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이 안에 있는 게 편하구나. 익숙해진 방에서 나와서 낯선 세상의 방으로 옮겨가는 게 두렵구나.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낯섦과 두려움의 상황에 놓이는구나.
많은 임신 출산 관련 책에서는 출산이 다가오면 배에 손을 얹고 이제 며칠 남았네, 곧 만나자, 라는 인사를 해주라고 조언했다. 아이와 엄마 모두 태담을 주고받으며 마음의 준비를 해두라는 뜻인 듯했다. 나도 아이가 움직일 때마다 조금만 기다려, 라고 말하곤 했다.
의사 선생님은 출산을 이사에 비유해서 검진 때마다 방 이야기를 했다.
- 아가. 그동안 여기서 잘 지냈지? 이제 방 빼야 해. 엄마 아빠가 새 방 만들어놨어.
나는 방이라는 표현이 재미있어서 들을 때마다 킥킥거렸다. 그래, 축복아. 건강하게 잘 지내다가 이쪽 방으로 건너와.
그런데 마지막 검진 때까지 아이는 아래로 거의 내려오지 않았고 양수도 그대로였다. 머리 크기는 10센티미터를 훌쩍 넘겼고 예상 몸무게도 3.6킬로그램이 넘었는데 밖으로 나올 생각이 없는 듯 양수 속에서 평화롭게 움직였다.
- 얘는 지금 여기가 아주 살기 좋은 거죠.
양수도 빠지고 뱃속이 좁고 살기 힘들어야 애도 나오려고 하는데 여기가 따뜻하고 영양 공급도 저절로 되니 방 뺄 생각이 없는 거라고 했다.
- 얘는 나오는 게 고생이에요. 나오면 힘 줘서 빨아야지, 시끄럽고 정신없지…….
38주에 이런 상태면 예정일이 한참 지난 뒤에 애가 내려올 거고 그때는 몸무게가 4킬로그램을 훌쩍 넘길 거라고 걱정했다. 자연분만에 대해 품고 있던 실낱같은 희망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의사와 수술 날짜를 상의하면서 나는 배를 내려다봤다. 너도 이 안에 있는 게 편하구나. 익숙해진 방에서 나와서 낯선 세상의 방으로 옮겨가는 게 두렵구나. 아이는 생각이나 감정 없이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몸이 자라고 때가 되면 당연히 밖으로 나오게 되는 거라고 여겼는데,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낯섦과 두려움의 상황에 놓이는구나 싶었다. 아이들이 태어나는 순간 울음을 터뜨리는 건 10개월 동안 머물렀던 제 방과의 이별이 싫어서 그러는 게 아닐까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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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미(소설가)
2007년 문학수첩 작가상을 받으며 등단. 같은 해 창비 장편소설상을 탔다. 장편소설 『판타스틱 개미지옥』 『쿨하게 한걸음』 『당신의 몬스터』를 썼고 소설집으로 『당분간 인간』이 있다. 에세이 『소울 푸드』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