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문을 찾는 독자, 재미를 찾는 독자, 감동을 찾는 독자, 교훈을 찾는 독자. 세상에는 수많은 독자들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작가들은 어떠한가. 오로지 자신의 문학적 성취만을 위해 글을 쓰는 사람이 있을까. ‘절대’라는 것은 없겠지만, “누구에게라도 읽히길 원하기 때문에 책을 낸다”는 명제 앞에서 자유로울 작가들은 많지 않다. 작가들은 간혹 독자들의 리뷰는 전혀 읽지 않는다며, 그들의 반응에 초월한 듯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독자들은 궁금하다. 작가가 왜 이 작품을 썼는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인지 묻고 싶고, 때론 작가와 직접 대면하고 싶다.
이러한 독자들의 심정을 모르지 않을 텐데, 등단 5년차 작가인 소설가 장강명은 최근 ‘북 콘서트 싫어요’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독자를 그냥 책으로 만나고 싶다”며, “창작자가 감상자를 가장 방해하기 쉬운 예술도 문학”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인터뷰도 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책을 펴낸 뒤의 인터뷰에서 작품을 논하지 않기는 어려운 일일 테니. 하지만 장강명은 올해 참 많은 인터뷰를 했다. 작품 이야기, 작가 개인의 이야기, 한국 출판계에 대한 비판도 거침없이 했다. 더 이상 물을 게 없을 정도로. 또한 최근 펴낸 장편소설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의 말미에는 ‘제20회 문학동네 작가상’ 수상작가로서의 장강명 인터뷰가 실렸다. 작가의 인간적 면모가 궁금하다면 그 글을 읽으면 될 터였다.
그러하다면 ‘2015년 대한민국 출판계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는 작가’ 장강명에게는 어떠한 질문을 해야 옳을까. 한 번 따져나 볼까? 마릴린 맨슨 티셔츠를 입고 나온 장강명 작가에게 물었다. “이 인터뷰, 안 하는 게 맞지 않나요?”
저도 모르는 해석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최근 ‘북 콘서트 싫어요’라는 칼럼에서 “독자를 그냥 책으로 만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셨어요. 그런데 정작 9월 ‘소설학교’(예스24에서 매달 진행하는 독자와의 만남 행사)의 주인공 작가세요.
제가 어느 정도는 회색 분자이기도 하고 타협하는 성미가 있어요. 어떻게 보면 인생철학이기도 한데, 매사에 체념하는 게 있어요. 저는 무슨 주의나 이데올로기, 도그마에 빠질래야 빠지기 힘든 성격이에요. 이를테면 “독서는 독자의 것”이라는 걸 극단적으로 밀어붙인다고 생각해보면요. 움베르토 에코가 그랬던가요? “작가는 책을 쓴 다음에 죽어버려야 한다. 제목은 아무거나 붙이고, 책에 대해 설명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는데, 저는 일견 동감하지만 그 정도는 아니에요. 매사에 여러 원칙들이 있는데 어느 정도는 타협하죠. 저희가 지금 마시는 커피가 한 잔에 4천 원쯤 하잖아요. 그런데 어느 아프리카 사람들은 4천 원이면 이틀 끼니를 때울 수 있어요. 사실 저희가 지금 굳이 커피를 마셔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극단적으로 보면 부조리한 현실일 수 있죠. 그렇다면 저희가 당장 커피를 끊어야 하나요? 그렇지도 않죠. 저에게는 독자들을 책으로만 만나고 싶은 마음이 있는 반면, 책이 좀 홍보되고 좀 팔렸으면 하는 마음도 있어요. 그러니까 어느 정도 선에서는 하는 거죠. 안 했으면 좋겠다는 원칙과 해야 하는 것 사이의 일종의 타협이에요.
‘어느 정도의 선’을 말한다면요?
요즘 유료 북 콘서트가 있더라고요. 저는 이것까지는 안 할 것 같아요. 타협이라는 의미는 어느 정도에서 정하는 거예요. 제가 타협주의자라고 비판을 받으면, 인정하고 받아야겠죠. 저는 어떤 의미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타협을 하면서 산다고 생각해요. 어느 정도 위선자이고 비겁한 사람일 수밖에 없는데, 제가 생각할 때는 이게 인간의 조건이에요.
인터뷰는 어떤가요? 최근 문단에서 큰 주목을 받았고 연달아 책이 출간되면서, 인터뷰도 꽤 많이하셨는데요. 인터뷰를 하다 보면 자기 작품에 대한 해석을 할 수밖에 없잖아요.
애초에 텍스트의 주인이 작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인 것 같아요. 지금 이 질문을 듣고 생각났는데, 북 콘서트를 할 때도 처음에 단서를 달까 해요. 여기서 제가 하는 말에 너무 휘둘리지 마시라고요. 독자가 궁금한 게 있으면 질문을 하고, 또 인터뷰어가 대신 물어볼 수 있겠죠. 저는 책을 쓰면서 있었던 뒷이야기를 할 수 있겠고요. 하지만 독자들이 제가 책을 낸 이후에 한 말이나 인터뷰에 나온 이야기들에 휘둘리지 않길 바랍니다. 독서는 자기 것이잖아요. 주체적으로 작품을 해석하는 독자에게는, 이런 인터뷰도 좋을 것 같아요.
어떻게 해석을 하든 그것은 독자의 몫이라는 뜻인가요.
옛날에 제가 <중경삼림>이라는 영화를 재밌게 봐서 극장에서만 세 번을 봤어요. 저는 그 영화를 홍콩 반환에 대한 이야기로 해석했는데, 어느 날 왕가위 감독의 인터뷰를 보니까 “홍콩 반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며 딱 잘라 말하더라고요. 저는 당황해서 속으로 약간 갈등을 하다가, ‘감독이 어떻게 말하든 나는 내가 느낀 대로 해석하는 게 맞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지금도 홍콩 반환에 대한 이야기라고 이해하고 즐기고 있는데, 독자들도 그렇게 즐겨주면 제가 좀 자유로울 것 같아요. 저는 작품이 책으로 나온 이후부터는 독자가 자기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세계라고 생각해요. 제가 만약 게임 개발자라면 가장 바라는 게, 게임 플레이어가 재밌게 게임을 즐기는 것일 텐데요. 만약 플레이어가 게임을 하고 있는데, 개발자가 옆에서 이러쿵 저러쿵 조정을 한다고 생각해봐요. 그건 아니잖아요. 스타크래프트를 만든 사람이 홍진호 씨보다 게임을 잘하나요? 아니잖아요. 저는 독자들이 제 책에 대해 저도 모르는 해석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전작 『한국이 싫어서』에서는 기자지망생 ‘지명’의 모습 속에서,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이하, 『그믐』)에서는 스톱워치로 시간을 재가면서 소설을 쓰는 ‘작가’의 에피소드에서 장강명 작가님의 이야기가 비쳐졌어요. 지금도 스톱워치로 집필 시간을 기록하시나요?
합니다. 스톱워치로 시간을 잰 다음에 그날 그날 엑셀로 기록하니까요. 엑셀에 수치를 기록하면 평균 합계가 나오잖아요. 요즘 부진했다 싶으면, 오늘 좀 더 피치를 올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쓴 날이면 조금 여유를 부리기도 하고 그래요. 8시간이 기본인데 그 이상 쓸 때도 있어요. 12시간까지는 못 써본 것 같고요.
전업작가라는 타이틀 이전에 ‘전업주부’라는 이야기도 하셨어요. 전업주부로서의 삶은 어떤가요?
정말 탁월한 전업주부예요. 매일 청소를 하고 거기에 더해 일주일에 두 번, 대청소를 해서 먼지가 쌓일 일이 없어요. (웃음) 제가 처음 전업작가를 해야겠다고 말했을 때, 아내한테 너무 미안하고 고맙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가사 일을 전부 하겠다고 했어요. 아내가 “그러고 싶으면 그래”라고 했는데, 당시에는 안 믿었대요. 저의 성실함을 안 믿는 게 아니라, 장보는 거랑 세탁, 설거지까지는 하겠지만 설마 청소를 할까, 싶었던 거예요. 제가 약간 생활감각이 떨어지거든요. 덜렁거리기도 하고. 아내가 보기에는 “저거 저거 청소한다고 그러면서 접시나 깨겠지” 했던 거예요.
예상 외로 잘하고 있다는 뜻이죠?
(웃음) 네, 집이 우선 엄청 깨끗해요. 아내는 집안일을 한 사람이 하는 건 부당하다면서 빨래 널기 같은 건 같이 하려고 하는데, 저한테는 크게 도움이 안돼요. 비율로 따지면 9:1 정도, 제가 9예요. 처음 회사를 그만둔 해에는 수입이 없었으니까, ‘이렇게라도 아내한테 도움이 돼야겠다’는 인간의 도리 같은 거였는데 이제 그냥 적응이 된 것 같아요.
첫 직장이 언론사는 아니었습니다. 건설회사를 다니다 재도전해서 기자가 되셨으니 ‘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열망이 컸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11년 기자생활을 하다 2년 전 그만두셨어요. 사표를 낸 이유에 대해서는 전업작가로서의 희망도 이야기하셨지만, 기자 일이 힘들었다고도 말하셨고요. 육체적으로 힘들었던 것인지, 아니면 앞으로 데스킹을 해야 한다는 게 싫으셨던 건가요?
두 가지 이유가 다 있었던 것 같아요. 연차가 쌓이면 내근직을 하게 되는데, 그러면 다른 현장 기자가 만들어온 기사를 데스킹 하는 업무를 봐야죠. 그게 싫기도 했고 육체적으로 힘든 것도 있었어요. 1년에 2,200시간 글을 쓰겠다고 말했는데, 제게는 이 시간이 휴가 같은 느낌이에요. 1년 동안 평일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토요일에는 서너 시간 쓰면 채워지는 시간인데, 기자로 일할 때는 일주일에 기본 70시간은 일했던 것 같아요. 하루에 12시간 일하는 게 너무 당연했죠. 아는 사람이 과로사 하고 병 걸리고 하면 덜컥덜컥 두렵기도 하고, 정신적으로 힘든 것도 있었어요.
그래도 가장 큰 이유는 ‘작가적 열망’이었을 텐데요.
기자 일을 할 때부터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기사는 어떻게 보면 한정된 틀이에요. 잘 아시잖아요. 더구나 일간지는 분량, 지면의 압박이 심해요. 큰 뉴스가 나오면 준비했던 기사도 아예 쓸 수 없고, 기자가 흥미로운 현상을 찾았더라도 그걸 쉽게 기사화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죠. 제가 오타쿠에 대해 쓰고 싶다고 해도 일간지에서 쉽게 지면을 확보하긴 어려워요. 길이의 틀 뿐 아니라 형식적으로도 되게 분명해야 하고. 야마 라는 것이 있어야 하죠.
『그믐』과 같은 글은 상상할 수가 없겠죠?
만약 이 소설이 기사라면, 데스크가 이렇게 말하겠죠. “너 하려는 이야기가 뭐야? 속죄야? 아니면 기억에 대해서 쓰고 싶은 거야?” 제가 “기억”이라고 답한다면 “그럼 다시 써”라고 할 테고요. 제가 쓰고 싶은 건 분명한 이야기가 아니라, 저의 어떤 이야기, 픽션이었으니까. 일간지라는 매체에는 맞지 않죠. 기자로 일할 때 열심히 했지만 애증이 있었고 한편으로는 회의도 있었어요. 쓰고 싶은 글을 쓰고 싶은데 아직 못 쓰고 있었고, 육체적으로도 힘들었으니까요. 그래도 기자가 됐을 때, 최소한 만 10년은 해보자고 생각했거든요. 주변에 이 이야기를 하도 많이 해서, 2012년에 “선배 그만둔다면서 왜 안 그만둬요?” 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웃음)
후배들에게는 뭐라고 답하셨나요?
“아, 글쎄 좀 더 보자”고요. (웃음) 그러다가 정작 사표를 낼 때는 준비 없이 울컥해서 냈어요. 사실 책을 한 권 더 낸 뒤에 작가로서 조금 이름을 알리고 연착륙을 하고 싶었는데, ‘아 이제 정말 못해먹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사표를 냈어요.
사표를 낸 후에 기분은 어땠나요.
북극에 와 있는 느낌이랄까요.
책을 내면 욕먹을 각오가 돼있거든요
등단작 『표백』이 한겨레문학상을, 『열광금지, 에바로드』는 수림문학상을, 『2세대 댓글부대』로 제주4.3평화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문단에서는 일찍이 화제가 됐지만, 대중 독자들에게 폭넓게 알려진 건, 『한국이 싫어서』 출간 이후입니다. 이 책이 올해 5월에 나왔는데 문학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꽤 많이 팔렸습니다. 언론에서도 많이 다뤄졌고요. 작가님에 대한 뜨거운 관심이 느껴지시나요?
대중을 진짜 만나는구나, 그런 생각이죠. 『한국이 싫어서』가 이렇게 큰 반응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약간의 논란이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있었죠. 제목이 도발적이니까요. 논란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그렇게 해서 독자들을 많이 만나면 좋으니까요.
그런데 논란이 아니라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어요.
그러게요. 사실 ‘아, 나도 한국이 싫어’ 이런 반응만 있으니까 약간 서글프기도 했어요. 저는 책을 내면 욕먹을 각오가 돼있거든요. “아무리 그래도 ‘한국이 싫어서’가 뭐야?” 그런 반응도 있을 줄 알았는데, 이런 주제에 있어서 공격을 받는 지점에 있는 분들도 ‘아, 젊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우리 반성해야 한다’는 식이니까, 되게 놀랍더라고요. 논란이 안돼서 놀랐고, 생각보다 반향이 커서도 놀랐어요. 개인적으로 내가 올해 운이 좋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운이 좋다는 건 어떤 뜻인가요?
최근 뭔가 굵직한 한국 소설이 안 나온 지가 몇 달 됐잖아요. 타이틀이 될만한 소설이 없으니까, 이야기를 할만한 굵직한 작품이 많이 나오지 않아서, 제 책이 주목 받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어요.
최근 『그믐』이 예스24 ‘오늘의 책’으로 선정됐는데, 책의 카피가 ‘특별한 주목을 받고 있는 작가’더라고요. ‘특별한’이 되게 모호한 표현이잖아요. 어떻게 느끼시나요?
제가 지금은 좀 유니크한 존재일 수가 있겠죠. 문학상을 많이 탔기 때문이 아니라, 최근에 주목 받은 작가들과는 전공도 다르고 해온 일도 다르니까요. 글의 결도 약간 다를 거고요. 제 입으로 말하는 건 민망하지만 이런 면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건, 맞는 것 같아요. 중요한 건, 제가 부응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겠죠. 빨간색이 여러 개 있을 때는 파란색이 주목을 받기 마련이잖아요. 그런 것 같아요. 제가 주목 받는 배경을 따져본다면요.
간혹 사람들은 누군가가 갑자기 큰 관심을 받게 되면, 질투를 합니다. 노력해서 얻은 것이라도 결실이 너무 커 보이거나 성장속도가 빠르면, 겉만 읽게 경우도 많고요. 『표백』이라는 작품을 쓰기까지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사실을 모르는 것처럼요.
제 말이 거만하게 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요. 한국 소설이 지금 돌파구를 찾고 있는 건 맞는 것 같아요. 뭔가 질적으로 낮다는 이야기가 아니고요. 저는 SM 소속 가수들을 보면 하나하나 완성도가 엄청 높다는 생각이 들어요. 보아의 레전드 공연을 보면 어떻게 노래를 저렇게 잘하면서 춤도 잘 추지? 괴물 같다는 느낌이에요. 샤이니의 「루시퍼」를 들었을 때도 되게 좋았고, 「Ring Ding Dong」 가사도 좋았고, SM이 EXO를 만들어 중국 시장을 공략하는 전략도 혁신적으로 봤어요. 하지만 한국 대중문화 전체가 다 SM이면, 그건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슈퍼스타 K>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버스커 버스커 같은 그룹도 나왔으면 하는 마음인 거죠.
장강명 작가님의 케이스가 ‘버스커 버스커’일 수도 있겠네요.
여러 가지 운과 포지션을 본다면, 그렇게 볼 수도 있겠죠. 전 버스커 버스커가 사랑을 받은 게, 아이돌 그룹과 차별화를 둔 전략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질 않거든요. 단지 그들은 본인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했는데, 운이 따라줬고 좋은 프로그램을 만나서 주목을 받게 된 거예요. 전 누가 누구보다 더 열심히 한다, 더 노력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 본인들의 틀 안에서 열심히 다 노력을 한다고 생각해요.
『그믐』이 ‘제20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이기 때문에 책 말미에 인터뷰가 실려있습니다. 권희철 문학평론가님이 인터뷰를 하셨는데, 글이 참 재밌습니다. 실례가 될지 모르겠지만, 작가님은 이 글을 어떻게 읽었을까 궁금하더라고요.
되게 부끄럽게 읽었어요. 왜냐면 권희철 평론가님을 그 날 처음 뵈었는데, 문학평론가와 일대일로 이야기를 한 게 처음이었거든요. 제가 문단 수업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문학적 지식이 없는 사람이라서 약간 두려운 마음도 있었고, 가능하면 저를 좀 감추고 싶었어요. 작가로서 열심히 쓰고 있다는 건 드러내 보이고 싶었고(웃음) 작가적 야심 같은 건 감추고 싶었죠. 남들이 보면 얼마나 웃길까, 하는 얼토당토않은 면들은 들키고 싶지 않았고요. 인터뷰이가 저였기 때문에 당연히 제가 이야기를 더 많이 했고, 평론가님이 별 말이 없으셔서 속으로 ‘이 정도면 내가 선방했지’ 싶었는데 글을 읽어보니 저를 꿰뚫어 보셨더라고요. 부끄러웠는데, 그래도 좋은 면을 봐주신 것 같아 읽으면서 얼굴이 빨개지면서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느낌이었어요. (웃음) 소개팅에 나가서 마음에 드는 이성을 만났는데, 상대가 별 반응이 없어서 ‘나를 안 좋아하나?’ 짐작했는데 나중에 주변 사람들에게 들어보니 “나를 괜찮다고 하더라” 그런 느낌이었어요.
책을 통해 위안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읽었으면
지난 8월부터 예스24 블로그에 장편 소설 「눈덕서니가 온다」를 연재 중이신데요. 강원도의 한 학교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 스릴러물이에요. 책으로 엮이기 전에 독자를 만나는 기분은 어떠신가요? 블로그라는 연재처를 선택한 이유도 궁금합니다.
「눈덕서니가 온다」가 좀비 호러물이잖아요. 이 작품에 맞는 독자에게 먼저 보여주고 싶었어요. 만약 이 작품을 문예지에 연재한다고 하면, 글쎄요. 반응이 썩 좋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문예지 독자들이 원하는 작품이 아니기 때문인데요. 저는 이 작품을 종이책보다는 웹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었어요. 블로그라는 게 접근성이 되게 좋잖아요. 더 많은 독자들을 얻기도 쉽고요. 문예지에 아무리 재밌는 좀비소설이 연재되더라도 그 문예지를 살 10대 독자들은 많지 않을 거란 말이에요. 그런데 블로그는 모바일로 보기도 편하잖아요. 또 예스24 블로그를 쓰는 독자 분들을 보면, 기본적으로 글을 좋아하고 즐기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았어요. 간혹 작가들은 자신의 포지션에 따라 어떤 어떤 출판사에서 책을 내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는데, 저는 그런 게 딱히 없어요. 출판사 선택이 확고한 작가들을 나쁘게 보는 게 아니라, 저는 굳이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표백』 ‘작가의 말’에서 “소설을 쓰는 동안 대학 시절을 자주 돌이켜보게 됐다”고 하셨어요. 『그믐』을 쓰면서는 어떤 생각을 많이 하셨나요?
솔직히 말해 작년이랑 올해는 ‘내가 전업작가로 성공할 수 있을까?’에 대해 가장 많이 생각한 것 같아요. 공모전에 응모한 것도 그렇고요. 『표백』은 3년이 걸려서 완성한 작품인데, 당시에는 제가 기자였으니까 부담은 크지 않았죠. 벼랑 끝은 아니었으니까요. 하지만 소설을 쓰면서 저조차도 반신반의했어요. 내가 등단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요. 아내는 아예 믿지를 않았어요. 그런데 저는 속으로 ‘못할 거 뭐 있나?’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등단을 하지 못하고 전업작가로 살 수 없었더라면, 어땠을까요.
전업작가로 성공을 못한다면 길이 한 세 가지쯤 있더라고요. 홍보업계로 가든지, 잡지사에 가든지, 아니면 공대생이었으니까 기술을 배워서 재취업을 하든가. 대학 후배들 중에도 그런 케이스가 있어요. 한 후배는 기중기 면허를 따더라고요. 아마 제가 작년에 작가로 못 떴더라면 다른 길로 갔을지도 몰라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밝힌 인터뷰를 읽었어요. 물론 이 이야기가 기사의 핵심은 아니었지만, 소설가가 “나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말은 사실 많이 하진 않잖아요.
그런 줄 전 몰랐어요. 이 이야기를 했다고 주변 사람들한테 말하니까 이색적인 이야기라고 하던데, 전 몰랐어요. (웃음)
만약 스테디셀러와 베스트셀러, 두 가지만 놓고 본다면요. 그래도 베스트셀러를 쓰고 싶으신가요?
이것도 아까 말한 타협의 지점인데요. 제가 보기에 정말 나무한테 미안한 베스트셀러들이 있어요. 최소한 그런 작품은 쓰고 싶지 않아요. 물론 많이 팔리는 소설을 쓰고 싶은데. 그걸 극단으로 밀어붙이면 제가 굉장히 혐오하는 베스트셀러가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책이 있을 거란 말입니다. 세상에 흑과 백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저에게 여러 가지 작가적 욕심과 그 욕심 중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있을 건데, 그 안에서 저를 막는 선이 있을 거예요. 타협하는 선이 있겠죠.
의도적으로, 신작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은 안 드렸습니다만. 작가가 어떤 작품을 쓴 것에는 작가적 욕망을 넘어, 어떤 독자들에게 이 작품이 유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쓸모라는 의미라기보다, ‘어떤 독자들이 읽으면 더 와 닿을 작품’이라는 측면에서요.
너무 엄숙해지나? 싶기도 하지만. 『그믐』은 마음의 상처가 있거나 자기 앞날이 밝지 않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아요. 이 소설 자체가 밝지 않은 미래를 앞둔 사람, 과거의 상처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잖아요. 이전까지 제가 썼던 책들은 개인의 상처에 대해서는 별로 말을 하지 않는 작품이었어요. 왜냐면 제가 기자로 오래 살았기 때문에, 사람이나 사건을 기사로 대했을 때가 많았어요. 기사처럼 소설을 쓰는데 익숙해졌던 거죠. 『표백』, 『열광금지, 에바로드』, 『한국이 싫어서』가 어떤 사회현상을 포착해서 그 현상이 이야기하는 바를 설명하면서 인물들을 소설에 넣었던 거죠. 인물들이 이러저러한 감정표현을 합니다만 이건 사회현상에 대한 본인의 반응이었던 것 같아요.
반면 『그믐』은 “이게 장강명 작가의 소설이야?” 싶을 정도로 많이 다르고요.
지금까지 쓴 작품들과는 많이 다르죠. 사회현상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고, 상처받은 개인에 대해 쓰고 싶었으니까요. 그간 작품들의 등장인물들은 거의 센 성격의 사람이었고, 자기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에 대해 저항하는 이야기였어요. 그런데, 『그믐』은 달라요. 정말 상처에 지배당해서 사는 사람들이죠. 결국엔 모두 상처에서 해방되고요.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의 제 독자들은 사회비판적인 성향을 갖고 있는 분들이 조금 많았던 것 같아요. 사회분석 텍스트로서 소설을 읽고 즐기는 경우가 있었던 건데요. 『그믐』은 조금 더 책을 심장 가까이에서 읽고, 책을 통해 위안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아요.
“『한국이 싫어서』를 재밌게 읽고 나서, 장강명 작가의 책을 역주행하면서 읽고 있다”는 독자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아마 곧 『그믐』도 읽을 것 같은데요. , 장강명의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제가 등단한 지 만 5년이 안 됐는데요. 계속 스스로 갈고 닦아가는 중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이 싫어서』를 쓰면서는 ‘내가 40대 남자 작가인데 여성이 화자인 작품을 쓸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썼고, 『그믐』은 ‘나도 이제 사람의 상처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봤던 작품이에요.저는 계속 이런저런 도전을 하고 시도하는 있습니다. 그저 성장하는 작가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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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장강명 저 | 문학동네
오로지 시간을 한 방향으로 단 한 번밖에 체험하지 못하는 인간 존재의 한계를 근본적으로 성찰하는 작품이다. 일진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다 얼결에 살인을 저지르는 남자, 그 남자의 사랑을 너무 뒤늦게 깨닫게 되는 여자, 그리고 그 남자의 칼에 아들을 잃은 한 어머니, 세 인물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작가는 시간과 기억, 속죄라는 삶의 본질적인 문제를 풀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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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혜
eumji01@naver.com
hyang9555
2016.03.18
화성인
2015.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