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집으로』의 이진이 저자는 동양화가이면서 문학을 좋아한다. 학창 시절 책으로 접하던 문학은 대학 시절 발로 떠나는 문학 여행이 되었다. 『탁류』의 배경이 된 전라북도 군산, 『봄봄』, 『동백꽃』 등 도시 전체가 김유정 문학의 산실인 강원도 춘천 등 작가와 함께하면서 여행은 더 특별해졌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만큼 화창한 여름 날, 싱그러운 웃음을 지닌 이진이 작가를 만나 ‘작가의 집으로’ 떠난 여행기를 들어보았다.
'작가의 집'을 테마로 여행을 떠나시는데, '문학 여행'을 떠나게 된 계기와 특별한 매력은 무엇인가요?
이전에도 여행을 즐겨 했어요. 명소에 가서 사진을 찍고, 맛집에서 밥을 먹는 여행이요. 그러다 사진으로만 기억되는 관광이 아닌 가슴에 남는 여행을 하고 싶어졌고, 생각 끝에 좋아하던 책을 들고 길을 나서게 되었어요. 물리적인 발걸음을 뗄 때마다 문학은 현실로 다가왔고, 막연하게 꾸며진 이야기가 아니란 걸 알았죠. 문학 여행은 본인의 사상을 찾는 여행이에요. 책 한 권 또는 그림 한 점을 봐도 사람마다 감상하고, 느끼는 바가 달라요. 그런 작품과 함께하는 여행은 더 특별하죠. 문학 여행을 하고 오면 생각이 트이면서, 타인의 삶에 더욱 공감할 수 있게 돼요.
그림이 전공이신데, 글을 쓰는 데 어려움도 있었을 것 같아요.
2012년부터 대외활동을 통해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때 처음으로 작문법을 배웠고, ‘간결하거나, 흥미롭거나, 새로운’ 글을 욕심냈어요. 쉽진 않더라고요. 그래서 오늘 하루 느낀 점을 일기장에 쓰듯이, 편안하게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여행지에서 발견한 나뭇잎을 묘사하고, 눈 쌓인 길을 밟을 때 나는 소리를 옮겨 적었어요. 제멋대로 표현하다 보니 종종 서툰 문장이 튀어나오기도 해요. 그래도 저는 진정성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요. 가장 솔직하고 깊은 생각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예를 들면 옷을 벗은 사람처럼요. 가장 원초적이기도 하고, 아무런 꾸밈이 없는 상태죠. 그리고 글을 쓸 때 한자어 대신 한글을 쓰려고 노력해요. 꼭꼭 숨어 있는 아름다운 한글이 참 많아요. 그런 단어를 찾을 때마다 기분이 정말 좋아요.
"화사한 옷 색깔 덕분에 하얀 문학관이 간지럽다.", "쪽마루에 걸터앉아 햇볕으로 양 볼을 덥혔다.", "낯선 공간이 내어준 좁은 자리에 앉아, 새로운 시간이 일러준 더딘 하루를 보냈다." 등 감각적인 묘사가 많은데, 이런 표현들은 어떻게 떠올리시나요?
처음에는 보이는 것, 느끼는 것 그대로 글을 써요. ‘나뭇잎이 위아래로 흔들린다’, ‘대청마루에 올랐더니 발바닥이 시리다’ 처럼요. 그런 후에 조금 더 구체화시켜요. ‘위아래로 어떻게 흔들리지?’, ‘어느 정도로 발이 시리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요. 그러다 보니 어느새 제가 쓰는 문장이 생겼어요. 또 사전을 자주 들여다봐요. 가장 적합한 단어 하나를 찾으려고요. 그렇게 대상을 관찰하고 묘사할 거리를 끊임없이 생각했더니, 어떤 사물을 보든지 애정 어린 시선으로 보게 되는 훈련도 되었어요.
윤동주 문학관에서 그린 그림
여행지에서 꼭 그림을 그리시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어떤 테마를 그림으로 그리는지도 궁금해요.
여행지의 정경과 공기를 기록하기에는 그림이 무척 효과적이에요. 저는 손바닥만 한 작은 스케치북과 수성 색연필, 워터브러시를 들고 다녀요. 정해진 테마는 없어요. 그저 ‘이 대상을 그리면 여행이 생생하게 추억되겠다.’ 싶은 것을 그려요. 글보다 좋은 점 하나를 꼽자면, 그림은 비밀스러운 언어라는 거에요. 스케치북을 펼쳤을 때 나만이 알고 있는 그때의 감정, 분위기를 기억해낼 수 있죠.
제가 제일 좋아하는 드로잉은 하코다테로 가는 기차에서 만난 일본 남자아이의 얼굴 그림이에요. 긴 여정이 지루했는지, 뒷자리에 앉은 저를 응시하더라고요. 심심하던 차에 아이의 얼굴을 살펴보기 시작했어요. 새까만 눈동자와 빨간 볼, 그리고 가느다란 갈색의 머리카락. 세계 3대 야경이라는 하코다테 야경과 흩날리는 싸라기눈도 기억에 남지만, 그래도 가장 먼저 아이의 얼굴이 떠올라요. 덕분에 하코다테 여행이 특별하게 기억돼요. 여행을 떠나려는 분들에게 꼭 작은 스케치북 한 권을 챙기라고 권하고 싶어요. 잘 그릴 필요도 없고,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필요도 없어요. 자신의 감정이 응집된 그림을 꼭 한 장씩 그려보셨으면 좋겠어요.
하코다테에서 그린 그림
그동안 다닌 곳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가 있다면요?
인제 자작나무 숲과 박인환문학관이 기억에 남아요. 여행을 떠나기로 한 날은 기록적인 폭설이 내린 다음 날이었고, 아침 일찍 인제 군청에 확인 전화를 하고 나서야 길을 나섰죠. 인제 자작나무 숲에 도착해 감시초소에 입산 명부를 적고, 아이젠을 빌려 신고 산에 올랐어요. 저보다 먼저 오른 등산객은 그 큰 산에 다섯 명뿐이더라고요. 주위에 군부대가 있는지 헬리콥터가 날아다니고, 폭발음 비슷한 소리도 났어요. 원래 겁이 없는 편인데 이때는 좀 무서웠어요. 1시간 반 정도 걸었더니 자작나무 숲이 나왔죠. 순간 아무 생각이 안 나고, 힘든 기억도 사라졌어요. 눈과 자작나무가 어우러진 하얀 세상은 적당한 수식어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정말 환상적이에요. 이번 겨울에 다시 한 번 그 정경을 보러 떠나려고요.
가장 좋아하는 작가와 평소 마음에 새기는 문장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여행지에서 만난 모든 작가를 존경해요. 단순히 책으로 접했던 이전보다 더 좋아하게 되었어요. 아는 게 많아져서 친숙하게 느껴졌나 싶기도 해요. 그래서 한 명의 작가를 꼽는 건 너무 어려워요. 요새 가장 좋아하는 문장은 정호승 시인의 시 「여행」 중에 '사람이 여행하는 곳은 사람의 마음뿐이다’라는 구절이에요. 가만히 앉아 있다고 사람 마음을 여행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끊임없이 유람하면서 이 문구를 이해해보고 싶어요. 계속 걷다 보면 시인이 이 구절을 썼을 때의 마음을 깨달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독일 칼프에서 헤르만 헤세와 함께 찍은 사진
앞으로 어떤 작가를 따라 여행할 계획이신지 들려주세요.
지금까지 주로 시인, 소설가의 흔적을 좇았어요. 앞으로는 문학가뿐만 아니라 화가와 음악가 등 다방면의 예술 작가를 따라가볼 생각이에요. 지금 계획하고 있는 여행은 이탈리아 여행이에요. 르네상스의 발상지인 곳에서 가장 찬란했던 미술사를 짚어볼 생각에 벌써 설렙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릴 거에요. 앞으로도 하나의 단어, 한 줄의 문장, 그리고 한 장의 그림으로 사람들에게 편안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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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집으로이진이 저 | 홍시커뮤니케이션
시대의 어두운 터널을 뚫고 빛으로 밝힌 작가들, 생의 본질과 내면을 노래했던 작가들. 『작가의 집으로』는 이들의 삶과 작품의 발자취를 따라 나선 여행의 기록이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iuiu22
2016.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