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
이제 여러분은 주제와 주제화라는 개념을 인식하는 것만으로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고, 글쓰기를 해 가면서 언젠가 여러분의 이름으로 된 글로 사회와 소통하는 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날이 여러분이 사회인으로서 권한과 책임을 공유하는 현대인으로 거듭나는 순간이 아니겠는가.
글ㆍ사진 남영신
2014.05.28
작게
크게

세종대왕은 훈민정음 창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어리석은 백성이 이르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내 그 뜻을 실어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내가 스물넉 자를 새로 만들었으니 모두 쉽게 배워서 일상생활에 편하게 사용하기 바란다.

 

백성들이 어려운 한자로 자기 생각을 적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서, 배우기 쉽고 쓰기 쉬운 훈민정음, 곧 한글을 지었다는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한글로 문자 생활을 아주 쉽게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어느 민족 못지않게 광범위하게 글쓰기 생활을 해 왔어야 한다. 좋은 글을 많이 써서 우리 자신은 물론이고 세계 사람들에게 유익한 글을 많이 제공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배우기 쉽고 쓰기 쉬운 글자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글쓰기를 제대로 하지 않았던 것이다. 글자가 쉽다고 해서 그 민족이 좋은 글을 많이 써 낸다는 보장이 없는 셈이다. 왜 그럴까? 글에는 글의 논리가 있는데 그것을 갈고 닦는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글의 논리를 밝혀 모든 사람이 쉽게 글쓰기를 하도록 이끄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며 다양한 부문에서 글로 소통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누구나 살아가면서 최소한 몇 권의 책을 저술하고, 한 해에 몇 편의 글을 이런저런 매체에 기고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글로 소통하는 사회가 말로 소통하는 사회보다 더 문화적이고 발전적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이 글을 쓰는 것을 어려워하고 심지어 두려워한다. 숫제 글쓰기는 자기와 상관없는 일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자기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진짜로 상관없는 일이 되지만, 관심을 가지고 시도해 보면 뜻밖에도 자기의 삶을 보람차게 해 주는 경우가 많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나는 글쓰기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글을 쓴다는 것이 사실은 단순한 일이어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임을 설명하고 이분들이 글쓰기를 시작하도록 이끌고 싶다.

 

현대인은 자기가 속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가지는 권한과 책임에 부응하는 주체적인 삶을 살고자 한다. 특히 민주주의를 근간으로 삼는 민주 사회에서는 몇 명의 천재나 소수의 지도자에게 자신의 운명을 맡기지 않고 지도자로 하여금 자신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정책을 시행하도록 요구하고 감시하며 견제하는 일을 하고자 한다. 그러려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기업 등 모든 단위의 사회에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고 그 결과에 따른 이익과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글쓰기는 현대인이 참여를 통한 권한과 책임의 공유를 가능하게 하고 서로 다른 생각을 조율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가장 품위 있는 ‘연장’이다. 그래서 현대인은 글쓰기를 해야 한다. 글쓰기는 현대인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글쓰기는-주제다

 

이름 있는 작가나 저술가 또는 글쓰기 지도자에게 글쓰기 요령을 물으면 어김없이 하는 말이 있다. “좋은 작품을 베껴 써 보세요.” 잘 된 글을 베껴 쓰다 보면 글쓰기가 자연스럽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런 방식으로 글쓰기를 연습하고 또 작은 성공을 거두기도 한다. 미술에서도 이 방법이 곧잘 쓰인다. 유명한 화가의 작품을 모사하여 그 화가의 기술을 습득하는 방법으로 그림을 배우는 것이다. 세상에는 새로운 것이 없으므로 앞선 사람의 것을 모방하여 자기 것 또는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논리는 어느 부분에서는 타당하다.

 

그러나 글쓰기를 전업으로 삼으려는 사람에게 개인적으로 그렇게 해 보라고 권할 수 있을지언정 그것을 글쓰기 원리로 제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누구의 글을 베끼고 누구의 그림을 흉내 내느냐에 따라서 자칫 그 사람의 아바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아바타가 되는 데까지 이르지 못하는 경우가 더 흔하다). 한 작품을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 베끼는 것은 무방한 일이지만 글쓰기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명작 베끼기는 추천할 만한 방법이 아니다.


글쓰기는 매우 단순한 작업이다. 모든 글은 주제 제시와 그 뒷받침이라는 단순한 구도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글의 논리이다. 문학 작품을 쓰는 작가에게는 주제 제시와 뒷받침 작업을 사건의 전개나 표현의 문제로 승화시켜야 하는 절박한 문제가 있어서 단순히 주제 제시와 뒷받침만을 요구할 수 없지만, 일반인에게는 이 두 요소만으로 글쓰기를 지도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다. 논문을 쓰거나 보고서를 제출하는 일, 사건을 기록하고 여행기를 쓰고 싶은 경우, 안내문이나 제안서, 기안문을 쓸 일 등을 비롯해 자기 경험을 여러 사람과 나누고 싶어서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주제 제시와 그 뒷받침이라는 간단한 원리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주제’와 ‘주제화’라는 두 개념을 중심으로 글쓰기를 안내한다.

 

이 책은 네 개의 장으로 되어 있다. 제1장에서는 주제와 주제화에 관하여 설명한다. 주제를 제시하는 방법, 곧 주제문 쓰기에 대해 설명하고, 글을 주제문에 접근시키는 방법(이것을 주제화라고 한다)에 대해서 설명한다. 제2장에서는 글의 가장 작은 단위인 ‘단위 글’을 쓰는 요령을 설명하고, 실제로 글을 쓰는 연습을 한다. 제2장을 마칠 즈음이면 간단하지만 구성이 탄탄한 몇 줄의 글을 누구나 쓸 수 있게 될 것이다. 제3장에서는 ‘단위 글’을 쓰는 실력을 활용하여 ‘짜임글’을 쓰는 요령을 설명한다. 짜임글이란 단위 글 몇 개로 짜인 글을 의미하는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제목을 붙이고 내용을 적는 형식의 모든 글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특히 제목과 소제목을 붙이는 것으로 글을 주제화하는 요령을 덧붙여 여러분이 책을 저술하는 경우에 대비하도록 했다.

 

제4장에서는 여러분이 실제로 글을 쓰도록 돕는다. 먼저 기록하는 글을 써 보기를 권하고, 기회가 되면 개인사나 가족사를 저술해 볼 것을 권한다. 그리 고 글쓰기 앞에서 머뭇거리는 사람을 위해서 이 책의 「부록」에 여럿이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독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권한다. 내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여러 사람이 글쓰기 공동체를 만들어 서로의 글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것이다.

 

글쓰기를 주제 제시와 주제화 과정으로 이해하고 글을 쓰기 시작하면 글쓰기가 매우 편해진다. 여러분이 무엇에 대하여 어떤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주제가 결정되고, 주제가 결정되는 순간 주제화를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글을 쓰기 위해서 무엇을 준비하고 어떻게 글을 써 나갈 것인지 설계를 한다. 어떤 이는 글쓰기를 최고의 자기 계발 방법이라고 말하는데, 자기 계발은 주제화 과정에서 자연히 얻어지는 부수입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여러분은 주제와 주제화라는 개념을 인식하는 것만으로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고, 글쓰기를 해 가면서 언젠가 여러분의 이름으로 된 글로 사회와 소통하는 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날이 여러분이 사회인으로서 권한과 책임을 공유하는 현대인으로 거듭나는 순간이 아니겠는가.  

 

 

 



글쓰기는주제다 

img_book_bot.jpg

글쓰기는 주제다 남영신 저 | 아카넷
글쓰기는 작가나 기자만 하는 것이 아니다. 직장인이 기획안이나 보고서를 쓰고 공무원이 공문서를 작성하는 일, 사회운동가가 사회문제에 관해서 발언하고 학생과 교수가 논문을 쓰는 일 등, 적어도 지적 활동을 하는 모든 사람에게 글쓰기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일이다. 그렇다면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글쓰기를 시작해야 한다.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자신이 지금보다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드러내고 사회와 소통하기 위해서 글을 써야 한다. 어떻게 쓸 것인가?

 


 

[추천 기사]

- 밀양의 잔인한 봄을 기록하다

- 소설가 정이현에게 좋은 사람은?

- 작가 정유정의 여행과 글쓰기

- 유시민 정여울 노경실, 그가 그립다

- 여행작가 변종모의 여행지 고르는 법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글쓰기는주제다 #남영신 #글쓰기 #글
3의 댓글
User Avatar

처음처럼

2014.06.03

남영신 선생님이 오랜만에 새 책을 내셨네요
기대됩니다.
답글
0
0
User Avatar

햇빛자르는아이

2014.05.30

글쓰기가 너무 많아 오히려 넘치고 있다는 생각인데, 정리된 입장이나 논리적으로 정돈된 글은 적고 일기장에 써야할 듯한 개인적인 이야기, 폭력적이고 배설적인 말에 가까운 글들이 너무 많아서 문제같은데.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정돈된 글을 뜻하지만. 과도기같아요. 단순량으로 보면 글의 양은 적지 않은데 문제는 정리되지 못한 글들이 많다는 점. 점점 더 배설에 가까운 글보다는 이런 글쓰기 방법에 바탕한 정돈된 글들이 많아지겠지요.
답글
0
0
User Avatar

서유당

2014.05.28

글쓰기...주제가 명확하면 된다고 했지만 막상 글을 쓸려고 하면 복잡하네요...
답글
0
0
Writer Avatar

남영신

남영신은 언어에 바탕을 둔 사회 발전을 꿈꾸며 국어 문화 운동을 하고 있다. 1971년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한 뒤에, 토박이말을 정리한 『우리말 분류사전』을 펴낸 것을 시작으로 『국어용례사전』, 『한+ 국어사전』, 『국어 천년의 성공과 실패』, 『나의 한국어 바로쓰기 노트』, 『4주간의 국어 여행』, 『한국어 용법 핸드북』을 통해 꿈을 지향하고 있다. 이제 이 책을 읽는 분들과 그 꿈을 공유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