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 “시, 나를 증명하고 존재하게 만드는 것”
서울 통의동에는 독립출판물 서점 ‘더북소사이어티(www.thebooksociety.org)’가 있다. 지난 7월 9일 이곳에서 한여름 밤의 짧은 꿈을 꿀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다. 문학동네가 마련한 ‘한여름 밤의 시낭독회’, 시집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의 오은 시인이 독자들과 만났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간택(?)된 독자들이 오은 시인과 그의 시를 음미했다. 독자의 낭독부터 시작됐다. 「인과율」(60쪽)이다.
글ㆍ사진 김이준수
2014.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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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어기기 위해 약속을 하는 사람

설거지를 하기 위해 밥을 안치는 사람
태어나기 위해 죽기로 마음먹은 사람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 낮은 자리에 임하는 사람 (중략)

 

이 詩에 대해


나는 초고가 빨리 나오는 편이다. 부대끼면서 쓴 시는 애써서 만들기 위해서 노력을 했다는 느낌이 들어서 내 시가 아닌 느낌도 든다. 이 시의 초고는 1시간 반에서 2시간 사이에 나왔다. 이 시를 쓰게 된 것은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더라. 이 자리에 있기까지 원인이 있는데, 바꿔 생각하면 어떨까. 결과를 얻기 위해 원인이 되어 보는 거지. 그렇게 나온 시다.

 

작가만남-오은

 

최근 근황은 어떤가?


직장에서 일하고 있다. 입사한 지 1년 7개월이 넘었다. 입사 이틀 만에 동료에게 그만두고 싶다고 했는데, 하루하루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직장은 컨설팅을 하는 회사인데, 컨설팅을 하다 보니 을이다. 직원은 그보다 낮은 병이나 정의 마음으로(웃음). 퇴근을 하면 시인 오은이 돼서 詩를 쓸 거라고 마음먹었는데, 그게 잘 안 된다. 몸이 녹초가 되어 있거나 피로감이 쌓여서 침대에 올라가기 십상이더라. 일요일에 글을 쓰고자 했는데, 쉽지 않더라. 한두 줄 쓰는 게 고작이었다. 그래도 목표를 삼고 1년 정도 하니 익숙해져서 일요일은 어떻게든 글을 쓴다. 詩를 쓰는 게 가장 즐겁고 잘 하는 일이라 일요일에는 꼬박 글을 쓰고 있다.

 

하나의 말을 갖고 여러 이야기를 한다. 이런 언어유희의 단초를 어디서 얻나?


말놀이, 언어유희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첫 시집을 내고서도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았다. 어렸을 때부터 하루에 한 번 국어사전을 펼쳐서 마음에 드는 단어를 찾았다. 하루는 부모님이 야단을 치더라. 페니스라는 단어 때문이었다(웃음). 단어에 그렇게 관심이 많았는데, 통신표를 받으면 ‘주위가 산만하나, 어휘력이 풍부하다’는 얘기가 쓰여 있곤 했다.

 

사전에서 읽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한 번 써봐야 내 단어가 되는 것 같았다. 사전을 보면 한 단어의 뜻이 한 두 개가 아닌 경우가 많다. 용례나 예문을 읽는 재미가 쏠쏠해서 단어에 관심을 가졌다. 글을 잘 못 써도 어휘가 풍부한 사람이 됐다. 단어를 어떻게 조합할지에도 관심을 가졌다. 크면서 말에 대한 관심을 계속 가졌고, 지금도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찾아본다. 예전에는 수첩을 갖고 다니면서 모르는 단어를 물어보거나 찾아봤다. 그런데 아는 단어라도 설명하기 힘들기도 하잖나. 단어 하나를 설명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구나 싶었다. 

 

많은 작가들이 ‘백일장 키드’ 출신인데, 나는 교내에서 큰 상을 받은 적이 없다. 글에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물어보면 단어가 생경하다고 하더라. 그 단어가 써야 할 지점을 발견했고, 詩도 쓰게 됐다. 데뷔하게 된 계기는 우연이었다. 형이 내 글을 공모전에 넣었다. 심사위원들이 칭찬을 하면서도 생경한 단어, 현학적이라는 평도 내놨다. 시를 쓰면서 단어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이 단어가 존재하는 이유를 찾아주는 것 같아서 신경을 쓴다. 시를 쓸 때도 그런 것을 늘 염두에 두고 있다.

 

최근에 마음에 둔 단어가 있다면?


예전에 트위터에 10가지 좋아하는 단어를 올렸던 적이 있었다. 요즘에는 ‘사람’이라는 단어에 관심을 두고 있다. 삶, 사랑과도 비슷한 단어다. 예전에는 예쁜 단어를 주로 찾았다면, 이제는 일상적으로 많이 쓰는 단어이면서 어떤 단어와 비슷하고 연결돼 있는지를 찾는데 노력을 기울인다. 사람이라는 단어가 왜 사람일까. 새로운 단어를 발견하기보다 단어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도 재미가 있더라. 그래서 인터넷에서 어원사전을 찾아보기도 한다. 

 

음악을 사랑한다고 들었다. 詩를 쓸 때 어떤 음악을 들으면서 쓰나?


지금은 없어진 한 음악관련 사이트에서 스트리밍 서비스를 위시리스트에 담아 그걸 들으면서 글을 썼다. 음악이나 가수를 검색하면 연관 음악이 나왔었다. 요즘은 다른 사이트를 찾았다. 음악은 장르를 가리지 않는데, 특히 록을 좋아한다. 지금은 듣고 마음에 드는 음반을 구매하거나 스트리밍 서비스를 듣는다. 신시사이저에 기반을 둔 팝음악도 좋아하고, 디어클라우드 같은 한국의 인디밴드도 좋아한다. 클래식도 가끔 듣는데, 잘 모르겠더라(웃음).

 

작가만남-오은

 

낭독.

 

오늘도 너는 말놀이를 한다. 재잘재잘. 도중에 말이 막히면 너는 물을 마신다. 벌컥벌컥. 그리고 너는 물놀이를 한다. 첨벙첨벙. 도중에 배가 고프면 너는 미음을 먹는다. 허겁지겁. 그리고 너는 맛놀이를 한다. 우적우적. 도중에 배가 부르면 너는 몸놀이를 한다. 폴짝폴짝. 그리고 너는 망놀이를 한다. 호시탐탐. 도중에 도둑을 잡으면 너는 멋놀이를 한다. 찰랑찰랑. 그리고 너는 무(無)놀이를 한다. (중략)

 

-「ㅁ놀이」(11쪽) 교과서에도 실린 詩다.

 

이 시는 어떻게 나왔나?


나는 부사를 참 좋아한다. 많은 작가들이 형용사나 부사를 적게 쓰고, 수식어 말고 주어와 동사만으로 이뤄진 문장이 깔끔하다고 하는데, 나는 다르다. 부사나 형용사가 많거나 아예 없는 게 매력적으로 느껴지더라. 내 인터넷 닉네임이 ‘불현듯’이다. 부사를 좋아하니까 닉네임으로도 쓴다. 참 그것 아나? 불현듯의 어원을 보면, ‘불 켠 듯’에서 나왔다.

 

본인의 시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는 무엇인가? 가장 잘 썼다고 생각하는 시는?


내가 좋아하는 시는 최근에 쓴 시다. 얼마 전 발표했었는데, 「미시감」이라는 시다. 기시감의 반대되는 말이다. 자주 접하는데 너무 낯선 느낌을 말한다. 가장 잘 썼다고 생각하는 시는 첫 시집의 「말놀이 애드립」이다. 초고는 한 5시간 만에 나왔는데, 매일 업데이트를 했다. 세계 각국의 지명을 갖고 말놀이를 한 시인데, 지명도 찾아야 하고, 그 詩의 버전이 한 80개가량 됐다. 그만큼 노력과 마음을 갖고 쓴 시다.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있다면?


내 입으로 어떻게 ‘나’라고 말하나. 농담이고(웃음). 습작 시절에는 소설을 좋아했다. 오정희 선생님을 무척 좋아했다. 소리 내 읽기도 했다. 현재 가장 좋아하는 시인은 비스와바 쉼보르스카라는 시인이다. 시가 좋기도 하고, 현재 『끝과 시작』이라는 시선집만 나온 상태다. 젊었을 때부터 낸 시가 연대기처럼 나오는데, 뒤로 갈수록 좋아진다. 다른 대부분 시인의 경우, 젊었을 때 모더니스트라고 불리다가 나이가 들면서 강, 바람, 흙 등을 이야기하는 경향이 짙다. 쉼보르스카 시인은 끝까지 자신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것을 갱신해 나가더라. 뒤로 갈수록 세계를 향해 던지는 질문이 심오해지고 거침없어진다. 한국에도 좋은 시인들이 엄청 많다. 데뷔시절, 시를 쓴 다는 것에 대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는데, 조금씩 詩를 알아가면서 보니 좋은 시인이 참 많더라. 시인들은 대부분 자기 시를 좋아하고 자기애가 있다(웃음).

 

열정이 없어져서 시를 읽기가 두려워지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당분간 읽지 않는 게 좋겠다. 시를 좋아한다면 언젠가는 다시 읽을 것이다. 무엇이건 늦은 때는 없는 것 같다. 어떤 일을 할 거면 하게 돼 있다. 시가 안 읽히면 안 읽고 다른 일을 하면 된다. 의무감에 시를 읽으면 시를 바라보는 태도도 안 좋아진다.

 

낭독.

 

과거는 왜 항상 부끄러운가?
미래는 왜 항상 불투명한가?

방문을 열면
얼굴이 화끈
배 속이 발끈(중략)

 

-「분더캄머」(27쪽).

 

수집을 좋아하는데, 이 시가 내 방 이야기 같아서 공감이 가고 좋아한다.

 

작년 말에 한 팟캐스트에서 이 詩를 갖고 40분을 이야기하면서 해석하려고 하더라. 詩는 틀린 것이 없다. 해석은 읽는 사람의 것이다. 이 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글이 많아질수록 부끄럽고 작아지는 거지. 10년 이상 詩를 썼는데, 아직도 백지를 마주하면 불안하고 무섭다. 아무 것도 쓸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면서. 여러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시다.

 

작가만남-오은

 

시집 제목을 지을 때 어떤 마음이었나? 시집에서 사용한 단어 중에 아끼는 단어가 있다면?

 

나는 단어 하나에서 출발하는 경우다. 스마트폰의 메모장에 단어를 써 놓는다. 시를 쓸 때 갑자기 영감이 떠올라서 쓰는 경우가 없다. 나는 영감이 없어서 엉덩이를 붙이고 자리에 앉아야 쓸 수 있다. 재즈처럼 단어 하나로 시작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진행하는 편이다. 제목은 처음에 ‘수상해’라는 의견을 냈는데, 절대 안 된다고 하더라. 출판사에서 골라 준 지금의 제목으로 결정 났는데, 제목을 잘 지어줘서 무척 고맙다(웃음). 나는 주황색 색깔만 정했다. 가장 아끼는 단어는, ‘물질’이라는 단어가 좋다. 만져지는 것일 수도 있고, 화학성분을 가리킬 수도 있다. 사람도 물질일 수 있고. 「물질」이라는 詩를 쓸 때는 물질만 생각했다.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함께 내포한 단어 같아서 좋아한다.

 

낭독.

 

물감을 떨어뜨렸다

사방에 물이 튀었다
사방으로 감이 사라졌다

아무것도 그릴 수 없다(중략)

 

-「물질」(97쪽).

 

지금 우리 시대 시는 어떤 의미라고 생각하나?


나는 데뷔 후 시 공부를 한 사람인데, 데뷔하고 나서 시인이 그렇게 많은지 처음 알았다(웃음). 예전에 시는 빛이라고 생각했다. 돈도 안 되고, 독자들에게도 가장 안 찾는 장르가 시가 아닐까 싶고. 시는 지금 시대에 무의미해 보이고 산업적으로나 상업적으로 도움이 안 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시를 쓴다는 것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나를 향해, 세상을 향해 말을 거는 행위다. 지금은 시가 그늘 같다는 생각을 한다. 시를 읽으면 쉼터 같다는 느낌이 든다. 시가 그늘이어서 햇빛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알게 된다.

 

시인은 시로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 오은의 시론을 듣고 싶다.


시는 나를 증명하고 존재하게 만든다. 시를 쓸 때 가장 나답다고 생각한다. 잘 쓴 시는 슬슬 읽히고 주제의식도 있고, 단정하면서 정제된 시를 일컫는 경우가 많은데, 내게 좋은 시는 남들과 다른 시, 그 사람만 쓸 수 있는 시다. 잘 써서 너무 매끄럽기만 한 시보다 자기가 드러나는 시가 좋은 시가 아닐까. 그런 시를 쓰고 싶은 것이 나의 바람이자 포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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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오은 | 문학동네
시인의 범상치 않은 언어감각은 여전하다. 특유의 블랙유머와 그 안에 담긴 사회?문명 비판의식은 이전보다 한 발 더 나아갔다. 첫 시집에서 ‘무엇을’ 쓰느냐보다 ‘어떻게’ ‘얼마나 다르게’ 쓰느냐에 더 집중했다면, 이제는 그 양쪽의 균형을 더 깊이 있게 맞추었다 할 수 있겠다.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는 시, 스스로를 무한히 긍정하면서도 자기 갱신을 위해 소중한 것을 과감히 버리는 시, 그러면서도 자신만의 색깔을 잃지 않는 시를 그의 두번째 시집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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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문학동네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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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g0406

2014.09.10

한 달도 더 지났지만 낭독회의 '분위기'가 아직도 떠오르네요. 오랜만에 편안하게 낭독회에 다녀온 기분이 들었습니다. 오은 시인은 본인 말대로 분위기 메이커에 어울려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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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준수

커피로 세상을 사유하는,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를 내리는 남자.

마을 공동체 꽃을 피우기 위한 이야기도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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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

등단한 순간과 시인이 된 순간이 다르다고 믿는 사람.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은 정말이지 열심히 한다. 어떻게든 해내고 말겠다는 마음 때문에 몸과 마음을 많이 다치기도 했다. 다치는 와중에 몸과 마음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했다. 삶의 중요한 길목은 아무도 시키지 않았던 일을 하다가 마주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아니 오히려 그랬기에 계속해서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쓸 때마다 찾아오는 기진맥진함이 좋다. 무언가를 해냈다는 느낌 때문이 아니라, 어떤 시간에 내가 적극적으로 가담했다는 느낌 때문이다. 엉겁결에 등단했고 무심결에 시인이 되었다. 우연인 듯,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순간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무언가를 해냈다는 느낌은 사람을 들뜨게 만들지만, 그것을 계속하게 만드는 동력은 되지 못할 수도 있다. 글쓰기 앞에서 번번이 좌절하기에 20여 년 가까이 쓸 수 있었다. 스스로가 희미해질 때마다 명함에 적힌 문장을 들여다보곤 한다. “이따금 쓰지만, 항상 쓴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살지만 이따금 살아 있다고 느낍니다.” ‘항상’의 세계 속에서 ‘이따금’의 출현을 기다린다. ‘가만하다’라는 형용사와 ‘법석이다’라는 동사를 동시에 좋아한다. 마음을 잘 읽는 사람보다는 그것을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2002년 봄 『현대시』를 통해 등단했다.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시집 『호텔 타셀의 돼지들』,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유에서 유』, 『왼손은 마음이 아파』, 『나는 이름이 있었다』와 산문집 『너는 시방 위험한 로봇이다』, 『너랑 나랑 노랑』, 『다독임』이 있다. 박인환문학상, 구상시문학상, 현대시작품상,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작란作亂 동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