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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바다에 빠진 사람들을 위한 구명정

『차마 울지 못한 당신을 위하여』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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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일수록 『차마 울지 못한 당신을 위하여』라는 책은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내용이 어렵지 않고, 구체적인 사례가 풍부하고, 슬픔의 감정에 책에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하더라도 그리 힘들지 않게 읽을 만하게 분량도 많지 않다는 것도 장점이다.

5월 셋째 주부터 격주 월요일, 하지현 건국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추천하는 심리책 이야기, ‘하지현의 마음을 읽는 서가’가 연재됩니다.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온 국민이 상실과 슬픔에 바다에 빠져있다. 세월호에 갇힌 아이들이 깊은 바다 속에 머물러 있듯, 우리 마음도 맹골수도 빠른 조류에 휩쓸린 채 먹먹한 마음만 가득하다. 정부의 늑장 대처와 어이없는 선원과 선장 때문이라 화를 내보지만 마음은 여전히 가라앉지 않는다. 도리어 아픔은 깊어지고 아리기만 할 뿐이다. 촛불집회를 하며 애도의 마음을 모으고, 전국에 분향소가 설치되고 노란리본을 묶어보지만 뻥 뚫린 마음은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것만 같다. 사람들이 묻는다.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이럴 때에는 어떤 책이 도움이 될까, 서가를 훑어보다 이 책에서 눈이 멈춰 선다. 『차마 울지 못한 당신을 위하여』(민음인)이다. 이 책을 쓴 두 명의 저자가 모두 상실의 아픔을 안고 있는 심리상담가들이다. 안 앙설렝 슈창베르제는 십대에 여동생의 죽음을, 에블린 비손 죄프루아는 둘째 아이가 생후 육 개월에 죽었다. 그들은 자식이나 동생의 죽음이 더 힘든 것이 ‘순서가 맞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맞다. 지금 우리가 더 힘들고 괴로운 것도 순서가 맞지 않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동병상련의 마음을 가진 전문가가 쓴 책이니, 지금 우리의 마음에 맞춤형 책이 될 듯하다. 책장을 펼쳐본다.

차마울지못한당신을위하여

 

저자들은 상실의 불가피성과 함께 애도를 하는 과정이 얼마나 필요하고 중요한 것인지 이야기하고 있다. 애도하지 못한 채 상실을 계속해서 되새기기만 하면 현재의 삶을 살 수 없고, 미래도 찾아오지 못한다. 끊임없이 자신에게 닥친 일을 용납할 수 없다고 여기지만, 슬픔의 과정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렇다. 이런 슬픔을 인정하지만 곧 언론과 세상은 말한다. 당연한 정답인 듯 이렇게. 고통속에서도 꿋꿋이 견뎌나가라고, 빨리 예전처럼 돌아가서 열심히 살라고. 애도가 길어져서 경제침체가 일어나고 있다는 말까지 이어진다. 세상의 말을 잘 들어온 사람들은 그래서 슬퍼하는 것을 내색하지 못하고, 혼자서 숨어서 슬퍼하기 쉽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살아가는 것이 씩씩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그러다가는 속으로 곪는다. 그래서는 안 된다. 혼자서는 애도하기 어렵다. 누군가와 함께 슬픔을 나누고, 떠나보낸 사람을 생각하며 그들과의 좋은 기억을 나누고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럴 때 옆에 있는 사람은 힘든 사람을 보며 위로를 해주고 싶은 본능적 충동을 느끼는데, 책은 위로의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어설픈 위로는 하지 않는게 낫다고. 충고해달라고 부탁하지 않은 사람에게 충고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도리어 상처가 될 수 있다. 어떤 말을 하든 듣는 사람은 이해받지 못했다고 여기기 쉽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냥 옆에 있어주고 잘 들어주기만 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굳이 어떤 말을 하고 싶다면 판단적인 말보다는,

 

“너무 엄청난 일이라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렇지만 내가 옆에 있을께 언제든지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해”라고 솔직하고 진실한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솔직하게 함께 말을 나누고, 마음에 담고 있지 말고 표현하는 것, 그리고 상실을 표현하고 좋은 기억을 보존할 각자의 의식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저자들은 말하고 있다.

 

슬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일수록


상실은 마음에 큰 구멍 하나를 뻥 뚫는 사건이다. 사람을 약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 과정을 잘 거치고 나면 더 강해질 수 도 있다. 충분한 애도는 필요하고, 이를 통해 고인은 우리의 마음안에서 영원히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조심해야할 것은 슬픔이 우리를 파괴하지 않도록 잘 보살피는 것이다. 모든 상실은 고통이지만 그 과거의 추억이 우리의 현재를 망가뜨리도록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현재가 힘들고 이 먹먹한 감정을 수습하기 어려운 이유는 아마도 우리가 이토록 더욱 힘들어하는 이유 중 하나는 앞만 보며 달리고 성공하는 것에만 익숙할 뿐 패배나 상실, 아픔이 낯설고, 감정을 다스리고 슬픔에서 벗어나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라 전체가 상실과 애도의 바다에 빠져들었다. 자칫 이 바다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도 생길지 모른다. 이때 이 바다에서 살아남을 구명정은 바로 슬픔을 부정하고, 아무 일 없다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슬픔을 표현하고, 관계의 네트워크 안에서 연대하여 고립감을 떨쳐버리며, 상실의 불가피함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절대 포기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모두가 가보지 못한 새로운 문턱을 넘어, 사건 전과는 다르게 살아가야 한다. 그게 남아있는 우리가 궁극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슬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일수록 『차마 울지 못한 당신을 위하여』라는 책은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내용이 어렵지 않고, 구체적인 사례가 풍부하고, 슬픔의 감정에 책에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하더라도 그리 힘들지 않게 읽을 만하게 분량도 많지 않다는 것도 장점이다.

 

 

 



차마울지못한당신을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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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울지 못한 당신을 위하여 안 앙설렝 슈창베르제,에블린 비손 죄프루아 공저/허봉금 역 | 민음인
프랑스의 저명한 두 심리학자가 펴낸 상실과 애도에 대한 책. 실제 사례와 수십 년간의 연구를 통해 소중한 사람을 잃은 경험을 비롯하여 갖가지 상실을 경험한 이들이 그 고통을 충분히 애도하고 다시 삶으로 되돌아가는 방법을 친절히 안내한다. 상실의 고통을 겪은 이들이 애도를 마치고 나와서 어느 정도 내적인 평화와 평정을 되찾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저자들은 인간이 겪는 상실과 고통, 외로움, 분노, 좌절, 헤어짐에 대해 다루면서 애도의 상태를 건강하게 벗어나는 법에 대해 쉽고 간결한 언어로 서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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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하지현(정신과 전문의)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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