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8일, 서울 경희궁에서 그런 생명을 만나는 시간을 가졌다. 『도시에서, 잡초』 출간기념 산책이벤트. 『도시에서, 잡초』는 내 곁의 친밀한 자연, 잡초를 재발견하는 책이다. 길가 풀 연구가로 알려진 이나가키 히데히로 저자는 회색빛 공간에서도 꿋꿋하게 자신만의 자리를 만들어가는 잡초를 꺼냈다. 이날 산책하기 좋은 시월의 가을, 독자 여섯 명이 이순정 들풀해설가를 만났다. 발밑의 녹색 친구들을 찬찬히 돌아보면서 곁에 있으면서 그 존재감을 알지 못했던 도시의 잡초를 재발견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작은 것에 관심을
이 해설가는 독자들에게 “들풀은 작은 것을 봐야 해요”라는 말부터 건넸다. 그러기 위해서는 땅을 봐야 한다. 그는 말을 잇는다. “발 밑 식물에게도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있거든요.” 가을 그리고 경희궁이라는 시공간. 대부분 사람들이 보는 것은 높은 천연색의 나무들이다. 빨갛고 노랗게 익어간 낙엽들에 눈과 마음을 뺏기곤 한다. 물론 그것은 앞선 계절 나무가 행한 노동의 결과다.
느티나무가 서 있고, 그것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느티나무는 오래 살아요. 500~600년, 1000년도 삽니다. 나무도 사람처럼 젊을 때 에너지를 많이 쓰면 병에 걸리거나 오래 못 살아요. 그런데 느티나무는 꽃 피고 열매를 맺는데 에너지를 덜 쓰기 때문에 오래 삽니다. 강해요. 단풍도 예쁘고요. 열매도 맺지만 아주 작습니다. 열매를 맺는 가지도 따로 있지요.”
느티나무는 열매를 맺게 하는 잎과 성장하는 잎이 따로 있다는 설명이다. 이 경희궁의 느티나무도 그렇게 자신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오랜 세월 버텼을까. 문득 올려 본 느티나무는 그 모습이 이전과 다르지 않다. 그 세월이 왈칵 달려드는 느낌이다. 수고했어요, 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걷다가 만난 감나무에 대해서도 이 해설가는 한 마디 보탠다. 가을날의 감나무는 그 결실 덕분에 더욱 풍요롭게 보이건만, 경희궁의 감나무는 그렇지 않다. 감나무에 맺힌 감이 작고 빛깔도 연하다. 감나무가 자리기 좋은 환경이 아니기 때문이다. 감나무는 자갈이 많은 산, 물 빠짐이 좋은 곳에서 잘 자란다. 그래도 파란 가을 하늘과 감나무의 감이 어우러진다. 그 색깔이 대조를 보인다. 아, 이래서 가을이구나. 하늘이 높았다.
이 해설가와 독자들이 가장 먼저 만난 들풀은 토끼풀이다. 어디든 볼 수 있어서 생명력이 강한 풀이다. 머나먼 나라에서 한국으로까지 흘러 들어와 번질 수 있었던 데는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 풀이 아니에요. 일제강점기, 네덜란드에서 들어와 전국으로 퍼질 정도로 생존 전략이 다양합니다. 잘 보면, 잎에 무늬가 보이죠? 곤충을 불러들이기 위한 무늬에요. 꽃처럼 선명하게 보이게끔 하는 거죠. 또 줄기를 엄청나게 뻗어서 번식을 잘 해요. 줄기 마디마다 뿌리가 나와요. 꽃이 수정해도 떨어뜨리지 않고 꽃봉오리도 최대한 키워 벌과 나비를 유혹합니다. 기술이 있는 곤충만 올 수 있는데, 그렇게 자기 유전자를 지켜요.”
꽃보다 들풀
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햇빛이다. 햇빛은 광합성 작용을 가능하게 한다. 그런데 햇빛이 잘 들지 않는 건조한 곳에서도 꿋꿋하게 잘 사는 것이 제비꽃이다. 개미가 씨앗을 옮겨준단다. 제비꽃은 개미가 남긴 거름을 먹고 사는데 도시의 틈새에서 살 수 있는 이유가 된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제비꽃은 계단 틈에서도 자신의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장수꽃, 병아리꽃, 오랑캐꽃, 씨름꽃 등으로도 불리는 그 이름에서도 제비꽃의 생명력을 엿볼 수 있다.
생명력에서라면 땅빈대도 물러서지 않는다. 이 해설가는 이 들풀을 “사람이 아무리 밟아도 죽지 않아요”라고 설명한다. 나비와 벌 대신 개미나 무당벌레를 불러 수정하고 꽃과 열매를 피운단다. 땅 위를 기면서 자라며 땅 위에 퍼진 잎 모양이 빈대같이 보여서 땅빈대라고 한다.
“들풀이 말도 못하고 움직이지 못해서 교류를 못한다고 생각하지만 향기로 교류를 해요. 식물도 자기 몸을 보호하기 위해 뭔가를 늘 합니다.”
이 해설가는 별꽃처럼 보이는 들풀을 보여준다. 별꽃아재비. 열대 아메리카가 원산지로 귀화식물이다. 꽃이 별 모양을 닮았다. 그러나 별꽃과 다른 종이어서 별꽃아재비가 됐다.
“꽃은 가능하면 자가 수정을 안 하고 다양한 유전자를 받아들이려고 해요. 이렇게 작은 꽃도 가짜꽃(설상화)을 피우는데, 곤충을 불러들이기 위해서예요. 진짜꽃은 너무 작거든요. 국화 종은 가짜꽃이 있는 경우도 있고,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꽃도 상황이 위급하고 여차하면 자가수분을 하기도 합니다.”
유럽에서 왔다는 개망초도 국화과다. 제초제로도 죽지 않는데, 아이들이 계란프라이 꽃이라고도 부른다. 조선이 망할 때 들어왔다고 해서 개망초로 이름 붙여졌으며, 철도를 따라 전국으로 이동하면서 곳곳에 씨를 뿌렸다.
“코스모스의 원래 뜻이 왜 우주인 줄 아세요? 코스모스 꽃을 보면 그 안에 진짜 우주가 들어가 있어요. 오각형별이 빽빽하게 채워져 있는데, 설상화가 있고, 진짜 꽃도 빽빽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걸 보면 우주가 있구나, 코스모스라 불릴 만 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는 모르기 때문에 그들을 잡초라고 통칭한다. 잡초는 또 없애야 할 것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오만이다. 생태계는 자기 정화 능력이 있다. 한 종이 너무 많아지면 자손을 남기지 않는다. 한편으로 모든 생물은 자기 씨앗을 퍼뜨리려는 습성이 있다. 곤충을 이용하기도 하고 스스로 씨를 퍼뜨리기도 한다. 우리는 식물을 보고 시간을 짐작할 수도 있다. 만약 건축물이 없는 토지인 나대지가 있다면 거기서 자라는 식물을 보고 언제부터 나대지였는지 파악도 가능하다.
이 해설가는 경희궁 내의 한 곳에서 쑥쑥 자라고 있는 쑥을 가리키며 이야기를 이었다. 쑥은 조선시대 가난한 사람이든 부자든 모두 먹을 수 있는 구황식물이었단다. 약효도 검증이 됐는데, 특히 여성에게 좋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성질이 따뜻해서 자궁을 따뜻하게 해주며, 피를 깨끗하게 해준다.
“쑥의 뒤에 있는 솜털이 쑥떡을 만들면 차지게 해줘요. 한국인에게 쑥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에요. 여성병의 80%가 자궁에서 오고, 자궁을 따뜻하게 해야 한다면 쑥이 특효약입니다. 쑥을 많이 먹으세요. 쑥이 어떤 곳에서도 잘 자라는데, 그것은 솜털 덕분이기도 해요. 수분이 빠져나가지 않게 하거든요. 식물도 체온을 유지하려고 여러 방법을 쓰는데, 쑥은 털을 많이 내서 체온 유지를 위해 애를 씁니다.”
지구를 엄청나게 덮고 있는 식물이 있다. 벽과 식물이다. 옥수수, 수수, 보리, 밀 등이 벽과 식물인데, 바랭이풀도 이 과에 속한다. 사람은 벽과 식물을 먹고 산다. 개역귀는 꽃과 열매, 꽃봉오리가 한 데 모여 있는 들풀이다. 그것을 세밀하게 보면 무척 예쁘다. 질경이가 길가에 바짝 붙어 있다. 다른 식물과 경쟁하기 싫어하는 질경이는 이름처럼 질기다. 사람이 밟아도 신발을 따라 다른 곳으로 이동할 정도란다. 햇빛만 제대로 받으면 어디서든 질기게 자란다.
이 해설사가 마지막으로 건넨 것은 쇠무릎이다. 한때 관절에 좋다며 한국 사람들이 씨를 말리다시피 싹쓸이를 했던 들풀이다. 높이 50~100cm 정도로 자란다. 마디가 소의 무릎처럼 튀어나와 쇠무릎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동양의학은 자연 이치와 결합하는데, 쇠무릎은 약으로도 썼고, 한약재로도 쓰였어요. 여기 풀들은 대부분 독성이 있는데 그것이 약이 되기도 해요. 그러나 좋다고 그것만 먹으면 독이 될 수 있어요. 뭐 한 가지가 좋다고 그것만 매달리는 건 좋지 않습니다. 나물도 골고루, 그때그때 제철에 따라 식품처럼 먹어야 합니다. 약으로 먹기보다 음식으로 먹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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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잡초이나가키 히데히로 저/염혜은 역 | 디자인하우스
우주《도시에서, 잡초》는 사람들에게 별로 관심을 받지 못하는 ‘잡초’라 불리는 식물의 가치를 도시에서 새롭게 발견하고 일상 속에서 즐기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이 책은 잡초가 무엇인지, 우리가 모르고 있는 잡초의 가치는 무엇인지, 어째서 그렇게 잡초는 항상 씩씩하고 늠름한지, 잡초에 대한 여러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풀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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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준수
커피로 세상을 사유하는,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를 내리는 남자.
마을 공동체 꽃을 피우기 위한 이야기도 짓고 있다.
앙ㅋ
2015.02.20
서유당
2014.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