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옷을 장만할 때
이 작품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유럽의 어느 도시에 살았던 잉게보르크라는 어린 딸과 어머니 한나 슈라프트 사이에 있었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쓰고 그린 것입니다. 딸을 위해 값진 물건을 내놓는 어머니의 사랑,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 1년 여의 시간을 참으며, 엄마를 돕는 안나의 인내심이 이야기 속에 녹아 더욱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2014.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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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옛날 얘기 같지만 그다지 오래되지 않은 얘기 한 토막…. 입던 옷이 작아지거나 낡고 해져서야 새옷을 장만하던 시절, 더구나 줄곧 오빠 언니 것을 물려입던 처지에 한번은 잠결에 출장가시고 안 계신 아버지 목소리를 들었지요. ‘우리 막내도 이제 학교 가야 하니, 새 오버 한 벌 사입혀요.’ 다음 날 아침, 꿈이었나 하면서도 일어나자마자 어머니한테 여쭸더니, 정말 지난 밤 깜깜 한밤중에 아버지가 오셨고 그런 말씀을 하셨다는 거예요.
새 오버 사러 가기로 한 날을 세어보고 또 세어보며 얼마나 기다렸던지! 그렇게 장만한 하늘색 새 오버를 한번 입어보고 벗은 다음에는, 다시 처음으로 입고 나갈 특별한 날을 손꼽아 기다려야 했어요. 옷장 서랍 속에 얌전히 넣어둔 것을 살그머니 꺼내어 흠흠 냄새 맡아보고, 결 따라 살짝 쓸어보고, 입고 거울에 비춰보고, 마당까지 나갔다가 도로 벗어서는 조심조심 개어서 넣어두길 몇 차례나 했는지 모릅니다.
새옷 입는 기쁨은 그처럼 기다림을 견디는 시간 끝에 도래하는 것이었지요. 그리고 지금에도 새옷 입는 일은 새로운 존재 또는 새로운 물건과 관계 맺을 때의 설레임에 대해, 그것이 오늘 이 순간 내 앞에 출현하기까지의 연유에 대해, 새삼 성찰하게 하는 특별한 일상사라 할 만합니다. 물자가 귀하던 2차 세계대전 직후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안나의 빨간 외투』 도 오랜 기다림을 얘기합니다. 다음과 같은 속표지 앞의 헌사에서 이야기가 시작되지요.
새 외투를 몇 달 동안이나 끈덕지게 기다렸고,
25년이나 흐른 뒤에 나에게 그 외투를 보여 준 잉게보르크 슈라프트 호프만에게,
처음에는 아무 것도 없었지만, 인내심과 결단력으로 마침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물을 마련하여 딸에게 준 어머니 한나 슈라프트를 그리며.
전쟁 직후 폐허를 배경으로 등장한 첫 장면 꼬마 안나의 모습은 누가 봐도 새 외투가 필요한 지경입니다. 하지만 속에 입은 셔츠와 치마가 쑥 빠져나오도록 깡뚱한 낡은 파란 외투 차림의 안나는 어디에서도 새 외투를 구할 수 없었지요. 결국 엄마는 깊이 간직한 금시계를 꺼내어 들고 안나와 함께 양털을 구하러 갑니다만, 농부 아저씨는 말하지요. “…봄이 올 때까지 기다리셔야 합니다. 양이 겨울털을 깎을 때까지 말입니다. 그 때가 되어야 양털을 금시계하고 맞바꿔 드릴 수 있어요.”
이제 안나는 봄이 오길 기다리며 일요일마다 양을 만나러 갑니다. ‘양들아, 털은 잘 자라니?’라고 물으면 매매- 하고 대답하는 양들에게 깨끗하고 맛있는 마른 풀을 먹이고 꼭 껴안아줘요. 어느새 크리스마스가 되자 종이 목걸이를 만들어 걸어주고 사과 선물도 하지요. 드디어 어느 봄날 양털을 얻게 되지만, 안나가 새 외투 입는 날은 아직도 까마득합니다. 빠르게 손을 놀릴 수 없는 할머니가 실을 자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빨간 외투를 입기 위해 산딸기를 따서 실을 물들여야 하고, 아주머니가 빨간 실로 옷감 짜는 걸 기다려야 했으니까요. 기나긴 시간을 견디고도 안나는 양장점에 가서 재봉사 아저씨가 치수를 잰 다음 한 주간을 더 기다린 뒤에야 새 외투를 입게 되지요. 그림책 마지막 장면은 세상 어디서도 그처럼 빨간 외투가 돋보일 수 없는 하얀 양떼가 배경입니다. ‘양들아, 털을 줘서 고마워.’ 하고 인사하는 안나의 기쁨은 빨간 외투가 상징하는 아름다움과 풍족함 그 자체라 할 만합니다.
※ 함께 읽으면 좋을 책 ※
펠레의 새옷
엘사 베스코브 저/김상열 역 | 비룡소
이보다 90년쯤 전에 만들어진 엘사 베스코프 여사의 스웨덴 그림책 『펠레의 새옷』 마지막 장면 또한 새옷을 입은 펠레가 양에게 인사하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어요. 그뿐 아니라 여러 장면이 닮은 꼴입니다. 『안나의 빨간 외투』 를 만든 작가들은 틀림없이 그림책의 고전 명작으로 일컫는 『펠레의 새옷』 을 흠모하는 마음으로 이처럼 똑같고도 다른 그림책을 만들었으리라 짐작해봅니다.
[관련 기사]
-자기 힘으로 살아가야 할 때
-나눔과 베품을 배워야 하는 아이에게
-혼내고 야단친 아이에게 - 『오늘은 좋은 날』
-오랫동안 함께 한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이들을 위하여
-하얀 눈밭을 그리워하는, 비좁은 사무실 안 직장인에게
새 오버 사러 가기로 한 날을 세어보고 또 세어보며 얼마나 기다렸던지! 그렇게 장만한 하늘색 새 오버를 한번 입어보고 벗은 다음에는, 다시 처음으로 입고 나갈 특별한 날을 손꼽아 기다려야 했어요. 옷장 서랍 속에 얌전히 넣어둔 것을 살그머니 꺼내어 흠흠 냄새 맡아보고, 결 따라 살짝 쓸어보고, 입고 거울에 비춰보고, 마당까지 나갔다가 도로 벗어서는 조심조심 개어서 넣어두길 몇 차례나 했는지 모릅니다.
새옷 입는 기쁨은 그처럼 기다림을 견디는 시간 끝에 도래하는 것이었지요. 그리고 지금에도 새옷 입는 일은 새로운 존재 또는 새로운 물건과 관계 맺을 때의 설레임에 대해, 그것이 오늘 이 순간 내 앞에 출현하기까지의 연유에 대해, 새삼 성찰하게 하는 특별한 일상사라 할 만합니다. 물자가 귀하던 2차 세계대전 직후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안나의 빨간 외투』 도 오랜 기다림을 얘기합니다. 다음과 같은 속표지 앞의 헌사에서 이야기가 시작되지요.
25년이나 흐른 뒤에 나에게 그 외투를 보여 준 잉게보르크 슈라프트 호프만에게,
처음에는 아무 것도 없었지만, 인내심과 결단력으로 마침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물을 마련하여 딸에게 준 어머니 한나 슈라프트를 그리며.
전쟁 직후 폐허를 배경으로 등장한 첫 장면 꼬마 안나의 모습은 누가 봐도 새 외투가 필요한 지경입니다. 하지만 속에 입은 셔츠와 치마가 쑥 빠져나오도록 깡뚱한 낡은 파란 외투 차림의 안나는 어디에서도 새 외투를 구할 수 없었지요. 결국 엄마는 깊이 간직한 금시계를 꺼내어 들고 안나와 함께 양털을 구하러 갑니다만, 농부 아저씨는 말하지요. “…봄이 올 때까지 기다리셔야 합니다. 양이 겨울털을 깎을 때까지 말입니다. 그 때가 되어야 양털을 금시계하고 맞바꿔 드릴 수 있어요.”
이제 안나는 봄이 오길 기다리며 일요일마다 양을 만나러 갑니다. ‘양들아, 털은 잘 자라니?’라고 물으면 매매- 하고 대답하는 양들에게 깨끗하고 맛있는 마른 풀을 먹이고 꼭 껴안아줘요. 어느새 크리스마스가 되자 종이 목걸이를 만들어 걸어주고 사과 선물도 하지요. 드디어 어느 봄날 양털을 얻게 되지만, 안나가 새 외투 입는 날은 아직도 까마득합니다. 빠르게 손을 놀릴 수 없는 할머니가 실을 자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빨간 외투를 입기 위해 산딸기를 따서 실을 물들여야 하고, 아주머니가 빨간 실로 옷감 짜는 걸 기다려야 했으니까요. 기나긴 시간을 견디고도 안나는 양장점에 가서 재봉사 아저씨가 치수를 잰 다음 한 주간을 더 기다린 뒤에야 새 외투를 입게 되지요. 그림책 마지막 장면은 세상 어디서도 그처럼 빨간 외투가 돋보일 수 없는 하얀 양떼가 배경입니다. ‘양들아, 털을 줘서 고마워.’ 하고 인사하는 안나의 기쁨은 빨간 외투가 상징하는 아름다움과 풍족함 그 자체라 할 만합니다.
※ 함께 읽으면 좋을 책 ※
엘사 베스코브 저/김상열 역 | 비룡소
이보다 90년쯤 전에 만들어진 엘사 베스코프 여사의 스웨덴 그림책 『펠레의 새옷』 마지막 장면 또한 새옷을 입은 펠레가 양에게 인사하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어요. 그뿐 아니라 여러 장면이 닮은 꼴입니다. 『안나의 빨간 외투』 를 만든 작가들은 틀림없이 그림책의 고전 명작으로 일컫는 『펠레의 새옷』 을 흠모하는 마음으로 이처럼 똑같고도 다른 그림책을 만들었으리라 짐작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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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이상희
시인ㆍ그림책 작가, 그림책 번역가로 그림책 전문 어린이 도서관 '패랭이꽃 그림책 버스'와 그림책작가 양성코스‘이상희의 그림책워크샵’을 운영하면서, 그림책 전문 도서관 건립과 그림책도시 건설을 꿈꾸고 있다. 『소 찾는 아이』 『낳으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은혜 갚은 꿩이야기』『봄의 여신 수로부인』등에 글을 썼고, 『심프』『바구니 달』『작은 기차』『마법 침대』등을 번역했으며, 그림책 이론서 『그림책쓰기』, 『그림책, 한국의 작가들』(공저)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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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31
sunnyda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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