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선선한 가을바람이 분다. 서울의 가을을 특별한 문학 경험으로 수놓을 <2016 서울국제작가축제(한국문학번역원 주최)>의 참가작가 릴레이 인터뷰, 그 여섯 번째 주자는 한국 시단의 대표 서정시인 '문태준'이다.
시단의 대표 서정시인으로 불리고 있지만, 독자를 위해 선생님의 시 세계를 간단히 소개해주신다면요?
제 초기 시는 농촌의 토속적인 풍경, 시골 사람들의 생활경험, 샤머니즘 그리고 환생 같은 영적인 부분들을 많이 다루었죠. 그리고 농촌 사람들의 노동조건에 대해서도 이야기 한 시들이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주로 ‘관계’에 집중하고 있어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사람과 자연 그리고 생명과의 관계들 말입니다. 또 병이 오는 문제 그리고 누군가가 이 삶의 공간으로부터 떠나가는 헤어짐의 문제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명과 생명과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네요. 일종의 ‘교감’을 중시하는 태도로 볼 수 있을까요?
교감이기도 하고, 생각의 교환이기도 해요. 물론 그 보다 더 근본적으로 보자면, 존재의 평등이죠. 존재와 존재 사이의 화평. 그리고 생명에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 것. 사랑으로 화해에 도달하는 것을 중요하게 보는 겁니다. 서로 돕지 않고서는 한 생명조차 존재할 수 없다고 보거든요. 즉 모든 존재들은 스스로 존재하지만, 서로 돕는 존재인 거죠.
오랫동안 불교방송에서 PD로 근무하셨어요, 현재 <문태준의 생각>이라는 프로그램도 맡고 계신데요. 주로 어떤 내용을 다루고 있나요?
생활하면서 느끼는 소소한 소회들이죠. 더불어서 시들을 소개하고, 시가 주는 느낌에 대해서도 말합니다. 사투리가 있어서 시 낭독을 잘 한다고 생각해본 적은 전혀 없는데, 방송에서 짧게 낭독도 하고요. 또 <문태준의 생각> 외에 시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 그리고 시를 읽는 자리에 요청을 받았을 때 마다하지는 않았어요. 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는 제게 소중하고, 그 자리가 초등학생을 위한 자리건,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건, 전문적인 시창작자들의 자리건 바로 가서 시 이야기 하는 것을 즐겨요. 아이들도 굉장히 시를 좋아하더라고요. 초등학생들과는 주로 동시를 읽고 이야기 나누는데, 큰 소리로 함께 읽는 것을 좋아하더라고요. 또 장애우들과 강화 전등사에서 시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던 자리도 굉장히 좋았고요.
“영혼을 다듬는, 영혼의 근육을 키우는 노동의 시간.” 얼마 전 <문태준의 생각> 감성에세이에서 노동의 시간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작품에는 밤낮없이 힘든 일을 했던 시인의 부모님에 대한 단상도 많이 등장하는데요, 노동에 대해서 시인의 생각을 듣고 싶어요.
제가 시골에서 나고 자라 ‘노동’에 대해 관심이 많았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논과 밭에서 해뜨기 전부터 일몰 후까지 일하셨죠. 육체노동자로서의 농부들, 육체로 무언가를 생산해내는 농촌 공동체에 대한 관심에서 노동의 조건들을 깊게 생각했었던 거고요. 왜 농부들은 쉬지 않고 일해도 가난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서도 고민했었고, 여전히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혼을 다듬고 영혼의 근육을 키운다’는 의미는 종교적인 수행과도 관련이 있어요. 분노를 다스리는 차원에서 영혼의 근육을 키우는 것과 긴밀하다고 보았던 겁니다. 일종의 자기수행인거죠.
가장 최근에 선생님의 「칠팔월」을 읽었어요. 아주 시즈널한 선택이었는데요(웃음). 팔월의 열대야를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자신의 작품 중에 자주 다시 꺼내 읽는 시가 있으신가요?
여름은 흐르는 물가가 좋아 그곳서 살아라
우는 천둥을, 줄렁줄렁하는 천둥을 그득그득 지고 가는 구름
누운 수풀더미 위를 축축한 배를 밀며 가는 물뱀
몸에 물을 가득 담고 있는, 불은 계곡물
새는 안개 자욱한 보슬비 속을 날아 물버들 가지 위엘 앉는다
물안개 더미같이, 물렁물렁한 어떤 것이 지나가느니
상중(喪中)에 있는 내게도 오늘 지나가느니
여름은 목 뒤에 크고 묵직한 물주머니를 차고 살아라
(「칠팔월」 전문)
이미 쓴 시를 다시 들춰보지는 않는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제 시 중에 암송할 수 있는 시도 없을 정도니까요. 왜냐하면 시인은 항상 자기가 쓸 시에 골몰하거든요. 새롭게 쓸 시, 그리고 쓰고 싶은 시에 대해서요. 음……. 최근 시들에 애정이 더 많다고 할 수 있죠. 독자들이나 주변의 호응이 적을 수는 있겠지만, 제가 갓 쓴 시가 오히려 저를 더 설레게 합니다.
산문집 『느림보 마음』도 많은 사랑을 받으셨습니다. 시인으로서 산문쓰기 작업은 어떤지 궁금해요. 또 시 쓰기와 산문쓰기의 각각의 매력은 어떻게 다르다고 생각하시는지.
제가 쓰는 산문은 대체로 사건의 진행을 보여준다기보다는, 내면을 보여줘요. 내면을 비추는, 내가 나를 보는 거울 같다고 할까요? 산문은 시보다 조금 더 자상하달까? 조금 더 친절하죠. 그리고 글 쓰는 보법, 그러니까 보행법도 좀 다르죠. 시는 큼직큼직하게 뛰어가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보행법이라면 산문은 보다 경쾌하면서도 생각이 생각을 재촉하는 방식인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조금 차이가 있죠.
자신을 느림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느림보라기보다는, 급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죠. 저는 곧바로 가는 것보다 둘러가는 게 좋아요. 직선주로 보다는 이리저리 좌우로 왔다 갔다 하는 걸. 그래서 걷기를 좋아해요. 출퇴근할 때 한참 한강변을 많이 걸었었어요. 한강변은 눈이 많이 오거나, 비가 많이 오는 날이 오히려 걷기 좋아요. 그럴 때 사람이 많이 없으니까요. 엄청 춥고 눈보라가 칠 때, 아주 늦게 아니면 일찍 걷는 것을 좋아해요. 최근에 제주도를 자주 가게 되었는데, 제주도의 오름이나 좋은 숲길이 많아서 참 좋더군요. 물론 사람들이 좀 덜 붐빌 때요.
보통 ‘사람 구경’하려고 걷는데, 혼자 생각하는 시간으로써 걷기를 즐기시네요.
생각하려고 걷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생각을 안 하려고, 복잡한 생각을 잊으려고 걷는 거죠. 산티아고 순례길이나 월정사 숲길을 걸을 때 많은 생각들을 하면서 걷는다는 건 좀 그렇지 않나요(웃음)? 엄청난 생각의 하중을 견디며 걷고 싶지는 않습니다.
산문집에서 “우리의 마음은 가끔, 애써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않는 그런 시간에 살아야 합니다.”라는 구절이 인상 깊었습니다. 현대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에 익숙하지 않은 것 같아요. 무언가를 더 빨리 해내야 인정받는 요즘 시대에, '느림보 마음'이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요?
사람은 계속 가속할 수는 없어요. 가속하는 중압감을 견디려면, 그러니까 스스로 폭발하지 않으려면 쉬어 주어야 합니다. ‘견디는 힘’이라는 건, 결국 쉼으로부터 오는 거니까요. 조금 쉬고, 피워내는 거죠. 저도 직장을 다니는 시인이기 때문에 일과는 바쁘지만, 그래도 잠깐씩 쉬어요. 쉼이라는 것이 거창하게 어딘가로 훌쩍 떠나는 것은 아니잖아요. 여름 날 도심공원의 분수를 잠깐 보는 것도, 나무그늘에 잠깐 들어가 있는 것도 다 쉬는 거죠. 여러 생각 않고 단지 ‘시원한 분수가 솟는 구나’하는 감상만 가지는 것!
평소 시를 추천하고, 소개하는 활동도 많이 하시잖아요. 주로 어떤 시들을 추천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일단 독자들에게 어떠한 쾌감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마음이나 생각을 움직이는 시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 방식이 아주 슬퍼서 눈물을 쏟게 만드는 시일 수도 있고, 어떤 불꽃같은 강렬한 생각을 피워내는 시일 수도 있고요. 되도록 제 취향뿐 아니라 여러 사람의 취향을 골고루 반영할 수 있다면 더 좋겠죠? 여러 맛의 시들을 소개하려고 하는 편입니다. 물론 제가 시들을 소개하는 매체 지면의 한계는 있어요. 그래서 주로 한국의 시 중 가급적 새로 나온 시들을 찾아서 소개하고 있어요.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다양하고 좋은 시들이 많다는 것을 알리는 것에서 굉장한 보람을 느낍니다.
요즘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최근 본 시 중 몽골의 한 여성시인이 쓴 시 구절 가운데, ‘새마다 하늘’ 그리고 ‘돌마다 산’이라는 구절이 있어요. 한 마리의 새는 하늘과 등가의 존재, 즉 같은 가치라는 의미겠죠. 새가 비행 할 때에 하늘 가운데 있지만, 새는 늘 자기 크기만큼의 하늘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거잖아요. 굉장히 동양적인 세계관을 보여주는 시라고 생각해요. 모든 존재가 우주의 주인인 거죠. 산기슭에 돌이 있지만, 이 돌과 산을 대등하게 보는 시선도 굉장히 관심을 끌었고요.
해외 독자들에게도 한국 시가 공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럼요. 물론 그런 시가 되려면, 다른 나라의 시, 시풍을 무조건 쫓아가기 보다 ‘고유함’을 담고 있어야 하겠죠. 내 것이 아닌데 그것을 닮아가려는 생각보다는 내 몸에서 태어난 시가 큰 의미를 갖는 거니까요. 남의 것을 담으려 하지 말고, 내가 나서 자라면서 겪은 것을 담아야 합니다. 나의 경험들에서 시가 움틀 때, 그 시가 특별해지는 거죠.
예를 들면 중국 소수민족의 풍습과 특별한 의식, 그리고 그들만의 생각들에 대한 시가 훨씬 주목을 받을 뿐 아니라 세계 독자들이 그런 시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는 시기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그들만의 이야기를 쓰더라도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에 도달할 수 있거든요.
<2016 서울국제작가축제>에 참가하는 소감이 궁금합니다.
세계의 다른 곳에서 시 쓰는 일을 생업으로 하는, 혹은 그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기회니까 많이 설레죠. 그러면서 시 쓰는 저에 대해 돌아보게 될 것 같다는 점이 가장 기대되고요. 문학행사들에서 해외의 시인들을 만나면, 결국 모든 질문들이 시인으로서의 나에 대한 질문으로 귀결되더라고요. 벌써 등단한지 20년이 넘었잖아요. 처음의 나를 다시 돌아보게 되요. 그리고 해외작가들을 만나는 경험은, 다양한 시적 경향을 보게 되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시에 대한 절실함도 보게 되고, 한국에서 동료시인들을 만났을 때의 느낌과는 또 다른 감정이 들더라고요. 지금 우리 시단이 굉장히 높은 수준에 있는데, 그런 우리 시의 장점들 그리고 다양한 취향들을 가진 시들, 시에 대한 열정들을 많이 보여주고 싶습니다.
서울국제작가축제
'2016 서울국제작가축제'가 9월 마지막 주, 대학로에서 그 막을 연다. 축제 준비가 한창인 8월의 어느 날. 설렘으로 잠을 설치는 소풍 전야처럼, 9월의 작가축제가 문득 궁금해진다. 작가축제에서 만나 볼 작가들의 릴레이 인터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