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때, 서울 변두리에서 태어난 개와 낙서와 밥을 좋아하는 게으른 존재.” 작가 들개이빨의 프로필이다. 『먹는 존재』를 읽으며, 주인공이 작가와 겹쳐진다고 물으니, 작가는 스스로를 이렇게 소개했다. “낯가림 심하고 혼자 있는 거 좋아하고, 그냥 재미없는 사람이에요. 일은 글이든 그림이든, 들어오는 거 뭐든 닥치는 대로 하고 있고, 그렇게 번 돈으로 어디 가서 뭘 사먹을까를 항상 고민하지요.”
속 시원한 입담, 거침없는 돌직구가 들어있는 어른만화 『먹는 존재』는 백수 생활을 하는 주인공 ‘유양’의 일상적 먹부림에 관한 만화다. 독립문화판에서 잔뼈가 굵은 작가는 대학 졸업 후, 고시생활을 하다가 인터넷 세계에 빠져 만화가가 됐다. 물론, 어릴 적부터 작가의 꿈은 ‘만화가’였다. 수많은 먹방 만화가 등장하는 지금, 『먹는 존재』는 왜 남달라 보일까? 들개이빨 작가는 “그림이 허술하고 주인공이 밥보다 욕설을 더 자주 입에 올리기 때문”이라고 자평했다.
출판사 애니북스는 『먹는 존재』는 출간을 기념해, ‘먹는존재라면’ (궁금한 맛)을 증정하고 있다. 실제로는 ‘오징어짬뽕’ 라면을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단행본을 받았을 때보다 ‘먹는존재라면’을 받았을 때 더 크게 기뻐했다는 후문이다.
먹는다는 행위 자체를 정말 좋아해요
고시생활을 하다가 인터넷 폐인이 되면서 만화를 그리게 됐다고 들었습니다. 2010년에 2년간 한겨레 HOOK에서 <들개의 지하철방랑기>를 연재했고, 현재는 레진코믹스에서 『먹는 존재』를 연재하고 있는데요. 첫 단행본을 받아 든 소감이 궁금합니다.
사실 단행본 제의를 받은 직후에는 오랜 꿈이 이루어졌다는 생각에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행복했는데, 막상 제작이 구체화되면서부터는 마냥 행복했던 마음에 조금씩 조금씩 근심, 걱정이 스며들더군요. 책 한 권을 만들어내는데 투입되는 인력과 시간과 노동량이 제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것이라, '과연 내 만화가 그분들의 수고를 보상해줄 만큼 잘 팔릴 것인가!' '아, 안 팔리면 어떡하지?!' 이렇게 매일매일 안절부절 못했죠.
출간이 임박할 무렵, 인쇄소에 방문했을 때는 근심이 아예 공포로 변했습니다. 제 만화가 인쇄된 질 좋은 종이가 산더미같이 쌓여있는 광경이 그렇게 무섭더라고요. 저도 모르게 머리를 감싸 쥐며 으아아 나무야 미안해 으아아아악.......! 하고 소리 없이 절규했고, 심지어 그날 밤 아마존 나무들에게 두들겨 맞는 꿈까지 꿨어요. 이러저러한 우여곡절 끝에 단행본을 받아 들었을 때의 기분은 정말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렵네요. 예전에 막연히 상상했던 것처럼 마냥 기쁜 마음보다는 뭐라고 할까, 좀 이상한 표현일지도 모르겠지만 중요한 시험을 보러 가는 자식새끼 얼굴 만지는 기분이 이렇지 않을까 싶어요. 뿌듯하고 애틋하면서도 한편으론 한없이 불안하고 걱정되고, 그런데 내가 더 해줄 수 있는 건 없고, 어쨌거나 그저 잘되기만을 바라는 마음입니다.
『먹는 존재』 작품 구상은 어떻게 이뤄졌나요?
원래 먹는 것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가리는 것 없이 다 잘 먹고, 새로운 음식에 대한 호기심도 엄청나고, 눈앞의 끼니를 먹으며 다음 끼니에 대한 기대감에 막 흐뭇해 하고! 여하튼 먹는다는 행위 자체를 정말 좋아해요. 거기다 어릴 적부터 꾸준히 좋아했던 또 하나의 행위가 만화 그리기였으니, 언젠가 꼭 음식만화를 그려야겠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 것 같아요. 캐릭터, 관계도, 음식 등 구체적인 사항은 연재 시작 6개월 전쯤부터 다듬어나갔고요. 처음에는 가난한 자취생 주인공의 가계부 같은 형식으로 진행해보려고 했습니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중간중간 조그맣게 주인공의 통장 잔고, 이를테면 네모 칸 안에다(175만 원) 이렇게 표시를 하고 주인공이 밥을 사먹을 때마다 그 액수가 줄어드는데 액수가 0원에 가까워지면 주인공이 패닉에 빠져 막 기행을 하는? 그런데 하다 보니 생각보다 재밌지 않았고, 할 수 있는 이야기도 제한되는 것 같아서 결국 지금과 같은 형식으로 굳어지게 됐습니다.
캐릭터 설정은 어떻게 구상하셨나요? 특히 주인공 ‘유양’ 탄생기가 궁금합니다.
창작물에 자주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들의 '흥행 속성'을 잘 표현해낼 자신이 없었어요. 연예인처럼 티없이 예쁜 얼굴, 육감적 몸매, 상냥함, 현명함, 귀여움, 사랑스러움, 새침함, 시크, 도도 등. 와! 난 이런 거 못 하겠다. 잘하는 분들도 너무너무 많고. 그럼 한번 다 빼고 가보자. 안 예쁘고 안 섹시하고 안 상냥하고 안 현명하고 안 귀여운 여자. 그런데 이런 식의 소위 '상업적 여성 캐릭터'에서 비껴난 여성 캐릭터들에게는, 대체로 악역, 콤플렉스 덩어리, 희화화의 대상 같은 부정적인 역할이 부여되는 경향이 있잖아요.
'그건 좀 마음 아프다. 그것도 피하자. 그럼 대체 이 여자의 매력은 뭐냐? 허세다! 내가 왕년에 일삼았으나 남들 앞에선 차마 못 다 펼친 허세스런 생각들을 주인공에게 한번 다 때려 부어보자.' 대략 이런 과정을 거쳐 '유양'이 만들어졌습니다(웃음). 이름은 짓기 귀찮아서 그냥 제 본명을 대충 변형해 붙였는데, 그래서인지 본능적으로 캐릭터를 덜 미워 보이게 묘사하려고 노력하게 되는 효과가 있더군요. 허허허! 또 이렇게 성깔 있는 인간 곁에 오래 남을 사람은 착하고 순해야겠지, 싶어 만들어낸 인물들이 '조예리'와 '박병'이고요. 그 밖의 캐릭터들(엄마, 아빠, 직장상사, 동네할머니 등)은 이제까지 보아온 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적당히 반영하여 만들었습니다.
유양을 처음에는 남자로 착각했다는 독자들이 많습니다. 의도하셨나요?
의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딱히 여자다! 라고 생각하며 그리지도 않았어요. 아무래도 일반적인 의미의 '여성성'이 드러나지 않으니 남자로 착각하실 만하죠. 아마 주인공 유양이 이 얘기를 들었다면 '내가 여자이니 내 행동은 전부 여성스럽다'며 버럭 하지 않을까 합니다만(웃음).
단행본 특집으로 ‘들개 인터뷰’가 나와있습니다. 주인공 유양과 작가님의 학창시절 중에 공통점이 있을까요? 작가님은 어떤 학생이었나요?
유양이 울면서 억지로 공부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제가 실제로 그랬어요. 공부가 진짜 너무 너무너무 하기 싫은데 너무 너무 너무 잘하고는 싶고, 그래서 억지로 책상에 붙어있다 저도 모르게 엎어져 자고 또 일어나서 1시간이나 잤어!! 하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울고. 유양과 다른 점은, 제 말투나 말의 내용이 다소 호전적이라 남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을 몇 번의 쓰린 경험을 통해 깨닫고, 교우관계를 좋게 유지하려고 엄청 애를 썼다는 것이죠. 늘 말조심하고, 욱하지 말고, 한번 더 생각하고, 적당한 유머감각을 기르자. 그래서 라디오에서 들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외워서 거울 앞에서 필사적으로 연습한 뒤 다음날 반 친구들한테 해주고, 반응이 생각보다 신통치 않으면 막 실의에 빠지고…. 꽤 고된 나날이었습니다. 그러다 고 3 때, 마치 사약 먹은 선비처럼 바닥에 피를 토하며 쓰러졌어요. 스트레스로 인한 십이지장궤양이라더군요. 으허허허~ 그 뒤로 모든 일에 좀 관조적으로 변한 것 같습니다.
『들개이빨』은 허영만 선생님의 작품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들개이빨’을 필명으로 사용한 까닭은 무엇인가요?
사실 필명으로 쓸 생각으로 지은 이름이 아닙니다. 무슨 사이트 가입할 때 닉네임 입력해야 되잖아요. 그 때 대충 생각한 이름인데요. 제가 개를 아주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뭔가 개와 관련된 적당한 이름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아 뭐 그냥 동네를 어슬렁거리길 좋아하니까 '들개', 이걸론 심심하니 세 보이게 '이빨'을 갖다 붙이자. 끝! 생각 없이 지어서 생각 없이 쓰던 이름이 어쩌다가 창작활동에 사용하는 필명이 된 셈인데, 조금 후회가 되기도 하더라고요. 일반명사에 가까운 단어라 검색이 잘 안 되고, '들깨이빨'로 헷갈리시는 분들도 정말 많고(심지어 '늑대치아'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봤습니다) 또 말씀하신 대로 허영만 선생님의 작품명이기도 해서 뒤늦게 당황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몇 번을 바꿀까 말까 망설였는데 정이 많이 든 이름이라 앞으로도 계속 쓰지 않을까 합니다.
개인적으로 그림체도 굉장히 마음에 듭니다. 그림은 따로 배우셨나요?
그림을 따로 배운 적은 없습니다. 개인적으론 돈 주고 배웠는데, 저 같은 그림이 나온다면 크게 당황스러울 것 같네요?!
『이말년 서유기』 ,『송곳』 재밌게 읽고 있어, 롤 모델은 허영만 작가
인생에 있어서 ‘먹는 것’ 참 중요한데요. 너무 식탐이 있거나, 먹방에 탐닉하는 사람을 볼 때면, 다른 것에 즐거움을 찾지 못하는 것 같아서 안쓰럽다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유양이 그런 인물이란 생각은 아닙니다) 의식주 중 ‘식’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기본적으로 내 밥상에 올라와 앉은 모든 음식은 한때 살아 있었던 것들이라는 생각을, 물론 늘 하지는 못하지만 완전히 잊고 살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저도 맛있는 것에 아주 환장하고 달려드는 타입이지만 맛없는 것을 먹을 때 지나치게 낙담한다거나 음식에 대한 예의를 잃지는 말자. 어!! 이거 진심인데 써놓고 보니 왜 이리 거창한지...! 제가 중국집에서 눈이 뒤집혀서 양고기를 뜯어먹고 있을 때 누가 이 글을 읽어주면 정말 쪽 팔릴 것 같네요. 껄껄.
‘메밀꽃필무렵’이라는 효자동 식당을 알고 있는데요. 만화 속 식당은 거기가 아닌 것 같은데, 혹시 만화 속에 등장한 실제 식당이 있나요?
담당 편집자님이 효자동의 그 '메밀꽃필무렵' 사진을 보내면서 혹시 여기가 거기냐고 묻던데 아닙니다 으하하! 그래도 조만간 꼭 가보고 싶네요. 만화 속 식당들은 거의 대부분 제가 이제까지 방문했던 식당들에 대한 기억을 조합하고 약간의 상상을 덧입혀 만든 가상의 장소예요. 단, 국내의 지방 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OO나들이' 편에서는 그 지역의 실제 식당이 등장합니다. 리필 피자집도 그 중 하나고요. 대전에 있습니다.
일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인가요?
밥이 맛있을 때, 자다 일어났는데 더 자도 될 때, 볕 좋은 날 공원에 누워있을 때, 이어폰에서 좋아하는 음악이 나올 때, 길고양이나 개가 다가와 호의를 보일 때. 아, 쓰기만 해도 행복해지네요!
지금 꿈꾸고 있는 세 가지 소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건강, 평생 창작하기, 세계평화.
최근 재밌게 보고 있는 웹툰 또는 롤모델이 되는 만화가가 있나요?
최근엔 지금 연재하고 있는 레진코믹스의 작품들을 즐겨 봅니다. 네온비 작가님의 <나쁜 상사>, Bambi 작가님의 <3737>, 다드래기 작가님의 <달댕이는 10년차>, 수사반장 작가님의 <김철수씨 이야기>, 돌콩 작가님의 <나에게 온 달>, 미미 작가님의 <헬로 좀비>, 의외의 사실 작가님의 [마루의 사실], 골드키위새 작가님의 <메지나> 등. .진짜 다 재밌고 매력이 넘쳐서 어떻게 뭐 하나를 꼽기가 어렵네요. 아 그리고 네이버 웹툰의 『이말년 서유기』와 『송곳』도 정말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특히 최규석 작가님의 『송곳』은 재미를 넘어 거의 전율이 일더군요. 롤 모델도 연재 시작하면서부터는 기존의 모든 만화가들을 존경하게 돼서 딱히 한 분만 꼽기가 어려운데요. 허영만 선생님! 탄탄하고 매력적인 작화, 왕성한 창작력, 생활습관 모두 본받고 싶습니다.
『먹는 존재』처럼, 작가님을 < > 존재로 표현한다면. 어떤 타이틀을 붙이고 싶나요?
우와 어렵네요! 음. ..... 헤매는 존재? 일도 헤매고 인간관계도 헤매고 길도 헤매기 일쑤라서요.
어떤 독자에게 『먹는 존재』를 추천, 또는 선물하고 싶나요?
유양과 비슷한 성격의 소유자에게 가장 먼저 선물하고 싶어요. 세상과 불화하느라 고생 많고, 그래도 너무 화내지 말고 밥 잘 먹고 힘내라고.
후속작을 기대하는 독자들에게 집필 계획을 말씀해주신다면?
하고 싶은 건 정말 많아요. 농사만화, 쿵후만화, 과외만화, 경제만화, 검과 마법의 정통판타지만화, 요즘은 또 갑자기 모텔과 관련된 만화를 그리면 어떨까 고민 중이고요. 가장 큰 문제는 과연 저에게 이 좋은 소재들을 소화해낼 능력이 있느냐인데요.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일단은 『먹는 존재』 연재가 끝나는 대로 예전에 블로그에 올리다 중단했던 고양이 만화라든가, 나이트클럽 체험기를 완결 지으려 합니다.
- 먹는 존재 1 들개이빨 글,그림 | 애니북스
『먹는 존재』는 꼬박꼬박 찾아오는 삼시세끼와, 그것의 당연함을 외면하지 못하는 욕망과, 그것의 소중함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남은 거라곤 성깔밖에 없는 여자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싶다’는 순수한 욕망을 좇아 먹이피라미드를 빠져나오고, 나아가 자신만이 가질 수 있는 진짜 삶의 방향을 찾아 맨땅에 헤딩한다. 도무지 목소리를 낼 용기를 얻기 힘든 요즘, 내 삶을 살기 위해 온힘을 다해 세상에 부딪히는 이야기를, 이 현실적 판타지를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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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혜
eumji01@naver.com
여의주
2014.08.30
더불어 계속 계속 연재되었으면 좋겠어요. 세상에 맛있는건 무궁무진하니까요!
또르르
2014.07.23
장고
2014.07.23
정말 우리 모두는 '먹는 존재' 니까 큰 공감을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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