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분당에 문을 연 한 백화점이 방송에 소개된 적이 있는데 이때 화제는 다름아닌 엄청난 규모로 선보인 지하 식품매장이었다. 몇 년 전만 해도 백화점 내 식품매장이나 푸드코트는 고객들이 쇼핑 중에 허기를 잠시 채우며 걸쳐가는 장소쯤으로 여겼건만 근래에는 크나큰 매출을 낚는 황금알로 부상되고 있다. 실제로 최근 신세계, 현대, 갤러리아, 롯데백화점 마다 식품매장을 주요 매출 대상으로 확장하는 등 공을 들이는 추세이다. 이들 식품 매장마다 럭셔리한 코너로 눈길을 끄는 수입 상품들은 그 가격대도 만만치가 않은데 이중에 간판 항목이 올리브오일이다.
엑스트라 버진, 붙이는 게 값?
웰빙 바람에 편승되어 국내 소비자에게도 건강식품으로 크게 알려진 올리브오일은 등급에 따라 몇십 만원 이상을 호가하는 종류도 있다. 올리브오일 중에서도 이른바 엑스트라 버진이라는 꼬리표가 붙으면 그 값은 붙이는 게 값이다. 마치 와인 애호가들의 취향처럼 그 해 이탈리아의 명문 올리브 생산지에서 갓 수확된 올리브로 짜낸 신선한 오일을 맛보고자 1년 전부터 주문 리스트에 이름을 올려놓고 상품을 기다리는 고객들도 많다고 한다.
솔직히 건강음식을 15년 이상 연구해온 필자로서는 우리에게도 좋은 기름들이 얼마든지 있는데 이렇게까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어쨌든 이것이 지금의 대한민국 먹거리 문화를 둘러싼 트랜드임은 확실한 것 같다. 한편으로 그럴 법도 함이 어떤 올리브오일 병에는 아주 노골적으로 ‘ 이 오일은 혈관질환 발병률을 낮춘다고 합니다’는 문구가 박힌 제품도 있다니 100세 시대에 건강에 엄청난 관심을 기울이는 한국인들에게 올리브오일이 이래저래 매력적인 건강식품으로 여겨지는 것 같다.
고가로 유통되는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오일은, 즉 신선한 온도에서 첫 번째로 짜낸 오일을 뜻한다. 그런데 고가의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오일을 불로초처럼 즐기는 소비자들에게는 좀 실망스런 정보가 되겠지만 이미 이탈리아에서는 50년전부터 압착기술이 발달해 대부분의 올리브를 450 기압에 압력기로 단 한번에 오일을 짜내기 때문에 두 번 이상 짤 필요가 굳이 없다고 한다. 여기서 신선한 온도란 섭씨 27도를 뜻한다. 즉 일부러 지중해 멀리서 공수 받는 비용 때문에 굳이 비싼 돈을 들여가며 구할 만큼 엑스트라 버진 오일이 특별할 것까지는 없다는 얘기인 듯하다.
특히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건강을 고려해서 친환경 등 각종 원재료 생산지를 중요시 따지는 시각에서 본다면 더욱 더 그렇다. 심지어 커피나 와인, 그리고 식탁에 흔히 오르는 두부 조차도 원재료인 콩이 국산이 아닌 중국산이면 기피하는 분위기에서 올리브오일에 있어서는 왠지 관대한 것 같다.
왜 이탈리아 사람들은 음식이야기를 좋아할까
이러한 지적은 러시아인으로 이탈리아에서 문학 활동을 하는 엘레나 코스튜코비치가 쓴 책 『 왜 이탈리아 사람들은 음식이야기를 좋아할까 』에서 저자가 피력하는 견해이다.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오일을 둘러싸고 보다 김빠지는 이야기를 덧붙이자면 흔히 제조 나라가 이탈리아라고 표기된 올리브오일은 실제로 원산지가 모로코, 튀니지, 터키, 스페인산 올리브라는 것이다. 이들 지역의 올리브가 거대한 유조선에 실려서 이탈리아의 제노바, 바리 항구 등으로 이동해서 가공과 제조만 전문으로 이탈리아의 대형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이라는 것이다. 이는 한국인이 명품 생선으로 손꼽는 영광굴비가 최근에는 남해에서 잡은 조기나 중국산 조기를 가져다 영광의 바닷가에서 말려 가공한 다음 이름만 영광으로 붙인 경우가 있다고 해서, 종종 시비거리가 되는 예와 같은 얘기다.
이왕 올리브오일 얘기를 꺼냈으니 이탈리아인들의 삶에 있어 올리브오일의 영향력은 대단한 것 같다. ‘우리는 이탈리아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식품은 올리브오일에 젖어 있다. 그리고 올리브오일은 우리의 식단에 생기를 불어 넣는다’ 여기서 우리는 대부분의 이탈리아인들이다. 실제로 올리브오일에 다량 포함된 불포화지방산은 동맥경화를 막아주는 등 심혈관 질환 예방에 유용하다는 연구들이 학계에 많이 보고되고 있다.
올리브 나무는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부터 숭배의 대상이었음이 기록마다 엿보일 정도로 그들의 종교적 자산이었다. 이후 로마인들의 사상적 측면 뿐 아니라 요리와 같은 실질적 측면에도 영향을 미쳤고 이어 이탈리아인에게도 올리브오일의 전통이 전승되었다. 올리브오일은 우리네 김치처럼 지금의 이탈리아인들을 하나로 결집시키는 일종의 상징적인 전통식품으로 주요 도시의 상공회의소에서 올리브오일의 품질을 관리하고 있다.
그래서 이탈리아에서는 매년 매월 거의 지방마다 돌아가며 올리브오일 품평회 및 콘테스트를 벌이고 있다. 2월 폴리아주, 로마 등에서 시행되는 올리브오일 전시회를 비롯하여 6월에는 시칠리아, 11월에는 밀라노에서 올리브오일 박람회가 개최되는 가운데 세계 올리브오일 애호가들이 참여하여 그 맛을 즐기며 오일의 질을 품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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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탈리아 사람들은 음식 이야기를 좋아할까?엘레나 코스튜코비치 저/김희정 역/박찬일 감수 | 랜덤하우스코리아
독자들은 이 책을 읽어가면서 이탈리아의 요리에 대한 비유, 음식의 담겨진 체계 등을 접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접할수록 음식 이야기 속에 담긴 언어가 수천 년의 세월 동안 완성되어온 이탈리아 사람들의 소통방식이며 음식이야기야말로 다른 사람을 온전히 환영하는 방식이고, 민주적이며 긍정적인 이탈리아인들의 대화 방법임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 삶의 터전을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어느새 온전히 이해하고 있고, 포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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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학전문기자 출신 1호 푸드테라피스트)
의학전문기자 출신 제1호 푸드테라피스트 / 푸드테라피협회장
감귤
2015.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