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하는 심리책 이야기, ‘하지현의 마음을 읽는 서가’가 연재됩니다.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기 어려워요”
“토론수업이 포함되어있거나, 조별발표를 해야하는 강의는 수강신청을 할때 망설여집니다”
“자신감 있게 사람들 앞에 서고 싶은데 어려워요”
이런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은 정신과적으로 치료를 해야할 병이 있는 사람이라고 해야할까, 아니면 성격적인 특징이라고 여겨야하는 것일까.
전문가들이 볼 때에도 헷갈리는 일이다. 예를 들어 빈혈은 혈색소 수치가 12.0mg/dl 이하로 떨어지면(검사기관마다 기준치가 다를 수 있고, 남녀차가 있지만) 진단을 할 수 있고, 폐렴이 있다면 객담검사에서 원인균이 분명히 검출되고 정해진 수치 이상이 나오면 진단한다. 그런데, 정신적인 문제는 애매하기 짝이 없다. “누가 나를 욕하는 소리가 들립니다”와 같이 환청이 들리는 문제라면 확실하지만, 낯가림이 남보다 심하거나, 수줍음이 심해서 쉽게 대인관계를 주도적으로 풀어가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도대체 어느 수준부터 문제가 있다고 해야할지 기준을 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더욱이 사회문화적인 영향과 시대적 흐름에 따라 사람들이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기준은 달라질 수 밖에 없고 같은 시대에 산다고 하더라도 ‘영업사원’에게 요구되는 것과 ‘출판사 편집자’에게 요구되는 사회적 긴장의 정도는 많이 차이가 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기준을 분명히 해주기를 바란다. 만일 그게 고쳐야할 증상의 하나라고 인정하면 도리어 문제가 편해질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이게 나라는 사람의 전체를 구성하는 주요한 축이 아니라, 분리할 수 있는 증상이라고 본다면 이걸 어떻게든 고쳐야할 대상으로 거리를 두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것만 해결하면 지금의 삶의 괴로움이나 불편감이 많이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대중의 염원에 부응하여 정신질환의 정의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규정하면서 자신의 이득을 챙기는 세력이 존재할 수 있다고 본 책이 있다. 노스웨스턴 대학의 크리스토퍼 레인박사의 ‘만들어진 우울증(Shyness)'(한겨레 출판)이다. 이 책의 부제는 ’어떻게 정상 행동이 병이 되었는가‘다. 그는 1980년 미국 정신의학회에서 3번째 개정판으로 내놓은 ’정신장애 진단과 통계를 위한 매뉴얼‘(DSM-III)의 문제점을 비판한다. 그는 제약회사의 로비와 마케팅이 어떻게 사회에 영향을 미쳐서 정상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의 수줍음을 갖거나, 대인관계의 긴장도가 다소 높은 정도의 사람들이 ’사회공포증‘이나 ’회피성 인격장애‘라는 정신질환으로 진단을 받고, 항우울제 약물치료를 받으면 간단히 나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게 만들어서 엄청난 수익을 올릴게 되었는지를 세세하게 고발하고 있다.
DSM-I판과 2판만 해도 정신과에서도 만성정신병원의 일부 정신과 의사만 사용하는 매뉴얼이었고 그 영향력은 크지 않았다. 그리고 당시 미국의 주류 정신과에 포진한 프로이트파 정신분석가들의 영향으로 한 사람의 정신과적 진단을 내릴 때에 이는 내적인 무의식적 갈등에 대한 반응일 수 있고, 증상으로 보이는 행동은 나름의 타협일 수 있다는 개념이 주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그러나, DSM-III부터는 확연히 정신병리를 객관적으로 정의하고 기술하는 것만으로 진단을 내리는 것은 충분하다는 독일의 정신병리학자 크레펠린의 이론을 따르는 학자들인 ‘네오크레펠린학파’의 영향이 커지면서 원인을 반영하기보다 표면적으로 관찰되는 증상의 갯수와 증상의 지속기간만으로 진단을 하는 방향으로 변화한 것이다.
DSM-III을 개발하는데 참여한 정신의학 전문가들은 자신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서 뚜렷한 과학적 근거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진단기준과 진단명을 포함시켰다. 개발자들은 충분한 역학연구나 임상연구를 문헌고찰하고 전문가들의 수많은 회의를 통해 과학적으로 꼭 필요한 진단만 포함시켰다고 했다. 그러나 저자는 개발과정을 총괄한 스피처 박사를 포함한 15명의 특별위원회의 진행과정이 얼마나 허술했는지 회의록이나 주고받은 편지를 통해 폭로했다. 이 위원회는 진단의 경계를 지나치게 낮게 잡아서 병이라고 하기에는 모자랄 수 있는 정도의 내성적인 사람의 수줍음, 사회적으로 활달하지 못한 성향, 혼자있는 걸 편안히 여기는 것을 경증의 정신질환이 있다고 진단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DSM은 건강한 행위의 폭을 지나치게 좁히면서 일상적인 심리적 불편감, 견뎌내면서 넘어갈 수 있는 어려움을 증상으로 일반화하면서 치료의 대상으로 삼았다고 저자는 비판한다.
이런 변화를 면밀히 포착한 것은 거대 제약회사였다. 우울증 치료제인 프로작이 나오고 몇 년이 지나 후발주자로 비슷한 선택적 세로토닌 흡수 억제제인 팍실을 개발한 스미스클라인비첨 사는 우울증이 아닌 사회공포증을 대중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한 대대적인 캠페인을 시작했다.
1999년 꽃가루에 알레르기가 있듯이 “사람에게 알레르기가 있다고 상상해보세요”라는 자극적이고 유혹적인 문구의 포스터를 제작해서 미국 전역에 배포했다. 이런 마케팅은 상당히 효과적이었다. 알레르기에 항히스타민 제제를 먹으면 낫듯이, 사람에게 알레르기가 있어서 남들보다 더 예민하고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사람이 있다면 약을 먹으면 될 것이라는 쉽게 연상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또 월스트리트 저널과 같은 대중적 미디어에서도 ‘우울증약이 중증 수줍음 치료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기사가 나가거나 ‘알약 하나로 간단히 무대공포증을 없앨 수 있다’는 기사가 심심치 않게 나오면서 대중들의 마음안에 ‘수줍음도 병일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했다. 더욱이 미국 FDA에서 사회공포증의 적응증을 팍실이 받으면서 처방은 급격히 늘기 시작했다.
또한 한 역학조사에서 공포증을 앓는 미국인의 비율이 3.7%에서 18.7%까지 증가했다고 보고하면서 소심증을 적극적으로 치료해야할 대상이라고 말이 설득력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대중은 뭔가 새로운 약이나 치료법에 대한 뉴스를 원하고, 기자들도 항상 새로운 걸 찾는다. 이때 제약회사가 적절한 기사거리를 배포한다. 미디어에 노출되고 전문가의 설명으로 설득력을 얻는다. ‘나도 그런 문제가 있다’라고 처음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문턱이 낮아지면서 병원을 찾아가 진단을 받은 후 약을 처방받는다. 그리고 약간의 도움을 받은 사람들의 입소문이 퍼지면서 약의 매출은 급증한다. 저자는 이런 일련의 사이클을 ‘약을 팔기전에 병을 팔아라’라는 명제로 비판을 한다.
나는 이런 풍조에 대중이 그저 놀아났다고만 보기는 힘들다고 생각한다. 1980년대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사회는 자기계발의 열풍속에 있었다. 그저 평범하게 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여기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더 강하고, 빠르고, 언제나 활기찬 모습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준비된 사람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광범위하게 퍼져나갔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는 우리나라에도 파급이 되었었다. 유럽보다 상대적으로 자기 주장을 잘 해야하고, 밝은 성격이 환영받는 미국에서는 타고난 성향으로 부끄러움이 많고, 소심하고, 먼저 나서지 못하는 사람들은 더욱이 자신이 사회생활에 경쟁력이 없다고 여기기 쉬웠을 것이다. 이런 성향의 사람을 소심하고 부끄러움이 많은 재미없는 사람으로만 치부하지 말고, 반대로 신중하고 배려심많고, 보수적이면서 안정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으로 볼 수 도 있었지만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는 그런 생각까지 할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이를 한알의 약으로 뇌를 변화시켜 업그레이드 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당시에 불었던 과학에 대한 비현실적인 낙관적 기대도 한몫했을 것이다.
이런 사회문화적 분위기속에서 DSM위원회가 사회공포증과 회피성 인격장애라는 정신질환을 진단기준의 역치를 확 낮춰서 발표한 것은 불씨에 기름을 부은 셈이었다.
실제 진단이란 환자 개개인의 정신역학적 이해, 환자의 내적 갈등, 정신사회적 스트레스에 기초한 부적응적 양상등을 통합적으로 포함해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정신과 의사들은 손쉽게 치료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수줍음을 사회공포증 내지는 사회불안증 환자의 증상으로 단순하게 진단해왔고, 많은 내성적인 성격의 사람들은 자신을 정신과 환자이자 고치기 힘든 증상을 가진 사람으로 여기면서 살아오게 되었다. 물론 상당수의 환자들이 실제로 사회공포증상을 갖고 큰 어려움을 갖고 있고, 상담이나 약물치료를 통해 도움을 받고 있다. 그러나, ‘만들어진 우울증’에서 밝혔듯이 정신질환은 진단기준매뉴얼에 있는 증상의 갯수가 몇 개 이상이면 바로 간단히 진단을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보다 훨씬 세밀하고 광범위하게 그 사람의 마음과 삶의 전 영역을 평가한 후에 매우 신중하게 내려야만 한다. 그러니 만일 내가 다소 수줍음이 많고, 부끄러움이 많아서 남 앞에 서기 힘들고, 발표할때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이 많다고 해서 경쟁력이 없는 것도 아니고, 사회공포증 환자로 바로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 우리 사회는 요새 너무나 쉽게 ‘결정장애 증후군’ ‘번아웃 증후군’과 같이 신종 정신병리를 미디오를 통해 쏟아내고 있다. 이런 흐름에 휩쓸려 ‘나는 역시 문제야’라고 여길 위험이 있다. 이때 이 책은 생각의 균형을 잡아주는데 큰 도움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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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우울증크리스토퍼 레인 저/이문희 역 | 한겨레출판
크리스토퍼 레인은 『만들어진 우울증』에서 정신의학적 대변혁이라는 미명 뒤에 진상을 숨겨온 객관적 연구의 허상을 무너뜨린다. 험담과 속임수로 얼룩진, 더욱 놀랍게는 기업 스폰서들에게 종속된 정신의학계의 현주소를 폭로하고 있으며 정신의학계 내의 오랜 갈등과 경쟁 구도로 인한 파열음, 이 과정에서 이득을 얻은 이와 잃은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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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현(정신과 전문의)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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