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문태준“스스로 깊어지는 것이 중요”
봄이 여름에게 자리를 내어주던 6일 저녁, 홍대 D.Play 카페에서는 문태준 시인과 박소란 시인이 함께 자리해 시를 쓰고 시를 읽는 사람들이 만나 시에 대해 이야기하는 드물고 빛나는 순간이 만들어졌다.
글ㆍ사진 신연선
2015.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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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적인가 아닌가로 많은 것이 평가되는 시대다. 목표를 달성했는가, 결과가 얼마나 좋은가를 일찍부터 배운 우리들은 ‘효율’을 떠나 무엇을 상상하는 데 불구가 되진 않았을까. 유희마저 ‘다시 힘을 내 성과를 내기 위한’ 시간으로 치부되는 마당에 ‘시’라는 것이 수치로 둘러싸인 실용의 세계 안에서 얼마나 이질적인 존재인지.

 

세상에 난 조그만 틈을 들여다보는 일,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 비로소 삶의 진실을 발견하는 일은 다른 무엇도 아닌 시로 얻을 수 있는 것들이다. 꼭 그것이 아니더라도 애써 시를 읽는 시간을 만들고, 마음이 일렁이는 순간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없는 삶의 큰 폭을 소유한 존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봄이 여름에게 자리를 내어주던 5월 6일 저녁, 홍대 D.Play 카페에서는 문태준 시인과 박소란 시인이 함께해 시를 쓰고 시를 읽는 사람들이 만나 시에 대해 이야기하는 드물고 빛나는 자리를 만들었다. 출판사 창비와 예스24가 매달 두 명의 시인과 함께 하는 '詩詩한 시인들의 詩詩한 이야기' 행사의 세 번째 순서기도 한 이날 행사는 한인준 시인의 사회로 시시(詩詩)한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최근 시집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을 펴낸 문태준 시인이 먼저 “만나게 되어 반갑다”고 인사를 전했다. 시인은 크게 바뀌지 않은 일상을 말하고는 시집을 출간하느라 조금 바빴으나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중이라고 차분하게 말했다. 첫 시집 『심장에 가까운 말』을 펴낸 박소란 시인은 “이제 막 첫 시집을 냈고 이런 자리가 처음이라 시를 읽는 분들은 어떤 분들일까 궁금했다”고 웃으며 인사했다.

 

 

소박하고 단선적 언어들


한인준 시인이 먼저 문태준 시인에게 이번 시집이 기존의 시집들과 어떤 차이가 있었는지 물었다.


문태준: 3년 만에 나왔는데요. 시가 생활을 따라 같이 이동하면서 저에게 들어옵니다. 쓰다 보니 시들이 자꾸 짧아져요. 제가 만난 대상이라든지 존재라든지 생명이라든지 그런 것들이 조금 직접적으로 가닿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언어를 좀 줄이고 단출한 의복, 단출한 의상을 입혀보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드로잉 연작(시집 제3부 시들)’이 시집에 있는데요. ‘드로잉’은 단선으로 특징을 잡아 사실은 굉장히 어려웠거든요. 단선으로 그렸을 때 생략되는 부분도 많고요. 그럼에도 소박하거나 단선적인 언어를 통해서 제가 본 세계라든지 대상을 쓰고 싶었어요.

 

어느 덧 여섯 번째 시집이다. 등단 후 꾸준히 시집을 내고 있는 문태준 시인에게 지치지 않고 시를 쓰는 비결이 있는지 물었다.

 

문태준: 94년 등단해서 등단한지 20년 정도 지났습니다. 그때 스물다섯 살이었고 지금 마흔 중반을 넘어서는데요. 시 쓰는 일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고요. ‘세사(世事)’라고 하잖아요, 세상에 있는 바쁜 일들을 다 끝내고 나서 이제 나에게는 유일하게 시 쓰는 시간만이 있구나 하고 느꼈을 때가 제일 행복한 때였던 것 같아요. 가장 맛있는 음식을 아껴두고 있는 상태처럼 순수하게 시만 쓸 수 있는 시간이 내 앞에 있다고 느낄 때가 가장 좋아요. 시를 쓰는 게 굉장히 좋았던 것 같아요. 이렇게 써왔지만 계속 쓸 수 있을까 그게 두렵습니다. 감정의 선이라든지 그런 것을 잘 유지해야 시를 쓸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시가 계속 나에게 올까 이런 걱정을 해요.

 

이어 박소란 시인에게도 질문했다. 첫 시집이기 때문에 더욱 궁금한 질문이었다. 시집을 낸 소감과 시집을 내기 전과 낸 후의 변화에 대해 물었다.

 

박소란: 첫 시집이라 기대가 컸었어요. 설레고 들떠서 마음 못 잡을까 걱정도 많이 했었는데요. 사실 너무 아무렇지 않고, 변한 것도 없고 그래서 좀 실망했어요.(웃음) 변한 건 아무것도 없고 좀 더 어깨가 무거워진 느낌이에요. 시 쓰기가 쉽지 않다는 느낌만 가졌습니다.

 

시집을 출간한 시인으로 독자 앞에 앉아있지만 이들의 일상이 어떠한지 알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한인준 시인은 두 시인에게 시 쓰는 시간 외에 여유가 생겼을 때 일상을 어떻게 보내는지 물었다.

 

문태준: 재미 붙여서 하는 일이 별로 없고, 다만 걷는 것을 좋아합니다. 무작정 걷는 걸 좋아하고요. 그래서 일부러 걸으러 여행을 다닐 때가 있습니다. 제주도를 몇 차례 가게 됐는데요. 오름을 가거나 숲길을 많이 걸었어요. 어느 지역에 가게 되면 한적한 길을 찾아서 걷게 되고요. 서울에서도 많이 걷습니다. 주로 마포에서 한강대교까지 이르는 길을 걸어갔다 다시 오곤 합니다. 특히 사람이 없을 때 걷는 것이 굉장히 좋아요. 비가 올 때나 눈이 올 때, 엄청 추울 때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요. 그때를 택해서 더 자주 걷습니다. 아니면 영화도 가끔 보고요.

 

박소란: 직장인이기 때문에 시간이 별로 없고 일상이 그냥 지나가는데요. 문태준 시인의 말씀을 듣고 깜짝 놀란 게, 제가 유일하게 오래 좋아해서 하는 일이 걷는 일이거든요. 저는 여행도 좋아하지 않는 집순이라서요.(웃음) 밤 10시부터 12시 사이에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걸어요. 걷다보면 일상이나 직장에서 받았던 스트레스도 풀리고요. 그 시간이 온전히 혼자일 수 있는 시간인 것 같아요.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다보면 운 좋게 시로 연결되는 경우도 많고요. 걷는 게 여러모로 많이 치유가 되는 것 같아요.

 

이날 행사는 모두 세 번의 낭독 시간이 마련되었다. 시인이 직접 낭독하는 시만이 전달하는 특별함이 있다. 더불어 시인이 시를 쓰게 된 이야기까지 곁들여주어 시를 더욱 풍성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도왔다.


첫 번째 낭독 순서에서 문태준 시인은 시 「몸을 굽히지 않는다면」을 낭독했다.

 

노랗게 잘 익은 오렌지가 떨어져 있네
붉고 새콤한 자두가 떨어져 있네
자줏빛 아이리스 꽃이 활짝 피어 있네
나는 곤충으로 변해 설탕을 탐하고 싶네
누가 이걸 발견하랴,
몸을 굽히지 않는다면
태양이 몸을 굽힌, 미지근한 어스름도 때마침 좋네
누가 이걸, 또 자신을 주우랴,
몸을 굽혀 균형을 맞추지 않는다면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수록 「몸을 굽히지 않는다면」 전문)

 

시인은 재미교포의 초청으로 LA에 갔던 일화를 말했다. 굉장히 큰 수목원을 가게 되었는데, 시인은 그곳에서 낙과한 과일들을 보았다. 그 경험으로 쓴 시가 낭독시였는데, “다른 존재들과 만나는 높이가 수평적인 관계일 때 존재를 온전히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쓴 시”라고 시를 설명했다.

 

박소란 시인이 이어 시 「다음에」를 낭독했다.

 

그러니까 나는
다음이라는 말과 연애하였지
다음에,라고 당신이 말할 때 바로 그 다음이
나를 먹이고 달랬지 택시를 타고 가다 잠시 만난 세상의 저녁
길가 백반집에선 청국장 끓는 냄새가 감노랗게 번져나와 찬 목구멍을 적시고
다음에는 우리 저 집에 들어 함께 밥을 먹자고
(『심장에 가까운 말』수록 「다음에」 일부)

 

박소란 시인은 ‘연애시’라고 이 시를 생각할수도 있지만 “급박하게 돌아가는 도시의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덧붙여 말했다. 바쁜 생활 탓에 정말 소중한 것을 놓치고 살지는 않은지 생각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미였다.

 

 

세계의 일원


한인준 시인은 2009년 문태준 시인의 시집을 들고 인도 여행을 한 적이 있다. 막 시를 쓰던 시절이었다. 문태준 시인의 이번 시집 마지막 시에 인도 바라나시가 등장해서 반갑다고 말한 한인준 시인은 여행이 시인의 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물었다.

 

문태준: 여행을 간다고 해서 이국적인 풍경을 쓰고 싶진 않았고요.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생활이 시에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행시가 잘못하면 장소에 대한, 혹은 장소가 가진 특질 같은 것에 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어느 곳에 가더라도 장소라는 것을 넘어서서 그곳의 사람들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생애’라는 강인한 것을 같이 구성하고 있는 사람으로서의 감각이죠.


백석도 목욕탕 같은 곳을 가서 여러 민족의 사람들이 같이 목욕하는 풍경을 쓴 시(「조당에서」)가 있어요. 백석이 어떤 곳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면 그렇게 쓰지 않았을 거란 말이죠. 대욕탕을 같이 사용하는 사람들, 곳곳에서 온 사람들이 그 시공간을 구성하고 세계의 일원으로 봤다는 거거든요. 지구적인, 생태적인 생각들과 연결되었을 때 좋은 시가 태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들어요.

 

누운 소와 깡마른 개와 구걸하는 아이와 부서진 집과 쓰레기더미를 뒤지는 돼지와 낡은 헝겊 같은 그늘과 릭샤와 운구 행렬과 타는 장작불과 탁한 강물과 머리 감는 여인과 과일 노점상과 뱀과 오물과 신(神)과 더불어 나도 구름 많은 세계의 일원(一員)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수록 「일원」 전문)

 

문태준: 바라나시 갔을 때가 2, 3년 전으로 기억이 되는데요. 인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하는 마음, 그런 영혼에 대한 부분이 굉장히 신선하게 느껴졌고요. 그 사람들의 신앙이 저들의 영혼을 굉장히 깨끗하고 신성한 상태로 잘 유지시켜주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막 살고 있는 제가 낯부끄럽기도 하고, 이렇게 살아도 되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죠. 삶과 죽음이 동시에 존재하는 모습이라든지, 완전 허름한 뒷골목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라든지, 사람을 화장하는 풍경이라든지, 흙탕물 속에서 신앙적 차원에서 멱을 감는 사람들을 보는 풍경, 생활공간 안에 짐승들과 함께 살고 있는 세계, 혼란스러워 보이지만 그 속에 나름의 생활의 질서가 있는 부분들이 신선하게 왔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일원」이라는 시를 썼고요. 추한 것, 깨끗한 것, 미개한 것, 아주 동물적인 욕망들이 강한 것들, 이 모든 것들이 다 어우러져서 세계를 구성한다는 것. 그런 경험은 근년에 한 경험 중 드물게 신선한 충격이었던 것 같아요. 그 외에도 많은 곳을 다니긴 했습니다만 그 내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속 깊은 생활을 봤을 때 여행의 보람을 찾는 편이에요.

 

특히 문태준 시인은 어느 곳에 가도 꼭 시장을 찾는다고 했다. 시장 안에 꼭 있게 마련인 소탈한 국밥집에 가서 소주를 한 병 시켜놓고 시간을 보내다 온다. 국밥집에 오는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듣는다. 이처럼 다른 곳의 생활을 만나고 오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고 그런 여행을 선호한다고 시인은 말했다.

 

박소란 시인의 시집 속에는 ‘용산’, ‘아현동’, ‘불광천’, ‘종로3가’와 같은 서울의 지명이 자주 등장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한인준 시인은 박소란 시인에게 서울이라는 도시가 어떤 의미인지, 도시에서 시를 쓰는 일에 대해 물었다.

 

박소란: 사실 서울이라는 공간을 시 속에 어떻게 넣어보겠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는데요. 시집 한 권을 묶어 보니 꽤 많은 지명이 등장하더라고요. 의도한 것은 전혀 아니었어요. 서울에 사는 동안 변두리에서 살았던 탓인지 제가 아는 서울은 한정된 곳이에요. 근사한 서울이 아니라 조금 아픈 곳, 병들고 약하고 쇠락한 것 같은 곳으로 서울이 느껴졌던가 봐요. 그런 모습들이 마음을 끌었고 시에 그런 모습이 투영됐는데요. 시 쓰는 사람으로서는 아무래도 보듬어주고 싶은 모습이 있어요. 어쨌든 서울이라는 공간을 사랑하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치유해주고 싶은 마음 때문에 결국 시가 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마냥 순하고 여릴 수만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보호자가 되어야 하니까 조금 굳세어지고, 독해지고, 그렇게 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합니다.

 

두 번째 낭독 순서다. 박소란 시인이 먼저 시 「돌멩이를 사랑한다는 것」을 낭독했다.

 

나는 사랑했다 절뚝이며 걷다 무심코 발길에 차이는 돌멩이
너는 참 처연한 눈매를 가졌구나 생각했다 어제는

지친 얼굴로 돌아와 말없이 이불을 끌어다 덮는 감기마저
사랑하게 되었음을
(『심장에 가까운 말』수록 「돌멩이를 사랑한다는 것」 일부)

 

박소란 시인은 이 시에 대해 “많이 허할 때 쓴 시여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시”라고 설명했다. “견딜 만하다고 말을 하는 것이 어느 순간 습관이 되어 있었다”며 그것이 진짜인지 생각하게 되었던 때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문태준 시인은 표제시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을 낭독했다.

 

눈도 입도 코도 가늘어지고 작아지고 낮아졌네
당신은 아무런 표정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네
서리가 빛에 차차 마르듯이 숨결이 마르고 있네
당신은 평범해지고 희미해지네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수록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 일부)

 

짐작하듯이 이 시는 노인에 대한 시다. 아흔이 넘은 분을 만난 후 썼다는 문태준 시인은 몸이 작아지고, 물도 못 넘기는 노인을 담담히 이야기했다. 손을 잡았을 때는 체온마저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흔히 물욕, 소유욕이 우리를 지배하곤 하는데 그 분을 뵌 순간에는 그런 게 다 없어졌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우리의 마지막 얼굴인데, 그게 본래 모습일 수도 있다, 최초의 모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 욕망의 불들이 다 꺼진 상태의 얼굴을 본 시인의 감상은 “평온해 보였다”였다. 생명의 끝자락에서 본 얼굴이라는 것이 삶에의 의지가 왕성했을 때 갖는 욕망들이 모두 사라졌더라는 것이다. 표제시기도 하지만 시인에게 많은 애착이 가는 시였다.

 

박소란 시인이 각별하게 생각하는 시는 「향기로운 밥」이었다. “이 시를 쓸 때, 등단 직전에 시를 정말 사랑하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아 속이 상했다”며 시에 대한 순정을 알리고자 한 내용이라고 시를 설명했다. 시에 등장하는 ‘바구미(쌀벌레)’에 대해서 “쌀 속에서 평생 쌀만 보고 사는데 그 마음처럼 시를 순정한 마음으로 대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썼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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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 시인 시의 밑돌 ‘김천’


“처음 보는 사회라 문태준, 박소란 시인보다 더 떨고 있다”고 웃으며 말한 한인준 시인은 이 행사를 준비하며 문태준 시인에게 자연스럽게 떠오른 질문이 하나 있었다고 했다. 시인의 고향 ‘김천’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시인의 유년시절과 김천에 대해 질문했다.

 

문태준: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김천에 살았고 지금도 부모님이 그곳에 살고 계세요. 버스를 타고 학교를 다녔는데 만원 버스에 가방을 일단 차창으로 밀어 넣고 겨우 타는 거예요. 한 시간에 한 대 정도 다녔거든요. 중학교 때 한 번은 버스에 가방을 던졌는데 옷이 다 젖었어요. 김칫국물이 새서요. 학교에 가서 햇볕이 잘 드는 곳에 교과서를 말렸던 기억이 납니다. 집이 많이 힘들었고, 동네도 밤마다 시끄러웠어요. 집 나간 사람들을 찾으려고 동네에 있는 철길을 찾아다녔죠. 저수지가 두 군데 있었는데 그곳에 사람이 갔다고 해서 또 찾으러 다녔고요. 굉장히 가난한 동네였는데요. 시를 쓰게 된 것이 내가 살아온 동네에 관해 시를 쓸 수 있겠다고 생각한 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제 시의 근거가 된 곳이 김천이라는 공간이란 생각이 듭니다. 김천이라는 공간이 아직도 제 시에 지속적으로 작용하는 것 같아요. 짐승 못지않게 산과 들로 뛰어 다니고 물속으로 뛰어들며 지냈던 낮밤, 그리고 그 속에서 힘들게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이 제 시에 근거가 되고 밑천이 계속 되어주는 것 같아요. 밑돌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태준 시인의 오랜 팬이라고 밝힌 박소란 시인이 문태준 시인에게 질문했다. 여섯 권 시집을 내는 동안 ‘문태준 스타일’이라고 할 만한 한결같은 스타일이 시인에는 있다. 그 안에서 나름의 깊이를 획득해가고 있지만 혹시 다른 형식적 실험, 새로운 시도에 대한 고민은 없었는지에 관한 질문이었다. 혹은 그 고민과 관련해 가진 신념이 있는지 궁금했다.

 

문태준: 박소란 시인의 시 참 좋아요. 「배가 고파요」라는 시가 참 좋더라고요. 자신의 경험, 몸이 만들어 낸 시인데요. 여성이 쓴 시지만 굉장히 뚝심이 있는 것 같아요. 생활도 있고, 땀도 있어요. 좋은 시를 많이 쓸 시인이라는 생각이 우선 들었고요.

 

새로운 시를 쓰고 싶기는 합니다. 옛날에는 안 썼던 시도 좀 나오는 것 같아요. 「아침을 기리는 노래」 이런 시는 제 시의 문법과 조금 다른 건데요. 그런 것도 써보게 되지만 자기 육성 같은 것은 버리지 못하겠죠. 자기만큼만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요. 선배들도 많이 말씀을 하세요. “네 문학을 잘 지켜라”라고요. 한 눈 팔지 말라는 얘기를 많이 하시고, 자기 시적 관심사에서 깊어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많이 얘기하세요. 그런 얘기를 들으면 어렸을 때 아버지께서 우물 파던 기억이 납니다. 아버지가 계속 땅 밑으로 들어가시는 거예요. 며칠을 계속 물을 찾아 들어가시는데 결국 맑은 샘물을 찾아내시더라고요. 결국 하나의 근원에서 만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고요. 스스로 깊어지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다양한 유행, 다양한 스타일을 내 시 안에 구현해낼 수 있다, 이것은 욕심인 것 같아요. 그런 것은 다른 시인들의 몫으로 남겨두는 것이 더 솔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낭독으로 문태준 시인이 먼저 「나는 내가 좋다」를 낭독했다.

 

예닐곱살 때에 상처가 생겼다
어머니는 중년이 된 나를 아직도 딱하게 건너다보지만
나는 내가 좋다
볍씨 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는 나의 눈이 좋다
물을 실어 만든 촉촉한 못자리처럼
눈물이 괼 줄을 아는 나의 눈이 좋다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수록 「나는 내가 좋다」 일부)

 

벼 낱알을 타작하다 눈을 다친 경험이 있다는 문태준 시인. 눈에 상처자국이 있는데 시인의 어머니는 아직도 이 상처를 안타까워하신다. 이 시는 “그런 상처도 부끄러울 바가 없다는 생각을 담은 시”라고 설명했다.

 

박소란 시인이 낭독한 「푸른 밤」에 대해 “마지막 순서라 따뜻한 시를 읽고 싶었다”고 시를 고른 이유를 설명했다. “제 시집에 따뜻하고 희망찬 시가 별로 없어서 오늘 같은 저녁이 ‘푸른 밤’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수줍게 웃으며 시를 낭독했다.

 

감시 가슴을 두드려본다
아무도 살지 않는 낯선 행성에 노크를 하듯
검은 하늘 촘촘히 후회가 반짝일 때 그때가
아름다웠노라고,
(『심장에 가까운 말』수록 「푸른 밤」 일부)

 

마지막으로 문태준 시인에게 시가 잘 안 써질 때 특별한 방법이 있을는지 물었다. 역시 문태준 시인의 팬을 자처한 박소란 시인의 질문이었다. 

 

문태준: 안 될 때가 많죠. 저는 주로 새벽에 시를 쓰는데요. 그 시간이 굉장히 좋아요. 새벽에 혼자 원두를 갈아서 물도 끓여 커피를 내려 마시고요. 다른 사람의 시집도 읽습니다. 좋은 시를 만나면 ‘나도 좋은 시를 써야지’하는 생각을 많이 갖게 되는 것 같아요. 주변에 좋은 시인들이 있다는 게 굉장히 복이죠. 친밀감 같은 게 참 좋아요. 이 시대에 그 힘든 작가의 길을 가고 있구나, 이렇게 서로 격려도 하죠. 동료가 있다는 사실이 무척 행복해요. 그런 분들이 힘든 시간에 혼자 저처럼 앉아서 시도 생각하고, 문장을 생각하며 쓴다는 걸 생각하면 행복하죠. 책도 잘 안 읽고, 작가도 점점 사라지고, 시도 사라진다고 합니다만 그 일을 하고 있다는 것에서 격려하는 뜨거운 것이 있는 거죠. 그런 순간들이 좋고, 그래서 혼자 시를 쓸 때도 그런 사람들이 쓴 좋은 시를 보면 좋은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샘솟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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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마지막 얼굴문태준 저 | 창비
우리 시단의 대표적인 서정시인으로 손꼽히는 문태준 시인의 여섯번째 시집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이 출간되었다. 불교적 사유가 도드라진 시편들로 주목을 받았던 『먼 곳』(창비 2012) 이후 3년 만에 펴내는 이 시집에서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대상과 세계에게 솔직한 말을 걸고 싶었다. 둘러대지 말고 짧게 선명하게”라고 밝혔듯이 “되도록 비유를 절제하면서 세계와 대상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그것의 심심(甚深)한 묘사와 나열에 집중”(최현식, 해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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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에 가까운 말 박소란 저 | 창비
등단 6년 만에 펴내는 이 시집에서 시인은 생의 어두운 이면을 낱낱이 포착해내는 섬세한 관찰력으로 도시적 삶의 불우한 일상을 감성적인 언어로 면밀히 그려낸다. 체념과 절망뿐인 비참한 현실 속에서 고통의 삶을 살아가는 존재들의 슬픔을 연민의 손길로 다독이며 삶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를 곱씹는 내밀한 성찰과 사유의 깊이가 돋보이는 시편들이 잔잔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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