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범 “독문학 전공, 그러나 내 운명은 목수”
한옥 살기에 대한 로망이 현대인들을 자극하고 있다. 무턱대고 지을 수도, 사기도 만만찮은 한옥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작은 한옥 한 채를 짓다』를 펴낸, 황인범 서울한옥 대표에게 물었다.
글ㆍ사진 엄지혜
2014.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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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과 경복궁 사이에 자리잡은 ‘서촌’ 일대에는 600여 가구의 한옥이 있다. 서촌의 보존, 개발을 위해 한옥보존구역이 지정되었고, 2010년부터는 수십 채의 한옥이 새 주인을 맞이하고 있다. 『작은 한옥 한 채를 짓다』의 저자, 황인범 도편수는 그 중 9개의 한옥을 신축, 대수선했다. “목수가 된 일을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고 말하는 그는 최근 도시형한옥 ‘어락당’의 탄생기를 담은 『작은 한옥 한 채를 짓다』를 펴냈다. 책을 한 번도 써보지 않은 저자의 필력은 꽤 탄탄하다. 누군가로부터 “출판사, 편집자에게 도움을 많이 받은 거 아냐?”라는 말을 들었을 정도. 한옥에 깊은 관심이 없는 사람이 읽더라도, 퍽 흥미로울 책이다.

 

서촌에서는 ‘황 목수’로 통하는 황인범 대표의 프로필도 눈길을 끈다. 대학에서 독문학을 공부했지만, 전공과는 무관하게 졸업과 동시에 목수의 길을 택했다. 1997년 순천 선암사에서 목수로 입문한 후로 지리산 실상사 약수암, 설악산 백담사 요사채, 가평 현등사 2층 목탑 등 전국의 수많은 문화재 수리 현장에서 목수와 도편수로 일했다. 2010년부터는 서촌에서 도시형한옥을 신축, 대수선하고 있다. 일이 있는 곳에 새 터를 잡는 ‘17년차 목수’ 황인범 대표는 5년째 서촌 주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집을 짓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말하고자 했던 것은 한옥을 좋아하고 살고 싶은 꿈을 꾸는 이들에게 필요한 이야기는 무엇일까 오랫동안 고민해왔고, 이 집에 이르러서야 용기를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집에 관한 인문적 지식이나 집 짓기 기술에 관해서라면 이미 훌륭한 저작들이 많다. 그러나 ‘집을 말하는 것’이 아닌 ‘집으로 말을 하는’ 사람으로서 이 작은 한옥 한 채를 어떻게 지었는지 사실 그대로 알려주고 싶었다.” (『작은 한옥 한 채를 짓다』, 5쪽)

 

 

만나고-황인범

 

내 몸에 맞는 일이 천직이다


출판사에 투고를 했다고 들었다. 책으로 만들어질 거라는 확신이 있었던 건가?

작은한옥한채를짓다


내용으로 승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보통 초안과 기획안만 보낸다고 하는데,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원고를 완성해서 보냈다(웃음). ‘어락당’의 주인인 로버트 파우저 교수님이 출판사를 소개해준다고 했는데, 내 힘으로 쓰고 싶었다. 다행히 돌베개 출판사가 글을 좋게 봐줬다. 내가 가지고 있는 책 중에 돌베개 책이 가장 많다(웃음).

 

그동안 서촌에서 9개의 한옥을 신축, 대수선했다. 책의 주인공은 ‘어락당’인데, 다른 한옥과는 달랐기 때문에 책으로 쓰게 된 것인가.


서촌에서 한옥을 계속 지어 오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또 동네에 적응하면서 벌어지는 일들도 많았다. 한 해 한 해 살아가면서, 이 동네에서 한옥은 이렇게 지어져야 한다는 어떤 방법론을 찾게 됐다. 집을 바라보는 관점이 생겼는데, 마침 ‘어락당’을 짓게 됐다. 한옥에 대한 확실한 관점이 있는 건축주인 파우저 교수를 만난 거다. 한옥에 관련된 책들은 지금도 많다. 하지만, 대부분 서론과 결론만 있더라. 철학적, 인문학적 이야기를 하다가, 완성된 집 사진을 한 장 보여주고, 결론을 내버린다. 예쁜 설명만 있고 수많은 노동력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그래서 이 책을 쓴 거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집을 짓는 기초부터 차근차근 과정을 밟아 가고 싶었다.

 

서촌 토박이는 아니지만, 이제 서촌 사람이 다 된 것 같다. 저자도 실제 한옥에 거주하고 있나?


나는 그냥 주택에 산다(웃음). 목수는 집을 따라 다니는 사람이다. 아마 평생 집을 따라 다니면서 집을 지을 거다. 대학에서는 독문학을 전공했다. 다른 직업도 생각할 수 있었을 텐데, 졸업하자마자 곧장 목수의 길로 뛰어들었다. 4학년 졸업반에 들어가면서,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 학력이나 주변 상황에 관계 없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뭔지를 계속 물었다. 바로 목수였다. 가장 자연스러운 노동인, 목수 일이 내 몸에 맞았던 거다. 대의 같은 건 없었다. 내 몸에 무엇이 가장 맞는 일인가, 내가 평생 지치지 않고 할 수 있느냐가 중요했다. 보통 목수 일을 하다가 5,6년차가 되면 그만두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단 한 번도 나무를 다루는 일이 나한테 맞지 않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당시에는 목수학교와 같은 전문학교도 없었는데. 어떻게 목수가 되었나?


대학교 4학년 때, 창덕궁 보수공사를 대대적으로 했다. 뉴스에도 많이 나왔다. 당장 찾아가서 목수 일을 하고 싶다고 면접을 봤다. 하지만 떨어졌다. 깜짝 놀랐다. 실망했다. 내 생김새를 보면, 일단 힘 좋게 생기지 않았나? 아르바이트로 노가다도 많이 했는데. 나중에 사람들에게 이야기했더니 ‘가방끈을 숨겼어야지’라고 하더라. 그 후로 어디서 목수 일을 배워야 할지 모르겠어서, 유명한 절을 다 찾아다녔다. 섬진강을 좋아해서 근방에 있는 절을 순례하듯 방문했다. 절에 가면 목수가 있을 테니까. 연곡사, 화엄사 등 정말 많은 절을 찾아 갔는데 공사를 안 하더라. 마지막으로 순천 선암사를 찾아갔는데 노인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내일부터 나오라고 했다. 절간에서 그 어른들을 모시고 일을 했다.

 

처음 목수 일을 시작했을 때, 쉽게 적응하긴 어려웠을 것 같다.


연장도 없었고 술 심부름만 했다. 눈 큰 사람이 지붕을 못 올라간다고, 처음에는 지붕에 올라가는 것도 무서웠다. 위험한 직업이었고 기약도 없었다. 학년을 마치고 다음 단계에 올라가는 과정이 없으니까, 답답했다. 내일 뭘 할지를 모른다는 게, 답답했던 것 같다. 그런 과정들을 수없이 거쳤다. 힘들었지만 일단 나무를 만지는 일이 재밌었다. 시간 가는 줄 몰랐으니까.

 

목수를 시작으로 도편수(공사현장의 책임자인 목수)가 됐다. 문화재수리기능자 제3702호(대목) 자격을 가지고 있다. 본격적으로 한옥을 신축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목수는 일을 하는 순간부터 한옥을 짓게 된다. 서원, 항교, 사찰, 박물관 등 한옥이 아닌 것은 없으니까. 문화재는 곧 한옥과 같은 말이다. 하지만 그동안 지었던 건,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이었다. 내부 공간을 보수하지만 텅 빈 공간을 만들었다. 사람이 실제 사는 집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한옥을 신축하고 대수선하게 됐다.

 

만나고-황인범

 

 

한옥은 상품이 아니다. 과정이다


생활한옥 ‘어락당’의 건축주는 로버트 파우저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다. 한옥에 대한 애정이 많고 공부도 많이 한 경우다. 다른 건축주에 비해 참여도도 높았을 텐데.


건축주와 이미 친한 사이라서, 처음에는 부담스러워서 같이 안 하려고 했다. 반 년 이상 걸리는 험난한 건축 과정을 건축주와 시공업자가 갈등 없이 유지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어려워지는 싸움이다. 그걸 뻔히 알기에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망설이고 있는데, 파 교수가 인간관계보다 집을 잘 짓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이 들어, 나에게 맡겨보기로 한 것이라고 하더라. 집에 대한 확고한 신념, 솔직하고 합리적인 말에 불안이 많이 사라졌다. 결국 같이 하게 됐다. 건축주가 한옥에 깊은 이해와 관심을 가진 만큼, 나 역시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을 놓지 못했다. 하지만 요즘 말로, 케미스트리가 충만했다(웃음).

 

어락당(語樂堂)은 ‘말을 즐기는 집’이란 뜻을 가졌다. 어디에 초점을 맞춰 대수선(집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뼈대를 살려 수선하는 것)을 진행했나.


파우저 교수는 1930년대식 도시형 한옥으로 고쳐달라고 말했다. 어락당은 넓은 들판 한 가운데 홀로 서 있는 단독주택이 아니었다. 오래된 골목 안, 기와지붕이 넘실대는 동네 가운데 자리잡은 한옥이었다. 그래서 지역, 역사, 경관적 가치 등을 훼손하지 않고 집을 짓는 것이 중요했다.

 

건축 기간은 얼마나 걸렸나?


설계가 3개월 반, 공사가 5개월 정도해서 총 8개월 정도 걸렸다. 공사 기간에 겨울이 있어서, 평균 기간보다 조금 더 길었다. 보통은 설계 2개월, 시공 4개월 정도로 최장으로 걸려도 6개월이면 끝난다. 기술적으로 봤을 때, 공사 기간이 어떤 계절인가가 관건이다.

 

어락당을 지으면서, 도편수로서 가장 애정이 많이 가진 공간은 어디였나?


화방벽이다. 어락당을 지으며 건축주를 포함한 건축 주체들은 이 골목의 한 중간에 차갑고 딱딱한 사괴석 담장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목재는 도색 칠을 하면 옛날 색이 나오지만, 돌은 칠할 수도 없다. 앞으로 어락당의 많은 부분이 바뀔 수 있겠지만, 화방벽은 쉽게 변하지 않을 거다. 나는 사람들이 집의 내부만을 중심으로 보는 것이 항상 아쉽다.

 

보통 한옥에 살 때, 추위에 대한 걱정이 크다. 어락당의 경우, 단열은 어떻게 해결했나?


어락당 전까지는 대부분의 한옥을 ACL블록과 압출법 보온판으로 단열 벽체를 구성했다. 압출법 보온판은 일명 아이소핑크, 분홍색 스티로폼이다. 흰색 스트로폼에 비해 단열 효과가 좋다. 어락당은 삼간일목 권현호 소장이 단열 컨설팅을 맡았는데, 신소재 단열패널을 제안했다. 한옥의 취약한 차음에 효과가 있고 경량이라서 시공성, 내진성도 좋다고 했다. 현대 한옥에 맞는 제품이었다. 좋은 단열재로 완벽하게 시공을 했다 해도, 벽에 국한된 것이고 창호는 다른 문제였다. 추위를 막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새시’를 설치했다. 전통적 삼중창을 하고 싶었지만 비용 문제와 단열 문제로 새시로 결정했다. 새시의 미관 문제는 디자이너에게 맡겼다.

 

언어학자인 로버트 파우저 교수는 어락당을 짓고 나서, 집 짓는 과정 자체가 큰 공부였다고 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어락당은 집을 짓는 과정부터 모든 것이 정말 좋았다. 건축주, 그리고 디자이너분들과의 소통은 말할 것도 없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 주변까지 거의 완벽했다. 시공적인 면에서 이전의 집들도 거의 완결성을 추구했기 때문에 어락당이 특별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집을 둘러싸고 일어난 모든 일들과 함께 일한 사람들과의 소통과 호흡은 그동안의 집들과 사뭇 다른 지점이 있었다.

 

도편수로서 한옥을 지을 때,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가?


실험이다. 지금의 한옥은 새로운 걸 계속할 수밖에 없다. 그 부담감이 매우 크다. 새로운 실험을 할 때마다, 한 코스를 넘길 때마다 힘이 빠진다. 한옥에는 정답이 없다. 언제나 새로운 출발을 하는 느낌이다. 과거의 집을 현대적인 삶의 공간으로 만들어내는 데 있어, 새롭지 않은 건은 아무 것도 없다. 국가에서 각종 기관을 만들어 실험을 하듯이, 나 역시 계속 실험을 해야 한다.

 

한옥에 살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선뜻 용기가 나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많다. 건축주가 한옥을 짓기 전,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몇 달 전, 한옥 신축 의뢰를 받아서 짓고 있는데 건축주 부부가 한 달 동안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그건 미친 짓이다. 한옥은 과정이다. 물건을 사듯이 돈을 내고 가져 가는 것이 아니다. 하나하나 맞춰 가는 게 한옥이다. 그래야 내 마음에 드는 한옥을 만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한옥에 대한 의미가 많이 없어진다. 어떤 건축주라도, 한옥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 북촌에 있는 한옥문화원을 비롯해 건축주를 위한 강좌가 꽤 많다. 현실적으로 마음에 드는 강좌를 수강하고, 공부하는 것도 좋다.

 

만나고-황인범

 

목수, 집으로 말하는 사람


목수가 된 일을 한 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천직이라고 생각하나?


나는 집을 짓고 난 후의 일에 관심이 없다. 다만 집을 짓는 일에 관심이 있고 나에게는 이것이 모든 것이다. 전부다. 앞으로 집 주인이 어떻게 살아갈 지,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지는 내게 중요하지 않다. 그건 건축가의 몫이다. 집을 짓는 일은 강력한 하드웨어적인, 현장 노가다다. 집 짓는 행위는 자체로서 엄숙한 행위고 긴장과 갈등의 연속이다. 그래서 몸으로밖에 표현이 안 된다. 나는 집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집으로 말하는 사람이다.

 

목수로서, 꼭 필요한 자질은 무엇인가?


집을 볼 줄 알아야 한다. 나무를 잘 깎는 건 기술이다. 그 자체로 목수의 최고봉이 될 수 없다. 목수에게는 다른 장인들이 할 수 없는 일이 하나 있는데, 바로 집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장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 맡은 일만 하면 끝이 나지만, 목수는 집 전체를 보고 나무를 만져야 한다. 목수 출신이 도편수가 된 경우가 많지 않다. 목판 기술자로 흘러간 부분이 많아 아쉬운 마음이 크다. 목수 10년 차가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10년은 경험을 쌓아야, 집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생긴다.

 

앞으로 어떤 집에 살고 싶은가?


마당이 있는 집에 살고 싶다. 사람들은 마당이 얼마나 소중한 공간인지 잘 모른다. 하지만 작은 마당이 생긴다면, 그 존재감을 금세 느낄 수 있다. 마당 없는 아파트에만 살고 있는 현대인의 모습이 안타깝다. 골목을 지날 때, 종종 조화롭지 않은 집을 만난다. 아쉬운 마음이 든다.

 

만나고-황인범

 

 

좋은 집의 정의를 내린다면?


일단 자연스러워야 한다. 내 삶과 내가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집이여야 한다. 한옥은 자연스럽다. 나무가 뭘 뿜어내서가 아니라, 자연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주거 공간 자체도 몸에 딱 맞게 자연스럽다.

 

도편수로서, 또는 개인적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현실적인 꿈으로는 2층 한옥에 도전하고 싶다. 혼자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함께 만들어보고 싶다. 두 번째로는 한옥교회를 지어보고 싶다. 10년 전에 문화재로 지정된 경상북도 영천 자천교회를 보수한 적이 있다. 한옥이라는 공간이 주는 편안함을 교회라는 공용공간에서 만들어보고 싶다. 기독교인으로서의 소망이다. 마지막으로는 유럽전통건축을 눈으로 보고 싶다. 유럽의 장인들, 그들의 손길을 확인해보고 싶다.

 

“목수들이 걷는 길이 남다르다면 그것은 그들은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지만, 자신의 땀과 열정과 외로움과 그리움이 오롯이 집 한 채로 남아 100년도 가고 200년도 간다는 사실 아닐까. 노인네 스승들께 “목수는 집 짓고 연장 챙기면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는 법”이라고 배웠다. 그만큼 모든 걸 쏟아내라는 의미이고, 집은 서 있으되 나는 사라지는 무명의 빌더(Builder), 어쩌다 선택한 그 길을 평생 마다 않고 가는 이들이 목수라는 뜻일 게다.” (『작은 한옥 한 채를 짓다』 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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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한옥 한 채를 짓다 황인범 저 | 돌베개
미국인으로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에 재직 중인 로버트 파우저 교수가 경복궁 옆 서촌 체부동에 직접 마련한 작은 한옥 어락당語樂堂의 대수선 과정을 담은 기록이다. 이 책은 현장에서 직접 이 집을 세우고 만든 도편수, 즉 한옥 공사현장의 책임자인 한 목수의 기록에서 출발한 것으로 집이 다 지어진 뒤 일 년을 맞아 그동안 현장에서 느끼고 본 바를 한 권의 책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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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한옥 한 채를 짓다 #황인범 #한옥 #목수 #어락당 #서촌
2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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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jeansy

2014.11.04

집 짓는 과정을 담은 책이고 얼핏 보았을때 지루할 줄 알았는데 읽다보니 시간가는줄 모르겠더군요 우리사회에 이런 장인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램이 들었습니다. 더불어 한옥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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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koko111

2014.05.16

집으로 말하는 사람.. 이라는 표현이 멋집니다. 건축가보다 어쩌면 목수가 더 대단하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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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혜


eumji0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