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에게 미치는 아빠의 강력한 영향력
주말이면 TV 속 아빠들은 분주합니다. 갓난아기의 기저귀를 손수 갈고, 쌍둥이의 이유식을 만들어 먹입니다. 일곱 살 아들의 여자 친구와 함께 놀아주고(물론 함께 노는 것이 아니라 짐꾼이거나 지갑입니다) 일곱 살 딸과 쇼핑을 가서 옷을 골라줍니다. 딸아이는 아빠가 골라준 옷을 거절하고 자기 취향의 옷을 고르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빠와 함께하는 시간, 아빠와의 교감이니까요.
가정교육은 엄마의 몫이라고 여기던 시절은 꽤 길게 이어져왔습니다. 아빠는 양육을 위해 돈벌이에 나서야 했으니까요. 그래서 아이가 잘못되어도 엄마 탓, 아이가 잘되어도 엄마 덕이었습니다. 어느 순간 아빠들은 설 자리가 없어 외로워졌지요. 그러다가 최근 들어 아빠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들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심리학에서 이것은 최근의 일이 아닙니다. 아빠 양육에 대한 연구는 1960년대부터 기존의 생각이 틀렸다고 말해왔습니다. 아빠가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이 엄마 못지않을뿐더러, 여러 영역에서는 오히려 엄마보다 뛰어나다고 주장했습니다.
일례로 아빠가 양육에 무관심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ADHD를 비롯해 각종 아동기 정신장애를 겪거나 비행 행동을 저지를 가능성이 크고, 우울감도 더 많이 느끼며, 자살할 확률도 높다고 합니다. 반면 아빠가 양육에 참여하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행복을 많이 느끼며, 심리적으로 건강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지능과 사회성, 정서의 조절과 통제, 학업 성취도가 뛰어나고, 학교생활도 즐겁게 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정말 놀랍지 않나요?
이렇게 자녀에게 미치는 아빠의 강력한 영향력을 미국 UC 리버사이드 대학의 로스 파크라는 심리학자는 ‘아빠 효과’라고 명명했습니다. 지금은 그 어떤 과학자들도 아빠 효과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아빠는 엄마가 줄 수 없는 그 무엇을 아이들에게 줄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왜 우리는 그동안 엄마의 영향만을 중요시했을까요? 농경 사회에서는 부부가 공동 작업자이자 공동 양육자였죠. 성인이 된 자녀들은 결혼 후에도 부모와 함께 살면서 대가족을 이루거나 같은 지역에 살았기 때문에 생계와 양육은 가족을 떠나 지역 공동체의 몫이었습니다. 하지만 18세기 중반 산업혁명과 함께 시작된 도시화는 기존의 가족 제도를 크게 바꾸었습니다.
지역 사회와 가정이, 가정과 일터가 분리되면서 부부의 역할이 나눠지기 시작한 것이죠. 농경 사회와 달리 산업화 사회에서 여성들은 출산과 함께 직장(공장)을 그만두어야 했으며, 출산 후에도 양육 때문에 쉽게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아빠는 생계 부양, 엄마는 자녀 양육’이라는 생각이 굳어졌습니다. 불과 200~300년 정도밖에 안 된 일이고, 한국에서는 겨우 반세기 전의 일입니다.
이 때문에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연구했던 심리학자들 역시 자연스럽게 엄마에게 주목했습니다. 애착 이론으로 유명한 존 볼비가 대표적입니다. 볼비는 비행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연구하면서 비행의 원인을 ‘모성 박탈’이라고 했습니다. 비행 청소년들은 어린 시절 엄마가 진짜 없었거나, 있더라도 자녀를 양육하는 데 미숙한 엄마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산업화 사회가 가져온 부부 역할의 구분, 그리고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나온 심리학 이론과 연구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양육자=엄마’라는 도식을 심어주었습니다. 또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으나 자녀 양육에서 아빠가 중요하지 않다는 오해도 심어주었습니다.
아빠가 모든 인간관계의 핵심 요소
시간이 흘러 사회 구조가 다시 변했습니다. 도시와 공장 중심의 산업화 사회에서 정보가 돈이 되는 세상인 정보화 사회로 변했죠.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여도 높아져 일하는 엄마가 많아졌습니다. 예전에는 근무 환경이 달라지면서 낮 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있는 아빠들이 생겼고, 아예 아내 대신 전업 주부 역할을 맡는 경우도 생겨났습니다. 이러한 시대 변화는 심리학자들로 하여금 아빠도 엄마 못지않게 뛰어난 양육자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했습니다.
심리상담을 하다 보면 대인관계에서 위축된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이들에게 아빠와의 관계를 물어보면 많은 경우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아빠가 지나치게 무뚝뚝하거나 매우 폭력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미국의 임상심리학자인 폴터는 『모든 인간관계의 핵심 요소, 아버지』라는 책에서, 엄마가 아닌 아빠가 모든 인간관계의 핵심 요소라고 말합니다.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 아빠와의 관계가 어떠했는지를 알면 지금 대인관계의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합니다. 특히 직장 상사처럼 권위자와의 관계가 어려운 것은 어린 시절 아빠와의 관계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많은 연구 결과, 자녀는 아빠와의 관계를 통해 사람과 세상 그리고 일을 대하는 태도를 배웁니다.
당신이 자녀라면 어린 시절 아빠가 처해 있던 환경을 생각해보세요. 또는 아빠의 아빠를 이해해보세요. 그리고 당신도 아빠가 된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꼭 슈퍼맨이 될 필요는 없어도, 아이의 많은 순간에 깃들어 있을 수는 없어도, 아빠 효과를 알고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아빠라면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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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심리학이 처음인데요 강현식 저 | 한빛비즈
저자는 그간 심리학에 대한 대중의 기대에 어느 정도 부응하면서도 가능한 학문으로서의 심리학의 입장을 많이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심리학 핵심개념들을 간결하면서도 통찰력 있게 풀어주고, 독자의 쉬운 이해를 위해 가능한 한 많은 예시를 들고자 노력했다. 이를 위해 영화나 대중가요, 다큐멘터리 등 대중에게 친숙한 소재들을 이용해 심리학을 알려왔다. 흥미와 재미 위주가 아닌 보다 객관적이고 다양한 정보로 심리학에 대해 처음부터 제대로 알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은 두고두고 읽을 좋은 동반자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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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식
‘누다심’이라는 필명으로 활동 중인 심리학 칼럼니스트로, 〈누다심의 심리학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심리학을 쉽고 재미있게 알리겠다는 일념하에 다양한 주제로 글쓰기와 강연을 하고 있으며, 다양한 주제로 각종 모임과 집단 상담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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