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닝
고대중국에는 계영배(戒盈杯)라는 술잔이 있었다지요.
술이 일정한 한도에 차오르면 저절로 새나가도록 만든 건데요.
가득함과 넘침을 경계하기 위해 빚은 지혜일 겁니다.
꽃은 약간 덜 핀 봉오리,
과일은 살짝 덜 익은 걸 고르는 게 현명하죠.
만개한 꽃은 이내 시들고
농익은 과일은 물러버리고 맙니다.
“세력을 다 쓰지 마라. 복을 다 받지 마라.
법을 다 행하지 마라. 좋은 말을 다 하지 마라.”
중국 송나라 때 법연이라는 선사가 남긴 네 가지 가르침인데요.
말을 너무 많이 하고 돌아오는 길,
오히려 마음이 공허하고 헛헛했던 적 있지 않으신가요.
술자리에서의 대화건 친구와의 수다건
마지막 한마디는 아껴두는 편이 후회가 덜합니다.
그건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빈틈이 없어 보이는 사람은 오히려 매력이 덜하죠.
언제나, 넘치는 것보단
조금 부족한 듯한 느낌이 더 좋습니다.
완벽함이란, 더할 것이 없을 때가 아니라,
더 뺄 것이 없는 상태라고 한 생텍쥐페리의 말처럼요.
안녕하세요, 여기는 이동진의 빨간책방입니다.
윤대녕 작가가 11만에 펴낸 장편소설 『피에로들의 집』
이 작품은 윤대녕 작가가 수년 전부터 구상해온 '도시 난민'의 이야기 입니다.
자신의 진짜 얼굴을 잃어버린채 거짓된 표정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현대인들.
우리와 아주 닮은 가면을 쓴 그들의 이야기를 '책, 임자를 만나다'에서 윤대녕 작가와 함께 나눠보겠습니다.
1) 책 소개
풍부한 상징과 시적인 문체로 존재의 구원 가능성을 탐색해온 작가 윤대녕의 장편소설. 삶의 의미를 향한 허기, 이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과 고요히 찾아드는 희망을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을 바탕으로 그려낸 작품 『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 이후 꼭 11년 만의 장편소설이다.
2014년 여름부터 이듬해 여름까지, 1년간 계간 「문학동네」에 연재(당시 제목은 '피에로들의 밤'이었다)되었던 이 작품은 본연의 얼굴을 잃은 채 거짓된 표정으로 살아가고 있는 존재들, 때문에 언제나 진정한 정체성에 대한 갈망을 숨길 수 없게 되어버린 우리, 바로 그 '피에로'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작가의 말'을 통해 밝히고 있듯, 윤대녕은 수년 전부터 '도시 난민'에 대한 이야기를 구상해왔다. 가족의 해체를 비롯, 삶의 기반을 상실한 채 '난민'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음을 주시해왔던 터이다. 결국 타인과의 유대가 붕괴됨으로써 심각하게 정체성 혼란의 문제를 앓고 있다고 할 수 있을 이들을 통해 작가가 '새로운 유사 가족의 형태와 그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한 결과물이 바로 『피에로들의 집』이다.
인물들이 입은 상처가 너무도 깊어서 도저히 상대를 향해 열릴 것 같지 않던 마음이 슬며시 그 빗장을 풀 때쯤, 우리는 이 황폐한 세계 안에서 고유의 의미와 어감이 휘발되어버린 '가족'이라는 말이 어느덧 새로운 의미와 감각으로 충만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2) 저자 : 윤대녕
1962년 충남 예산 출생. 단국대 불문과 졸업. 1990년 『문학사상』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은어낚시통신』 『남쪽 계단을 보라』 『많은 별들이 한곳으로 흘러갔다』 『누가 걸어간다』 『제비를 기르다』 『대설주의보』 『도자기 박물관』, 장편소설 『옛날 영화를 보러 갔다』 『추억의 아주 먼 곳』 『달의 지평선』 『미란』 『눈의 여행자』 『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 여행산문집 『그녀에게 얘기해주고 싶은 것들』, 음식기행문 『어머니의 수저』, 산문집 『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 『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 등이 있다.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이효석문학상, 김유정문학상, 김준성문학상을 수상했다. 2016년 현재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 169-170회 <책, 임자를 만나다> 도서
알파고와 이세돌이 펼친 인간과 인공지능의 바둑 대결!!
그 충격적인 결과에 인류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죠. 이 대결을 통해 우리는 한가지 두려운 질문을 떠올렸습니다. "인공지능은 내 삶을 어떻게 빼앗아갈 것인가?" 이 질문에 먼저 대답을 남긴 마틴 포드의 『로봇의 부상』 이 책과 함께 로봇과 더불어 살아갈 우리 미래의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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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
어찌어찌 하다보니 ‘신문사 기자’ 생활을 십 수년간 했고, 또 어찌어찌 하다보니 ‘영화평론가’로 불리게 됐다. 영화를 너무나 좋아했지만 한 번도 꿈꾸진 않았던 ‘영화 전문가’가 됐고, 글쓰기에 대한 절망의 끝에서 ‘글쟁이’가 됐다. 꿈이 없었다기보다는 꿈을 지탱할 만한 의지가 없었다. 그리고 이제, 삶에서 꿈이 그렇게 중요한가라고 되물으며 변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