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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의 잔인한 봄을 기록하다

『밀양을 살다』를 편집한 강곤 오월의봄 편집부장 거창한 이론이 아닌, 삶의 경험에서 얻는 큰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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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을 살다』는 기록노동자, 작가, 인권활동가, 여성학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밀양구술프로젝트’가 집필한 책이다. 필자들은 밀양 송전탑 반대 싸움을 하는 사람들 너머에 더 들어야 할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했고, 밀양 투쟁을 말하기 전에 밀양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모든 책에는 첫 번째 독자가 있습니다. ‘책의 또 다른 작가’로 불리는 편집자가 바로 그 행운의 주인공입니다. 저자의 좋은 글을 발견하고 엮어 독자에게 소개하는 편집자들을 <채널예스>가 만나봅니다. 저자와의 특별한 인연, 책이 엮이기까지의 후일담이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2012년 1월과 2013년 12월, 밀양 송전탑 반대 싸움을 하던 두 어르신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농사를 지으며 하루하루 평범하게 살던 밀양의 사람들. 이들은 왜 10년간 140미터 높이의 거대한 765kV 송전탑을 막기 위해 싸우고 있는 걸까. 송전탑 부지에 움막을 짓고 계절을 바꿔가며 농성을 하고 있는 밀양 주민들. 지난해 12월, 밀양에는 인권활동가, 기록노동자, 작가, 여성학자 등이 모여 ‘밀양구술프로젝트’를 결성했다. 무엇이 밀양 주민들을 벼랑으로 내몰고 있는지, 승산이 보이지 않는 싸움을 왜 계속하고 있는 것인지를 기록하기 위해서다.

 

밀양구술프로젝트가 작업을 시작하자, 이곳 저곳에서 도움의 손길을 건넸다. 영상활동가들이 한걸음에 밀양으로 달려왔고, ‘소셜펀치 모금함’을 꾸리자 후원자들의 응원이 쏟아졌다. 사진 촬영은 정택용 사진가가 기꺼이 맡아줬고, 인권재단에서는 인권활동지원기금을, ‘밀양의 친구들’에서는 후원금을 전달했다. 출판사 오월의봄은 빠듯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출판을 기꺼이 맡았다. 『밀양을 살다』의 인세는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 후원에 사용된다.

 

『밀양을 살다』에는 오늘도 밀양을 살아가고 있는 17명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사람이 살겠다는데, 송전탑 즈그가 우예 버티겠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고 고향은 지킬래예’, ‘내 나이가 데모하기 딱 좋은 나이’라고 몸을 들썩이는 어르신들의 지금이 기록됐다. 밀양 상동면 도곡마을에 사는 86세 김말해 할머니 집 앞에는 작은 다리 하나가 놓여 있다. 주민들이 땀 흘려 만든 농로였지만 현재는 매일 한전의 공사 트럭이 지나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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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사람들을 어떤 시선으로 보고, 어떻게 만날 것인가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은 간혹 언론에 보도되고, 밀양 희망버스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뉴스는 주로 송전탑을 지어야 한다는 한국전력의 주장과 송전탑이 들어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주민의 주장에 초점이 맞춰졌다. 밀양구술프로젝트는 이러한 주장보다는 밀양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으며 어떤 마음으로 싸움을 하고 있는지, 이 싸움의 의미가 그들의 삶에 어떤 의미인지를 듣고 기록하고자 했다. 밀양 투쟁을 온전하게 이해하며, 싸움의 진실에 더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서였다.

 

“2013년 하반기부터 밀양에 다녀온 사람들이 밀양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할 수 있는 기록자나 작가가 없는지 물어왔어요. 과거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반대 싸움이나 용산참사 당시 그러한 활동이 있었기 때문이고, 저도 그런 기록에 참여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밀양은 서울에서 4~5시간 거리여서 물리적으로 쉽지 않았어요. 그러던 중 한 인권단체에서 밀양구술프로젝트를 제안했고 자연스럽게 기록자로서 경험이 있고, 인권 관련 책의 편집자로서도 경험이 있던 터라 『밀양을 살다』의 편집을 맡게 됐어요.”

 

지난해 말, 다양한 사람들이 전국 각지에서 ‘밀양구술프로젝트’를 위해 모였다. 강곤 오월의봄 편집부장도 ‘밀양구술프로젝트’의 시작을 함께했다. 단시간에 모인 15명의 사람들. 이들은 각기 다른 경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모두 한 마음으로 밀양을 마주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음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이 작업을 너무나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헌신적으로 임하는 데 놀랐어요. 열심히 작업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밀양이 가진, 보이지 않지만 커다란 힘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죠. 결국 그것이 이 책이 세상에 나오게 만든 힘이기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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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침해 현장에서의 인터뷰나 증언은 자칫하면 인터뷰 대상을 불쌍한 피해자, 또는 강인한 투사의 이미지로 포장하기 쉽다. 밀양구술프로젝트는 이런 부작용을 잘 알고 있었고, 올바른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시작부터 밀양 사람들을 어떤 시선으로 보고 어떻게 만날 것인가를 함께 고민하고 공부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런 점에서 기록에 아마추어일 수 있는 인권활동가와 인권 침해 현장이 낯설 수 있는 작가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는 것은 ‘밀양구술프로젝트’ 작업에서 커다란 장점으로 작용했다.

 

“책에 들어갈 사진을 찍기 위해 정택용 사진가와 함께 밀양을 찾았어요. 구술을 해주신 분들을 직접 만나는 경험은 새로웠고 책 편집에 큰 도움이 됐죠. 한 분은 급하게 주문이 들어왔다며 비닐하우스에서 대파를 다듬고 계셨는데 서슴없이 사진을 찍는 동안 저보고 대신 대파를 다듬으라고 하셨죠(웃음). 대학생으로 돌아가 농활을 온 느낌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루 종일 밀양 곳곳을 돌며 사진 촬영을 돕다가 늦은 정택용 사진가와 늦은 저녁을 같이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밀양을 살다’라는 제목이 떠올랐습니다. 어떤 화려한 수사 없이 평범하지만 잔잔한, 그렇지만 깊은 울림으로 책이 독자에게 다가갔으면 하는 바람이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필자로 참여한 만큼, 저자들이 문체나 기록 방법 등이 약간씩 모두 달라서, 편집자로서는 고민도 만만치 않았다. 일방적으로 통일을 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생각했다. 가장 어려웠던 작업은 15편 기록의 순서를 정하는 일이었다.

 

“남녀 성비, 연령대, 마을 등 고려해야 할 것들이 참 많았어요.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몇 차례 바꿔본 뒤에 거의 최종 단계에서 연령대를 기준으로 크게 1, 2부로 구성하게 됐죠. 또 알아듣기조차 힘든 80대 어르신의 투박한 밀양 사투리를 어느 정도까지 표준화할 것인지도 고민스러웠어요. 학술적인 구술사라면 당연히 최대한 살려야겠지만 대중서로서 이 책이 더욱 널리 읽히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표준화가 필요했죠. 그 기준과 정도는 지금까지도 고민스러운 지점이에요.”


우리가 철탑을 막아야 되겠다고 한 번 마음을 먹었으니 끝까지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나는 평생 자존심만은 지키면서 살았으면 좋겠거든요. 이게 무너지면 살면서도 나는 죽은 거 같거든요. 끝까지 하자. 끝까지 해서 조그만 희망이라도 있으면 그 틈을 비집고 가서 어떻게 해서든 안 세우게 해보자. 희망이 있다가 없다가 하루 열두 번도 더 뒤집히니까, 그래도 희망 가지고 있는 거 같애요. 지난번 희망버스 때도 보니까 할매들이 “뭐를 할랑고? 혹시 쟤네들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하잖아요. 크게 그거할 건 아니지만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 바라는 것 때문에 희망버스 그지예? 말이, 생각 자체가 희망인 거예요. 그 사람들이 오면 중단할 수 있지 않겠나 하는 희망, 가고 나면 또 허전하지만 그래도 또 “다음에 오께요, 할머니” 하고 가시는 그 양반들 마음이 희망이죠. (『밀양을 살다』 345쪽)

 

『밀양을 살다』에 등장하는 이들은 굳이 밀양에서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 어느 곳에서도 마주할 수 있는 이들이다. 또한 어떤 놀랄만한 새로움을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때론 거창한 이론이 아닌, 삶의 경험에서 더 큰 지혜를 얻는다. 글을 몰라 세월을 기록으로 남기지 못한 걸 섧다고 말하는 할머니의 인생사에서 우리는 짙은 깨달음을 얻는다.

 

“나이를 든다는 것이 자랑스럽다기보다는 안타까운 일이 되어버렸고, 노인의 삶의 지혜가 존중 받고 존경 받기보다는 늙음 자체가 형벌에 가까운 사회에 살고 있잖아요. 하지만 우리 이웃,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송전탑 싸움을 통해 어떤 깨달음을 얻었고, 그것을 어떤 지혜로 받아들이고 또 싸우고 있는가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커다란 위로와 용기를 주고 있어요. 일상 생활에서 지치고 힘든 일을 마주해, 무기력한 분들이 『밀양을 살다』를 읽는다면, 분명 새로운 힘을 얻을 거라고 생각해요.”

 

어떤 독자가 『밀양을 살다』를 읽으면 좋을까. 강곤 편집자는 “한국 사회에서 무수하게 생기는 폭력과 사고 등으로 상처받은 이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고 말했다.

 




강곤 편집자가 추천한 또 다른 책


5월의 사회과학





어떤 이는 자신의 삶에서 지금까지 가장 큰 영향을 준 사건이 있다면 5.18이었는데 이후로는 세월호 사건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저 또한 이 사건의 충격과 분노, 슬픔에서 거리를 두기가 쉽지 않습니다. 5.18에 대한 탁월한 분석이라 할 수 있는 이 책을 읽으며 지난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의 한국 사회를 다시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리고 세월호 사건에서도 이러한 사회학적 분석이 나와서 이 사건의 진상규명은 물론 이후 한국 사회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함께 고민하고 모색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도시에서 죽는다는 것





올해 제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를 보내는 내내 『도시에서 죽는다는 것』이란 책이 떠올랐습니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좀 더 큰 슬픔과 아픔으로 어머니를 보내드렸을 것입니다. 삶과 죽음,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의 죽음에 대해 어떤 자세로 대할 것인가라는 반드시 마주쳐야 할 문제에 대해 커다란 성찰과 위로를 주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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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엄지혜

채널예스, 월간 채널예스, 책읽아웃을 만들고 있습니다.
eumji01@yes24.com

밀양을 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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