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렌스는 자꾸만 자기가 외계인이라고 우긴다. 외계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정신 병원에서는 특이할 만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로렌스가 기억에 남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이 병원에 오는 대부분의 환자들이 나이가 좀 있고 정신분열증을 오랫동안 앓아온 만성 정신병 환자인 데 비해 로렌스는 발병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이십대 초반의 남자라는 점이다. 다른 환자들은 대개 허름하고 냄새나는 옷차림을 하고 있는데 로렌스는 말끔하게 면도를 하고 몸에 잘 맞는 가죽 잠바 차림을 한 깔끔하고 잘생기고 멋진 남미계 젊은 남자이다.
두 번째 이유는 이렇게 외계인이라고 주장하는 이들 중에서도 그 내용이 이상하다기보다 안타깝다는 점이다. 그가 하는 이야기의 골자는 자기는 외계인인데 지구에 도착한 뒤 자기가 타고 온 우주 비행선을 잃어버렸으며, 그 비행선을 찾아야 집에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제발 비행선을 찾게 도와달라고 애걸을 하는데 그 모습이, 아, 너무 안타까워서 당장이라도 일어나 비행선을 찾아나서야 할 것만 같다. 하지만 이 병원에서 오랫동안 일한 사람들은 물론 다른 환자들, 심지어 다른 ‘외계인’까지도 로렌스의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다. 그 대신 “너도야?” 하는 표정을 지을 뿐. 이 충격적인 고백에 사람들이 반응을 하지 않으니 로렌스는 얼마나 속이 터질까?
답답해서 속이 터질 것만 같은 로렌스. 그가 지구별에 불시착한 지 사흘째 되는 날, 내가 진행하는 집단 미술 치료 그룹에 처음 들어왔다. 아마 그룹 치료에 참여를 잘하면 빨리 퇴원할 수 있다고 슬쩍 찌른 말이 효과가 있었나 보다. “오늘 어떠세요?” 하는 질문에 간단히 대답하는 것으로 그룹 치료를 시작한다. 원래 한두 마디 돌아가면서 하고 새로 온 이들을 환영하는 것으로 그룹 치료를 시작하려는 의도이지만, 그 한마디조차 안 하겠다는 사람, 노래를 부르겠다는 사람, 장편 서사시를 읊는 사람들로 인해 간단하게 넘어가지지 않고 이것만 하다가 끝나기도 한다. 로렌스의 차례가 되자 그는 이때를 기다렸다 싶게 두서없이 또 우주선, 외계인 어쩌고저쩌고 한다. 그의 말을 여기 대충 옮겨보자.
<바다로 간 고양이>(2014) 캔버스에 유화, 50*73
“내가 하늘에 바다에 들어와 앉아서 날아왔는데 파리가 놀라서 우주선이 지구에 미국에 날아가서 앉았는데 엄마가 지구인이 경찰이 놀라서 날아가서 먹다가 피자 좋아해 그래서 여기 콜라 없어 물을 마셔 녹색 물이야 우주선 어디 있어 내가 어디 있어 별에 가야 해 좋아해 날아가 기어가 녹색으로 물이 바다가 피망이 싫어 노란색 둥그런 지구가 집에 우주선 헤드라이트가 차가 있어……”
흠!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어떻게 반응할지 몰라 포개진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고 눈동자를 좌우로 굴리다가 그냥 무시하고 다음 순서로 슬그머니 넘어가도, 로렌스는 계속 말을 한다. 그래서 나는 진행 발언으로 넘어간다.
“오늘은 찰흙으로 나무를 만들 거예요. 당신이 나무라면 어떤 나무였을까요? 여기 다른 사람들이 만든 나무가 몇 가지 있어요. 이것들을 모으면 숲이 되겠죠? 우리 같이 다양한 나무들을 만들고 나무들을 모아서 숲을 만든 뒤에 우리의 숲을 전시할 거예요. 다른 사람들이 만든 예를 같이 볼까요? 이건 돈이 나오는 돈나무고요, 삶에서 막힌 것을 뚫는 칼나무, 옆으로 자라는 나무 등 이렇게 다양한 모습의 나무가 있네요.”
몇 주째 전시를 위해 진행하고 있는 나무와 숲 만들기 프로젝트다. 로렌스가 우주선 나무를 만들면 얼마나 멋질까! 하지만 로렌스는 우리 앞에 펼쳐진 갖가지 나무들에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불안한 눈으로 자신의 별을 찾아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고 있다.
“로렌스, 찰흙으로 나무 만들어보지 않을래요?”
우주선을 찾는 사람보고 나무를 만들라니 기가 막힌가 보다. 나를 “뭐야?” 하는 표정으로 날카롭게 쏘아보는데, 아, 어느 별에서 온 왕자님일까? 참~ 잘생겼다. 내가 나무를 만들어보라고 테니스공만 하게 동그랗게 빚은 찰흙덩어리를 내미는데 받을 생각을 안 한다. 내민 손이 민망해서 어쩔까 하다가 찰흙덩어리를 내 손바닥에 놓고 뿌직~ 하고 납작하게 눌렀더니 팬케이크 모양이 되었다.
“로렌스, 혹시 당신이 찾고 있는 UFO가 이렇게 생겼어요?”
로렌스의 잔뜩 찌푸린 눈이 슬로모션으로 천천히 풀리더니 그 눈이 다시 동그랗게 커지면서 반갑고 놀랍다는 표정으로 찰흙 팬케이크와 나를 번갈아 쳐다본다. 그러더니 하는 말이 “아니, 이…… 이…… 이걸 도대체 어디서 찾았소? 이게 바로 내가 찾던 UFO요!” 아니 내 말은 그가 찾는 UFO가 이것처럼 생겼냐고 물은 건데, 이 사람 말은 이게 그가 찾던 바로 그 UFO란 것이다. 아! 이 얼마나 놀라운 발견인가!
“어…… 어……” 하고 또 말문이 막혀 있으니 그가 다그친다.
“이거 어디서 찾았소? 내가 얼마나 찾았는지 몰라요.”
“어…… 그런데…… 음…… 이게 정말 똑같이 생겼어요? 뭐 다른 점은 없어요?”
로렌스는 내 질문에 찰흙덩어리를 자기 손바닥에 받아들고는 이리저리 위아래로 돌려본다. 그러고는 하는 말이 “흠, 그러고 보니 윗부분이 좀 다른 거 같아”라고 한다.
“그래요? 그럼 한번 고쳐볼래요?”
“흠…… 윗부분이 좀 뾰쪽해야 해. 조종사 타는 자리거든.”
그는 곧 엄지와 검지로 집게 모양을 만들어서는 조심스럽게 UFO의 윗부분을 살짝 집는다. 손톱자국도 조금 냈다. 그러더니 또다시 비행선을 왼쪽 오른쪽 이리저리 돌려가면서 보더니 얼굴을 살짝 찌푸리면서 하는 말이, “아냐, 아냐. 여기가 달라. 이게 아니야” 하면서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양쪽 끝부분을 살짝 집는다. 우주선 날개인가 보다. 얼마나 집중하면서 그 일을 하는지 로렌스도 나도 숨을 멈추고 있다. 그가 다 끝났다고 하자, 그제야 “휴~” 하고 그와 내가 동시에 숨을 내쉬었다. 숨 막히는 작업이었던 것이다.
* 이 글은 『행복하기를 두려워 말아요』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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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기를 두려워 말아요정은혜 저 | 샨티
《행복하기를 두려워 말아요》는 미술 치료를 공부한 정은혜 씨가 미술 치료사로 살아가기 시작하면서 만난 정신병동의 환자들, 쉼터의 청소년들과 소통해 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더불어 8년이 넘는 치료 경험 속에서 배우고 익힌 창조적인 미술 치료의 기법들, 나아가 미술 치료에 대한 통념을 깨는 경험과 통찰 등 미술 치료사로서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직접 그린 치료적인 그림들과 함께 속 깊게 풀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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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혜
미술 치료사이며 화가다. 캐나다에서 회화와 미술사를 공부하고 한국에서 뉴미디어 전문 미술관인 아트센터 나비의 기획자로 일하다, 자신이 바라던 삶이 최첨단 기술을 이용한 소통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공감을 바탕으로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누군가를 도울 때 기뻐하던 자신의 모습을 기억하며 미국으로 건너가 미술 치료 공부를 시작했다. 미국의 The School of the Art Institute of Chicago에서 미술 치료 석사 학위를 받고 시카고의 정신 병원과 청소년치료센터에서 미술 치료사로 일했다.
서유당
2015.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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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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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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