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기 전 항상 걱정했던 것이 있다. “이 집을 떠나게 되면 이 많은 책과 만화책, CD는 대체 어떻게 하지?” 결혼 전 살던 본가는 2000년대 초반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진행했는데, 그 때 가장 먼저 한 일이 벽 한 면에 깊은 책장을 짜 넣는 것이었다. 책 대여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미닫이 책장을 짜 넣지는 못했지만, 만화책의 높이를 재서 2중으로 책을 꽂을 수 있도록 만든 책장은 나만의 자랑거리였다. 아이들이 놀러 오면 모두들 눈을 떼지 못 하고 이 책 저 책을 꺼내 방바닥에 주저앉아 만화 삼매경에 빠지곤 했다.
하지만 공간은 한정되어 있는 것이니, 사서 읽고 오래 갖고 있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된 책은 과감히 팔아 치워야만 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중고 사이트와 대여점 등지를 뒤지면서 사들인 책들도 여러 권…아마 내 손을 거쳐간 만화책이 1천 권은 족히 넘지 않을까? 결혼을 앞두고 책장 정리를 결심한 후, 몇 주에 걸쳐 추리고 추려낸 200여 권의 책과 100여 개의 CD를 중고서점에 팔고 손에 쥔 돈은 16만원 남짓이었다.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은 돈이지만 왠지 내 청춘의 한 귀퉁이를 잘라내어 버린 듯 한 상실감에 며칠 동안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그렇게 대대적으로 책을 한 번 정리한 이후로는 무언가를 모은다는 행위에 대한 미련을 좀 버렸으나, 지금 이 순간에도 집과 사무실의 개인 책꽂이에는 야금야금 책이 쌓이고 있다. 이제부턴 전자책으로 사서 읽어야지, 라고도 생각해봤지만 역시 전자책은 전자책, 종이책은 종이책이니 갖고 있는 책은 여전히 늘어나고만 있다.
아마 책을 즐겨 읽고 사 모으기를 좋아하는 이들은 모두 비슷한 고민을 할 것이다. 책을 계속 읽고 사 모으고 싶다. 그러나 버릴 수는 없다. 처분한다고 해도 어떤 것을 버릴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이 책도 좋고, 저 책은 추억이 많아서 안 되겠고, 또 요 책은 힘들게 구한 거라 안 될 것 같고…이처럼 책이 너무 많이 쌓여서 팔거나 기증하는 작업을 반복하면서 또 사들인다. 일종의 강박증이다. 일본의 저명 저널리스트이자 독서가로 이름난 다치바나 다카시는 오죽하면 자신이 사 모은 책을 보관할 ‘고양이 빌딩’을 지었겠는가. 심지어 그 빌딩도 꽉 차서 근처에 하나 더 지을 계획이라는 얘기를 전해들은 게 이미 몇 년 전이다.
이런 와중에 나의 무릎을 치게 만든 책 하나를 만났다. 제목 하여 『장서의 괴로움』. 일본의 장서가이자 저술가인 오카자키 다케시는 자신의 이야기를 포함한 여러 장서가들이 책으로 인해 겪는 괴로움과 기쁨에 대하여 들려주며, 또한 집이 무너질지도 몰라 두려워하는 장서가들을 위해 어떻게 하면 책을 효율적으로 정리할지에 대한 해결책도 제시한다. 맨 앞에 실려 있던 소설가 장정일의 추천글도 인상적인데, 본인이 이미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이라는 제목의 독서일기를 쓰기도 했던 터라 그런지 책을 늘리지 않기 위한 ‘장서 다이어트’에 돌입했으나 결과는 매우 비참했다는 하소연을 읽고 있노라면 역시 장서가들은 모두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구나, 라는 위안을 얻게 된다. 책을 읽는 동안 장서가의 괴로움이 그대로 전해지는 구절들을 보며 낄낄거렸다. 이를 테면 이런 대목이다.
첫 번째 교훈
책은 생각보다 무겁다. 2층에 너무 많이 쌓아두면 바닥을 뚫고 나가는 수가 있으니 주의하시길.
책에는 이런 류의 “교훈”이 무려 열 네 개나 제시되어 있다. 진정 장서가를 위한 실용서라고 할 만하다. 각 문단마다 달려 있는 소제목들도 장서가들이라면 모두 고개를 주억거릴 만한 것이다.
버릴 것인가, 팔 것인가
‘이사’야말로 책을 처분할 최적의 기회
팔아버린 다음 날, 또 샀다
책상 주변에 쌓인 책이야말로 쓸모 있다
책을 처분하는 데 꼭 필요한 건 ‘에잇!’
지금도 쌓여가는 책을 보며 고민하는 이들에게 저자 오카자키 다케시의 충고는 새겨 들어볼 만 하다.
…책이 너무 많이 쌓이면 팔아야 한다. 공간이나 돈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내게 무엇이 필요한지, 꼭 필요한 책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해 원활한 신진대사를 꾀해야 한다. 그것이 나를 지혜롭게 만든다. 건전하고 현명한 장서술이 필요한 이유다.
좋은 책을 만났다는 뿌듯함은 얻었으나, 이 책을 샀기 때문에 나의 책꽂이는 또 1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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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의 괴로움 오카자키 다케시 저/정수윤 역 | 정은문고(신라애드)
어느새 점점 쌓여가는 책 때문에 집 안은 발 디딜 틈 없이 변해버리고, 함께 사는 가족의 원성은 늘어가니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란 말씀. 책 때문에 집이 무너질 지경에 이르면 어쨌든 이 고통에서 벗어나야 한다. 어떻게? 여기에 장서의 괴로움을 토로하는 일본 작가들이 있다. 일본은 최근 3?11 동일본 대지진을 겪으며 어쩔 수 없이 소실된 경우도 많다. 하지만 재해로 인한 자연 소실이 아닌 장서가들은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했단 말인가? 유명 작가에서 일반인까지 그들만의 특별한 장서술이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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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영(도서1팀장)
뽀로로만큼이나 노는 걸 제일 좋아합니다.
해신
2014.09.30
별B612호
2014.09.30
저는 어릴때부터 꿈이 다락방에 나만의 서재를 만드는거였어요~
지금도 사모으기만 하고 다 읽지도 못하는 책땜에 집 구석구석 책 무더기만 만들고있죠..ㅠ.ㅠ;;
앙ㅋ
2014.09.15
라는 문구를 읽으니 정신이 번쩍 곳곳에 책탑을 세워둔터라 바닥이 붕괴할지모른다는것보다 자다가 책탑에 깔릴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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