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적인 구원자, 탐정
단지 범죄만이 아니라, 누군가를 찾거나 과거의 사건을 조명하기 위해 탐정이 필요한 경우도 있고. 그러니까 현실에서 필요한 것은 슈퍼히어로 같은 명탐정이 아니라 『이름 없는 독』의 스기무라 사부로 같은 일상의 궁금한 것이나 소소한 사건들을 짚어가는 인물일 수도 있다.
글ㆍ사진 김봉석
2014.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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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만났던 탐정들이 매력적인 이유는 일종의 구원자였기 때문이다. 밀실이라거나 괴물이라거나 하는 기이한 사건들을 접한 경찰들이 아무런 단서도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할 때 명탐정이 나타나 모든 것을 해결한다. 사소한 단서에서 중요한 의미를 읽어내고, 배후에 숨은 은밀한 마음까지 드러낸다. 추리소설을 처음 접했을 때 만나는 셜록 홈즈, 에르큘 포와로 등은 어떤 기이한 사건도 척척 풀어낸다. 단지 이야기만 듣는 것으로 모든 것을 밝혀내는 ‘안락의자 탐정’도 있었고.

 

탐정이 처음 등장했던 근대에는 그럴 법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영국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라이프 온 마스>에서 형사인 주인공은 1973년으로 타임슬립한다. 유전자 감식 같은 과학 수사는 아직 시작도 안 했고 대신 갖가지 폭력과 고문은 있다. 용의자를 잡아오면 일단 패고 시작한다. 19세기 말이 배경인 영국 드라마 <리퍼 스트리트>에서는 경찰이 수사를 한다기보다 원하는 사람만 잡아들이고 누구건 범인으로 만들 수 있는 세상이 나온다. 뇌물과 음모가 일상인 상황에서 유일하게 주인공만이 진짜 ‘수사’를 시작한다. 그런 시대에는 탐정이 정말 필요했을 것 같다. 사건의 진상을 밝히거나 범인을 잡고 싶은 사람들은 따로 돈을 주고 탐정을 고용하는 것이 빨랐다. 무능하거나 범인을 잡을 생각이 없는 경찰들이 득시글한 시절에 탐정은 구원자였을 것이다. 셜록 홈즈, 에르큘 포와로, 엘러리 퀸 등 가히 명탐정의 시대였다.

 

셜록홈즈   

 

하지만 사회가 안정되고 시스템이 공고해지면 탐정이 할 일은 점점 줄어든다. 경찰의 권력이 강력해지는 동시에 수사에서도 어느 정도 공정함을 갖게 된다. 강력 범죄일수록 탐정이 개입하기는 힘들어진다. 경찰은 의심 가는 사람을 부르거나 임의 동행하여 심문을 할 수 있지만 탐정은 불가능하다. 영장이 없기 때문에 가택 수사도, 체포도 불가능하다. 증거가 있으면 경찰에게 넘겨 체포를 하게 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탐정이 하는 일은 개인의 뒷조사라거나 불륜과 실종 등 경찰이 잘 다루지 않는 사건들이 되기 십상이다. 필립 말로, 샘 스페이드 등 하드보일드의 탐정들이 맡는 사건도 처음에는 가벼운 개인사, 가정사에 얽힌 소소한 것들이다. 파고 들어가면 점점 더 거대한 악이 도사리고 있지만.

 

초창기의 명탐정들에 비하면 지금의 탐정은 대단히 초라하다. 하드보일드 탐정을 현대의 일본으로 이식한 『내가 죽인 소녀』의 사와자키는 신주쿠의 쇠락한 거리에서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몇 년간 사무실을 비워도 별 문제가 없을 정도로 일은 띄엄띄엄 들어온다. 사와자키가 생각하는 현대의 탐정은 ‘잔인한 직업’이다.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캐내서 사람들을 괴롭게 하기 때문에. 이 세계는 추악하고, 자신을 비롯한 탐정은 그 어두운 면을 드러내는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뭔가를 궁극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도 거의 없고. 임무 수행 중 실수로 아이를 죽인 죄책감 때문에 경찰을 그만두고 알콜중독자가 된 『무덤으로 향하다』의 매튜 스커더는 경찰도, 탐정도 다루지 않는 사건들을 떠맡는다. 굳이 탐정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모든 것에서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래도 살아남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조금씩 인간으로 되돌아가면서 주변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21세기에도 명탐정은 영화와 소설 등에 부단히 등장하지만 현실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형사가 수사를 하다가 난관에 부닥쳐서 탐정을 찾아가는 일은 없다. 그러나 전문가를 찾아가는 경우는 있다. 『용의자 X의 헌신』의 갈릴레오가 그렇다. 쿠사나기 형사는 단서가 없거나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을 때면 테이토 대학의 물리학과 준교수인 유가와 마나부를 찾아간다. 갈릴레오가 등장하는 소설 속에서는 사건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현실에서는 자문 정도다. 과학이나 물리학 지식 등 전문적인 판단이 필요할 때. 이렇듯 과학이 발달하고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서 전문적인 식견이 필요할 때가 있다. 드라마로도 만들어진, 캐시 라익스의 『본즈:죽은 자의 증언』에서처럼 오래된 유골이나 특별한 방법으로 훼손된 시체가 발견되면 단순한 검시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그 때는 박물관에 소속된 과학자들을 찾아가야 한다.

 

<본 콜렉터>의 링컨 라임은 뉴욕 과학수사팀을 이끄는 법의학자였지만 사고를 당해 전신마비가 되었다. 그런 링컨에게 경찰에서 도와달라는 요청을 한다. 뼈만 남은 남자의 손이 발견되었는데, 그 단서를 통해서 범인을 추적해야만 하는 것이다. 링컨은 단순한 법의학자가 아니라, 법의학적인 증거를 활용하여 단서를 찾아내고 범인에게 다가가는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경찰이 그에게 자문을 요청하고 일종의 탐정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현장에서 필요한 일들은 아멜리아 색스가 대신 해 준다. 『다빈치 코드』의 기호학자 로버트 랭던이나 『자물쇠가 잠긴 방』의 방범 전문가 에노모토 케이도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자문을 하는 과정에서 탐정 역할을 하는 경우다.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의 마시마 마코토나 『원티드 맨』의 잭 리처처럼 어쩌다가 사건에 휘말리게 되면서 탐정 아닌 탐정이 되는 경우도 있다. 이케부쿠로에 살면서 경찰부터 야쿠자, 스트리트 갱까지 광범위한 인맥을 가진 마시마에게 사람들이 부탁을 하여 탐정 노릇을 하게 된다. 잭 리처는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하필이면 가는 곳마다 사건에 개입하게 된다. 혹은 『폐허에 바라다』의 센도 형사처럼, 휴직 중이지만 지인의 부탁으로 사건을 수사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휴직 중이고, 관할도 다르기 때문에 형사로서의 이점을 살리기는 쉽지 않다. 심문을 강제할 수도 없고, 체포도 불가능하다. 형사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쉽게 털어놓는다는 이점 정도. 현실에서 탐정의 역할이 작기 때문에, 픽션에 나오는 명탐정은 대체로 과장되기 마련이다. 김전일도 그렇고, 『데쓰 노트』의 L도 그렇고.

 

하지만 세상이 지나치게 복잡해지면서 탐정의 역할이 필요해지는 점도 있다. 해리 보슈는 『로스트 라이트』에서 경찰을 그만두고 잠시 탐정으로 일한다. 이유는, 미제로 묻혀버린 사건을 다시 수사하기 위해서다. 항상 마음속에 걸려 있던 사건들. 드라마 <콜드 케이스>처럼 실제로 미제 사건만을 다루는 부서도 존재하기는 하지만, 뭔가 재수사를 하기 위한 이유가 없으면 묻히기 마련이다. 해리 보슈는 자신의 직감을 믿고 과거의 사건들을, 탐정으로서 수사한다. 과거의 사건만이 아니다. 현실에서는 시체가 없으면 사건이 성립되지 않는다. 실종이 되었어도 명백하게 범죄의 흔적이 없다면 수사를 하지 않는다. 실종의 2/3 정도는 자발적인 실종으로 밝혀지지만, 나머지는 범죄의 피해자로 보고 있다. 그럼에도 단서가 없다면 수사에 들어갈 수가 없다. 그런 사건들에서도 탐정이 필요하다. 의심은 가지만 명백한 증거가 없는 경우. 혹은 인터넷 공간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사건들.

 

경찰이 모든 범죄를 해결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세상이 복잡해지면서 경계에 있는 사건들도 너무 많다. 범죄라고 하기에는 모호하지만 뭔가 의심스러운 것들을 파헤치는 건 탐정의 몫이다. 또한 특정한 행위를 처벌하는 법이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범죄로 규정되지 않을 수도 있다. 단지 범죄만이 아니라, 누군가를 찾거나 과거의 사건을 조명하기 위해 탐정이 필요한 경우도 있고. 그러니까 현실에서 필요한 것은 슈퍼히어로 같은 명탐정이 아니라 『이름 없는 독』의 스기무라 사부로 같은 일상의 궁금한 것이나 소소한 사건들을 짚어가는 인물일 수도 있다. 그런 탐정들의 다양한 얼굴을 보고 싶다면 『탐정 사전』에서 일단 찾아볼 수도 있다. 보고 궁금하거나 마음에 드는 소설을 찾아 읽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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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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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orfati2

2014.07.31

저한테는 구원자라기 보다는 일상탈출의 혹은 이상한 나라로의 안내자 같은 기분이었어요. 그리고 대개는 그들이 그리고 그들이 가진 능력이 과장되어서 더 그럴테고요. 어쩌면 목숨이 보장되는 그러나 반드시 스릴 넘치고 극적이어야만 하는 안전한 모험을 즐기고 싶어서였을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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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에고토코

2014.07.06

완전 흥미롭네요~!!! 다시한번 복습하고 싶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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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ㅋ

2014.07.02

미해결의 사건을 파혜치는 과정에 책장을 넘기는것 같아요.
이번 여름 탐정 사전을 보며 미스테리물을 하나씩 체크해봐야 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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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영화평론가. 현 <에이코믹스> 편집장. <씨네21> <한겨레> 기자, 컬처 매거진 <브뤼트>의 편집장을 지냈고 영화, 장르소설, 만화, 대중문화, 일본문화 등에 대한 글을 다양하게 쓴다.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컬처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 『전방위 글쓰기』 『영화리뷰쓰기』 『공상이상 직업의 세계』 등을 썼고, 공저로는 <좀비사전』 『시네마 수학』 등이 있다. 『자퇴 매뉴얼』 『한국스릴러문학단편선』 등을 기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