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경,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앨리스 먼로’를 말하다
앨리스 먼로의 최신작이자 스스로 마지막 작품이라고 칭한 『디어 라이프』 가 최근 출간됐다. 또 올해 한국과 캐나다 수교 50주년(1963년)을 맞아, 지난 12월 13일, 서울 정동 주한캐나다대사관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2013.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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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많은 사람들에게, 영화도 그렇지만, 소설에서도 단편은 장편을 위한 징검다리처럼 인식된다. 그런 인식에 저항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다. 단편영화 혹은 단편소설 자체의 완결성을 믿고 지켜가는 이들. 캐나다 소설가 앨리스 먼로도 그런 사람이다. 노벨상위원회가 마침내 단편소설을 온전한 장르로 인정했다. 앨리스 먼로에게 2013년 노벨문학상을 수여했다. 단편소설이 징검다리가 아닌 자기완결성을 지닌 장르임을 전 세계에 확인시킨 셈이다.
앨리스 먼로의 최신작이자 스스로 마지막 작품이라고 칭한 『디어 라이프』 가 최근 출간됐다. 또 올해 한국과 캐나다 수교 50주년(1963년)을 맞아, 지난 12월 13일, 서울 정동 주한캐나다대사관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앨리스 먼로를 좋아하는 은희경 작가를 초대해 ‘은희경과 함께하는 『디어 라이프』 낭독회’를 개최한 것. 와인 파티를 겸해 열린 이번 행사는 문학평론가 허희의 사회로 먼로 작가의 노벨상 인터뷰와 캐나다 사람들이 소개하는 먼로, 은희경 작가가 소개하는 먼로와 낭독 등으로 구성됐다.
앨리스 먼로, 단편을 말하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 직후 앨리스 먼로 작가가 노벨상위원회와의 전화 인터뷰.
지금까지 작품 활동을 하면서 변한 것 같나, 그렇지 않은 것 같나?
내 생간엔 많이 변한 것 같지는 않은데, 그 질문엔 다른 분들이 더 잘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노벨문학상의 의미를 부여한다면?
단편소설계 전체를 위해서 좋은 일인 것 같다. 많은 작가들이 장편을 쓰기 위한 전 단계로 단편을 쓰는데, 장편을 쓰기 위한 단편이 아니라 그 자체로 완결된 단편을 보여주고 싶었다.
독자들에게 앨리스 먼로의 첫 시작으로 어떤 작품을 추천하고 싶은가?
가장 최근 작품이 좋지 않을까? 그리고 이전 작품들도 읽으면 좋겠다.
올해 초 절필을 선언했다. 이 기회를 통해 다시 펜을 들고 싶은 생각은 없나?
20대부터 쭉 글을 쓰고 책을 출간해왔고 그것은 꽤 긴 시간이었다. 이제 좀 쉬어도 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마음이 변할 수도 있겠다.
캐나다 사람들에게 앨리스 먼로란?
제임스 트로티에 참사관의 축사를 위해 등장했다. 그는 캐나다인으로서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110년 노벨상 역사에서 열세 번째 여성 수상자인 앨리스 먼로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이었다.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가 먼로 작가를 수상자로 선정했을 때 캐나다인들은 그녀의 업적에 대해 크나큰 자부심을 느꼈다”고 운을 뗀 그는 “노벨문학상이 단편소설만 쓰는 작가에게 간 것은 많은 이들에게 큰 기쁨이 됐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노벨상위원회에서는 현대 단편의 대가로 그녀를 묘사했는데, 캐나다인들에게 먼로는 그 이상”이라며 “그의 이야기는 우리 지역사회와 국민을 바탕으로 하며 보편적인 진리를 전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캐나다 온타리오에서 태어난 먼로 작가의 많은 작품이 그곳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의 단편 중 하나가 영화로 만들어진 바 있는데, 2006년 <어웨이 프롬 허>가 그것이다. 그의 작품인 「곰이 산을 넘어오다」 가 원작이다. 제임스 참사관은 “건강문제로 시상식에 참여하지 못한 먼로 작가가 노벨상 시상식을 TV로 본 후 노벨상 수상은 내 커리어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해줬다고 말했다”며 “그의 작품이 한국어로 소개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낭독회를 통해 캐나다의 독특한 이야기를 한국의 관점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캐나다인 안젤라 후드는 ‘캐나다인이 본 앨리스 먼로의 작품’이라는 주제로 말을 이었다. 그는 “먼로는 인간이 무엇인가에 대해 말해준다”며 “압축적인 산문으로 평범한 것을 비범한 것으로 만드는 재능이 있다”고 말을 뗐다. 그는 먼로의 작품을 통해 자신이 변화한 경험을 이야기했다. 어렸을 때 독서를 좋아하지 않았던 그를 변화시킨 것이 먼로(의 작품)이었다. 책을 읽지 않았던 그가 고등학교 때 먼로의 단편을 읽어보라는 선생의 권유로 「목성의 달」 이라는 작품을 읽었다. 책에 관심이 없던 그는 이 책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고, 이후 문학을 전공하게 됐다. 안젤라는 “먼로는 평범한 일상을 비범하게 풀어나가는 재주가 있다”며 “먼로 작품의 장소를 보면 전통적이고 전형적인 마을인데, 강력한 비유와 은유의 도구로 사용된다. 갈등이나 투쟁을 드러내는 환경이기도 하다. 캐나다 시골 지역은 안전하나 고립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은희경, 앨리스 먼로를 말하다
이날의 하이라이트. 은희경 작가가 앨리스 먼로를 말하고 낭독하기 위해 등장했다. 노벨상 이전부터 앨리스 먼로를 읽고 좋아했다는 은 작가가 겨울밤을 밝혔다.
독자 여러분께 한 마디 부탁한다. 어떻게 지내나?
추운데 정말 많이 오셨다. 내 낭독회보다 훨씬 많이 왔다는 것을 기억하겠다(웃음). 늘 그렇듯, 어떻게 뭘 쓸까 고민하고, 조금씩 쓰고 있다. 내년 2월쯤 새로운 소설집이 나온다.
사실 앨리스 먼로 작가가 노벨상 받기 전에 몰랐다. 오늘 행사에 참여한 계기가 있다면?
일단 제안이 왔기 때문이고(웃음), 특히 앨리스 먼로의 소설에 관심이 많았다. 지난여름 절필을 선언해서 조금 서운했는데, 또 쓸 수도 있다고 하니까, 그런 유연함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캐나다에 대한 인상이나 생각이 있다면? 캐나다에 가본 적 있나?
10년쯤 전, 시애틀에서 가족들과 지내고 있었다. 2년 동안 가 있는 와중에, 밴쿠버의 한 교민이 내 책을 참 좋아한다며 나를 초대해줬다. 캐나다는 자연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이라는 얘길 들었는데, 막상 가보니 자연도 아름답지만, 훨씬 더 과격하고 자유롭고 비밀이 많이 있어서 많은 이야기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를 운전해서 갔는데, 미국을 지나니 표지판의 잔소리가 확 줄어들더라(웃음). 제멋대로 살아도 허용이 되는 나라라는 것이 캐나다에 대한 첫 인상이었다. 그 다음 캐나다 한 대학에서 한국문학 번역에 대한 세미나가 있었다. 그때 캐나다는 서로 간격을 유지하지만 각자의 이야기에 대해 관대한 곳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인상이 앨리스 먼로의 소설을 읽을 때 공간에 대한 상상력을 도와주더라. 캐나다 여행을 권하고 싶다. 참, 클럽을 꼭 가봐라. 휠체어를 타고 춤을 추는 연인들을 봤는데, 캐나다가 진보적인 곳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더라. 근거 없이 그냥 내 인상이다(웃음).
노벨상 수상 직후 많은 한국 독자들이 앨리스 먼로를 알게 됐는데, 은희경 작가는 그 전에 어떻게 알게 됐고, 어떤 매력을 발견했나?
‘문학집배원’(한국문화예술위원회) 당시 책을 많이 읽었다. 「사무실(작업실)」 이라는 『행복한 그림자의 춤』 이라는 소설집에 실린 단편을 소개했었다. 소설을 처음 쓸 때쯤 앨리스 먼로의 책을 읽었다. 처음 읽었을 때 받았던 인상이 되살아나서 문학집배원 독자에게 그의 소설을 소개하고 싶었다. 그는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사물에 의미를 둔다. 사물, 사람, 풍경 모두 그런데, 평범한 가운데 비범함을 발견하게 한다. 살아가는데 사실 특별한 일이 그다지 없잖나. 그럼에도 안에서는 다 뭔가를 말하고 있는데, 그는 그런 것을 말한다. 인생의 치명적인 비밀이나 섬광 같은 깨달음을 갖게 하는 매력이 있다. 그건 굉장한 힘이다. 겉으로는 온화하고 건조한데, 속에는 굉장한 파괴력이 있는 거지. 그의 인물들은 대개 평범한데, 읽다보면 서늘해진다. 비범하거나 특별해서가 아니라 우리 안에 그런 사람이 있어서 그런 것을 느낀다.
먼로 작가는 이른바 ‘단편소설 작가’다. 해외에서 장편소설은 노블, 단편소설은 쇼트 스토리라고 해서 다른 장르로 취급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먼로 작가는 단편이 그 자체로 완결성을 인정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은희경 작가가 생각하는 장편과 단편의 차이가 있다면?
인터뷰를 보니 먼로 작가의 첫 마디가 나에게도 좋지만 단편에게도 좋은 소식이라고 하던데, 작가로서 자기 정체성을 단편소설 작가에 두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말은 또 단편소설만 쓴다는 것이 문학적인 약점이라는 말을 들었음을 예상케 한다. 내 경우, 단편은 뭔가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을 때 시도하고, 장편은 어떤 이야기가 있을 때 적절한 것 같다. 단편을 쓰면서 문학의 관점이나 기량이 향상되는 느낌이 든다. 장편을 쓰고 나면 문학적 참을성이 향상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장르의 우열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짧고 강렬하게 쓰고 싶으면 단편, 많은 사람의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을 때는 장편을 쓴다. 단편을 쓸 때 훨씬 더 재밌다. 새로운 시도여서. 먼로의 소설을 보면 정통적인 단편 같지는 않다. 장편의 구성을 단편으로 무척 잘 만든 것 같다고나 할까. 먼로가 만든 단편은 정말 새로운 장르 같다.
은희경, 앨리스 먼로를 낭독하다
은희경 작가의 낭독. “여러 해 동안 나는 언젠가 그와 마주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토론토에 살았고, 지금도 그렇다. 내가 보기에는 다들 적어도 얼마간은 토론토에 와서 사는 것 같았다.… 여전히, 우리가 그 무리에서 빠져나오면 금방이라도 다시 함께할 수 있을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각자 가는 길을 계속 갈 것이라는 사실 또한 그만큼 확실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했다.… 사랑에 관한 한 정말로 변하는 것은 없다.” 「아문센」 (p.87~88)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지더라. 이 책의 다른 소설도 그렇지만, 처음 시작할 때는 아무렇지 않게 시작한다.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그 이야기가 어디로 갈지 모른다. 마지막에 흩어졌던 조각들이 한꺼번에 모이면서 섬광을 쏘고 내뿜는다. 특히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 강렬하다고 생각했다. 내용을 다 알았다고 해서 걱정할 필요 없다. 단편은 스토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말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알고 읽어도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다. 과정이 중요하니까.”
은 작가 낭독. “나는 무슨 말이라도 더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녀가 가려는 곳의 날씨가 어떤지, 그런 것을 물어본다든가.… 그녀가 말했다. “스컹크예요. 작은 스컹크들. 검은색보다 흰색이 더 많네.”… 우리가 지켜보는 동안 그것들은 한 마리씩 일어나 물통으로 멀어지더니 마당을 가로지른다. 재빠르게, 대각선으로 똑바르게. 의기양양하지만 신중하게. 다섯 마리다.… 우리는 그 순간 한없이 즐거웠다.” 「자존심」 (pp.199~200)
“먼로가 인터뷰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라고 했다더라. 이 소설도 사랑 이야기다. 두 남녀가 나오는데, 서툴다고 할까. 그런데 서툶의 방식이 다르다. 남자는 신체적인 약점을 갖고 있어서 수술을 해야 하고,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여자는 부잣집 딸이어서 다른 사람과 어울릴 기회가 없다. 어울리지 않는 사람끼리 유대를 가지면서 서로 닿지 않는다. 그런 것이 미묘하게 잘 묘사돼 있다. 닿지 않지만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다.”
이 소설, 앞부분은 비극적이고 불행한 결말로 치닫게 하는 예감을 주나 마지막 부분엔 스컹크를 통해 빛나는 순간을 보여주는 미학이 있다. 스컹크를 본 적이 있나?
숲에서 스컹크를 본 적이 있다. 내가 위험하지 않았던지 냄새를 피우진 않더라(웃음). 많은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가 가진 선입관을 많이 깨는데, 우리는 그런 식으로 사유하는데 길들여진 것 같다. 스컹크 하면 냄새, 비둘기 하면 평화. 그런 것을 먼로 작가가 자주 깨준다. 먼로의 작품은 읽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어려워서가 아니고 미세해서 그렇다. 익숙한 장면이 많으면 빨리 읽을 수 있으나 먼로는 설명하는 게 별로 없다. 늘 뜻밖의 사건이 일어나고 뜻밖의 문장이나 대사가 나와서 읽기가 쉽지 않다. 읽기 쉽다는 건 익숙하기 때문이다. 문학은 익숙한 것을 깨고 새로운 것을 제시하는 것이라, 먼로의 재능이 단편에서 더 빛을 본다고 생각한다. 짧은 위로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이 아니냐, 따져 묻지 말자는 메시지가 있는 것 같고, 어떤 것을 캐기보다 짧은 위안에 의미를 두는 것이 굉장히 설득력이 있었다. 삶이 길게 행복하고 기쁠 수 없다. 대부분 일상으로 채워져 있는데, 짧게 우연히 마주친 장면을 보고 갑자기 곁에 있는 사람과 나눌 수 있다는 것, 그 정도에서 위안을 준다는 게 냉혹한 진실 같지만 작가가 가진 따뜻함의 정체가 아닐까 생각한다.
은희경의 낭독. “내 어머니는 그 사실을, 우리집에 네터필드 가족이 살았던 것을 몰랐을까? 그 노부인이 한때 자신의 집이었던 곳의 창문을 들여다보고 있었다는 것도?… 사람들은 말한다. 어떤 일들은 용서받을 수 없다고, 혹은 우리 자신을 결코 용서할 수 없다고. 하지만 우리는 용서한다. 언제나 그런다.” 「디어 라이프」 (pp.414~416)
“저자 자신이 책을 시작하려는 독자에게 권하고 싶은 소설이라고 말했는데, 이 책이 자기 인생을 총정리를 한다고나 할까, 팔순의 작가가 마지막에 도달한 지점이라고 할까, 마지막 소설의 마지막 장면을 읽어보고 싶었다.”
디어 라이프가 표제작인데, 디어가 두 가지 뜻이 있다. 형용사로 쓰일 때는 삶(인생)에게 라는 말이나, ‘for’라는 전치사를 붙이면 죽기 살기로, 있는 힘껏, 이라는 뜻이 된다. 작가가 왜 「디어 라이프」 를 표제작으로 삼았을지 생각했는데, 죽기 살기로 다가가야만 삶에 조금이나마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전언이 아닐까. 나머지 소설도 읽어본다면 삶에게 편지를 쓸 때 어떻게 쓸 것인지 도움이 될 것 같다.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 소설에서 ‘디어 라이프’가 딱 한 번 나온다더라. 죽기 살기로 살아가는 것이지만 그래도 인생은 살만하다는 메시지를 준다고 느꼈다. 먼로가 우리에게 보여준 세계는 쉽지 않다. 따뜻하지도 않다. 안이하게 접근하면 뭐지, 뭐지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계속 다른 관점에서 말을 하기 때문에 쉽게 읽으려다가 많은 생각을 해야 한다. 나는 인생을 이해한다는 건 넌센스라고 생각한다. 인생은 이해 못하고 살아갈 뿐이라고 생각하는데, 먼로의 작품은 그렇게 살아가면서 내가 어떤 인생을 살아가는지 느끼게 해준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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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먼로의 최신작이자 스스로 마지막 작품이라고 칭한 『디어 라이프』 가 최근 출간됐다. 또 올해 한국과 캐나다 수교 50주년(1963년)을 맞아, 지난 12월 13일, 서울 정동 주한캐나다대사관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앨리스 먼로를 좋아하는 은희경 작가를 초대해 ‘은희경과 함께하는 『디어 라이프』 낭독회’를 개최한 것. 와인 파티를 겸해 열린 이번 행사는 문학평론가 허희의 사회로 먼로 작가의 노벨상 인터뷰와 캐나다 사람들이 소개하는 먼로, 은희경 작가가 소개하는 먼로와 낭독 등으로 구성됐다.
앨리스 먼로, 단편을 말하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 직후 앨리스 먼로 작가가 노벨상위원회와의 전화 인터뷰.
지금까지 작품 활동을 하면서 변한 것 같나, 그렇지 않은 것 같나?
내 생간엔 많이 변한 것 같지는 않은데, 그 질문엔 다른 분들이 더 잘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노벨문학상의 의미를 부여한다면?
단편소설계 전체를 위해서 좋은 일인 것 같다. 많은 작가들이 장편을 쓰기 위한 전 단계로 단편을 쓰는데, 장편을 쓰기 위한 단편이 아니라 그 자체로 완결된 단편을 보여주고 싶었다.
독자들에게 앨리스 먼로의 첫 시작으로 어떤 작품을 추천하고 싶은가?
가장 최근 작품이 좋지 않을까? 그리고 이전 작품들도 읽으면 좋겠다.
올해 초 절필을 선언했다. 이 기회를 통해 다시 펜을 들고 싶은 생각은 없나?
20대부터 쭉 글을 쓰고 책을 출간해왔고 그것은 꽤 긴 시간이었다. 이제 좀 쉬어도 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마음이 변할 수도 있겠다.
캐나다 사람들에게 앨리스 먼로란?
제임스 트로티에 참사관의 축사를 위해 등장했다. 그는 캐나다인으로서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110년 노벨상 역사에서 열세 번째 여성 수상자인 앨리스 먼로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이었다.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가 먼로 작가를 수상자로 선정했을 때 캐나다인들은 그녀의 업적에 대해 크나큰 자부심을 느꼈다”고 운을 뗀 그는 “노벨문학상이 단편소설만 쓰는 작가에게 간 것은 많은 이들에게 큰 기쁨이 됐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노벨상위원회에서는 현대 단편의 대가로 그녀를 묘사했는데, 캐나다인들에게 먼로는 그 이상”이라며 “그의 이야기는 우리 지역사회와 국민을 바탕으로 하며 보편적인 진리를 전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캐나다 온타리오에서 태어난 먼로 작가의 많은 작품이 그곳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의 단편 중 하나가 영화로 만들어진 바 있는데, 2006년 <어웨이 프롬 허>가 그것이다. 그의 작품인 「곰이 산을 넘어오다」 가 원작이다. 제임스 참사관은 “건강문제로 시상식에 참여하지 못한 먼로 작가가 노벨상 시상식을 TV로 본 후 노벨상 수상은 내 커리어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해줬다고 말했다”며 “그의 작품이 한국어로 소개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낭독회를 통해 캐나다의 독특한 이야기를 한국의 관점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캐나다인 안젤라 후드는 ‘캐나다인이 본 앨리스 먼로의 작품’이라는 주제로 말을 이었다. 그는 “먼로는 인간이 무엇인가에 대해 말해준다”며 “압축적인 산문으로 평범한 것을 비범한 것으로 만드는 재능이 있다”고 말을 뗐다. 그는 먼로의 작품을 통해 자신이 변화한 경험을 이야기했다. 어렸을 때 독서를 좋아하지 않았던 그를 변화시킨 것이 먼로(의 작품)이었다. 책을 읽지 않았던 그가 고등학교 때 먼로의 단편을 읽어보라는 선생의 권유로 「목성의 달」 이라는 작품을 읽었다. 책에 관심이 없던 그는 이 책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고, 이후 문학을 전공하게 됐다. 안젤라는 “먼로는 평범한 일상을 비범하게 풀어나가는 재주가 있다”며 “먼로 작품의 장소를 보면 전통적이고 전형적인 마을인데, 강력한 비유와 은유의 도구로 사용된다. 갈등이나 투쟁을 드러내는 환경이기도 하다. 캐나다 시골 지역은 안전하나 고립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은희경, 앨리스 먼로를 말하다
이날의 하이라이트. 은희경 작가가 앨리스 먼로를 말하고 낭독하기 위해 등장했다. 노벨상 이전부터 앨리스 먼로를 읽고 좋아했다는 은 작가가 겨울밤을 밝혔다.
독자 여러분께 한 마디 부탁한다. 어떻게 지내나?
추운데 정말 많이 오셨다. 내 낭독회보다 훨씬 많이 왔다는 것을 기억하겠다(웃음). 늘 그렇듯, 어떻게 뭘 쓸까 고민하고, 조금씩 쓰고 있다. 내년 2월쯤 새로운 소설집이 나온다.
사실 앨리스 먼로 작가가 노벨상 받기 전에 몰랐다. 오늘 행사에 참여한 계기가 있다면?
일단 제안이 왔기 때문이고(웃음), 특히 앨리스 먼로의 소설에 관심이 많았다. 지난여름 절필을 선언해서 조금 서운했는데, 또 쓸 수도 있다고 하니까, 그런 유연함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캐나다에 대한 인상이나 생각이 있다면? 캐나다에 가본 적 있나?
10년쯤 전, 시애틀에서 가족들과 지내고 있었다. 2년 동안 가 있는 와중에, 밴쿠버의 한 교민이 내 책을 참 좋아한다며 나를 초대해줬다. 캐나다는 자연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이라는 얘길 들었는데, 막상 가보니 자연도 아름답지만, 훨씬 더 과격하고 자유롭고 비밀이 많이 있어서 많은 이야기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를 운전해서 갔는데, 미국을 지나니 표지판의 잔소리가 확 줄어들더라(웃음). 제멋대로 살아도 허용이 되는 나라라는 것이 캐나다에 대한 첫 인상이었다. 그 다음 캐나다 한 대학에서 한국문학 번역에 대한 세미나가 있었다. 그때 캐나다는 서로 간격을 유지하지만 각자의 이야기에 대해 관대한 곳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인상이 앨리스 먼로의 소설을 읽을 때 공간에 대한 상상력을 도와주더라. 캐나다 여행을 권하고 싶다. 참, 클럽을 꼭 가봐라. 휠체어를 타고 춤을 추는 연인들을 봤는데, 캐나다가 진보적인 곳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더라. 근거 없이 그냥 내 인상이다(웃음).
노벨상 수상 직후 많은 한국 독자들이 앨리스 먼로를 알게 됐는데, 은희경 작가는 그 전에 어떻게 알게 됐고, 어떤 매력을 발견했나?
‘문학집배원’(한국문화예술위원회) 당시 책을 많이 읽었다. 「사무실(작업실)」 이라는 『행복한 그림자의 춤』 이라는 소설집에 실린 단편을 소개했었다. 소설을 처음 쓸 때쯤 앨리스 먼로의 책을 읽었다. 처음 읽었을 때 받았던 인상이 되살아나서 문학집배원 독자에게 그의 소설을 소개하고 싶었다. 그는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사물에 의미를 둔다. 사물, 사람, 풍경 모두 그런데, 평범한 가운데 비범함을 발견하게 한다. 살아가는데 사실 특별한 일이 그다지 없잖나. 그럼에도 안에서는 다 뭔가를 말하고 있는데, 그는 그런 것을 말한다. 인생의 치명적인 비밀이나 섬광 같은 깨달음을 갖게 하는 매력이 있다. 그건 굉장한 힘이다. 겉으로는 온화하고 건조한데, 속에는 굉장한 파괴력이 있는 거지. 그의 인물들은 대개 평범한데, 읽다보면 서늘해진다. 비범하거나 특별해서가 아니라 우리 안에 그런 사람이 있어서 그런 것을 느낀다.
먼로 작가는 이른바 ‘단편소설 작가’다. 해외에서 장편소설은 노블, 단편소설은 쇼트 스토리라고 해서 다른 장르로 취급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먼로 작가는 단편이 그 자체로 완결성을 인정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은희경 작가가 생각하는 장편과 단편의 차이가 있다면?
인터뷰를 보니 먼로 작가의 첫 마디가 나에게도 좋지만 단편에게도 좋은 소식이라고 하던데, 작가로서 자기 정체성을 단편소설 작가에 두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말은 또 단편소설만 쓴다는 것이 문학적인 약점이라는 말을 들었음을 예상케 한다. 내 경우, 단편은 뭔가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을 때 시도하고, 장편은 어떤 이야기가 있을 때 적절한 것 같다. 단편을 쓰면서 문학의 관점이나 기량이 향상되는 느낌이 든다. 장편을 쓰고 나면 문학적 참을성이 향상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장르의 우열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짧고 강렬하게 쓰고 싶으면 단편, 많은 사람의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을 때는 장편을 쓴다. 단편을 쓸 때 훨씬 더 재밌다. 새로운 시도여서. 먼로의 소설을 보면 정통적인 단편 같지는 않다. 장편의 구성을 단편으로 무척 잘 만든 것 같다고나 할까. 먼로가 만든 단편은 정말 새로운 장르 같다.
은희경, 앨리스 먼로를 낭독하다
은희경 작가의 낭독. “여러 해 동안 나는 언젠가 그와 마주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토론토에 살았고, 지금도 그렇다. 내가 보기에는 다들 적어도 얼마간은 토론토에 와서 사는 것 같았다.… 여전히, 우리가 그 무리에서 빠져나오면 금방이라도 다시 함께할 수 있을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각자 가는 길을 계속 갈 것이라는 사실 또한 그만큼 확실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했다.… 사랑에 관한 한 정말로 변하는 것은 없다.” 「아문센」 (p.87~88)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지더라. 이 책의 다른 소설도 그렇지만, 처음 시작할 때는 아무렇지 않게 시작한다.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그 이야기가 어디로 갈지 모른다. 마지막에 흩어졌던 조각들이 한꺼번에 모이면서 섬광을 쏘고 내뿜는다. 특히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 강렬하다고 생각했다. 내용을 다 알았다고 해서 걱정할 필요 없다. 단편은 스토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말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알고 읽어도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다. 과정이 중요하니까.”
은 작가 낭독. “나는 무슨 말이라도 더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녀가 가려는 곳의 날씨가 어떤지, 그런 것을 물어본다든가.… 그녀가 말했다. “스컹크예요. 작은 스컹크들. 검은색보다 흰색이 더 많네.”… 우리가 지켜보는 동안 그것들은 한 마리씩 일어나 물통으로 멀어지더니 마당을 가로지른다. 재빠르게, 대각선으로 똑바르게. 의기양양하지만 신중하게. 다섯 마리다.… 우리는 그 순간 한없이 즐거웠다.” 「자존심」 (pp.199~200)
“먼로가 인터뷰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라고 했다더라. 이 소설도 사랑 이야기다. 두 남녀가 나오는데, 서툴다고 할까. 그런데 서툶의 방식이 다르다. 남자는 신체적인 약점을 갖고 있어서 수술을 해야 하고,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여자는 부잣집 딸이어서 다른 사람과 어울릴 기회가 없다. 어울리지 않는 사람끼리 유대를 가지면서 서로 닿지 않는다. 그런 것이 미묘하게 잘 묘사돼 있다. 닿지 않지만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다.”
이 소설, 앞부분은 비극적이고 불행한 결말로 치닫게 하는 예감을 주나 마지막 부분엔 스컹크를 통해 빛나는 순간을 보여주는 미학이 있다. 스컹크를 본 적이 있나?
숲에서 스컹크를 본 적이 있다. 내가 위험하지 않았던지 냄새를 피우진 않더라(웃음). 많은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가 가진 선입관을 많이 깨는데, 우리는 그런 식으로 사유하는데 길들여진 것 같다. 스컹크 하면 냄새, 비둘기 하면 평화. 그런 것을 먼로 작가가 자주 깨준다. 먼로의 작품은 읽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어려워서가 아니고 미세해서 그렇다. 익숙한 장면이 많으면 빨리 읽을 수 있으나 먼로는 설명하는 게 별로 없다. 늘 뜻밖의 사건이 일어나고 뜻밖의 문장이나 대사가 나와서 읽기가 쉽지 않다. 읽기 쉽다는 건 익숙하기 때문이다. 문학은 익숙한 것을 깨고 새로운 것을 제시하는 것이라, 먼로의 재능이 단편에서 더 빛을 본다고 생각한다. 짧은 위로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이 아니냐, 따져 묻지 말자는 메시지가 있는 것 같고, 어떤 것을 캐기보다 짧은 위안에 의미를 두는 것이 굉장히 설득력이 있었다. 삶이 길게 행복하고 기쁠 수 없다. 대부분 일상으로 채워져 있는데, 짧게 우연히 마주친 장면을 보고 갑자기 곁에 있는 사람과 나눌 수 있다는 것, 그 정도에서 위안을 준다는 게 냉혹한 진실 같지만 작가가 가진 따뜻함의 정체가 아닐까 생각한다.
은희경의 낭독. “내 어머니는 그 사실을, 우리집에 네터필드 가족이 살았던 것을 몰랐을까? 그 노부인이 한때 자신의 집이었던 곳의 창문을 들여다보고 있었다는 것도?… 사람들은 말한다. 어떤 일들은 용서받을 수 없다고, 혹은 우리 자신을 결코 용서할 수 없다고. 하지만 우리는 용서한다. 언제나 그런다.” 「디어 라이프」 (pp.414~416)
“저자 자신이 책을 시작하려는 독자에게 권하고 싶은 소설이라고 말했는데, 이 책이 자기 인생을 총정리를 한다고나 할까, 팔순의 작가가 마지막에 도달한 지점이라고 할까, 마지막 소설의 마지막 장면을 읽어보고 싶었다.”
디어 라이프가 표제작인데, 디어가 두 가지 뜻이 있다. 형용사로 쓰일 때는 삶(인생)에게 라는 말이나, ‘for’라는 전치사를 붙이면 죽기 살기로, 있는 힘껏, 이라는 뜻이 된다. 작가가 왜 「디어 라이프」 를 표제작으로 삼았을지 생각했는데, 죽기 살기로 다가가야만 삶에 조금이나마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전언이 아닐까. 나머지 소설도 읽어본다면 삶에게 편지를 쓸 때 어떻게 쓸 것인지 도움이 될 것 같다.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 소설에서 ‘디어 라이프’가 딱 한 번 나온다더라. 죽기 살기로 살아가는 것이지만 그래도 인생은 살만하다는 메시지를 준다고 느꼈다. 먼로가 우리에게 보여준 세계는 쉽지 않다. 따뜻하지도 않다. 안이하게 접근하면 뭐지, 뭐지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계속 다른 관점에서 말을 하기 때문에 쉽게 읽으려다가 많은 생각을 해야 한다. 나는 인생을 이해한다는 건 넌센스라고 생각한다. 인생은 이해 못하고 살아갈 뿐이라고 생각하는데, 먼로의 작품은 그렇게 살아가면서 내가 어떤 인생을 살아가는지 느끼게 해준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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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어 라이프 앨리스 먼로 저/정연희 역 | 문학동네
『디어 라이프』 는 2013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앨리스 먼로가 2012년에 출간한 최신작이자, 그녀가 절필을 선언하기 전 세상에 내놓은 마지막 작품이다. 앨리스 먼로 최고의 작품집이라는 평가를 받은 이 작품으로 앨리스 먼로는 생애 세번째 트릴리움상 수상의 영광을 안기도 했다. 82세의 거장이 남긴 마지막 작품답게, 『디어 라이프』 는 앨리스 먼로의 그 어느 단편집보다 힘 있고 아름답다. “현대 단편소설의 거장”이라는 수식어가 결코 과장이 아님을 그녀는 이 작품집을 통해 다시 입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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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이준수
커피로 세상을 사유하는,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를 내리는 남자.
마을 공동체 꽃을 피우기 위한 이야기도 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