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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살 아기와 함께하는 후쿠오카 여행

고르고 골라 엉뚱한 숙소에 도착한 후쿠오카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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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것에는 돈이 들지 않으니 남편과 나는 아이가 깊이 잠든 밤이면 이러저런 얘기를 나누곤 했다. 사람이 기억할 수 있는 제일 오래된 기억은 보통 다섯 살 전후라고 하니까, 만약 아이와 함께 해외여행을 가게 된다면 적어도 다섯 살은 넘어서 가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런데 이렇게 나눴던 이야기와는 정 반대로 우리 가족이 첫 해외여행을 떠난 것은 아이의 한 살 생일날이었다.

신생아를 돌보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전혀 몰랐던 우리는 지난 일 년 동안 제대로 못 자고, 못 먹으며 집과 일터만 오갔다. 다람쥐 쳇바퀴 돌리기가 이런 것일까. 문제는 앞으로도 크게 나아질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러던 중 남편에게 시간이 생겼고, 남편은 비장하게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몇 년은 또 지금처럼 바쁘게 보내야 할 텐데, 지금 여행 가자.' 처음엔 말도 못하는 아기를 안고 어디에 가냐며 말도 안 된다고 눈을 흘겼지만, 결국엔 승낙하고 말았다. 남편은 항상 자신이 을이라고 하지만, 남편이 끈질기게 설득하면 결국 넘어가는 것은 나다.

 

처음엔 제주도로 갈까 했었다. 그러나 우리 둘 다 제주도에 가봤고, 여행경비를 짜다보니 해외여행과 별 차이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가까운 나라를 두루 보다 보니 일본이 눈에 들어 왔다. 마침 소셜커머스에서 특가로 나온 저렴한 배표가 있었고, 이동시간도 부산-후쿠오카면 세 시간 정도밖에 안 걸리니 아이를 데리고 가기에도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다. 또, 일본 환율이 떨어진 때라 숙박 역시 저렴한 가격에 예약할 수 있었다. 유일하게 마음에 걸리던 한 가지는 방사능에 대한 염려였는데, 후쿠시마와 후쿠오카 사이의 거리는 후쿠시마와 부산보다 더 멀다는 것에 마음이 기울었다. 그럼에도 일단 아이가 먹을 것과 유아용품은 한국에서 다 싸들고 가서, 짧은 여행임에도 짐이 한 가득이었다.

 

여행은 출발하기 전부터 쉽지 않았다. 아이가 중이염에 걸린 것이다. 돌 치레라더니 이제껏 한 번도 안 아팠던 아기가 심하게 아팠다. 병원에선 입원도 염두에 두라고 했고 아기는 아프니 계속 울면서 품에 매달려 있기만 했다. 다행히 입원 없이 상태가 호전되었고, 마침내 의사선생님께 ‘이제 괜찮은데요, 여행 잘 다녀오세요.’라는 말을 들었다. 우리는 그동안 여행일자를 세 번 바꿨는데, 예약했던 배표와 숙박이 별 문제없이 변경되어 다행이었다. 기차표보다 싸게 예매했던 초저가 배표는 결재취소로 쉽게 환불되었고, 숙박 역시 환불 및 변경이 가능한 옵션으로 예약했기에 얼마든지 변경이 가능했다.

 

복병은 의외의 곳에 있었는데 여행일자를 미루다보니 후쿠오카에서 부산으로 돌아오는 날, 아이가 0세 영아에서 12개월이 꽉 착 유아가 된 것이다. 우리가 탔던 부산-후쿠오카 배편의 경우 12개월부터 표 값이 청구되어 후쿠오카에 갈 때는 무료, 부산으로 올 때는 유료인 경계에 놓이게 되었다. 또, 0세일 때 표 값은 무료라도 유류할증료는 청구되므로 항구에서 이를 지불할 현금을 반드시 챙겨둬야 한다. 참고로 항공편의 경우 보통 24개월 미만은 운임이 무료라고 알려져 있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항공사마다 규정이 다르니 미리 잘 알아봐야 한다. 아기 좌석이 없으니 공짜이겠거니 하고 생각하단 예상외의 지출에 출발하기도 전부터 여행경비가 훅 깎일 수도 있다.

 

배를 타고 이동하는 것은 걱정했던 것보다 괜찮았다. 후쿠오카에 갈 때는 혹시나 싶어 수유실이 있는지 물어봤더니 빈 창고를 내줘 아이와 편하게 갈 수 있었다. 돌아올 때는 그런 행운을 잡진 못했지만, 이리저리 선내를 돌아다니며 아이를 진정시킬 수 있었다. 비행기였으면 꼼짝 없이 좌석에 앉아 발만 동동 굴러야 했을 텐데, 이런 점은 배가 더 좋았다. 평일에 떠난 여행이라 다른 손님이 별로 없었고, 다른 아기 엄마도 있어서 마음이 좀 편했다. 생각보다 괜찮게 가긴 했지만, 내릴 때는 허리도 다리도 팔도 후들후들 떨렸다. 10킬로가 넘는 아기를 들고 있는 건 아무리 힙 시트의 도움을 받는다 해도 생각보다 고되다.

 

배에서 내려 숙소로 향했다. 숙소는 특히 신경 써서 골랐는데, 낙상 위험이 있으니 침대보단 다다미, 아이를 데리고 멀리 이동하는 것이 쉽지 않으니 교통이 좋은 곳, 거기다 후기도 괜찮은 곳을 골랐다. 조건에 딱 맞는 곳이 한 곳 있었는데, 심지어 가격도 저렴해서 믿기지 않았다. 우리처럼 한 살 아이를 데리고 갔던 어떤 부부의 블로그 후기가 결정적이었다. 한 가지만 빼곤 완벽해 보였다. 야마모토 료칸, 그런 흔한 이름의 숙소가 일본에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도 분명히 염두에 뒀어야 했는데 말이다. 숙소에 도착하는 순간 ‘아,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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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끝에 정했던 숙소

일본 호텔은 대개 방이 작은 편이라더니, 정말 조그만 방이었다.

 

숙소는 아주 작았다. 방은 정말로 깜직한 사이즈였고, 벽은 매우 얇아서 옆방에서 바스락 거리는 소리까지 다 들려왔다. 이 방은 내가 대학시절에 머물렀던 월 13만 원의 싸구려 고시원과 아주 비슷했다. 좀 더 깨끗하다는 점만 빼고는 말이다. 심지어 화장실과 목욕실이 공용이란 점까지도 닮았다. 공동욕실이라니! 배낭여행을 떠났을 때 빼고는 처음이었다. 그래도 그때는 내 한 몸만 건사하면 됐었지만, 지금은 아이 기저귀도 갈아야 하는데 이 무슨 시련이란 말인가. 오는 내내 안겨있었던 아이는 내리자마자 방안을 기어 다니며 방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아기가 물고 빨면 안 될 것 같아 보이는 모든 물건을 높은 곳에 올리며, 짐을 풀고 분유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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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에 늘어선 공동화장실과 세면실, 설마 방안에 개인욕실이 없을 거라고

생각도 못했기에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더니 이런 풍경과 마주치게 됐다.

 

위기는 밤에 찾아왔다. 밖은 어둡고, 다들 잠들 시간인데 아기는 신나서 ‘아우’거리며 놀고 있었다. 방음시설이 제대로 된 호텔이었더라도 신경이 쓰였을 텐데, 여긴 정말 합판 한 장이 옆방과 우리 방을 가르고 있었다. 별 수 없이 우리는 아이를 안고 밤 산책에 나섰다. 일본의 밤거리는 우리나라에 비해 안전한 편은 아니라고 했지만, 번화가 주변에 방을 얻어서 그런지 밤에도 문을 연 가게가 많이 보였다. 편의점과 24시간 영업하는 패밀리 레스토랑, 그리고 밤을 밝히는 술집들. 취객이 꽤 많았는데도, 거리는 대체로 고요했다. 우리는 아기가 잘 때까지 이리저리 산책하며 편의점에서 간식을 사먹고, 자판기와 불 켜진 가게들을 구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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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들린 조그만 가게, 주인내외가 오붓이 운영하고 있었다.

 

아이는 열두시가 다 돼서 잠들었는데, 우리는 잠든 아이를 안고 산책하며 눈여겨뒀던 일본식 가게로 들어갔다. 여기까지 왔으니 이런 전형적인 일본 가게에도 한 번 들어가 봐야 되지 않겠는가. 만화에서 막 튀어나온 것 같은 대머리 아저씨와 기모노를 입은 아주머니가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대화는 잘 통하지 않았지만 매우 친절했고, 우리는 아는 단어를 총 동원해 간단하게 주문했다. 몇 가지 생선회와 따뜻한 녹차, 간단한 과일 디저트가 나왔고, 아저씨는 우리가 알아들을 법한 간단한 농담을 던졌다. 그때까진 꽤 흡족한 기분이었지만, 계산서엔 무려 4천 엔이 찍혀 있었다. 주인아저씨가 글로벌 호구들을 제대로 알아본 것인지, 우리는 여행을 하는 동안 가장 큰 지출을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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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기지 않지만, 2만원 어치의 사시미

 

다행이 아이는 긴 밤을 잘 자고, 아침에 기분 좋게 일어났다. 조식을 주문해둬서, 전날 말해둔 시간에 내려갔더니 주인은 없고 밥이 식탁에 차려져 있었다. 연어구이 정식이었는데, 이미 식어있었다. 밥과 국만 방금 펀 듯 따끈따끈했다. 간단한 한상차림 같았는데 생각보다 든든해서 점심때가 되어도 배가 안 꺼져 걱정이었다. 일본에서 한 끼라도 더 먹고 돌아가는 것이 목표이다 보니, 제대로 잘 갖춰 먹어도 고민이었다. 작은 여관이었지만, 가족욕탕이 있어 간단하게 목욕도 할 수 있었다. 처음에 여관에 들어왔을 땐, 제대로 잠이나 잘까 싶었는데 의외로 목욕을 끝낸 후 머리까지 보송하게 말리고 체크아웃 할 수 있었다.

 

남편과 나는 틈틈이 계속 먹으러 다녔는데, 한창 뒤집어엎는 것에 재미를 들인 아이와 함께 식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메뉴주문은 같이 했지만, 밥을 먹을 땐 교대로 아이를 안아주거나, 데리고 밖에 놀러가야 했다. 어떤 음식이든 담아낸 모양이 아주 멋졌는데, 겉보기와 맛이 꼭 비례하는 것은 아니었다. 대체로 달달한 디저트가 감동적이었고 서비스가 아주 친절한 편이었다. 음식점에서는 아기용 플라스틱 그릇 세트가 따라 나왔고, 쇼핑센터 내 수유시설도 잘 갖춰져 있었다. 모성지수가 높은 사회에선 아이를 기르기 쉽다고 하던데, 일본에선 그런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이와 함께 여행을 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의 상태다. 같은 12개월이라도 발달사항 및 성향이 전혀 다르다. 일례로 아는 언니네 집 딸은 이맘때쯤 괌에 가서 함께 수영을 했는데 참 좋았다고 했다. 걸어 다녀서 엄마 손을 잡고 돌아다녔고, 분유도 끊어서 현지 슈퍼마켓에서 우유를 사먹였다고 했다. 반대로 우리 아들은 아직 기어 다녔고, 분유를 먹었으며, 좋아하는 것은 물건 꺼내기와 뒤집어엎기였다. 비슷한 시기에 가더라도 아이마다 전혀 다른 여행이 되니, 아이가 어떤 성향과 발달정도를 보이고 있는지 주의 깊게 체크한 후에 여행지와 여행 스타일을 정해야 여행이 더 즐거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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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최은정

안녕하세요, 어쩌다보니 이곳저곳 여행 다닌 경험이 쌓여가네요. 여행자라기엔 아직도 어설프지만, 그래도 오래 다니다 보니 여행에 대한 생각이 좀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미국, 캐나다, 페루,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 일본, 대만, 중국 등을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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