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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과 다니카와, 한국과 일본 대표 시인의 만남

시낭송 콘서트 ‘세상을 시로 위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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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별이 되어 내 몸에 들어왔다』의 신경림 시인과 다니카와 슌타로 시인이 독자들과 만났다. 지난 23일, 세계 책의 날을 기념해 ‘세상을 시로 위로하다’라는 이름의 시낭송 콘서트를 개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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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별이 되어 내 몸에 들어왔다』는 한일 양국을 대표하는 시인의 만남으로 화제 속에 출간됐다. 시의 언어로 서로의 마음을 나눈 주인공은 신경림 시인과 다니카와 슌타로 시인. 두 작가는 대시(對詩)를 주고받으며 삶과 세상을 노래했다. 대시(對詩)란 두 사람이 함께 앉아 차례대로 시를 짓는 방식이다. 『모두 별이 되어 내 몸에 들어왔다』에서 두 시인은 6개월여 동안 전자우편을 통해 시를 전했다. 책 속에는 처음으로 공개되는 작가들의 대시(對詩)뿐만 아니라 대표적인 시와 에세이가 수록되어 있다.

 

문학으로써 인연을 맺은 두 작가의 재회는 지난 23일, 세계 책의 날을 기념해 마련된 시낭송 콘서트에서 이루어졌다. 구로 아트밸리 예술극장에서 진행된 이 날의 행사는 다채로운 공연들로 채워졌다. 장순향 무용단, 꿈의 오케스트라 구로, 가수 시와, 전문 국악 단체인 정가악회, 민중가요그룹 꽃다지가 함께했다.

 

진행을 맡은 박형준 시인은 “두 나라를 오가면서 이루어진 두 시인의 교류는 한일 각국을 대표하는 시인들의 문학적 만남일 뿐만 아니라, 한국의 세월호 사건과 일본의 후쿠시마 사건 등 동시대의 문제적 사안에 대한 진지한 대화와 시가 지향하는 보편적 윤리에 대한 통합적 사고로까지 나아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는 말로 『모두 별이 되어 내 몸에 들어왔다』가 지니는 의의에 대해 전했다. 이어 “두 선생님의 대시(對詩)를 보면 요즘 같이 살기 어려운 시대에 대한 깊은 통찰도 있고, 한편으로는 일상이 주는 소소한 아름다움에 대한 소중한 가치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시는 것 같다”고 감상을 전하기도 했다.


신경림 “다니카와 슌타로의 시 세계는 순진무구하다”


그는 신경림 시인과 다니카와 슌타로 시인에 대한 소개로 대담의 시작을 알렸다. 첫 시집 농무를 통해 민중의 삶에 밀착한 리얼리즘과 뛰어난 서정성, 민요의 가락을 살린 시를 선보인 신경림 시인은 한국 현대시의 흐름을 바꾸고 민중시의 시대를 연 작가로 평가받는다. 다니카와 슌타로 시인 역시 첫 시집 『20억 광년의 고독』을 출간하며 일본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요미우리 문학상, 하기와라 사쿠타로 상, 아유카와 노부오상 등 수많은 문학상을 수상하며 영향력 있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또한 다니카와 시인은 그림책 작가, 에세이스트, 번역가, 각본가, 작사가로도 활발하게 활동해 왔다.

 

박형준 : 두 분께서 대시(對詩)를 주고 받으신 과정은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신경림 : 시(對詩)라는 개념이 우리에겐 익숙하지 않은 것이라 처음에는 조금 망설였습니다. 그런데 다니카와 선생에게 첫 시를 받아 보니까 너무나 익숙했고, 오랫동안 같은 생각을 해왔던 것이 비로소 말로 전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굉장히 반가운 기분으로 시작했습니다. 다니카와 선생 덕분에 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고요. 지금도 대시(對詩)를 쓸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 다니카와 선생에게 고맙게 생각합니다.


다니카와 : 대시(對詩)를 나누기 전에 일본어로 번역된 신경림 선생의 시를 읽었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친근감이 있었고, 아무런 불안도 없이 대시(對詩) 작업을 자연스럽게 시작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박형준 : 시를 나누시는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세월호 사건,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 같은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작품 안에서 사회 문제를 언급하는 데 부담이 크셨을 것 같은데요. 어떠셨습니까?


다니카와 : 그렇게 엄청나게 큰 사건을 과연 시로 어떻게 표현하면 될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일본인들은 큰 사건을 맞닥뜨렸을 때 침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이런 때에는 말을 삼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고요. 저처럼 현장에 있지 않았던 사람이 사건에 대해서 표현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고민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내면화하는 데 굉장히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시라는 언어로 표현을 하면 사실이 얄팍해지고 덜 중요해지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고 일종의 죄의식도 느꼈습니다. 그렇지만 ‘산문이라는 형태로 이런 큰 사건에 대해서 바라보는 것보다도, 시라는 형태로 표현을 하는 것이 더 옳지 않나’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시로써 표현한 것입니다.


신경림 : 대시(對詩)를 시작하자마자 그렇게 생각지도 못했던 사건들이 벌어져서 굉장히 당황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시(對詩)를 쓴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라는 생각도 했었죠. 그러나 시가 위로나 구출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면 시를 버릴 수밖에 없게 되지만 ‘시를 가지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수록 시를 가지고 뭔가를 하려는 노력을 해야 되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시는 직접적으로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겠지만 작은 위안과 꿈은 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썼다고 얘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박형준 시인 : 대시(對詩) 작업을 하면서 서로의 시 세계를 내밀하게 엿보셨을 텐데요. 서로의 시 세계에 대해서 어떻게 평해주실 수 있을까요?


신경림 : 무념무상이라고 할까요. 삿된 마음이나 삿된 생각이 전혀 없는 시 세계를 느꼈습니다. 다니카와 선생의 시 세계는 한 마디로 얘기하기 어렵습니다. 어떻게 보면 아주 작은 것 같고 그런가 하면 엄청나게 큰 세계이고요. 현실과 동떨어진 것 같기도 하다가 현실을 아주 깊이 있게 다룹니다. 너무 이상적인 문제만 다루는 듯 하다가 어떤 때에는 거대한 문명 비평적인 시각이 쓰여 있고요. 시 세계가 아주 넓고 크고 순진무구하다고 생각됩니다.


다니카와 : 대시를 쓴다는 것은 서로의 시를 받으면서 언어 안의 깊은 곳에 있는 영혼과 같은 것을 느끼면서 시를 쓰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악으로 비유하자면 2중주가 될 텐데요. 변주곡을 연주해 나가듯이 연결해 나가고자 하는 마음으로 신경림 선생의 시를 읽었고 제 시를 썼습니다. 언어는 다르지만 시인으로서의 인격이랄까 아니면 인간이 가진 힘이랄까, 그런 것들이 잘 전해졌고요. 그런 의미에서 신경림 선생과 대시(對詩)를 써나갔다는 것은 저에게 큰 수확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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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카와 슌타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신경림의 「갈대」”


대담을 마치며 두 시인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낭독했다. 신경림 시인은 다니카와 슌타로 작가의 「책」을, 다니카와 시인은 신경림 시인의 「갈대」를 낭독했다. 다니카와 시인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이다’라는 파스칼의 말을 빌려 신경림 시인의 작품을 소개했고, 신경림 시인은 “「책」은 아주 일상적인 내용의 시 같지만 문명 비판적인 깊은 생각이 들어있다. 그리고 관점을 변형해 가며 쓴 묘미가 있다”는 말로 화답했다.

 

<갈대>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모두 별이 되어 내 몸에 들어왔다』 52쪽)

 

<책>
솔직히 말해서
책은 흰 종이로 있는 게 좋았다
더 솔직히 말하면
푸른 잎이 우거진 나무로 있고 싶었다

그러나 벌써 책이 되고 말았으니
옛날의 일을 잊어버리려고
책은 자신을 읽어 보았다
“솔직히 흰 종이로 있는 게 좋았다”고
검은 문자로 쓰여 있었다

나쁘지 않다고 책은 생각했다
내 마음을 모두가 읽어준다
책은 책으로 있다는 게
조금 기뻤다
(『모두 별이 되어 내 몸에 들어왔다』 39쪽)

 

두 시인의 뜻 깊은 만남의 자리에 함께한 도종환 시인은 “두 분의 작업으로 인해서 시의 격조가 한 단계 더 높아졌다는 생각을 했다. 두 분 선생님께서 시를 주고받으면서 영혼의 언어를 시로 표현해 내신 작업들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이런 작업이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전했다.

 

도종환 : 『모두 별이 되어 내 몸에 들어왔다』라는 책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시들은 별의 언어입니다. 그리고 사랑의 언어이고 꿈의 언어죠. 우리 몸에는 별만 들어차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짐승 같은 것도 들어와 있고, 꽃 같은 것도 들어와 있고, 불 같은 것도 들어와 있죠. 강물 같이 유장한 것도 들어와 있는가 하면, 보석 같은 빛나는 것들도 들어와 있습니다. 송곳 같이 날카로운 것도 숨겨져 있습니다. 법정 스님께서는 ‘우리 몸 안에 꽃 같은 요소들이 들어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 그걸 얼마나 자주 꺼내 보이고 있는지, 얼마나 자주 표현하고 있는지 돌아봐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 꽃을 꺼내서 표현하는 것이 시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안에도 꽃 같은 것이 있고 여러분 안에도 시인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두 분 시인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도종환 시인은 자신의 시 「3시에서 5시 사이」를 낭독하는 것으로 인사를 건넸다. 시인은 작품 속에서 ‘우리 인생의 시간이 몇 시쯤에 와 있는가’를 생각하도록 주문했다.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서있는 자리를 살펴야 한다는 이야기는 신경림 시인과 다니카와 슌타로 시인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모두 별이 되어 내 몸에 들어왔다』는 그렇게 날카로운 깨우침을 부드러운 음성에 실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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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별이 되어 내 몸에 들어왔다신경림,다니카와 슌타로 공저 | 예담
신경림, 다니카와 슌타로 시인의 교감을 통해서 우리는 서로 단단히 걸어 잠갔던 마음의 문 너머에 숨 쉬고 있는 부드럽고 따뜻한 시정을 두드려보고 싶었다. 그리고 국경과 세대를 넘어서는 새로운 소통의 가능성을 엿보고자 했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진행된 대담, 2014년 1월부터 6개월간 전자메일로 오고간 대시(對詩)를 중심으로 이뤄진 두 시인의 교류는 유쾌하면서도 밀도 있는 메시지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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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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