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로 만나는 황후들의 이야기 <명성황후>, <엘리자벳>
두 인물이 닮은 구석이 있어. 각각 16살에 왕비로 궁에 들어와 혼란스러운 세기 말을 살았지. 민자영(1851~1895)이 조선의 마지막 왕비이자 대한제국의 첫 황후라면 엘리자베트(1837~1898)는 오스트리아제국의 마지막 황후면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의 첫 왕비이기도 하고.
글ㆍ사진 윤하정
2015.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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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비정상회담’을 봤더니 독일에서는 TV에 역사를 다룬 드라마나 영화가 방영되면 바로 뒤에 관련 다큐멘터리가 나간다고 한다. 허구나 미화가 곁들여졌다는 걸 알면서도 내용에 깊게 빠져드는 시청자들에게는 균형감각을 심어줄 수 있는 좋은 시스템이 아닐까. 요즘 국내 공연장에서는 역사 속 두 명의 인기 황후가 관객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바로 조선의 마지막 왕비인 명성황후와 오스트리아제국의 마지막 황후인 엘리자베트인데, 두 인물이 어느 면에서는 닮았지만 무대에서는 전혀 차원에서 접근하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같은 명성황후를 다르게 풀어낸 작품도 있다. 그래서 이번 기사는 이들 뮤지컬을 보고 관객들 나름대로 균형감각을 맞추기 위해 객석에서 나눴을 법한 얘기들로 각색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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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블록 9열 7번 : 올해 광복 70주년이라서 그런지 우리 역사를 다룬 공연이 유독 많네.

 

B블록 9열 8번 : 그러게. 그런데 작품을 볼 때마다 내가 역사를 이렇게 모르나 부끄럽더군.

 

B블록 9열 7번 : 예술의 또 하나의 순기능 아니겠어? 자연스레 되돌아보고, 생각하고, 의미를 되새기는 것 말이야. 때로는 공부도 하게 되지. 무대 위에 펼쳐진 이야기가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부터 허구인지 모르니까 말이야. 서울예술단의 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만 봐도 일단 호칭부터 헷갈린다고. 민비가 맞는지, 명성왕후인지 명성황후인지.

 

B블록 9열 8번 : 이것만 봐도 역사는 현재에 의해 쓰인다는 걸 알 수 있지. 20여 년 전만 해도 이 호칭을 두고 문제가 된 적은 없었잖아. 학계에서도 여태 논란이 많은 부분이니 단정 지 을 수는 없지만, 민비라는 호칭이 틀리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민 씨인 왕비’라는 말이고, 조선 왕조의 다른 왕비에 대해서도 당대 조선인들이 써 왔던 말이지 않나? 민비의 시어머니인 신정왕후를 조 대비라고도 말하는 것에 대해서는 문제 삼지 않잖아. 어쨌든 고종이 1897년에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2년 전에 숨진 왕비의 장례를 그제야 치른 건 황후의 예로 치르고자 했기 때문일 테니, 우리도 그 뜻을 받들어야지.

 

B블록 9열 7번 : 이럴 때는 서양식이 편해. 오스트리아제국의 마지막 황후인 엘리자베트 폰 비텔스바흐의 삶을 담은 뮤지컬은 심플하게 <엘리자벳>이잖아. 우리도 그냥 <민자영>이라고 하면 안 되나(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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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블록 9열 8번 : 그런데 두 인물이 닮은 구석이 있어. 각각 16살에 왕비로 궁에 들어와 혼란스러운 세기 말을 살았지. 민자영(1851~1895)이 조선의 마지막 왕비이자 대한제국의 첫 황후라면 엘리자베트(1837~1898)는 오스트리아제국의 마지막 황후면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의 첫 왕비이기도 하고.

 

B블록 9열 7번 : 그러고 보니 뮤지컬도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졌네. <명성황후>는 1995년에, <엘리자벳>은 1992년에 각각 서울과 빈에서 초연돼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공연되고 있고 말이야.

 

B블록 9열 8번 : 한 나라의 황제이나 아버지와 어머니의 그늘에 가린 남편도 있었지. 1863년 철종이 재위 14년 만에 후사 없이 죽으면서 흥선군 이하응의 둘째 아들 명복, 그러니까 고종이 조선의 제26대 왕이 돼. 혈통으로 따지면 고종은 왕위에 오르기 힘든 위치였지만, 당시 외척인 안동 김 씨를 숙청하려는 조 대비와 기회를 엿보던 흥선군의 정치적 입장이 맞았고, 고종의 나이가 어려서 조 대비의 수렴청정이 가능했던 것도 중요한 단초가 됐어. 수렴청정은 고종 즉위 후 10년간 이어졌는데, 사실상의 실권은 부친인 흥선 대원군이 장악했지. 대원권이 어머니와 단출하게 살고 있던 민자영을 왕비로 간택한 것도 세도정치의 가능성을 차단하고 자신의 권력기반을 다지기 위해서였으니까.

 

B블록 9열 7번 : 보기 좋게 예상을 빗나갔지만(웃음). 엘리자벳의 남편인 프란츠 요제프도 당시 황제였던 큰아버지가 건강상의 이유로 후계자를 찾자 몸이 허약했던 아버지를 제치고 지목됐어. 요제프에게 집착했던 소피 대공비는 아들을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황제로 키우기 위해 무척 엄격하게 굴었다는데, 그녀의 바람대로 10대 때부터 오스트리아제국 군대에서 복무했던 요제프 황제는 평생 성실하고 검소한 인물로 알려져 있지. 하지만 아내는 어머니가 골라준 사람을 마다했는데, 그게 불행의 시작이라니. 어릴 때부터 자유분방하게 자란 엘리자베트와 부부생활에 일일이 간섭하고, 양육권까지 앗아가는 소피 대공비는 부딪힐 수밖에 없었어. 그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요제프와 틀에 갇힌 궁정생활은 엘리자베트의 자유에 대한 갈망을 증폭시켰고 말이야.

 

B블록 9열 8번 : 두 사람에게는 자녀를 먼저 보낸 아픔을 겪었다는 공통점도 있어. 물론 당시만 해도 영아 사망률이 높았지만, 명성황후는 순종을 제외한 네 명의 자녀가 모두 요절했고, 엘리자베트 황후 역시 어린 딸의 죽음에 이어 성인이 된 루돌프 황태자의 자살까지 겪잖아.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 황후치고는 참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지. 명성황후는 일본 낭인들에 의해 시해됐고, 스위스를 여행하던 엘리자베트 황후는 무정부주의자의 칼에 찔려 숨졌으니까.    
 

B블록 9열 7번 : 그런데 엘리자베트는 빼어난 외모는 물론이고 일탈적인 행동으로 당시 유럽의 모든 왕실을 통틀어 가장 많은 사랑과 미움을 동시에 받았던 여인이라고 하잖아. 사진을 봐도 정말 아름답더라고. 하지만 명성황후의 얼굴은 확인할 수가 없다지? 고종의 사진은 꽤 많은 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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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블록 9열 8번 : 맞아, 명성황후의 사진은 추정되는 몇 장도 여전히 진위 논란에 쌓여 있지. 실제로도 그녀는 사진 찍는 걸 무척 싫어했다고 전해지는데, 공공연하게 암살 위협을 느껴 얼굴을 알리지 않았다는 얘기도 있고, 일본이 시해 후 사진을 불태웠다는 말도 있어. ‘왜 명성황후의 사진은 한 장도 남아 있지 않을까?’라는 물음에서 시작한 작품이 바로 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고.

 

B블록 9열 7번 : 뮤지컬 <명성황후>가 다룬 민자영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지? <명성황후>가 시아버지에게 대들고, 남편을 조종해 정사를 어지럽히는 것으로 폄하됐던 명성황후를 허약한 국권과 왕권을 지키기 위해 정면으로 나섰던 진취적인 여성, 조선의 국모로 부각했다면, <잃어버린 얼굴 1895>에서는 민 씨 일가를 세도정치의 중심에 끌어들이고, 사치와 굿판으로 국고를 탕진하고, 왕비를 험담하는 백성을 매질해 죽이고 그 마을 전체를 수장하는 표독한 여인으로 부각되잖아. 명성황후뿐 아니라 대원군과 고종도 뮤지컬 <명성황후>보다는 더 일그러져 있네. 물론 그 모습이 실제에 더 가까울 수도 있고.

 

B블록 9열 8번 : 맞아. 그런데 <잃어버린 얼굴 1895>를 보고 있으면 다른 한편으로 ‘저 여인이 왜 그랬을까?’를 생각하게 되더라. 믿고 기댈 곳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어쩌면 극심한 생존본능에 의해 자신의 세력을 늘리고, 미신을 신봉했던 게 아닐까. 우리도 불안할 때 비싼 돈 들여 점 보러 다니잖아. 백성에게 그토록 냉혹할 수 있었던 것도 결핍과 피해의식의 발현 아닐까? 그런 차원에서 작품으로 치자면 <잃어버린 얼굴 1895><엘리자벳>과 더 닮아 있지.

 

B블록 9열 7번 : 그렇지, 역사 속의 위인이 아니라 불완전한 한 여인을 다뤘다는 점에서 말이야. 뮤지컬 <엘리자벳> 역시 유럽이 칭송했던 황후를 미화한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여인이었으나 왕비로서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평생을 떠돌았던 불완전한 인물로 여과 없이 드러내잖아. <엘리자벳>의 메인 넘버 ‘나는 나만의 것’이 자유를 갈망했던 한 여인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처럼 <잃어버린 얼굴 1895>에서 명성황후가 부른 ‘잃어버린 얼굴’도 개인의 고독과 아픔이 묻어나는 노래지. 반면 뮤지컬 <명성황후>의 메인 넘버 ‘백성이여 일어나라’는 국모로서의 역할을 다하려 했던 황후의 모습을 대변하는데, 흩어진 애국심이 뭉쳐질 정도야.

 

B블록 9열 8번 : 이지나 연출이 그러더라고. ‘명성황후라는 인물을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사람마다 각자 다르며, 그 다른 시선을 모으는 것이 우리의 작업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다면성을 가진 인격체라 생각한다. 그 인격체의 어는 부분을 바라보느냐가 <잃어버린 얼굴 1895>의 주제이다.’ 사후 100여 년이 지난 명성황후와 엘리자베트 황후에 대한 평가는 과거와 다른 부분도 있고, 여전히 엇갈리는 부분도 있고, 앞으로 달라질 부분도 있지 않겠어?

 

B블록 9열 7번 : 그러고 보니 예술의 전당 오페라 극장과 토월 극장에서 명성황후에 관한 작품이 나란히 공연되고 있네? 같은 인물이 얼마다 다르게 표현되고 있는지 비교해보는 재미도 있겠군.

 

B블록 9열 8번 : ‘나는 조선의 국모다’라는 말이 한 나라의 왕비로서 백성들을 아우르는 위엄인지,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여인이 왕후로서 대접받고 싶었던 아우성인지 확인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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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