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넬리>로 돌아온 뮤지컬배우 이주광
9개월 만에 무대에 돌아온 이주광, 그가 새로 만들어낸 파리넬리라는 인물, 그리고 그가 여태 드러내지 않은 음색으로 부를 ‘울게 하소서’
글ㆍ사진 윤하정
2016.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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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구정동의 한 카페에 앉아 있자니 예사롭지 않은 실루엣의 남성들이 지나쳐갑니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데다 허우대 멀쩡하고 이목구비 뚜렷하고, 이거 지나가는 뭇 여성들의 눈을 꽤나 훔치겠는걸요. 자세히 보니 뮤지컬 <파리넬리> 팀입니다. 저녁 식사를 끝내고 다시 연습실로 가는 모양인데, 그 무리 안에 모자를 거꾸로 뒤집어 쓴 이주광 씨도 보이는군요. 이번 시즌 새로운 파리넬리, 오늘 기자가 만날 배우입니다. 지난해 창작뮤지컬 <파리넬리>가 초연될 때는 카운터테너 루이스 초이 씨를 인터뷰했던 기억이 있는데요.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인터뷰이였습니다. 그런데 파리넬리 역으로 뮤지컬배우 이주광 씨를 만난다는 건 좀 뜻밖이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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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대번에 ‘너 그런 소리가 나?’라고 물어보세요(웃음). 제가 작품마다 저음을 많이 냈었고, 평소 음성도 묵직한 편이고. 어렸을 때 TV에서 조수미 씨가 노래 부르면 따라 부르곤 했는데, 저는 다들 이런 소리가 나오는 줄 알았어요.” 

 

18세기 실존 인물인 파리넬리는 카스트라토, 그러니까 거세된 성악가입니다. 변성기 전 남성호르몬이 생성되는 고환을 없애면 어린아이의 맑은 음색과 음역대를 유지할 수 있어 성당에서 남자만 노래할 수 있었던 중세 유럽에서는 꽤나 자행됐다고 합니다. 변성기를 거친 남성도 성악적인 발성과 호흡을 통해 가성으로 여성의 음역대를 노래할 수 있는데요. 이주광 씨도 ‘그런 소리’가 나온다는군요.

 

“루이스 초이 씨와 작년에 처음 만나서 친해졌어요. 제가 가성이 나온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됐는데 계속 들어보고 싶다는 거예요. 창피해서 못하겠다고 했죠. 어쩌다 분장실에 둘만 남게 됐는데 결국 용기를 내봤어요. 가진 소리가 정말 좋다면서 기회가 되면 <파리넬리>를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농담처럼 했던 말들이 연결돼서 오디션을 2차까지 봤어요.”

 

하지만 가성이 나오는 것과 작품 속에서 전문적으로 노래를 부르는 것은 다른 얘기일 텐데, 부담이 클 것 같습니다.

 

“그렇죠. 가성이 나오는 것에 사람들이 놀라지만 제작진은 이미 작품을 올렸던 사람들이고, 루이스 초이라는 전문가를 기준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부담스러웠죠. 일단 가능성을 많이 봐주신 것 같아요. 당연히 루이스 초이만큼 노래할 수는 없지만, 기본적으로 불러야 하는 노래 자체가 힘들어요. 초연 때 참여했던 고유진 씨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일반 사람이 낼 수 없는 소리를 내잖아요. 욕심에 무리할 정도로 연습은 하고 있는데, 노력해도 저에게는 분명히 한계가 있더라고요. 루이스는 바람처럼 노래하는데 저는 소리는 나지만 예쁘지가 않아요. 그래도 파리넬리라는 인물을 처음으로 뮤지컬배우가 맡은 거니까 노래는 루이스 초이처럼 못하더라도 연기는 제대로 하겠다고 결의를 다지고 있죠.”

 

고유진 씨도 성악을 전공했고 높은 음역대로 노래하기로 유명하잖아요. 그런데도 초연 때 두 사람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공연 별로 넘버에 차이가 있었습니다. 

 

“이번에도 비슷해요. 루이스는 가성이 특징이고 발달했는데, 넘버 중에 진성으로 부르는 곡이 있거든요. 굉장히 매력적인 노래인데, 저도 가성으로 연습하다 진성으로 부르면 힘들더라고요. 발성법이 전혀 달라서 그런가 봐요. 사람 몸이 참 신기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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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지난해 7월 <쿠거> 이후 첫 작품입니다. 요즘 배우들 무대에 오르는 텀으로 보면 굉장히 오랜만인데 어떻게 지내셨나요?

 

“원래도 다작은 못하는 편인데, 개인적으로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난해 1월부터 금연을 했는데, 1년을 참으면 스스로에게 선물을 주기로 했거든요. 하루에 5천 원씩 180만 원 정도를 내가 행복한 일에 쓰자! 그래서 연말에 한 달 정도 미국에 다녀왔습니다. 미국에 친척들도 있고, 아흔 살이 넘은 할머니도 계신데 편찮으셔서 왠지 더 늦으면 안 될 것 같더라고요. 또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뉴욕에서 보내고 싶다는 어릴 적 로망이 떠올라서 뉴욕에서도 재밌게 보냈고요.”

 

배우 입장에서 공연계 최대 성수기라는 연말을 통째 비우기는 쉽지 않았을 텐데요.

 

“그래서 저를 부자로 생각하는 분들도 계신데 전혀 아니고요(웃음). 저를 걱정하고 응원해주는 분들은 제가 욕심껏 더 활발하게 활동하길 바라시는데, 저도 그 뜻은 아는데 이상하게 때로는 너무 신중하고 때로는 너무 멋대로 사는 것 같아요. 뉴욕에서도 작품 생각은 하고 싶지 않아서 공연은 한 편도 안 봤어요.”

 

작품도 꽤 신중하게 고르시잖아요. 공백 이후 <파리넬리>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저는 돈이 필요하면 하기 싫은 작품을 하느니 아르바이트를 하는 편이라서 이번에도 가게에서 서빙도 하고 이삿집 센터에서도 일했어요. 사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요즘도 시급 6천 원에 일주일에 한 번 쉬고 꽤 힘들더라고요. 문득 제가 좋아서 한 우물만 팠던 무대라는 곳에서 그래도 잘 먹고 살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도 철은 없지만 돈을 벌겠다는 생각으로 작품을 한 적은 없거든요. 작품을 하면서 기분 좋게 일하고 돈도 벌고 싶더라고요. 영화 <파리넬리> 보면 정말 충격적이고 매력적이잖아요. 뮤지컬로 나온다는 말을 들었을 때 ‘잘 만들어야 할 텐데’ 라고 생각했고, ‘울게 하소서’를 불러보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했죠. 무대에서 그 발성으로 그 음악을 부른다는 것 자체가 매력적이에요.”

 

그래도 <파리넬리>라고 하면 노래의 기량과 기교를 먼저 기대하게 되는데, 이주광 씨 성격에 파리넬리라는 인물에 매력이 없었으면 참여하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사실 <파리넬리>는 서양 <서편제>가 아닐까요. 송화는 눈을 잃지만 파리넬리는 거세를 당하죠. 지금처럼 의료기술이 발달하지도 않았을 때. 그 트라우마를 안고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가는 게 ‘울게 하소서’라는 노래 제목과 맞닿는 것 같아요. 슬픈데 울지 못하고, 늘 화려해 보여야 하지만 아픔을 안고 있고. 배우들 삶과도 비슷하죠. 남들은 우리더러 노는 직업이라고 할 수 있지만, 무대 위에서 당당해지기 위해 겪는 고통들이 있거든요. 저는 공연 중에 손톱이 빠진 적도 있는데 아무렇지 않은 척, 오히려 피가 보일까봐 손가락을 움켜쥐고 공연한 적도 있어요. 기분이 우울해도 아무렇지 않은 척. 파리넬리도 어쩌면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었는데, 늘 최고여야 하고 자기의 소리로 누군가의 영혼을 치유한다는 사명감이 있었겠죠. 저도 다른 인물을 연기하면서 그 인물이 주는 메시지를 통해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을 목표로 배우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파리넬리에 감정이입이 잘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더 매력적이고요.”

 

원래 생각이 좀 많은 편이잖아요. 그래도 2년 전 인터뷰에서 만났을 때보다 생각이 많이 정리된 것 같습니다.

 

“해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아요. 특히 올해부터는 활동을 쉬지 않고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힘들어하지 말고, 끊임없이 사람들과 소통하고 새로운 작품을 해보면 어떨까. 제가 올해 서른다섯 살인데, 남자배우로서 연륜도 좀 묻어나고 가장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나이잖아요. 왠지 작품에 대한 욕심도 생기고, 다른 생각 없이 나에게 집중해서 작품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패턴이 좀 달라진 것 같아요.”

 

그럼 올해는 무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이주광 씨를 만날 수 있는 건가요?

 

“아마도(웃음). <파리넬리>에 참여한 것도 무척 감사해요.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스트레스는 엄청나게 받고 있지만, 잘 하고 싶어요. 노래뿐만 아니라 파리넬리라는 인물 자체도 입체적으로 보일 수 있는 작업들을 많이 하고 있거든요. 모든 캐릭터가 좀 더 설득력 있고 뚜렷해졌다고 생각해요. 보시는 재미도 더 쏠쏠하지 않을까. ‘한 번 봤으니 됐어’가 아니라 계속 환영받는 인물이 됐으면 좋겠어요.”

 

이주광 씨와 인터뷰를 하게 되면 한 시간은 훌쩍 흘러갑니다. 생각이 많은 남자. 하지만 늘 변화해야 하고 늘 떠나야 하는 사람. 금방 배우고 금방 따라하는 재주가 많은 사람. 자칫 무작정 끌려가다 보면 한 시간 이상 인터뷰를 하고도 기삿거리가 하나도 남지 않는 난처한 상황을 겪게 되지만, 막상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주광 씨는 천생 배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래서 이번 무대가 더욱 기대됩니다. 9개월 만에 무대에 돌아온 이주광, 그가 새로 만들어낸 파리넬리라는 인물, 그리고 그가 여태 드러내지 않은 음색으로 부를 ‘울게 하소서’말입니다. 창작뮤지컬 <파리넬리>는 4월 26일부터 5월 15일까지 서울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공연됩니다. 그들의 노래가 얼마나 많은 관객들의 마음을 울릴지 함께 확인해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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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