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7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청년백수를 위한 길 위의 인문학』 출간기념으로 고미숙 저자 강연회가 열렸다. 고미숙 작가는 이날 ‘임꺽정’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백수’(실업)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자유로운 인간으로서 청년백수가 주체적으로 비전을 탐구하고 활동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 또한 언급했다. 그렇다면 청년백수와 『임꺽정』은 어떻게 연결되고, 『임꺽정』을 통해 어떤 시사점을 길어 올릴 수 있을까.
고 작가는 먼저, 사람들은 더 이상 하나의 직업에만 종사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들었다. 과거 산업자본주의 시대, 평생직장은 중요했다. 그러나 스마트폰과 같이 유동하는 지금의 문명은 다르다. 마음도 끊임없이 유동하는 것이 지금이다. 그런 면에서 백수는 사람의 마음에 더 자연스러운 길이라는 것이 고 작가의 설명이다.
“내가 좋아하는 모든 분들이 백수였다(웃음). 연암(박지원)에 대해서도 전에는 프리랜서라고 말했지만, 그도 실은 백수다. 연암의 스승 모두 백수였다. 직업이 없는 것이 인간에게 훨씬 더 본성에 부합하는 것이다. 이걸 발견하곤 무척 기뻤다. 공자, 맹자 모두 정규직이 아니다. 우리 모두는 그런 분들에게 배우면서 왜 정규직만 되려고 하는 거지?”
아이들에게 꿈을 물으면 ‘정규직’이라는 답변도 나온다. 거칠게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눠진 세상, 정규직 논리가 모든 것을 압도한다. 많은 이들이 정규직에 목을 매단다. 정규직이 되지 못하면 낙오될 것 같은 공포 속에 산다. 고 작가는 이것을 ‘노예의 도덕’이라고 칭했다. 즉, 무서워서 뭔가를 원하거나 한다. 두려움을 통해서만 인생을 끌고 간다. 이것이 정규직 논리다.
직업뿐 아니라 결혼도 정형화됐다. 지금-여기는 정규직이 아니면 결혼도 못할 판이다. 결혼을 시절인연에 따른 것으로 여기면 직업과 결부하지 않을 수 있다. 사랑도 결혼도 정규직이어야 가능하다는 것이 과연 정상적인 사회인가.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정규직 논리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고 작가는 엄마의 도움을 뿌리치라고 말한다.
“아이들이 너무 피로하고 바쁘다. 핵심은 자율성이다. 내가 자발적으로 할 수 있느냐가 99%를 결정한다. 1% 정도가 노력이다. 아이들이 비굴해지면서 부모의 기대치를 채워져야 하는 의무가 주어진다. 자발적으로 공부해서 지성을 누리고 결과로 어떤 직업을 갖고, 누군가를 사랑해서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는 코스가 아니라 성공해서 누릴 수 있는 쾌락으로 화폐에 끼워 맞춰진 삶을 산다. 직장에서 버는 돈으로 안 된다. 주식이나 투기를 해야 한다. 그러니 정규직도 의미가 없잖나. 직업을 얻어 차근차근 돈을 번다는 개념이 없다. 이런 허구성을 적나라하게 봐야 한다.”
『임꺽정』을 통해서 본 백수로 산다는 것
고 작가는 백수생활을 하면서 얻을 수 있었던 장점을 언급했다. 삶을 주체적으로 조절하고 싫은 일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가 무척 뿌듯하다는 것. 그러면서 공동체를 연 이후 경제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됐다. 자유롭게 먹고 살려면 어떻게 할지를 궁리한 것. 우리 사회는 물적 토대가 많이 마련돼 있고, 공공자산도 많다. 직업도 큰 연봉을 받아야 하는 것으로 설정한다면 영원히 풀리지 않을 숙제다. 자유롭게 살다가 돈이 필요할 때 접속하는 것이 직업이어야 한다는 것.
“지금은 소유를 하는 시대는 아니다. 저축을 해서 뭔가를 하는 것은 국제통화기금(IMF)체제 이후 없어졌다. 무엇을 하든 자기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것은 얼빠진 일이다. 내가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돈에 대한 컨트롤 능력을 잃어버렸다. 경제 주인이 아니라는 뜻이다. 타인의 돈으로 어떻게 굴릴 것인지 이런 생각만 한다.”
고 작가가 『임꺽정』을 읽고 받은 충격도 그와 연관돼 있다. 포도청에 잡힌 임꺽정에게 뭐하는 놈인지 묻는다. 임꺽정, 논다고 답한다. 그는 깜짝 놀랐다. 취업 의지가 없는데 떳떳하다는 것이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왔다.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것도 자존심과 상관없다. 그리고 끊임없이 배운다. 그렇다고 이 배움이 써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목적 없는 공부. 그것도 충격이었다. 우리는 끊임없이 배우지만, 그 배움의 끝에는 언제나 돈이 있다. 길이 아닌 것이다.
“청년기는 여기저기 유람을 하면서 배워야하는 시기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가출하는 것도 힘들다. 부모의 감시가 워낙 촘촘하다. 60~70년대만 해도 가출은 청소년의 중요한 경력이었는데 말이다. 지금은 완벽하게 묶어두는데, 그래서 청년들이 삭는다. 문명이 발달하고 서비스가 좋아지지만, 대가가 너무 가혹하다. 생명의 에너지를 뺏기 때문이다.”
연애라고 다를까. 『임꺽정』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도 다이내믹하다. 지금은 연애가 어렵기만 하다. 연애가 피곤한 일이 되니, 결혼도 포기하고, 고립된 존재로 산다.
고 작가에게 『임꺽정』은 이런 문제들을 되짚어보는 계기가 됐다. 노동을 신성시하고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논리는 산업혁명 이후에 나왔다. 그전에는? 노동을 하지 않으려 했고, 책을 보고 싶어 했다. 선비가 농공상을 다스렸다. 그리스로마 시대, 귀족은 직업이 없었다. 그럼에도 사람은 활동을 해야 한다. 그 활동, 철저히 자율적이어야 한다.
백수가 세상에 대처하는 자세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직립을 한다. 활동을 하고 손이 정교해지기 위해서는 뇌세포가 많아져야 한다. 인간은 직립을 하면서 말도 하게 됐다. 덕분에 무거운 뇌를 들고 다녀야 한다. 모든 동물 중에서 인간만이 자신과 세상에 대해 궁금해 한다. 호모 사피엔스. 인간은 먹고사는 것과 상관없는 것을 알고 싶어 한다. 우주로 우주선을 보내고, 지구 밑을 판다. 끝없이 알고 싶은 것이다. 인간의 본성이다. 그리고 평생을 순례하고 싶어 한다.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다니다가 이런 말을 던진다. 사표 던지고 여행 가고 싶다. 왜 하나 같이 이런 말을 할까. 말인즉슨, 죽을 때까지 뭔가를 탐구하는 것이 인간이다. 이것이 먼저 인간에게 각인됐다. 먹고사는 것은 다음이었다.
“산업혁명 이전에는 귀족은 직업이 없었다. 신분과 계급을 철폐하기 위해 혁명이 일어났다. 혁명은 원래 귀족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영성과 지혜를 갖고 자기 삶의 구도자가 되는 것이어야 했다. 그런데 산업혁명이 자본주의와 결합이 됐다. 모든 사람이 노동을 해야 한다는 것으로 바뀌었다. 기술은 발달하는데, 사람들은 왜 더 바쁠까. 국가 단위로 경제가 쪼개지면서 국민이 국가의 부를 일구는 존재가 됐다. 정규직은 그래서 국민, 백수는 비국민이다. 백수는 국가의 부에 도움이 안 되니까.”
국가의 부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것에 좌절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국가경제니 국익이니 하는 대부분의 말, 허풍이다. 백수는 자신의 몸에 이로운 일을 많이 할 수 있다. 마음은 있지만 바빠서 못한 것을 할 수 있다.
“백수는 아무런 경제 대가가 없어도 존재가 충만해질 수 있다. 존재가 충만해지면 주변 사람이 안다. 백수답지 않게 여유가 있다며 상담을 한다. 그래서 어느 순간 보면 영적 지도자가 돼 있어(웃음). 영적 지도자는 이렇게 탄생한다. 자신에게 충만한 일을 하는 것. 문명이 주는 쓸데없는 쾌락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기 위해 몸을 많이 움직여야 한다. 돈을 위해 활동을 잠식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리 하다가는 우울증이나 권태에 도달하기 쉽다. 고 작가에 의하면, 백수는 잉여가 아니다. 여행하고 책을 보는 자유를 가진다는 것은 중요하다. 정규직이 늘 궁극적으로 바라는 미래를 선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속적인 성공이나 연봉이 억대라는 것은 생명 차원에선 쓸데없는 것이다. 몸은 집이 크다고 좋아할 만한 것이 아니다. 배고플 때 먹는 밥은 맛있지만, 배가 고프지 않으면 그렇지 않다. 다른 쾌락도 마찬가지다.
물론 지금 같은 시대적 상황에서 백수가 자긍심을 가지기는 힘든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고 작가는 직업과 내가 맺는 관계를 바꾸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것을 위한 핵심은 화폐를 조절하는 능력을 터득해야 하는 것. 돈의 노예가 아닌 돈의 주인이 되는 것.
말이 운명이다!
고 작가가 마지막으로 강조한 것은 말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는 곧 ‘낭송의 달인’이라는 제목의 책을 낼 계획이라며, “말이 곧 운명”이라고 말했다. 즉 뇌, 말, 발바닥(행동)의 삼중주가 삶이며, 말을 제대로 하는 것이 삶을 제대로 사는 길이라고 설명했다.
“학교에 가는 것도 친구와 말하려고 가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학교에 가도 말하는 공간이 축소됐다. 전화로도 떠들지 않는다. 카톡 때문에. 청소년들 카톡을 보면 완결된 문장이 없다. 만나서 재미나게 이야기할 수 있겠나? 말을 못하면 잘 듣지도 못한다. 감정을 즉자적으로 말할 뿐, 서사를 주거니 받거니 할 수 있는 장이 없어졌다. 외부와 소통하는 것은 소리다. 말하는 공간이 없으니 말이 몸 안에 머무르면서 폭력이 된다. 시원하게 이야기하거나 듣는 장이 없다. 학교 교육에서 토론의 장이 없고, 소리 내서 자신을 드러내는 장이 없다.”
고 작가가 보기엔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말하지 않고 몸의 순환이 되지 않으면서 몸을 소통의 도구로 사용할 수가 없다. 인터넷이나 모바일을 떠돌아다니는 것은 내가 자율적으로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휩쓸려 다니는 것이다. 이것으로는 자신의 생명줄을 지키기가 힘들다. 그러니 백수가 되면, 이런 것을 연습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내 신체를 생존의 무기로 써야 한다. 말을 재미나게 하는 것만 연습해도 어딜 가도 먹고 산다는 것.
“이런 것만 되면 심리치료는 필요 없다. 친구만 있어도 된다. 친구와 이야기하면서 모든 것이 풀린다. 이런 것을 연마하는 시간이 인생에서 있어야 한다. 공동체는 정해진 룰이 없어서 매번 룰을 만들어야 한다. 어려서 취업이 돼 쫓겨나지 않고 인정을 받는 것이 문제다. 정년까지 가는 것이 불길한 것이다(웃음). 정년퇴직 후 10~20년을 자유인으로 살아야 하는데, 몇 십 년 동안 직장에서 굳은 패턴이 유연하게 변화하는 건 힘들다. 그래서 자신과 사회에 대한 원망을 한다. 돈으로 보상이 될까?”
중요한 것은 접속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군가와 접속할 때만 살아 있을 수 있다. 임꺽정이 떠돌아다니며 살 수 있었던 것은, 여러 사회경제적 구조도 있지만, 몸 전체가 살아있는 덕분에 친구도 만나고 사랑도 하면서, 사람과 소통했기에 가능했다. 백수에게 필요한 것은 따라서 소통의 기술이며, 이것은 몸으로 배워야 한다. 화폐로 되지 않는다. 고 작가는 가까운 도서관에 가는 것이 가장 좋은 일상의 몸 운용법이라고 주장한다.
“돈 들지 않고 뭐든지 연마할 수 있는 공간이 도서관이다. 지금 정치경제의 중심도 도서관으로 이동하고 있다. 정당정치가 화폐와 너무 깊게 관련 맺으면서 뭔가를 바꿀 수 있을 것 같진 않고, 정치의 중심은 일상으로 옮겨가고 있다. 마을에서 경제가 돌아야 한다. 경제가 순환하려면 생로병사 전체를 보는 힘이 있어야 하고, 그것은 도서관에서 가능하다. 남녀노소 다 섞여 있고, 사람이 있는 곳에 경제가 있다.”
그는 직업 여부가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대신 삶을 조율할 수 있는 기술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직업이나 화폐 따위로 자신을 내세우는 인생은 위태롭다.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데도 방해가 된다.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백수일 때라는 것.
“앞으로도 일자리, 특히 좋은 일자리는 많이 생기지는 않고 백수는 더 늘어날 것이다. 어느 시대든 청년들에게 호락호락했던 시절도 없었다. 직업을 못 가져도 자책하거나 세상을 원망할 필요가 없다. 기회를 제대로 운용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할 필요가 있다. 임꺽정이 그런 아이디어를 내게 많이 줬고, 청년들이 임꺽정을 접하면 이 사회의 새로운 청년문화도 생겨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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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백수를 위한 길 위의 인문학고미숙 저 | 북드라망
하늘이 내린 천하장사이자, 말타기와 검술의 달인, 한 시대를 풍미한 화적패의 수괴였던 임꺽정을 고전평론가 고미숙은 한 단어로 정의한다. ‘백수’. 서른다섯의 ‘아무것도 안 하고 노는 남자’ 그가 바로 임꺽정이다. 그와 생사고락을 함께한 친구들 역시 백수다. 매여 있을 곳도, 매여 있을 필요도 없는 그들은 자연스레 길 위로 나선다. 그 길에서 친구와 스승을 만나 신나게 놀고, 사무치게 배운다. 밀당이고 뭐고 없이 연애와 결혼도 화끈하게 해치운다. 백수라서 못할 것은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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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로 세상을 사유하는,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를 내리는 남자.
마을 공동체 꽃을 피우기 위한 이야기도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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