 더 할애하기도 하고요. 하루나 이틀 더 머물기도 해요. 처음에는 여유가 없었어요. 백 컷도 안 찍고 온 적도 있어요. 좀 더 머물고 싶어진 순간부터는 바라보게 되고, 더 많이 찍게 됐어요.


일과는, 일단 아침에 일어나서 성스럽게 식사를 하고요.(웃음) 짐을 꾸려서 떠나요. 시계와 GPS를 보면서 어디까지 갈까 구상하죠. 탐험 여정이 천 킬로미터가 돼도 거의 한 번 왔던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자료를 많이 들여다보거든요. 이쯤 무슨 협곡이 나오겠다, 이 너머에 무슨 산이 있겠다, 아는 거죠. 그러니까 오래된 친구 만나는 것 같은 느낌으로 가요. 한낮은 피해야 하니까 점심이 되면 약도 좀 먹고, 식사하고, 몸 상태를 확인해요. 저녁이 되면 일찍 텐트를 치고 일기도 쓰고, 걸어온 거리 확인하고, 가족에게 전화 한 통 하고요. 참 단순해요. 아주 단순한 일상이에요. 묵언수행하는 스님 같은 느낌일까요.

 

탐험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질문을 한 번 던지고 싶어요. 왜 탐험가가 되고 싶은가 하고요. 모든 답은 스스로 발견하는 거니까요. 제가 아무리 좋은 얘기를 해줘도 그것에 감동 받을 수는 있지만 과연 무슨 도움이 될까요. 책도 그냥 저의 이야기를 적은 것뿐이에요. 선배 탐험가 남영호가 전하는 메시지, 이런 건 아닌 것 같고요. 왜 하고 싶니, 에 대한 대답을 스스로가 해본다면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해요. 그 과정은 돌이킬 수 없잖아요. 굉장히 중요한 것이고요. 평생의 근간이 될 텐데요.

 

반드시 이루고 싶은 궁극의 목표가 있으세요?


탐험을 하면서 다짐한 게 하나 있어요. 탐험하며 갖게 되는 콘텐츠들을 아이들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인데요. 구체적으로는 아이들을 흙에, 숲에 떨어뜨려 놓고 정말 재미있게 놀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아이들이 노는 법을 몰라요. 인간이 자연에서 누릴 수 있는 기쁨을 모르잖아요. 그걸 일깨우고 싶어요. 부모가 없거나 부모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가정에 있는 아이들을 초대해서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고도 싶고요. 소외 받는다는 느낌 없이 사랑 받고 있다는 느낌, 내 편이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싶은 소망이죠.

 

이런 꿈을 갖게 된 이유도 있을 것 같아요.


고향이 강원도 영월인데요. 탄광이 많았던 곳이죠. 지금은 탄광이 없어져서 힘들게 사는 분들이 많아요. 지역 장학회에 꾸준히 후원을 하고 있었는데 좀 아쉬웠어요. 적극적인 뭔가를 하고 싶었어요. 강원도가 오죽 춥습니까. 추천을 부탁해서 십여 명 학생들에게 덕 다운 재킷을 보냈죠. 어느 날 전화가 왔어요. 부모 없이 둘뿐인 남매였는데요. 누나는 타지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가끔 동생을 보러 집에 오는 거죠. 오랜만에 왔는데 동생이 비싼 파카를 입고 있더래요. 나쁜 짓을 한 줄 알고 다그친 거예요. 그런데 제가 보낸 옷이었던 거죠. 동생한테 너무 미안해서 누나가 수소문 끝에 제게 전화를 했더라고요. 울면서 고맙다고 해요. 제게는 그 일이 굉장히 충격이었어요. 물론 적은 돈은 아니었지만 저한테는 그렇게 큰 용기가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한 가정에 그런 영향을 끼친 거잖아요. 정말 보통일이 아니구나, 잘해야겠구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게 계기가 됐던 것 같아요. 돈이 많아서 쾌척하는 것도 좋겠지만 정말 좋은 방법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그런 친구들과 함께 하는 캠프를 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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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사막은 인생의 지도이다 남영호 저 | 세종서적
이 책에서 우리는 탐험의 기록을 통해 쉽게 꿈꾸기 어려운 도전을 실행하는 사람의 원동력을 발견할 수 있다. 그의 끝없는 호기심과 열정은 잊어버린 꿈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저자가 우리에게 인생이라는 사막을 무사히 건널 수 있는 지혜를 들려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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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험가 #남영호 #사막 #내게 사막은 인생의 지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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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선

읽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