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에서 여러 얘기를 들었지만, 기억에 남는 얘기가 있다. 아무리 오래 여행을 해도 1년은 넘기지 말라는 것이다. 1년 넘게 세계를 돌아다니면, 계속 여행자로 남게 된다고 말이다. 사실인지 그냥 해본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을 해준 사람이 몇 년째 여행자로 지내며, 호스텔을 운영하고 있었기에 더 인상 깊었는지도 모른다.
여행 스타일엔 두 가지가 있다. 치밀하게 계획을 짜는 타입과 일단 떠나고 보는 무계획파가 있다. 나는 언제나 후자였는데, 모르고 봐야 더 큰 감동을 느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날지 아는 것보다, 우연한 만남에 더 설레는 것처럼 나는 여행지에서 그런 설렘과 일탈을 바랐다.
첫 여행을 패키지여행으로 시작했던 후유증이기도 했다. 여행은 아주 좋았고 편했지만, 일정이 계속될수록 감동이 덜해졌다. 휴식과 사색 없이 계속 관광명소들만 보다보니 금방 자극에 무뎌져 버린 것이다. 게다가 새로운 놀람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이미 상세하게 조사해서 아는 것들을 그냥 눈으로 ‘아, 이렇구나.’하고 확인하는 과정이 되니 아무래도 즐거움이 덜했다.
거기에 외국에 장기간 머물다보니 무계획에 익숙해지게 되었다. 오늘 못 보면, 내일 보면 되지. 하지만, 너무 무계획으로 떠나다 보니 이것도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장기가 아니라 단기여행을 떠나면서 사전조사를 대충 하다 보니 여행지에서 놓치는 게 많아졌기 때문이다. ‘아, 이거 여기에 있었네. 여행 갔을 때 한번 들러볼 걸’하는 후회도 슬슬 올라오고 있다.
역시 뭐든 하나에 치우치는 것보단, 적당히 섞어서 중도를 지키는 게 좋은 것 같다. 세상사 원만하게,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하지만, 이렇게 여행을 하다 보니 이번 이야기에선 여행에 도움 되는 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마지막이고 하니 팁을 하나 적어보자면 언어는 어떻게든 익혀가는 것이 좋다. 최소한의 생존언어라도 말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장은 “화장실 어디예요?”와 “이거 얼마예요?”이다. 그 나라 언어로 길을 물어볼 수 있어야 손가락으로 방향이라도 안내받을 수 있고, 가격을 알아야 숙소에 묵을지 말지, 무엇을 먹을지 정할 수 있지 않겠는가. 아라비아 숫자는 전 세계 공용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리고 어디를 가더라도 영어는 쓸 만하다. 생존뿐만 아니라 같은 여행자 친구를 사귀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꼭 유창하게 할 필요는 없는데 언어는 스킬보다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을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외국에 나가보면 잘 알 수 있는데, 말이 시원스럽게 통하지 않아도 어떤 사람과는 마음이 맞고, 아무리 말이 잘 통해도 또 어떤 사람과는 영 마음이 맞지 않는다.”
마지막 화엔 어떤 사진이 좋을까 고민했는데, 하늘사진이 가장 어울릴 것 같다.
어디론가 떠나고 있는 순간이니 말이다.
여행을 왜 하는가에 대해선 이견이 많겠지만, 얼마 전에 인상 깊은 인터뷰를 하나 봤다. 크루즈 여행을 하는 노부부를 인터뷰 했는데 남편은 배의 훌륭함과 여행의 즐거움을 말한 반면 부인은 단호하게 이렇게 말했다. “여기에선 밥을 안 해도 되잖아요.” 그리고 남편을 흘겨보곤 말을 이었다. “남편은 모르지만, 난 30년 동안 매일매일 밥을 했다고요.” 이 말처럼 여행은 일상을 완전히 내려놓을 수 있기에 좋은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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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정
안녕하세요, 어쩌다보니 이곳저곳 여행 다닌 경험이 쌓여가네요. 여행자라기엔 아직도 어설프지만, 그래도 오래 다니다 보니 여행에 대한 생각이 좀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미국, 캐나다, 페루,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 일본, 대만, 중국 등을 다녀왔습니다.
kokoko111
2015.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