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사 발렌티나>로 13년 만에 연극 무대 서는 배우 윤희석
드래그 퀸과는 차이가 있는데, 드래그 퀸이 주로 쇼를 한다면 크로스 드레서들은 그냥 모여서 패션에 대해 얘기하고 그러죠.
글ㆍ사진 윤하정
2016.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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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라카지>, <킹키부츠> 등으로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극작가 하비 피어스타인의 최신작 연극 <까사 발렌티나>가 개막했습니다. 제목만 봐서는 도통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는 이 작품에는 ‘크로스 드레서’라는 낯선 남자들이 등장합니다. 윤희석, 최대훈, 박정복, 문성일 등 무려 17명의 남자배우들을 사로잡은 연극 <까사 발렌티나>. 어떤 작품인지 개막일 대학로로 달려가 첫공을 봤습니다. 그리고 이튿날 조지와 발렌티나로 무대에 서고 있는 배우 윤희석 씨를 공연이 시작되기 전 인근 카페에서 직접 만나봤습니다. 

 

“크로스 드레서는 철저히 이성애자들인데 여자들의 옷이나 화장을 좋아해요. 우리나라에도 모임이 있다고 해요. 제모하러 이태원에 있는 남성 전용 왁싱하는 곳에 갔는데 잘 아시더라고요. 드래그 퀸과는 차이가 있는데, 드래그 퀸이 주로 쇼를 한다면 크로스 드레서들은 그냥 모여서 패션에 대해 얘기하고 그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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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공연만큼 성소수자들의 이야기를 포용하고 관객들과 소통하는 장르도 없습니다. 동성애를 시작으로 트랜스 젠더, 최근 몇 년 사이에는 드래그 퀸, 연극 <까사 발렌티나>에서는 이성의 옷을 입는 ‘크로스 드레서’까지 등장하는데요. 충분히 이해해야 무대에서 표현할 수 있는 만큼 성소수자들에 대한 이해와 공감도 많이 필요했을 것 같습니다.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지는 않지만 관심은 있어요. 이 작품의 작가(하비 피어스타인)도 성소수자잖아요. 처음에는 크로스 드레서에 대한 또 다른 차별을 비판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배우들끼리 계속 얘기하다 보니까 모두를 인정하고 함께 가자는 내용이더라고요. 성소수자는 하나의 장치죠. 나누는 것 자체가 편견이잖아요. 성적으로 정체성의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사회에는 많은 소수자들이 있고, 그들에게는 공통분모가 있는 것 같아요. 결국 인간에 대한 얘기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크로스 드레서라는 것 자체가 생소하지 않을까, 원작 그대로의 개그 코드를 이해할까 걱정했는데, 예상보다 관객들이 많이 웃어주셔서 작가의 힘이 대단하다는 걸 느꼈죠.”

 

앞서 제모도 언급하셨지만, 일단 남자 배우가 여성으로 변신해야 하잖아요. 무대 위 모습을 유심히 보니 손을 굉장히 유려하게 움직이시더라고요.

 

“집에서 컵을 드는데 새끼손가락을 펴고 있더라고요(웃음). 물론 여자라고 컵을 모두 그렇게 들지는 않겠지만 상징적인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전에 <헤드윅> 할 때 트랜스젠더 분들 만나서 얘기해 보면 여성보다 더 여성스럽더라고요. 그들은 여자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강렬하기 때문이겠죠. 크로스 드레서에게도 그런 마음이 보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실제로 여성의 속옷이나 구두를 착용하면 느낌이 확연히 달라요. 브래지어를 하면 자연스럽게 어깨가 펴지고, 힐을 신으면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게 되죠. 신기하더라고요. 함께 참여하는 여배우들은 그것도 잠깐이라고 하지만(웃음). 아직도 잘 안 되는 건 골반을 잘 못 쓰니까 춤을 춰도 남자 같더라고요. 크로스 드레서지만 배우마다 설정은 다 달라요. 그 안에서도 다양성이 있는 거죠.”

 

크로스 드레서를 연기하는 남자배우 17명이 번갈아 무대에 서는데 연습실 분위기가 남달랐을 것 같습니다. 모두가 인정하는 예쁜 배우는 누구인가요(웃음)?

 

“정말 재밌었어요. 배우들 중에 상남자도 있어서 잘 못 받아들이는 거예요. 극중에서 발렌티나는 남자 옷을 입고 있는 것 자체를 불편해 하잖아요. 반대로 연습실에 있는 남자배우들은 이 여자 옷을 빨리 벗고 본연의 자신으로 돌아가고 싶은 거죠. 일단 글로리아와 미란다는 분장했을 때 예쁜 배우들로 캐스팅한 것 같아요. 그 중에서도 유일이는 남자로서도 예쁘니까 비교 불가죠. 의외로 예뻤던 친구는 박준후. 외국 인형 같더라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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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인가요, <헤드윅> 했을 때 생각났겠는걸요.

 

“그렇죠, <헤드윅>은 제 인생작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애정을 많이 가졌고, 공연이 끝나고도 한동안 작품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던 기억이 있어요. 이후에 텔레비전 사극에서 사또 역할을 하는데 <헤드윅> 목소리로 연기해서 지적도 받고(웃음). 발렌티나는 또 다른 느낌이죠. 그런데 지금 그때보다 살이 15kg이나 쪘어요. 극중 미란다한테 ‘젊어서 좋네, 부럽다 저 몸!’ 이런 대사가 있는데 진심으로 나오더라고요(웃음).”

 

매체와 무대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활동하고 계신데, 요즘 배우들이 가장 바라는 형태가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먼저 들어오는 걸 무조건 합니다, 쉬면 안 되기 때문에(웃음). 드라마와 겹쳐서 연극을 13년 만에 하는데, 연극에 대한 갈증이 많았어요. 드라마와 무대는 많이 다르거든요. 드라마가 일상의 모습이라면 공연은 진실 위의 것들을 보여주죠. 연기의 크기가 더 크다고 할까요? 그리고 드라마 촬영장에서는 상황을 함께 토론하고 고민하는 시간이 허락되지 않으니까 매너리즘에 빠지고 기계적으로 연기한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허무하고,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고. 그래서 드라마를 오래 하다 보면 무대에서 제대로 웃고 울고 싶죠. 배우들, 관객들과 더 많이 소통하고 싶고요. 연기의 기본은 비슷하지만 배우에게 무대는 또 다른 활력소이고 성장인 것 같아요.”

 

드라마에서 특정 이미지가 굳혀지는 것에 대한 고민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많이 고민하죠. 계속 그런 역할만 들어오니까. 제가 언제부터 악역 캐스팅 1순위였는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친한 배우 동생이 우리 나이에 할 수 있는 역할이 제한적이라 어떤 역할이든 들어오면 감사하게 해야 한다더군요(웃음). 이미지가 나빠져서 하기 싫다기보다는 연기의 스타일이나 패턴이 고정될까봐, 모든 표현을 악역처럼, 불륜남처럼 표현할까봐 좀 쉬어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생각했어요.”

 

그럼 <까사 발렌티나>는 이미지 변신에 도움이 될 적절한 작품인데요?

 

“그렇죠. 그런데 여기에서도 이기적이고 못되게 연기하라고 해서(웃음). 조지는 차갑고 이기적이고, 발렌티나도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좀 더 가식적으로 그렸거든요. 그래야 나중에 자신의 목표가 이뤄지지 않았을 때 무너지는 모습이 더 두드러지지 않을까. 성종완 연출도 제가 평상시에는 헤헤 거리다 무대 위에서 차갑고 못되게 굴면 좋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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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불후의 명곡’에도 출연하셨던데요. 

 

“3년 정도 밴드활동을 따로 하고 있어요. 앨범도 내고 곡 작업도 하고. 이틀 전에 저작권료 만천 원 들어왔더라고요(웃음). 요즘 좋은 노래는 많은데 따라 부르기 어렵잖아요. 저는 전 국민이 따라 부를 수 있는 쉬운 멜로디, 다만 가사는 마음에 와 닿도록 신경 쓰는 편이에요. 원래 연기보다는 음악에 더 뜻이 있어서 마흔 살에 아저씨 밴드를 취미로 하려고 했는데, 정말 하게 됐어요. 그래서 소속사도 음악 하는 회사예요. 요즘 행사 많이 다녀요. 고추축제, 젓갈축제. 지방에서는 배우를 볼 기회가 많지 않으니까, 특히 어머니들은 드라마의 ‘못된 놈’으로 아시잖아요. 난리가 나요(웃음). 트로트도 불러 드리고, 남녀노소 다 좋아해주시면 좋더라고요. 재밌는 경험이에요.”

 

여러 재능을 드러내며 다양하게 활동하고 계신데, 연기적으로는 어떤 캐릭터에 대한 갈증이 남아 있을까요?

 

“저는 코미디가 제일 좋아요. 개인기로 웃기는 것 말고 상황 자체가, 대본 자체가 재밌는 작품이요. 원래 아동극으로 시작했거든요. <가위손>처럼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따뜻한 작품. 거기서 해적을 하더라도(웃음). 딸이 생기니까 그런 작품을 더 하고 싶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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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석 씨가 참여하는 연극 <까사 발렌티나>는 9월 11일까지 대학로 대명문화공장 2관에서 공연됩니다. 이 작품의 작가인 하비 피어스타인은 ‘누군가가 당신을 규정하게 내버려두지 말라. 당신의 삶은 당신이 규정하라!’는 말을 했다고 해요. 윤희석 씨의 말처럼 연극 <까사 발렌티나>는 비단 성소수자만의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크로스 드레서는 하나의 장치겠죠. 처음에는 남자배우들이 여자처럼 예쁘게 차려입은 모습에 재미를 느끼겠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수많은 ‘소수’에 대한 여러 생각이 확산되지 않을까요. 13년 만에 연극무대를 찾는 윤희석 씨도, ‘다수’에 익숙한 관객들도 마음껏 갈증을 푸는 무대였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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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까사 발렌티나 #크로스 드레서 #윤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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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