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 고양이 발톱 깎기!
삼돌이 발톱은 여전히 날카롭지만 이제는 할퀴거나 물리지 않고 만지는 법을 어느 정도 터득해서 전처럼 위험하지는 않다. 결국 훈련을 시키려 든 우리가 삼돌이에게 훈련을 받은 셈이라고나 할까.
글ㆍ사진 장근영(심리학자)
2014.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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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무장하라, 고양이 발톱을 깎아야 한다

 

삼돌이는 기분이 좋아도 나빠도 무는 것으로 표현하는 데다 그 무는 힘이 무시무시하다. 우리는 직접 피부에 구멍이 뚫려가며 그 사실을 깨달았다. 게다가 삼돌이는 발톱을 깎기는커녕 앞발을 누가 만지거나 잡는 것조차 매우 싫어한다. 그런데 그 발톱이 무지무지 크고 날카롭다. 결국 녀석의 발톱을 깎을 때마다 맹수와의 격투를 치르는 듯하다.

 

삼돌이의 발톱을 깎으려다 물려서 생긴 흉터가 아직도 내 손등 여기저기에 남아 있다. 그나마 가죽 장갑을 끼고 덤볐기에 망정이지, 그조차 없었더라면 내 손은 말 그대로 만신창이가 되었을 것이다. 이런 참사를 겪은 이후 녀석의 발톱을 깎을 땐 손에는 가죽 장갑을 끼고 두꺼운 점퍼와 청바지를 갖춰 입은 후, 소매에는 압박붕대를 칭칭 동여맨 완전무장을 하고 달려들어야 했다. 하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지 도저히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다.

 

냥아냥아 밥을 먹으려면 발을 내 놓아라

 

더 쉬운 해결책이 없을지 고민하던 내게 스키너와 파블로프가 해결책을 주었다. 그것은 바로 ‘연합 학습’이다! 이는 한 자극과 또 다른 자극을 반복해서 두 자극 사이에 관련성이 있다는 걸 인식시키는 것이다. 녀석이 사족을 못 쓰는 단 하나의 존재는 밥인데, 나는 바로 그 밥을 발톱 깎는 것과 연결시켰다.

 

방법은 대략 이렇다.

 

사료를 주기 전에 꼭 삼돌이의 앞발을 만지작거린다.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기 때문에 녀석은 잠깐이나마 발을 만지는 걸 허용한다. 물론 그 와중에 삼돌이의 머릿속에서 발을 만지는 건 싫지만 눈앞에 어른거리는 밥그릇은 좋다는 접근-회피 갈등을 경험하는 게 눈에 보이긴 한다. 어쨌든 밥을 줄 때마다 이 과정을 반복한다. 그리고 발톱을 깎는 날도 같은 방법을 시행한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물론 발톱을 한 번에 전부 깎지는 못 하고 매번 한두 개 정도로 그치지만, 그래도 무장하지 않고 발톱을 깎을 수 있게 된 건 큰 수확이다.

 

 

고양이

 

 

모든 학습은 학습자의 의도와는 다른 길을 가곤 한다

 

이후에도 밥을 줄 때 될 수 있으면 앞발을 만지는 훈련을 계속 했다. 그런데 이 훈련 후에 녀석의 이상한 행태를 발견했다. 밥을 주면 처음에는 그냥 멀뚱멀뚱 보고만 있는 것이다. 아니, 아예 밥이 안 보이는 것처럼 멍하니 앉아만 있든가, 자기 앞에서 밥을 먹고 있는 똘똘이를 구경하든가, 밥 준 사람의 다리에 얼굴 비비기만 하든가 한다. 이건 원래 밥 주기 전에 기쁜 마음을 표현하는 행동인데, 밥은 이미 줬건만 먹지는 않고 이러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녀석의 앞발을 만져주면 그제야 준비가 되었다는 듯 밥을 먹는다.

 

도대체 어떻게 하다가 학습 결과가 이렇게 된 것인지 모르겠다. 사람도 그렇지만 모든 학습은 학습자의 의도와는 다른 길을 가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럼 발톱 깎기는 쉬워졌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여전히 발 만지기까지는 허용해도 발톱 깎기를 들이대는 순간 도망간다. 이 무슨 이상한 학습 효과란 말인가. 어쨌든 이제는 삼돌이 발톱은 깎기를 포기했다. 삼돌이 스스로 식탁 의자를 긁어서 발톱을 마모시킨다. 10년쯤 그렇게 한 결과 식탁 의자는 그리즐리 곰이 영역 표시로 할퀸 나뭇등걸 비슷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삼돌이 발톱은 여전히 날카롭지만 이제는 할퀴거나 물리지 않고 만지는 법을 어느 정도 터득해서 전처럼 위험하지는 않다. 결국 훈련을 시키려 든 우리가 삼돌이에게 훈련을 받은 셈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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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한 고양이와 소심한 심리학자 장근영 저 | 예담
『무심한 고양이와 소심한 심리학자』는 심리학자가 세 고양이와 함께 살며 겪은 일상의 이야기들과, 고양이와 현대인의 다르고 또 같은 심리를 대조하며 유머와 감동, 위로를 전하는 ‘고양이와 인간에 대한 심리 에세이’다. 저자는 유머러스한 일러스트와 카툰을 직접 그리고 생동감 있는 사진을 찍어가며 고양이들과 동고동락한 일상을 이 책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이 책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든, 인간과 동물 사이든 그렇게 서로 길들이고 서로 인정해주며 관계를 맺어가는 게 중요하다는 걸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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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한 고양이와 소심한 심리학자 #고양이 #집사
5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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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ㅋ

2014.09.24

고양이 발톱 깍기 어려울것 같은데요. 워낙 복종과는 거리가 먼 동물이라 발톱에 확 할퀴당할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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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사랑

2014.09.10

한참을 웃었어요. 어쩜 저희 집 냥이와 비슷한지... 저도 나름 훈련시킨다고 발톱 깎기 전이나 후에 간식을 줘 보기도 하고 이것 저것 시도해봤지만, 실패했어요. 저도 하나씩 깎거나 그냥 스크래쳐에 캣닙 뿌려주고 발톱이 닳기만을 기대하죠^^
앞발을 만지기 전에는 사료를 안먹는다니 놀라워요. 저도 시도해볼래요.
'무심한 고양이와 소심한 심리학자'란 책이 있는 걸 처음 알았는데, 재미있겠는대요. 급관심이 생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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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ndleie

2014.08.29

제목 표지 고양이 그림까지 웃음이 나요 재미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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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근영(심리학자)

혼자서 하는 모든 것을 진심으로 즐기면서 사는 젊은 심리학자이며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영화·게임·드라마 등 영상 중독자, 밀리터리 애호가, 일러스트레이터, 16년차 고양이 집사이기도 하다. 아침형 삶, 집단주의, 복잡한 대인관계를 멀리하는 그는 코치이자 매니저인 아내와 이 책의 주인공인 무심한 고양이 소니, 똘똘이, 삼돌이와 함께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