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어를 사용하는 무서운 10대
내년이면 나이가 계란 한 판을 넘어선다. 자연스럽게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가 애창곡이 되었다. 하지만 가장 큰 설움을 느낄 때는 따로 있다. 아이들의 대화를 듣고 있을 때 오는 허탈감을 느낄 때다.
2013.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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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어 구사능력이 뛰어난 10대?
고등학생들을 마주칠 때면 고개를 숙이고 지나간다. 만약 곱지 않은 인상의 소유자라도 있다면 길을 우회한다. “다 큰 청년이 뭐가 무서워서 피하냐?”냐고 핀잔을 줄 수 있지만, 이상하게 고등학생들을 보면 주눅이 든다. 체격조건이 전혀 밀리지 않는데 말이다.
되도록 고등학생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의도치 않게 엿듣게 되는 대화는 피할 수 없다. 듣기 싫어도 두 귀가 있으니 말이다. 몇 년 전 대중교통 안에서 사진을 보며 “야! 캐멋있어!”라 외치던 여고생이 생각난다. 순간 난 “아… 개를 사랑하는 순수한 아이들이구나!”라 생각했었다.
알고 보니 실상은 전혀 다른 말이었다. 여기서 ‘캐-‘는 접두사로서 강조하는 역할로 사용되었다. 예를 들면, “캐싫어!”, ”캐맛있어!” 처럼 말이다. 10대들의 놀라운 단어형성능력에 놀랐고 언어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 가슴 속 수치심을 안겨 준 에피소드였다.
카톡테마만 깜찍한 10대들의 대화
다른 에피소드도 생각난다. 등록금 마련을 위해 학원에서 강사로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다. 친구처럼 다가가려고 아이들과 많은 대화를 나눴는데 이 때 세대차이를 느꼈다. 특히 초등학생들과 이야기를 할 때면 무슨 말을 하는지 전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마치 토익 LC시험을 보고 있는 시험장에 온 기분이었다.
그렇다면, 그들만의 문화를 공유하고 언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공부는 끝이 없다. 10대들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이돌만으로 부족하다.
언어도 공부해야 한다.
그들만의 세상 속 언어
질풍노도의 시기에 겪는 현상으로 생각하는 건 무리가 있다. 또래집단과의 문화공유의 차원으로 보는 시선은 진부한 이야기처럼 들린다. 이외에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려고 한다. ‘왕따 문화’와 ‘매체의 변화’의 측면이다.
첫 번째는 학교 깊숙이 존재하는 ‘왕따 문화’다. 일본에서 ‘이지메[ イジメ ]’ 라 불리는 문화로 한국 교실에 유행처럼 들어왔다. 많은 부작용을 가져왔으며 언어적인 측면도 마찬가지다. 비교언어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왕따 문화’의 전후 시기 사용된 단어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왕따’는 ‘왕따 문화’가 들어오면서 생긴 단어다. 격한 단어들도 많이 볼 수 있다.
단순히 단어의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비교하는 접근에 목적을 두는 건 아니다. 그 이면의 숨겨진 부분을 강조하고 싶다. 강력한 결속력의 결과물로 태어난 집단간의 문화교류의 부분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왕따문화’가 있다.
두 번째는 대화를 주고 받는 ‘매체의 변화’ 다. 기술의 발전으로 40자의 제한된 글이 아닌 장문의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다. MSN과 네이트온과 같은 메신져프로그램은 PC환경에서 모바일 환경으로 옮겨져 공간의 제약도 사라졌다. 대화를 제약하는 시공간의 장벽이 무너진 것이다.
네이트온은 로맨스의 시작이었다.
로그인과 동시에 난 한 마리 하이에나가 되었다.
매일 수 많은 메시지를 주고 받기 때문에 축약된 표현의 쓰임이 많아졌다. 예를 들면, “안녕하세요.” 는 “ㅎㅇ”로 한글 초성으로 축약하여 사용한다. 이외에도”내가 그랬다고? 막이래”의 “막이래” 와 같은 표현도 빈번히 사용된다. 문장에 끝에 위치한 강조의 부사어로 경상도 사투리 “막 이케”와 같은 뜻이다. 반복되고 강조되는 표현의 쓰임이 유독 많아졌다.
대화의 빈도가 높아질수록 다양한 언어현상이 나타난다. 언어는 대화를 통해서 전승되고 발전하기 때문이다. 10대들의 언어도 마찬가지다. 대화를 통해서 그들의 문화가 이어지고 발전하는 것이다. 언어는 하나의 도구로서 사용될 뿐이다.
단순하게 나쁘다고 생각해야 하나?
사람들은 10대들의 언어습관으로 인해 한글이 파괴된다고 많은 걱정을 한다. 10대들의 입장에서는 어떨까? 올바른 국어문법을 숙지하고 사용하면 애늙은이 취급을 받기 쉽다. 또래들과의 원활하게 대화를 나눌 수도 없다. 현실적으로는 언어영역에 문법문제를 맞힐 정도의 수준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10대들의 무분별한 언어사용에 대한 걱정은 충분히 공감한다. 하지만 그들의 언어는 다른 관점으로 봐야 한다. 즉, 그들의 언어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문법체계로 생각해야 한다. 공식적인 자리나 시험문제에 사용하는 일은 없으니 말이다.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에 있는 자료. 언어가 갖고 있는 생산성의 특징을 반영한 예라고 생각한다.
[출처: 국립국어원]
언어는 문화를 반영한다. 다양한 언어가 존재하는 만큼 문화도 마찬가지로 존재한다. 기성세대의 잣대를 가지고 10대의 언어습관과 문화를 판단하는 건 무리가 있다. 부정적이고 걱정스러운 시선은 잠시 접어두자. 이제는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할 때이다.
[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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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들을 마주칠 때면 고개를 숙이고 지나간다. 만약 곱지 않은 인상의 소유자라도 있다면 길을 우회한다. “다 큰 청년이 뭐가 무서워서 피하냐?”냐고 핀잔을 줄 수 있지만, 이상하게 고등학생들을 보면 주눅이 든다. 체격조건이 전혀 밀리지 않는데 말이다.
되도록 고등학생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의도치 않게 엿듣게 되는 대화는 피할 수 없다. 듣기 싫어도 두 귀가 있으니 말이다. 몇 년 전 대중교통 안에서 사진을 보며 “야! 캐멋있어!”라 외치던 여고생이 생각난다. 순간 난 “아… 개를 사랑하는 순수한 아이들이구나!”라 생각했었다.
알고 보니 실상은 전혀 다른 말이었다. 여기서 ‘캐-‘는 접두사로서 강조하는 역할로 사용되었다. 예를 들면, “캐싫어!”, ”캐맛있어!” 처럼 말이다. 10대들의 놀라운 단어형성능력에 놀랐고 언어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 가슴 속 수치심을 안겨 준 에피소드였다.
카톡테마만 깜찍한 10대들의 대화
다른 에피소드도 생각난다. 등록금 마련을 위해 학원에서 강사로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다. 친구처럼 다가가려고 아이들과 많은 대화를 나눴는데 이 때 세대차이를 느꼈다. 특히 초등학생들과 이야기를 할 때면 무슨 말을 하는지 전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마치 토익 LC시험을 보고 있는 시험장에 온 기분이었다.
그렇다면, 그들만의 문화를 공유하고 언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공부는 끝이 없다. 10대들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이돌만으로 부족하다.
언어도 공부해야 한다.
그들만의 세상 속 언어
질풍노도의 시기에 겪는 현상으로 생각하는 건 무리가 있다. 또래집단과의 문화공유의 차원으로 보는 시선은 진부한 이야기처럼 들린다. 이외에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려고 한다. ‘왕따 문화’와 ‘매체의 변화’의 측면이다.
첫 번째는 학교 깊숙이 존재하는 ‘왕따 문화’다. 일본에서 ‘이지메[ イジメ ]’ 라 불리는 문화로 한국 교실에 유행처럼 들어왔다. 많은 부작용을 가져왔으며 언어적인 측면도 마찬가지다. 비교언어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왕따 문화’의 전후 시기 사용된 단어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왕따’는 ‘왕따 문화’가 들어오면서 생긴 단어다. 격한 단어들도 많이 볼 수 있다.
단순히 단어의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비교하는 접근에 목적을 두는 건 아니다. 그 이면의 숨겨진 부분을 강조하고 싶다. 강력한 결속력의 결과물로 태어난 집단간의 문화교류의 부분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왕따문화’가 있다.
두 번째는 대화를 주고 받는 ‘매체의 변화’ 다. 기술의 발전으로 40자의 제한된 글이 아닌 장문의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다. MSN과 네이트온과 같은 메신져프로그램은 PC환경에서 모바일 환경으로 옮겨져 공간의 제약도 사라졌다. 대화를 제약하는 시공간의 장벽이 무너진 것이다.
네이트온은 로맨스의 시작이었다.
로그인과 동시에 난 한 마리 하이에나가 되었다.
매일 수 많은 메시지를 주고 받기 때문에 축약된 표현의 쓰임이 많아졌다. 예를 들면, “안녕하세요.” 는 “ㅎㅇ”로 한글 초성으로 축약하여 사용한다. 이외에도”내가 그랬다고? 막이래”의 “막이래” 와 같은 표현도 빈번히 사용된다. 문장에 끝에 위치한 강조의 부사어로 경상도 사투리 “막 이케”와 같은 뜻이다. 반복되고 강조되는 표현의 쓰임이 유독 많아졌다.
대화의 빈도가 높아질수록 다양한 언어현상이 나타난다. 언어는 대화를 통해서 전승되고 발전하기 때문이다. 10대들의 언어도 마찬가지다. 대화를 통해서 그들의 문화가 이어지고 발전하는 것이다. 언어는 하나의 도구로서 사용될 뿐이다.
단순하게 나쁘다고 생각해야 하나?
사람들은 10대들의 언어습관으로 인해 한글이 파괴된다고 많은 걱정을 한다. 10대들의 입장에서는 어떨까? 올바른 국어문법을 숙지하고 사용하면 애늙은이 취급을 받기 쉽다. 또래들과의 원활하게 대화를 나눌 수도 없다. 현실적으로는 언어영역에 문법문제를 맞힐 정도의 수준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10대들의 무분별한 언어사용에 대한 걱정은 충분히 공감한다. 하지만 그들의 언어는 다른 관점으로 봐야 한다. 즉, 그들의 언어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문법체계로 생각해야 한다. 공식적인 자리나 시험문제에 사용하는 일은 없으니 말이다.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에 있는 자료. 언어가 갖고 있는 생산성의 특징을 반영한 예라고 생각한다.
[출처: 국립국어원]
언어는 문화를 반영한다. 다양한 언어가 존재하는 만큼 문화도 마찬가지로 존재한다. 기성세대의 잣대를 가지고 10대의 언어습관과 문화를 판단하는 건 무리가 있다. 부정적이고 걱정스러운 시선은 잠시 접어두자. 이제는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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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개의 댓글
필자
윤중희
함께 살아야죠. 다 같이 행복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