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똑똑한 사람으로 키우지 않는다
스웨덴에서는 서열을 매기거나 다른 아이와 비교하는 것을 금기시한다. 덕분에 아이들은 우리나라처럼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에게 비교당하지 않고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자랐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도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을 비교하려 들지 않는다.
2014.02.25
작게
크게
공유
스웨덴에서는 유아 때부터 협력을 통해 ‘동료 효과(peer effect)’를 끌어내도록 가르친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내가 아는 것과 친구들이 아는 것을 합치면 훨씬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고 가르친다. 경쟁이 아닌 협력, 이것이 스웨덴 교육의 핵심 동력이다.
스웨덴의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많이 활용하는 학습 방법은 학생들을 두세 명씩 묶어 같이 공부하게 하는 것이다. ‘프로젝트 수업’, ‘모둠 수업’, ‘협력 수업’ 등의 이름으로 부를 수 있는데, 한 그룹의 학생들이 하나의 주제에 대해 함께 논문을 작성하고 발표해야 한다. 난이도의 차이는 있지만 초등학교 4학년부터 대학원까지 이런 식의 수업을 해나간다.
이런 수업 방식에 적응이 되어 있지 않던 나는 스웨덴에 유학 온 초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내 뼛속까지 박혀 있던 경쟁의식은 한국 교육과 사회에서 배운 것이었다. ‘내가 남보다 좋은 성적을 받는 한’에서만 협력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고, 남들의 성적이 좋지 않을 때 기뻐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품위 있는 행동이라고 배웠다.
혼자서만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내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나타났다. 스웨덴의 학교에서는 중학교 2학년이 되어야 성적표란 걸 처음으로 받아보게 된다. 성적표란 것을 이렇게 늦게, 중학생이 되어서야 줄 뿐만 아니라 성적에 따라 서열을 매기지도 않는다. 학생 자신의 성적은 알지만 학급에서, 학교에서 몇 등을 하는지 서열을 매기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큰아이가 중학교 1학년 때 어느 시험에서 최고 성적을 받아온 적이 있었다. 아내는 자랑스러워하며 아빠에게 보여주라고 했다. 아이의 성적표를 받아 든 나는 “몇 점 받아서 이 성적을 받은 거야? 만점 받았어?”라고 물었다.
이 질문을 아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자 나는 “그럼 너희 반에서 몇 명이나 이 성적을 받은 거야?”라고 물었다.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아내가 버럭 화를 내더니 “저렇게 좋은 성적을 받아 왔으면 칭찬해줘야지 왜 다른 애들과 비교해?”라며 질타했다. “아빠한테 다시는 성적표 보여주지 마!”라고도 했다.
스웨덴에서는 서열을 매기거나 다른 아이와 비교하는 것을 금기시한다. 덕분에 아이들은 우리나라처럼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에게 비교당하지 않고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자랐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도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을 비교하려 들지 않는다.
한번은 한국의 친구 집에 초대를 받았다. 그때 친구의 부인이 딸아이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두 오빠 중 어느 오빠가 더 좋니?” 우리나라에서는 꽤나 흔히 하고 듣는 질문이다. 아이들에게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고 물어보는 경우가 예사인 것처럼 말이다. 옆에 있던 아내와 나는 딸아이가 어떻게 대답할까, 어느 오빠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나 않을까 내심 긴장했다.
그런데 딸아이는 누구 하나를 콕 집어서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두 오빠의 장단점을 하나씩 얘기했다. 특히 흉내를 내가며 단점을 이야기하는 모습이 재미있어 우리는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자리를 함께한 내 친구는 ‘우문현답’이라며 아이를 칭찬했다. 선호도나 서열을 매기는 것이 아니라 재치 넘치는 외교적인 대답이라며 감탄했다. 내 아내는 “스웨덴에서는 그런 식의 질문을 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라고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관련 기사]
-북유럽 사람들의 중심에는 가족이 있다
-엄마와 아빠의 경계 없는 육아
-스칸디 부모들은 아이에게 독립심을 길러준다
-스칸디 부모들의 생활 속 육아법
-나쁜 일일수록 아이들에게 알려야 한다
스웨덴의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많이 활용하는 학습 방법은 학생들을 두세 명씩 묶어 같이 공부하게 하는 것이다. ‘프로젝트 수업’, ‘모둠 수업’, ‘협력 수업’ 등의 이름으로 부를 수 있는데, 한 그룹의 학생들이 하나의 주제에 대해 함께 논문을 작성하고 발표해야 한다. 난이도의 차이는 있지만 초등학교 4학년부터 대학원까지 이런 식의 수업을 해나간다.
이런 수업 방식에 적응이 되어 있지 않던 나는 스웨덴에 유학 온 초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내 뼛속까지 박혀 있던 경쟁의식은 한국 교육과 사회에서 배운 것이었다. ‘내가 남보다 좋은 성적을 받는 한’에서만 협력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고, 남들의 성적이 좋지 않을 때 기뻐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품위 있는 행동이라고 배웠다.
혼자서만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내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나타났다. 스웨덴의 학교에서는 중학교 2학년이 되어야 성적표란 걸 처음으로 받아보게 된다. 성적표란 것을 이렇게 늦게, 중학생이 되어서야 줄 뿐만 아니라 성적에 따라 서열을 매기지도 않는다. 학생 자신의 성적은 알지만 학급에서, 학교에서 몇 등을 하는지 서열을 매기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큰아이가 중학교 1학년 때 어느 시험에서 최고 성적을 받아온 적이 있었다. 아내는 자랑스러워하며 아빠에게 보여주라고 했다. 아이의 성적표를 받아 든 나는 “몇 점 받아서 이 성적을 받은 거야? 만점 받았어?”라고 물었다.
이 질문을 아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자 나는 “그럼 너희 반에서 몇 명이나 이 성적을 받은 거야?”라고 물었다.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아내가 버럭 화를 내더니 “저렇게 좋은 성적을 받아 왔으면 칭찬해줘야지 왜 다른 애들과 비교해?”라며 질타했다. “아빠한테 다시는 성적표 보여주지 마!”라고도 했다.
스웨덴에서는 서열을 매기거나 다른 아이와 비교하는 것을 금기시한다. 덕분에 아이들은 우리나라처럼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에게 비교당하지 않고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자랐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도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을 비교하려 들지 않는다.
한번은 한국의 친구 집에 초대를 받았다. 그때 친구의 부인이 딸아이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두 오빠 중 어느 오빠가 더 좋니?” 우리나라에서는 꽤나 흔히 하고 듣는 질문이다. 아이들에게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고 물어보는 경우가 예사인 것처럼 말이다. 옆에 있던 아내와 나는 딸아이가 어떻게 대답할까, 어느 오빠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나 않을까 내심 긴장했다.
그런데 딸아이는 누구 하나를 콕 집어서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두 오빠의 장단점을 하나씩 얘기했다. 특히 흉내를 내가며 단점을 이야기하는 모습이 재미있어 우리는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자리를 함께한 내 친구는 ‘우문현답’이라며 아이를 칭찬했다. 선호도나 서열을 매기는 것이 아니라 재치 넘치는 외교적인 대답이라며 감탄했다. 내 아내는 “스웨덴에서는 그런 식의 질문을 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라고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관련 기사]
-북유럽 사람들의 중심에는 가족이 있다
-엄마와 아빠의 경계 없는 육아
-스칸디 부모들은 아이에게 독립심을 길러준다
-스칸디 부모들의 생활 속 육아법
-나쁜 일일수록 아이들에게 알려야 한다
- 스칸디 부모는 자녀에게 시간을 선물한다 황선준,황레나 공저 | 예담friend
행복한 아이를 만드는 스칸디나비아식 교육법. 아이들의 행복성적표를 들여다보면 북유럽 아이들이 우리나라 아이들에 비해 자신감과 행복지수 면에서 월등히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까? 이 책은 두 저자가 북유럽 부모들의 육아와 교육의 본질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몸소 체험한 결과물이다. 가부장적이고 고집 센 경상도 남자가 자유롭고 합리적인 스웨덴 여성을 만나, 26년간 스웨덴에서 세 아이를 낳아 키우고 교육하며 ‘스칸디 맘’의 남편이자 ‘스칸디 대디’로 살아온 이야기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6개의 댓글
추천 상품
필자
황선준
서른 가까운 나이에 국비장학생으로 스웨덴 유학길에 올라, 스톡홀름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학에서 강의교수와 연구원으로 재직하며 정치 이론을 강의했고, 스웨덴 감사원 및 국가 재무행정원, 스웨덴 국립교육청 간부를 역임하며 교육 행정의 일선에서 뛴 스웨덴 교육통이다. 유학 시절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해 아들 둘, 딸 하나를 낳아 키우며 26년을 꼬박 스웨덴에서 살았다. 가부장적이고 고집 센 경상도 남자가 합리적인 페미니스트 스웨덴 여성을 만나, 아이 셋을 낳아 키우고 교육하는 일은 하루하루가 도전이었고 배움의 연속이었다. 2011년 서울시교육연구정보원 원장으로 임명되어 한국으로 돌아왔고, 현재 경기교육청 초빙연구위원으로 재직하며 그간의 경험들을 한국의 교육 현장에 적용하고 있다.
하나
2014.02.27
sunnydaler
2014.02.27
투명우산
2014.02.26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