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복고풍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부산 보수동헌책방골목 근처에서 성장기를 보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첫 책은 아버지께서 사다 주신 묵은 아동잡지였습니다. <소년중앙>, <어깨동무> 등인데 한글을 배우기 전이라 내용은 모르고 그림만 보았습니다. 한글을 깨치면서 동화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아버지께서 헌책을 사오시기가 바쁠 정도로 많이 읽었다고 합니다.
어릴 때부터 책 읽기는 마치 숨쉬기와 같은 본능이었던 듯 합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 밥 먹으라고 불러도 대답 없어 찾아보면 방구석에서 으레 책 읽고 있었다고 하시더군요. 20대까지는 청탁불문하고 닥치는 대로 참 많이 읽었습니다. 오늘의 큰 자산이 되었죠.
지금은 회사업무로 평일에는 여유가 없으니 주말에 읽습니다. 시간이 많지 않으니 오히려 독서의 밀도는 높아지고 시간도 소중해집니다.
현재는 리더십과 생태계에 관심을 많이 기울이고 있습니다. 『위대한 기업, 로마에서 배운다』를 통해서 조직 리더십을 생각해 보았고, 『마흔이라면 군주론』을 통해서 개인 리더십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영웅담인 헤로도투스의 『역사』, 『플루타르크 영웅전』 등을 통해 서양문명의 요람에서 확립된 리더십의 원형을 한 번 탐구해 보고 싶습니다. 피터 드러커는 리더십 관련 가장 탁월한 책은 고대 그리스 장군인 크세노폰의 『카로파에디아』이며 이후 이에 버금가는 책은 없다고 언급한 것이 저에게 호기심과 모티브가 되었습니다.
기업이 발달하고 시장이 고도화 될수록 자연생태계를 닮아갑니다. 산업의 흥망성쇠, 기업간의 경쟁과 협력은 생물종의 진화와 쇠퇴, 개체간의 경쟁과 협력과 본질적으로 동일합니다. 21세기 들어 산업과 기업의 변화속도가 빨라지고 불확실성이 늘어나면서 급변하는 자연생태계와 더욱 유사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지식의 대통합』, 『인간 본성에 대하여』 등을 비롯한 사회생물학, 진화심리학 관련 저작들을 목록에 올려두고 있습니다.
사람의 몸은 그 동안 먹어온 음식의 결과물입니다. 사람의 생각과 관점은 읽은 책, 타인과의 교류, 개인적 체험의 결과물입니다. 음식이 소화과정을 거쳐 포도당이 되듯이, 독서와 경험도 갈무리과정을 거쳐 양분이 됩니다. 이런 점에서 저에게 서재는 ‘일상을 갈무리하는 행복충전소’입니다. 개인적으로 음악듣기를 좋아해 서재에 들여놓은 오디오를 켜고 음악을 들으면서 책 읽는 주말 시간이 저에게는 바쁜 일상을 갈무리하면서 재충전하는 가장 행복한 시간입니다.
『통찰로 경영하라』를 지난 4월 말에 출간했습니다. 대표이사가 되고 나서 1달에 2번 정도 전직원들에게 경영에세이를 메일로 보냈습니다. 직장상사라는 딱딱한 관계를 벗어나 조카나 사촌동생들에게 사회생활 선배로서 제 나름대로 그 동안 살아오면서 겪고 느낀 점들을 솔직 담백하게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소재는 프랑스 식당, 순대국밥집, 개그콘서트, 음악과 오디오 등등 주변에서 다양하게 가져왔습니다.
누구나 인생의 단계마다 특유의 고민과 모색이 있기 마련이고, 젊은 시절 방황의 시기를 거쳐 각자의 방향을 잡고 관점을 정립합니다. 이 때 달콤한 위안에 취하지 않고 냉정하게 현실을 마주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저 역시 지나온 세월 청춘의 수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고, 근거 없는 희망과 착각에 매몰되는 경우도 많았기에, 제 나름의 경험에서 오는 통찰을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세상사란 겉보기에 다르지만 속을 알고 보면 비슷한 점이 있기에 이를 꿰뚫어보는 통찰력이 있다면 사안의 본질에 접근하고 어줍잖은 사기꾼들에게 속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역시 나름대로 고민하고 생각해 본 부분들을 공유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명사의 추천
이기적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저/홍영남,이상임 공역 | 을유문화사
믿고 싶지 않으나 믿을 수 밖에 없는 진실과 맞닥뜨린 느낌이었습니다. ‘생존과 번식’이라는 생물의 목표함수를 위해 무의식중에 일어나는 행동의 근본원인, 경쟁과 협력의 동인에 대한 통찰력이 놀라웠습니다. 최근 기업경영에서도 생태계, 공진화 등 생물학의 개념들이 많이 들어오고 있는데, 저는 30대 중반에 이 책을 접하면서 비교적 빨리 이런 사고들을 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바다의 도시 이야기
시오노 나나미 저/정도영 역 | 한길사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 중 처음으로 읽었고 백미입니다. 1969년 ‘르네상스의 여인들’로 데뷔한 후 전성기가 시작되는 1980년, 연부역강 (年富力强)의 시기에 쓴 역작이고 이후에 집필하는 대작 ‘로마인 이야기’ 플롯의 핵심이 담겨있습니다. ‘역사는 오락이다’는 말을 실감나게 해 주었습니다.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이덕일 저 | 김영사
한국사 읽기의 재미를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비록 학교에서 국사를 배우기는 했지만, 단편적인 지식의 조각들만 있었던 상태에서 이 책을 읽으면서 조선후기 정치적 역학구조의 흐름과 변화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2000년 출간된 이덕일 선생의 출세작으로 당시 막 마흔에 접어든 저자의 결기가 느껴집니다.
기업가 정신
피터 F. 드러커 저/이재규 역 | 한국경제신문사(한경비피)
피터 드러커는 경영학자가 아니라 경영학을 창시한 사람이고 경영사상가, 사회사상가의 차원에서 사고를 펼친 거인입니다. 시장경제의 기본을 이루는 혁신과 기업가 정신을 이처럼 깊이 있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 책은 달리 찾아볼 수 없습니다. 드러커를 읽으면 20세기를 이해할 수 있고, 21세기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군주론
니콜로마키아벨리 저/강정인,김경희 공역 | 까치(까치글방)
대학 1학년 때 숙제 하느라 처음 읽었는데, 당시 소감은 초등학생 시절 세계명작에 포함된 쌩떽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읽고 ‘이건 무슨 헛소리야!’하던 느낌과 비슷했었습니다. ‘어린 왕자’를 20대 중반에 다시 읽고 공감했던 것처럼, 40대 중반에 ‘군주론’을 다시 읽고 공감했습니다. 마키아벨리의 주장이 ‘숭고한 이상을 추구하려면 냉혹한 현실을 다룰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이해하고 그의 용기와 천재성에 감탄했습니다.
로마의 휴일
William Wyler/오드리 햅번/Gregory Peck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 ‘로마의 휴일’ 이야기를 가끔 하시더군요. 세월이 흘러도 감흥이 살아있다고 말입니다. 그러려니 했는데, 대학시절 TV에서 흘러간 영화로 보고 어머니 말씀에 공감했습니다. 로맨스 영화라면 질색인 저에게도 재미와 감동이 오더군요. 영화란 오락이고 휴식이자 일종의 도피이기도 한 측면에서 아련한 느낌을 주는 고급 로맨스 영화입니다.
대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출연: 말론 브란도, 알 파치노, 로버트 드니로
세상을 살아가는 날 것들의 진면목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마피아가 배경이지만 사실은 분야를 불문하고 기저에 깔려있는 세상살이의 본질이 압축되어 있습니다. ‘마피아 경영학’이라는 책이 스테디셀러이고, ‘괴짜 경제학’에 언급된 마약상과 갱들의 사업형태와 조직구조를 경제학자들이 탐구하는 이유를 알 수 있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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