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정이 만난 15인의 생활 좌파들
지난 10월 23일, 신촌에 위치한 한겨레 문화센터에서 목수정 작가의 강연회가 열렸다. 그는 ‘21세기 좌파적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독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최근 출간된 책 『파리의 생활 좌파들』에는 그가 프랑스 파리에서 좌파적 삶을 살고 있는 15인을 인터뷰한 내용이 담겨 있다.
글ㆍ사진 지예원
2015.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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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목수정은 자신이 21세기의 좌파적 삶들과 만나게 된 계기, 그리고 이 책을 어떻게 구상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프랑스에서 유학 생활을 하던 그는 2003년, 한국으로 돌아와 2004년부터 2008년까지 민주노동당에서 당직자로 일했다. 그때부터 그녀 앞에 장밋빛 인생이 펼쳐졌다. 그 동안 그토록 애타게 찾았던 숲에 들어왔다는 생각과 함께, 숲 속에서 들려오는 새들의 노랫소리,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그녀를 고양시켰다. 자신의 생각과 방향이 같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그들과 함께 일한다는 기쁨에 환호했다. 하지만 좋았던 것도 잠시뿐이었다. 당 안에서 두 무리로 정파 갈등이 생기고, 그들끼리 점점 치열하게 다투기 시작하면서 힘든 상황이 계속 이어졌다. 그러다가 결국 당이 분화되었고 동시에 그의 일자리도 사라졌다. 더 이상 한국에서 체류해야 하는 정당한 사유 역시 찾을 수 없었다. 목수정 작가는 아이 생각을 떠올렸다. 아이가 곧 학교에 가게 될 텐데 교육적으로 한국과 프랑스 중에서 어느 곳이 더 좋을까, 답은 명확했다.

 

2008년, 그녀는 다시 한국을 떠났다. 프랑스로 돌아가서 앞으로 내가 좌파로서 어떤 방식으로 살 수 있을까 고민했다. 자연스럽게 프랑스의 좌파들을 향해 시선이 갔다. 그리고 그 안에서 만난 좌파의 모습이 한국과는 매우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프랑스에서는 어떤 집회에 가든, 참석한 사람들의 거의 60퍼센트가 50대 이상이에요. 주제를 불문하고요. 물론 젊은이들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노동이나 고용과 관련한 문제들은 청장년층이 많은 편이에요. 하지만 언제나 노년층이 주류를 이루는 놀라운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고민이 됐어요. 일단 프랑스 노인들은 대부분이 연금을 받아요.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 대해 너그럽고 여유롭게 참여할 수 있다는 이유도 있겠고, 또 한 가지는 이분들이 68세대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습니다. 참고로 프랑스에서는 68혁명이라고 부르지 않아요. 70년대가 바로 68혁명이 진행되던 시기였어요. 자신들이 10대 혹은 20대였던 때, 그렇게 10년 동안 진행된 사회적 변혁을 누렸는데 지금 그 모든 것이 후퇴하고 있으니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죠.”

 

우리와는 굉장히 다른 모습의 프랑스 좌파들을 관찰하면서,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가 궁금해졌다는 목수정 작가는 이어서 자신이 발견한 또 다른 차이에 대해 말했다.

 

“프랑스에서는 사회당을 좌파라고 불러요. 그런데 사실 사회당은 진정한 의미의 좌파가 아니에요. 일종의 고유명사가 되어버린 것이죠. 그분들보다 더 왼쪽에 있는 사람들을 극좌라고 불러요. 공산당의 경우가 극좌의 예 중 하나인데, 이 사람들의 지지율은 2~3퍼센트밖에 안 돼요. 노동자 투쟁당이나 혁명적 공산주의자 동맹도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이 사람들은 지지율도 올라가지 않는 상황에서 전략을 바꾸든지 수를 쓰든지 해야 할 텐데 전혀 그렇지 않는 거예요. 한국 같았으면 당이 아예 없어지거나 다른 방법을 찾잖아요. 과연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지 궁금했어요. 그리고 이렇게 좌파에 속해 있는 사람들 중에는 나이가 많은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도 신념이 굉장히 확실해요.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의문이 들었어요. 좌파는 계속 왼쪽으로 가는 사람들이거든요.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에요. 이런 여러 가지 궁금증이 있는 상태에서 사람들을 찾아 다니면서 인터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서로 다른 방식으로 좌파적인 삶을 유지하고 있는 15명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어요.”

 

 

좌파로 산다는 것

 

목수정 작가는 그 과정 속에서, 이 사람들에게 좌파는 어떤 목적을 향해 가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인생을 사는 방법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투쟁에 나서서 완벽하게 깨졌을지라도 좌파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좌파들과 차이가 생기는 이유 역시 여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목수정 작가는 자신이 한국에서 알고 지냈던 좌파들과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났을 때, 이전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그들에게는 그 길 자체가 목적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는 말을 함께 덧붙였다. 이어서 작가는 본격적으로 자신이 만났던 파리의 생활 좌파들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제 책의 첫 번째에 나오는 사람이 테레즈 클레르라는 분이에요. 저는 동성애자들의 행복한 삶을 다큐멘터리로 담은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영화를 보고 이분을 처음 알았어요. 이분이 가톨릭 신자였는데 당시 그 동네의 신부들을 통해서 마르크스를 배웠어요. 그러던 중 신부들이 이분에게 당신은 여자이기 때문에 가정을 지켜야 한다며 더 이상의 해방은 안 된다고 했어요. 그러다가 마흔이 좀 안 됐을 무렵, 네 아이가 있는 상태에서 68이라는 바람을 맞이하면서 거리로 나가 집회에 참석하고, 사람들과 토론하고, 다시 아이들을 데리러 학교에 가고 그런 생활을 하셨죠.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고 느낀 그녀는 이혼을 결심해요. 남편이 부자였지만 양육비를 청구하지 않고 백화점 판매원으로 일하면서, 그때부터 여성을 옥죄던 모든 억압과 싸우겠다고 결심하셨죠. 네 아이를 키우는 동시에 페미니스트 운동가로 활동하면서 그녀 앞에는 완전히 다른 삶이 열렸고 여전히 그러한 삶을 버리지 않고 계십니다.”

 

테레즈 클레르는 좌파 활동을 하면서 그 안에서 진정한 사랑과 우정을 만나게 되었고,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면서 여전히 전세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다음으로 목수정 작가는 한때 자신과 가까운 이웃에 살았던 자크 제르베르의 이야기를 전했다.

 

“제가 만났던 사람들 중 한 명인 자크 제르베르의 이야기를 해볼게요. 이분은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이혼하고 홀어머니 밑에서 외아들로 자랐어요. 자연스럽게 어머니의 무한한 집착의 대상이 되었죠. 평소 그에게 어머니는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부르주아에게 건네주지 말라’고 가르치셨대요.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은 우리 모두의 것이어야 한다는 뜻이었죠. 자크 제르베르는 박물관이나 영화관에 가는 것과 집회에 가는 목적이 같다고 말해요. 둘 다 자신을 성장시키는 일이라면서요. 그리고 그분은 언제나 아름다운 무언가가 눈 앞에 있을 때 다른 사람과 함께 누리고 싶어하는 분이에요. 이 사람을 보면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도 하나의 습관일 수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작가는 최근 이곳 저곳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헬조선’이라는 신조어에 대한 이야기도 언급했다.

 

“제가 매년 한국에 오는데, 이번에 왔더니 ‘헬조선’이라는 닉네임이 생겼더군요.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살 수 없는 고통스러운 공간이라는 뜻일 텐데, 어떤 점이 달라졌길래 그런 이름이 붙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프랑스도 ‘헬프랑스’예요. 프랑스나 한국이나 1퍼센트를 위해 99퍼센트가 깔려있는 것이죠. 프랑스에서 만난 생활 좌파들이 우리나라와 어떤 점에서 다른지, 그리고 사실 프랑스도 경제적인 면에 있어서는 ‘헬프랑스’라고 가히 부를만한데 왜 그들 스스로 그렇게 부르지 않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이유가 있어요. 저는 가장 큰 차이점이 복종하는 습관, 복종하지 않는 습관의 차이에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 사회에 복종의 태도가 만연한 것, 그것이 우리를 ‘헬조선’에 점점 고착시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미디어에 굉장히 종속돼있어요. 우리가 자발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시간을 미디어에 헌납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자발적으로 복종하고 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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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좌파들 앞에 놓인 과제

 

영화 <월-E>를 보면, 전부 휠체어에 앉아서 미디어에 완전히 장악된 상태로 살고 있는 미래의 인간들이 나온다. 목수정 작가는 우리나라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그 영화 속 장면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제 휴대폰이 프랑스에서 가져온 것이라 한국에서는 잘 터지지가 않더라고요. 그래서 지하철에서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는 일 밖에는 할 수 없었는데, 지금의 우리들 역시 굉장히 빠른 속도로 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점점 서로에게서 차단되어가는 상황인 것이죠. <월-E>에 이런 장면이 나와요. 어느 날 갑자기 기계가 오작동해서 사람들이 휠체어에서 떨어지고 서로의 손이 닿는데, 그 접촉의 신비로움과 함께 반란이 시작돼요. 이처럼 자발적 복종에서 벗어나는 방식을 실천하는 것이 21세기 좌파들이 해야 하는 중요한 과제가 아닌가 생각해요.”

 

그녀의 말에 따르면, 우파는 오직 생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다시 말해 진짜 삶을 누리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목수정 작가는 스스로 ‘이기는 편이 우리 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우파라는 정의를 내렸다. 그들은 항상 대세가 무엇인지 살피면서 대세를 따라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에 반해 좌파는 연대라는 가치를 통해서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인 것 같다며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마지막으로 목수정 작가는 앞으로 우리가 더 나은 방향으로 가기 위한 일종의 대안을 제시했다. 그녀는 그 답을 인디언들에게서 찾았다고 말했다.

 

“제가 최근에 탐독하는 책들이 인디언에 관한 책들이에요. 유럽 사람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넘어왔을 때, 당연히 인디언들은 이 사람들 역시 같은 대지 위에 살고 있으니 친구라는 생각으로 반갑게 맞이했죠. 그런데 유럽인들은 그렇지 않았어요. 모든 것을 빼앗았죠. 세상의 모든 만물은 하나이기 때문에 땅의 한 구석을 파헤치면 그 파괴가 언젠가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인디언들은 알았어요. 인디언들은 영혼의 근육을 많이 키운 사람들인 것 같아요. 우리가 배워야 할 모든 것이 다 여기 들어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연대를 통해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어쩌면 궁극적인 행복을 위한 유일한 정답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인간이 기계화 되는 것, 인간이 미디어의 노예가 되는 것을 거부해야 해요. 그런 아주 사소한 시선들이 21세기 좌파들의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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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생활 좌파들목수정 저 | 생각정원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살 수는 없을까?” “노인을 위한 나라는 가능할까?” 등의 질문을 세상에 던지며 상상을 현실로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 첫 번째이다. 그리고 “소비하지 않는 삶은 가능할까?” “익숙한 것을 거부한다는 것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을 통해 세상을 낯선 시선으로 바라보고 새로운 삶을 개척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맨몸으로 가부장제에 맞서는 페멘의 활동, 중앙정부 관료이지만 극좌파 운동을 하는 활동가의 모습 등 부단히 경계를 넓혀가는 좌파의 활동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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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정 #파리의 생활 좌파들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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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실험반대자

2015.11.02

솔직히 큰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불금을 바친 것이 결코 후회스럽지 않은 강연이었어요^^ 목수정 작가님 참 우아하신 분이더군요. 겉치장에서 나온 우아함이 아니라, 생각과 동작이 참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우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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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예원

재미있는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책과 함께 있을 때 가장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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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정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문화 영역에서 일을 하다가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 8대학 대학원에서 공연예술학 석사를 받고, 한국에 돌아와 문화정책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2008년 이후, 줄곧 파리에 거주하며 한국 사회 속 약자와 소수의 권리에 관해, 올바른 정치를 위해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을 다양한 매체에서 글로써 전하고 있다. 뚜렷한 주관으로 냉철하게 판단하고 행동하는 목수정은 상대와 마주할 때면 누구보다 따듯하고 부드럽다. 삼시 세 끼를 제 손으로 챙기면서 밥하기의 수고로움과 그 안에 들어앉은 세상 작동을 배움 삼아 자신만의 하루를 온전히 살아가기 때문이다. 『밥상의 말』은 한국에서 태어나 프랑스를 제 2의 터전으로 살아나가는 저자가 두 밥상을 넘나들며 마주한 음식에 깃들인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관한 이야기이다. 『칼리의 프랑스 학교 이야기』는 한국에서 대학까지의 교육과 사회생활을 경험한 저자가 프랑스에서 프랑스 남자와 함께 낳은 아이를 키우고 학교에 보내며 경험하고 관찰한 바를 기록한 이야기다. 어느새 중학교 2학년이 된 딸 칼리의 학교와 가정에서의 성장 과정을 차곡차곡 정리한 성장 기록이기도 하다. 지은 책으로 『칼리의 프랑스 학교 이야기』, 『아무도 무릎 꿇지 않은 밤』, 『파리의 생활 좌파들』,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야성의 사랑학』, 『월경독서』, 『아삭아삭 문화학교』, 『당신에게, 파리』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문화는 정치다』, 『멈추지 말고 진보하라』, 『자발적 복종』, 『10대를 위한 빨간책』, 『부와 가난은 어떻게 만들어지나요』, 『세계인권선언』, 『초경부터 당당하자: 나, 오늘 생리해!』, 『에코 사이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