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은 육신의 중심이다. 얼굴로 먹고 마시고 숨을 쉬고 말을 한다. 얼굴에는 다섯 개의 기본적인 감각기관 가운데 넷이 있다. 또한 즉각적으로 나이, 성별, 인종, 건강상태, 기본 등을 알려 주는, 자신에 대한 거울이다. 얼굴은 우리를 개체로 만들어 준다. 얼굴은 지금까지의 과학으로는 포착하기 힘든 메시지를 내보낸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으로 우리를 매혹시킨다.” 대니얼 맥닐 『얼굴』14쪽)
얼굴
‘40세가 되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지라’는 말이 있다. 즉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얼굴에 나타난다는 말이다. 성격이 좋아 잘 웃는 사람은 눈꼬리에 주름이 많을 테고, 미간에 세로 주름이 있는 사람은 매사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기에 인상을 많이 썼다는 증거다. 평소 부드럽고 온화한 성격의 사람은 그 표정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요컨대 얼굴은 우리에 대해 많은 정보를 제공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얼굴로 그 사람의 미래도 예측할 수 있을까? 영화 <관상>으로 들어가 보자.
관상
먼저 관상(觀相)의 사전적 의미부터 알아보도록 하자. “얼굴 모습 또는 사람의 얼굴을 보고 그의 운명, 성격, 수명 따위를 판단하는 일“ 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영화 <관상>의 내용은 기본적으로 계유정란을 모델로 하고 있다. 요컨대 계유정란이란 사건을 팩트(Fact)로 하고, 관상가라는 인물을 허구(Fiction)로 넣은 팩션이다. 계유정란은 조카인 단종을 폐위시키고 스스로 왕위에 오른 수양대군이 벌인 쿠데타다. 쿠데타는 성공했고 그는 세조라는 이름으로 역사책에 남아있다.
영화의 시작은 늙은 한명회(우상전)가 밤잠을 못 이루는 장면이다. 그는 계유정란을 통해 수양대군을 왕위로 올린 최고의 공신이었다. 그가 잠을 못 이루는 이유는 관상가가 그에게 목이 잘려서 죽을 운명이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한명회는 그 관상쟁이는 조선 최고였다고 말한다. 그러니 그가 목이 잘려죽을 것이라는 관상쟁이의 말이 진실이라고 믿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영화의 끝부분에 가면 관상가인 내경(송강호)이 젊은 시절의 한명회(김의성 )를 만나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내경은 한명회에게 “당신 목이 잘릴 팔자요”라고 말한다. 그래서 한명회는 평생 적을 안 만들려 노력하는 등 처신에 신경을 썼다. 그는 목이 잘리지 않은 채로 장수하고 생애 마지막 시간을 보내며, 관상이 미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목이 잘리지 않은 채 생을 마감한다. 하지만 한명회는 죽은 지 17년 후 연산군의 생모 윤비 폐사에 관련되었다 하여 무덤에서 꺼내져 부관참시에 처해진다. 부관참시란 시신의 목을 자르는 형을 말한다. 정말 관상쟁이의 말이 맞았다.
<관상>포스터. 윗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기생 연홍(김혜수), 김내경(송강호), 팽헌(내경의 처남, 조정석)
진형(내경의 아들, 이종석). 수양대군(이정재), 김종서(백윤식)
관상의 대가, 그들의 얼굴을 보다
영화에서 관상쟁이 내경은 주인공들의 얼굴을 어떻게 평가했을까. 한번 살펴보자. “이마와 코가 봉긋한 게 명예와 재물이 따를 것이고, 입술은 토톰하고 붉으니 굶어 죽을 일이 없을 것이다. 눈썹은 일자형에 눈동자는 흑과 백이 분명하여 맑게 빛이나니 취직을 해도 직장의 신이 될 터이고, 심지어 도둑이 된다 해도 이름을 떨치며 크게 성공할 상이로다.” 내경이 연홍이 얼굴을 보고 평가한 말이다. 이 평가에 의하면 내경이 연홍의 미래를 읽을 수 있다는 말인데, 과연 그럴까?
연홍(김혜수 분)
기생 연홍을 평가한 말이다. 이마와 코가 봉긋하니 재물을 모을 상이라고? 이 말은 ‘상관관계’를 나타낸다. 즉 관상쟁이는 이마와 코가 봉긋한 사람이 재물을 많은 경우를 책을 통해 배웠을 것이다. 그러니 이마와 코가 봉긋하면 부와 ‘상관’이 있다는 근거는 있는 셈이다. 그렇지만 이마와 코가 봉긋한 사람 모두가 재물이 많지는 않을 터. 요컨대 이마와 코가 봉긋한 사람 모두가 재물을 모은다면, 이는 인과관계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요컨대 ‘A이면 B다’ 라는 원인과 결과가 명백하면 이는 과학적인 경우다. 그렇지만 이마와 코가 한 사람의 모든 것을 말해줄 수는 없다. 이마와 코로 그의 부를 예측한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근거가 없다는 말이다.
영화 속으로 다시 들어가 보자. 문종은 자신의 병세가 깊어가는 것을 안다. 자신이 얼마 안 있어 죽으면 어린 세자가 제대로 왕위에 오를지 걱정스럽다. 문종은 내경에게 자신의 주변 인물 가운데 역모를 일으킬 사람이 있는지 관상으로 알아보라고 시킨다. 물론 그 대상 중에 수양대군도 있었다. 내경은 수양대군의 얼굴을 볼 기회를 가진다. 자세히 보았지만, 왕위를 찬탈할만한 인물 같지는 않았다. 내경은 문종에게 그대로 보고한다. 그러나 그가 본 수양대군은 가짜였다.
자! 이제 수양대군의 관상을 한 번 보자. 사실 수양대군의 관상이 아니라 혹시 배우 이정재의 관상을 아닐는지. 문종이 승하한 후 내경은 진짜 수양대군의 얼굴을 보게 된다. “남의 약점인 목을 잡아 뜯고, 피를 봐서라도 왕의 자리에 오를 이리상, 진정 역적의 상”이라고 판단한다. 내경이 보기에 수양대군은 피를 보더라도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사람의 얼굴이었다.
수양대군(이정재)
과학으로 살펴본 인간의 얼굴
사람의 얼굴은 다른 동물과 사뭇 다르다. 먼저 우리와 유전적으로 가까운 관계인 침팬지와도 많이 다르다. 남자의 턱수염과 콧수염은 다른 영장류에게는 없다. 그리고 머리카락은 어떤가. 인간의 경우는 계속 자란다. 그러나 침팬지 머리는 계속 자라지 않는다.
또 얼굴의 아랫 부분에 있는 입술은 어떠한가. 입술은 관능, 전율을 일으키게 한다. 입술의 생김새나 색깔도 다른 동물과는 아주 다르다. 내경이 연홍의 입술을 평가한 부분을 다시 보자. “입술은 도톰하고 붉으니 굶어 죽을 일이 없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도톰하다는 것은 관능적이란 의미고, 붉다는 것은 젊고 건강함을 의미한다. 이런 여자라면 남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터. 그래서 내경은 연홍이 “굶어 죽을 일이 없을 것”이라고 판단을 내린다. 이런 부분은 관상이 과학과 어느 정도 합치된다.
다른 사람을 만날 때 제일 먼저 보게 되는 것이 얼굴이다. 상대방이 내 편인지 아니면 적인지를 일단 먼저 판단하게 된다. 구석기 시대 우리 선조는 낯선 사람을 볼 때 그랬을 것이다. 그래야만 생존에 유리했을 테니 말이다. 그런 선조를 가진 우리들은 사람의 얼굴을 보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는 능력을 유전으로 물려받았을 것이다. 또한 이성을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였으리라. 남성이 낯선 여성을 볼 때 얼굴에서 젊음과 건강을 먼저 파악했을 것이다. 젊음을 상징하는 단서는 맑은 피부, 풍부한 머리카락, 붉은 입술 그리고 밝은 눈이었을테니 말이다. 얼굴에는 이렇게 나이에 대한 단서가 담겨있다.
기본적으로 관상은 그 사람의 과거를 어느 정도 보여줄 수 있다. 얼굴에는 그런 단서가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그 연장선에서 미래를 예측하기는 어렵다. 한 사람이 과거에 어떻게 살았더라도 미래에도 과거와 똑 같은 방법으로 살아간다고 판단할 수 없으니 말이다. 현재 그 사람의 과거를 파악할 수는 있지만, 현실에서 그의 미래는 볼 수 없는 법이다. 그렇게 세상일이 우리 뜻대로 돌아가지는 않으니 말이다.
- 친절한 과학책 이동환 저 | 꿈결
왜 성공적인 결과물은 노력보다는 운에 좌우되기도 하는 걸까? 나쁜 일은 왜 한꺼번에 닥치는 걸까? 이 책은 우리가 의도하지 않은 뜻밖의 일들이 왜 일어나는지 그 이유를 과학으로 풀어낸다. 그리고 지극히 사소한 일상 속에 영겁의 시간 동안 온 우주와 자연이 마련해 놓은 어마어마한 비밀이 숨겨져 있음을 보여 준다. 『친절한 과학책』은 전형적인 문과형 인간이었던 저자가 매년 100권이 넘는 과학책을 10년 넘게 파고들어서 찾아낸 일상과 과학의 연결 고리를 재미있고 친절하게 풀어내고 있다. 과학 전공자로서는 절대로 쓸 수 없는 과학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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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환 <친절한 과학책> 저자
북칼럼니스트. 1년에 100권 이상, 10년 넘게 읽었다. 새로운 사실을 알아나가는 것이 너무 즐거워서 멈출 수가 없었다. 과학을 알면서 인문학과 문학을 바라보는 눈이 더욱 깊어졌다. 어느새 사람들은 그를 ‘과학 전문 북 칼럼니스트’라고 부르고 있었다. 2010년부터는 직장을 그만두고 아예 책을 소개하는 일을 업으로 삼았다. EBS, KBS, YTN 등의 책 관련 프로그램과 코너에 고정 출연하기 시작했다. 북 콘서트의 진행자로 무대에도 여러 번 섰다. 대학교와 도서관에서 강연 요청이 쇄도했다. 그로서는 전혀 계획해 본 적 없는 새로운 삶이었다.
jump9408
2014.05.13
저도 이런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이상윤
감귤
2014.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