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사람들의 귀에 꽂히다! - 베토벤, <교향곡 7번 A장조 op.92>
7번은 대표적으로 리드미컬한 교향곡입니다. 듣는 이의 마음을 흥겹게 고조시키는 리듬이 거의 전 악장에 걸쳐서 빈번히 등장합니다. 심하게 출렁거리며 호호탕탕하게 흘러가는 거대한 강물의 에너지를 느끼게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훗날 바그너는 이 곡을 “춤의 성화(聖化)”라고 표현했습니다. 베토벤의 여러 교향곡 중에서도 ‘디오니소스적인 즐거움이 넘치는 곡’, 혹은 ‘강박적인 리듬의 교향곡’이라는 평가가 내려져 있습니다.
2013.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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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교향곡’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클래식 음악의 여러 장르 가운데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가장 즐겨 듣는 장르는 아마도 교향곡일 듯합니다. 독일어와 프랑스어로는 symphonie, 영어로는 symphony로 씁니다. 독일이나 프랑스, 영국보다 이 용어를 더 먼저 썼던 이탈리아에서는 sinfonia라고 씁니다. 어원은 그리스어 symphonia입니다. ‘함께 소리를 낸다’는 뜻이지요. 사람의 목소리가 음악의 중심이었던 시절에, 그러니까 거의 18세기에 다다를 때까지, 노래 없이 악기만으로 연주되는 부분을 ‘신포니아’라고 칭했습니다. 말하자면 당시의 신포니아는 음악 전체에서 아주 부수적인 존재로 취급받았습니다.
그러다가 18세기 초반 이탈리아에서 오페라의 ‘서곡’을 신포니아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이때도 음악의 중심은 여전히 성악이었지요. 그런데 당시의 오페라 극장은 어땠을까요? 매우 소란스러웠습니다. 연주회는 주로 귀족들의 사교모임이었고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일종의 여흥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웃고 떠들고 심지어는 강아지를 데리고 연주회장에 오기도 했습니다.
아, 강아지, 하니까 생각나는 일이 있습니다. 한 6~7년 전의 일인 것 같은데,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도 강아지를 데리고 온 관객이 한 명 있었습니다. 작은 강아지를 큰 가방에 넣어 콘서트홀로 슬쩍 들어온 것이지요. 물론 있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그 강아지는 당연히 연주회 내내 버둥거리고 낑낑거렸습니다. 강아지로서도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을 겁니다. 참다못한 옆자리 관객이 중간휴식 시간에 콘서트홀 관리자에게 심하게 항의하는 사태가 마침내 벌어지고 말았지요. 당황한 관리자는 강아지를 ‘동반’한 아주머니를 간곡히 설득했습니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강아지를 데리고 2부 공연에는 절대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자 아주머니의 답변이 가관이었습니다. “무슨 말이에욧! 우리 아이가 얼마나 음악을 좋아하는데. 사람보다 훨씬 음악을 많이 안다구!”
이 아주머니는 강아지를 제대로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타자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것이 강아지든 사람이든 그 타자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아주머니는 끝까지 자기중심적이었습니다. 자신의 만족을 위해 강아지에게 비싼 옷을 사 입히고 급기야는 연주회장 안에까지 데리고 들어온 것이었습니다. 사실은 강제로 끌고 온 것이지요. 그 아주머니는 대체 왜 그랬던 걸까요? 정신적으로 미숙하기 때문입니다. 아주머니의 신체적 나이는 중년이었지만, 정신연령 혹은 사회적 연령은 고작 너댓 살 정도로 보였습니다. 어린 아이는 엄마의 생일날 자기가 갖고 싶어 하는 예쁜 인형이나 맛있는 초콜릿을 선물하려 하지요? 자기가 좋아하니까 엄마도 당연히 좋아할 거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어린 아이들은 아직 자기중심적입니다. 하지만 점차 나이가 들어가면서 달라지지요.
자, 어쨌든 18세기의 오페라 극장은 귀족 부인이 개를 동반하고 들어가도 무방한 곳이었습니다. ‘강아지 동반’이 사회적으로 허락된 상태였던 것이지요. 게다가 오늘날의 콘서트홀처럼 조명을 암전시켜서 사람들이 조용해지기를 유도할 수도 없었습니다. 사정이 그러하니 분위기가 얼마나 어수선했겠습니까. 그래서 사람들에게 지금부터 음악회를 시작한다는 신호를 보낼 장치가 필요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서곡’입니다. “이제부터 음악을 연주하겠으니 좀 조용히 해주세요”라는 사인이었던 셈입니다. 바로 그렇게, 오페라의 막이 본격적으로 오르기 전에 가볍게 연주했던 서곡을 ‘신포니아’라고 불렀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즐겨 듣는 교향곡의 역사는 그렇게 막을 올렸습니다.
오페라 연주 직전에 실용적인 용도로 연주됐던 심포니의 위상을 보다 높은 곳으로 끌어올린 음악가로는 이탈리아 궁정음악가 삼마르티니(1700~1775), 또 독일 만하임 궁정의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던 요한 슈타미츠(1717~1757) 같은 인물들이 손꼽힙니다. 그들에 의해 교향곡은 점차 ‘제대로 된 독립적인 음악’으로서의 꼴을 갖춰갑니다. 하지만 여전히 교향곡은 오늘날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는 음악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하이든과 모차르트에 와서야 오늘날 우리가 듣는 교향곡의 형태가 갖춰지기 시작합니다. 이른바 고전주의 교향곡의 태동, 말하자면 작곡가의 음악적 이상을 담아내는 동시에 형식적으로도 몇 가지 합의된 규칙들을 도출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예컨대 서로 대비되는 성격의 4개 악장을 배치하는 것, 그중에서도 1악장에서는 소나타 형식을 구현하는 것 등입니다. (소나타 형식에 대해서는 ‘내 인생의 클래식 101’ 8월 19일자 하이든의 교향곡 94번 ‘놀람’ 편을 참조해주시길) 특히 하이든이 삶의 후반부에 영국 런던에서 발표했던 12곡의 교향곡, 또 모차르트가 빈에서 보낸 마지막 10년 동안에 썼던 6곡의 교향곡이 그렇습니다. 이른바 ‘근대적 교향곡’의 역사가 그렇게 본격 행보를 내딛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베토벤. 오늘날 우리가 교향곡을 오케스트라 음악의 완성이자 최고의 봉우리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순전히 베토벤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오페라의 서곡’이라는 하찮은 자리에 놓여 있던 음악을 최고의 자리로 격상시킨 주인공은 바로 베토벤이었습니다. 19세기의 벽두인 1800년에 초연한 교향곡 1번부터 세상을 떠나기 3년 전인 1824년에 초연한 9번 ‘합창’까지, 그가 남긴 9곡의 교향곡은 교향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이정표와도 같았습니다. 적어도 교향곡 3번 ‘에로이카’에서부터 베토벤은 콘서트홀에 모여든 청중에게 단순한 음악의 재미를 뛰어넘는 막대한 감동의 드라마를 선보였습니다. 당연히 후대의 많은 작곡가들에게 영향을 미쳤지요. 베를리오즈와 바그너, 브람스, 리스트 등의 작곡가들이 베토벤의 음악에서 예술적 영감과 창작의 스트레스를 동시에 받았습니다. 훗날 말러는 교향곡을 일컬어 “하나의 세계”라고 표현했는데, 그 의미심장한 발언의 뿌리는 다름 아닌 베토벤이었다고 봐야 하겠습니다.
자, 지금까지 ‘내 인생의 클래식 101’에서 함께 들었던 베토벤의 교향곡들을 한번 되짚어보겠습니다. 3번, 5번, 6번, 9번이었습니다. 눈치 채셨겠지만 중요한 곡 하나가 빠져 있습니다. 바로 오늘 들을 7번 A장조입니다. 한데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인터넷 검색창에 ‘베토벤 교향곡’이라고 입력해 봤더니 교향곡 9번 다음에 바로 7번이 뜹니다. 사실 좀 놀랐습니다. 한 10년 전까지만 해도 베토벤의 아홉 개 교향곡 중에서 7번이 인기 2순위라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럴 리가 없는데, 라는 생각을 하면서 왜 이렇게 인기가 상승했을까를 곰곰 따져봤습니다.
첫번째로 떠오르는 것은 드라마와 영화의 영향입니다. 알려져 있듯이 교향곡 7번은 ‘노다메 칸타빌레’라는 일본 드라마의 오프닝곡으로 사용됐습니다. 몇해 전 국내에서도 대단히 인기를 끌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남자 주인공 치아키가 난생 처음 포디엄에 서서, 사방에서 ‘삑사리’를 내는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며 연습하던 음악이 바로 교향곡 7번이었지요. 또 이 곡은 영화 ‘카핑 베토벤’에도 등장합니다. 오래 전에 영화를 봐서 기억이 좀 가물가물합니다만, 영화 속의 여주인공이 베토벤 바로 옆집에 사는 할머니한테 “베토벤 선생이 너무 시끄럽게 해서 많이 힘드시죠?”라고 물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자 할머니가 “아니라오, 나는 마에스트로의 음악을 세상에서 가장 먼저 듣는 사람이라오” 하면서 만면에 행복한 미소를 띠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 장면에서 할머니가 입으로 흥얼흥얼 흉내냈던 선율이 바로 교향곡 7번의 1악장 주제였습니다.
또 하나는 강력한 리듬입니다. 물론 이것은 순전히 제 개인적인 주관입니다만, 바야흐로 지금은 ‘리듬의 시대’라고 할 만합니다. 한국인들은 리듬보다 선율에 더 익숙한 문화적 유전자를 지닌 듯하지만, 언제부턴가 대중음악을 필두로 리듬의 헤게모니가 점점 강해지고 있는 양상입니다. 특히 재즈를 비롯한 흑인음악이 이 땅에 본격적으로 유입되면서 리듬을 즐기는 젊은 층들이 점점 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데 베토벤의 교향곡들은 사실 선율보다 리듬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제가 언젠가 모차르트의 음악은 입으로 따라 부르기 좋은데 베토벤의 음악은 그렇지 않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모차르트의 음악이 선율적인 것에 비해, 베토벤은 서너 개의 음들을 리드미컬하게 구축하는 방식으로 교향곡을 써내려 갔습니다.
그중에서도 7번은 대표적으로 리드미컬한 교향곡입니다. 듣는 이의 마음을 흥겹게 고조시키는 리듬이 거의 전 악장에 걸쳐서 빈번히 등장합니다. 심하게 출렁거리며 호호탕탕하게 흘러가는 거대한 강물의 에너지를 느끼게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훗날 바그너는 이 곡을 “춤의 성화(聖化)”라고 표현했습니다. 베토벤의 여러 교향곡 중에서도 ‘디오니소스적인 즐거움이 넘치는 곡’, 혹은 ‘강박적인 리듬의 교향곡’이라는 평가가 내려져 있습니다.
1악장은 긴 서주로 시작합니다. 그 자체로 하나의 악장이라고 할 만큼 장대한 스케일의 서주입니다. 연주시간 4분이 훌쩍 넘어갑니다. 이어서 음악이 잠시 잦아들었다가 플룻과 오보에가 서주에서 등장했던 리듬 패턴을 다시 짧게 반복하면서 플룻이 첫번째 주제를 마침내 노래합니다. 마치 숲속에서 새가 지저귀는 듯한 경쾌한 느낌의 주제입니다. 여기에 목관과 바이올린, 이어서 팀파니가 가세하면서 음악이 점차 격동적인 춤으로 발전합니다. 풀룻과 바이올린이 연주하는 두 번째 주제도 힘차고 경쾌합니다.
2악장은 많이 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부분입니다. 교향곡 3번 ‘에로이카’의 2악장과 유사한, 장송행진곡 풍의 약간 느릿한 악장입니다. 소나타 형식이 아니라 3부 론도 형식입니다. 목관악기들이 어둡고 불안한 느낌의 화음을 던지고 이어서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 등의 저현 악기들이 주제를 제시합니다. 뭔가 애틋한 느낌을 머금은 선율입니다. 잠시 후 클라리넷과 바순이 연주하는 부드럽고 평화스러운 느낌의 선율이 부차적인 주제로 등장합니다. 다시 첫 주제로 돌아왔다가 두번째 주제로, 그리고 마침내 종결부에 들어서서 첫번째 주제를 다시 한번 연주합니다. 그리고 현의 짧은 피치카토에 이어서 단호한 느낌으로 악장의 막을 내리지요. 뭔가 고개가 툭 떨어지는 듯한, 삶의 마지막을 암시하는 듯한 마무리입니다.
3악장은 빠른 프레스토 악장입니다. 2악장에 비하자면 약간 소란스러운 느낌으로 리듬의 향연이 펼쳐집니다. 짧은 음표들을 빠르게 몰아치는 악구들이 매우 흥겹습니다. 그러다가 템포가 갑자기 느려지면서 밝고 따뜻한 분위기의 중간부(트리오)가 등장합니다. 클라리넷이 주도하는 목가적인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이어서 음악이 점점 고조되다가 한차례 클라이맥스를 거친 다음, 다시 템포가 빨라지면서 악장의 머리에서 등장했던 빠른 주제로 되돌아옵니다. 그리고 다시 부드럽고 목가적인 트리오, 이어서 다시 템포가 빨라지면서 원래의 주제로 악장을 끝맺습니다.
4악장은 1악장과 마찬가지로 다시 소나타 형식입니다. 빰바라밤 하면서 힘찬 화음을 한차례 짧게 던진 다음 곧바로 첫번째 주제로 격렬하게 들어섭니다. 바이올린과 금관악기들이 어울려 힘찬 리듬을 주제로 제시합니다. 4악장에서 빈번히 반복되는 강렬한 리듬형입니다. 바이올린이 제시하는 두번째 주제는 어딘지 유머러스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4악장을 들을 때는 반복적으로 펼쳐지는 역동적인 리듬형을 몸속에 꼭 새겨두시기 바랍니다. 베토벤의 7번 교향곡이 왜 ‘술의 신’ 디오니소스(로마신화에서는 바쿠스)의 음악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지점이 바로 4악장입니다.
그러다가 18세기 초반 이탈리아에서 오페라의 ‘서곡’을 신포니아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이때도 음악의 중심은 여전히 성악이었지요. 그런데 당시의 오페라 극장은 어땠을까요? 매우 소란스러웠습니다. 연주회는 주로 귀족들의 사교모임이었고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일종의 여흥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웃고 떠들고 심지어는 강아지를 데리고 연주회장에 오기도 했습니다.
아, 강아지, 하니까 생각나는 일이 있습니다. 한 6~7년 전의 일인 것 같은데,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도 강아지를 데리고 온 관객이 한 명 있었습니다. 작은 강아지를 큰 가방에 넣어 콘서트홀로 슬쩍 들어온 것이지요. 물론 있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그 강아지는 당연히 연주회 내내 버둥거리고 낑낑거렸습니다. 강아지로서도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을 겁니다. 참다못한 옆자리 관객이 중간휴식 시간에 콘서트홀 관리자에게 심하게 항의하는 사태가 마침내 벌어지고 말았지요. 당황한 관리자는 강아지를 ‘동반’한 아주머니를 간곡히 설득했습니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강아지를 데리고 2부 공연에는 절대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자 아주머니의 답변이 가관이었습니다. “무슨 말이에욧! 우리 아이가 얼마나 음악을 좋아하는데. 사람보다 훨씬 음악을 많이 안다구!”
이 아주머니는 강아지를 제대로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타자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것이 강아지든 사람이든 그 타자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아주머니는 끝까지 자기중심적이었습니다. 자신의 만족을 위해 강아지에게 비싼 옷을 사 입히고 급기야는 연주회장 안에까지 데리고 들어온 것이었습니다. 사실은 강제로 끌고 온 것이지요. 그 아주머니는 대체 왜 그랬던 걸까요? 정신적으로 미숙하기 때문입니다. 아주머니의 신체적 나이는 중년이었지만, 정신연령 혹은 사회적 연령은 고작 너댓 살 정도로 보였습니다. 어린 아이는 엄마의 생일날 자기가 갖고 싶어 하는 예쁜 인형이나 맛있는 초콜릿을 선물하려 하지요? 자기가 좋아하니까 엄마도 당연히 좋아할 거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어린 아이들은 아직 자기중심적입니다. 하지만 점차 나이가 들어가면서 달라지지요.
영화 <카핑 베토벤> 중 |
자, 어쨌든 18세기의 오페라 극장은 귀족 부인이 개를 동반하고 들어가도 무방한 곳이었습니다. ‘강아지 동반’이 사회적으로 허락된 상태였던 것이지요. 게다가 오늘날의 콘서트홀처럼 조명을 암전시켜서 사람들이 조용해지기를 유도할 수도 없었습니다. 사정이 그러하니 분위기가 얼마나 어수선했겠습니까. 그래서 사람들에게 지금부터 음악회를 시작한다는 신호를 보낼 장치가 필요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서곡’입니다. “이제부터 음악을 연주하겠으니 좀 조용히 해주세요”라는 사인이었던 셈입니다. 바로 그렇게, 오페라의 막이 본격적으로 오르기 전에 가볍게 연주했던 서곡을 ‘신포니아’라고 불렀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즐겨 듣는 교향곡의 역사는 그렇게 막을 올렸습니다.
오페라 연주 직전에 실용적인 용도로 연주됐던 심포니의 위상을 보다 높은 곳으로 끌어올린 음악가로는 이탈리아 궁정음악가 삼마르티니(1700~1775), 또 독일 만하임 궁정의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던 요한 슈타미츠(1717~1757) 같은 인물들이 손꼽힙니다. 그들에 의해 교향곡은 점차 ‘제대로 된 독립적인 음악’으로서의 꼴을 갖춰갑니다. 하지만 여전히 교향곡은 오늘날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는 음악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하이든과 모차르트에 와서야 오늘날 우리가 듣는 교향곡의 형태가 갖춰지기 시작합니다. 이른바 고전주의 교향곡의 태동, 말하자면 작곡가의 음악적 이상을 담아내는 동시에 형식적으로도 몇 가지 합의된 규칙들을 도출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예컨대 서로 대비되는 성격의 4개 악장을 배치하는 것, 그중에서도 1악장에서는 소나타 형식을 구현하는 것 등입니다. (소나타 형식에 대해서는 ‘내 인생의 클래식 101’ 8월 19일자 하이든의 교향곡 94번 ‘놀람’ 편을 참조해주시길) 특히 하이든이 삶의 후반부에 영국 런던에서 발표했던 12곡의 교향곡, 또 모차르트가 빈에서 보낸 마지막 10년 동안에 썼던 6곡의 교향곡이 그렇습니다. 이른바 ‘근대적 교향곡’의 역사가 그렇게 본격 행보를 내딛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베토벤. 오늘날 우리가 교향곡을 오케스트라 음악의 완성이자 최고의 봉우리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순전히 베토벤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오페라의 서곡’이라는 하찮은 자리에 놓여 있던 음악을 최고의 자리로 격상시킨 주인공은 바로 베토벤이었습니다. 19세기의 벽두인 1800년에 초연한 교향곡 1번부터 세상을 떠나기 3년 전인 1824년에 초연한 9번 ‘합창’까지, 그가 남긴 9곡의 교향곡은 교향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이정표와도 같았습니다. 적어도 교향곡 3번 ‘에로이카’에서부터 베토벤은 콘서트홀에 모여든 청중에게 단순한 음악의 재미를 뛰어넘는 막대한 감동의 드라마를 선보였습니다. 당연히 후대의 많은 작곡가들에게 영향을 미쳤지요. 베를리오즈와 바그너, 브람스, 리스트 등의 작곡가들이 베토벤의 음악에서 예술적 영감과 창작의 스트레스를 동시에 받았습니다. 훗날 말러는 교향곡을 일컬어 “하나의 세계”라고 표현했는데, 그 의미심장한 발언의 뿌리는 다름 아닌 베토벤이었다고 봐야 하겠습니다.
자, 지금까지 ‘내 인생의 클래식 101’에서 함께 들었던 베토벤의 교향곡들을 한번 되짚어보겠습니다. 3번, 5번, 6번, 9번이었습니다. 눈치 채셨겠지만 중요한 곡 하나가 빠져 있습니다. 바로 오늘 들을 7번 A장조입니다. 한데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인터넷 검색창에 ‘베토벤 교향곡’이라고 입력해 봤더니 교향곡 9번 다음에 바로 7번이 뜹니다. 사실 좀 놀랐습니다. 한 10년 전까지만 해도 베토벤의 아홉 개 교향곡 중에서 7번이 인기 2순위라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럴 리가 없는데, 라는 생각을 하면서 왜 이렇게 인기가 상승했을까를 곰곰 따져봤습니다.
첫번째로 떠오르는 것은 드라마와 영화의 영향입니다. 알려져 있듯이 교향곡 7번은 ‘노다메 칸타빌레’라는 일본 드라마의 오프닝곡으로 사용됐습니다. 몇해 전 국내에서도 대단히 인기를 끌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남자 주인공 치아키가 난생 처음 포디엄에 서서, 사방에서 ‘삑사리’를 내는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며 연습하던 음악이 바로 교향곡 7번이었지요. 또 이 곡은 영화 ‘카핑 베토벤’에도 등장합니다. 오래 전에 영화를 봐서 기억이 좀 가물가물합니다만, 영화 속의 여주인공이 베토벤 바로 옆집에 사는 할머니한테 “베토벤 선생이 너무 시끄럽게 해서 많이 힘드시죠?”라고 물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자 할머니가 “아니라오, 나는 마에스트로의 음악을 세상에서 가장 먼저 듣는 사람이라오” 하면서 만면에 행복한 미소를 띠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 장면에서 할머니가 입으로 흥얼흥얼 흉내냈던 선율이 바로 교향곡 7번의 1악장 주제였습니다.
또 하나는 강력한 리듬입니다. 물론 이것은 순전히 제 개인적인 주관입니다만, 바야흐로 지금은 ‘리듬의 시대’라고 할 만합니다. 한국인들은 리듬보다 선율에 더 익숙한 문화적 유전자를 지닌 듯하지만, 언제부턴가 대중음악을 필두로 리듬의 헤게모니가 점점 강해지고 있는 양상입니다. 특히 재즈를 비롯한 흑인음악이 이 땅에 본격적으로 유입되면서 리듬을 즐기는 젊은 층들이 점점 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데 베토벤의 교향곡들은 사실 선율보다 리듬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제가 언젠가 모차르트의 음악은 입으로 따라 부르기 좋은데 베토벤의 음악은 그렇지 않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모차르트의 음악이 선율적인 것에 비해, 베토벤은 서너 개의 음들을 리드미컬하게 구축하는 방식으로 교향곡을 써내려 갔습니다.
그중에서도 7번은 대표적으로 리드미컬한 교향곡입니다. 듣는 이의 마음을 흥겹게 고조시키는 리듬이 거의 전 악장에 걸쳐서 빈번히 등장합니다. 심하게 출렁거리며 호호탕탕하게 흘러가는 거대한 강물의 에너지를 느끼게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훗날 바그너는 이 곡을 “춤의 성화(聖化)”라고 표현했습니다. 베토벤의 여러 교향곡 중에서도 ‘디오니소스적인 즐거움이 넘치는 곡’, 혹은 ‘강박적인 리듬의 교향곡’이라는 평가가 내려져 있습니다.
1악장은 긴 서주로 시작합니다. 그 자체로 하나의 악장이라고 할 만큼 장대한 스케일의 서주입니다. 연주시간 4분이 훌쩍 넘어갑니다. 이어서 음악이 잠시 잦아들었다가 플룻과 오보에가 서주에서 등장했던 리듬 패턴을 다시 짧게 반복하면서 플룻이 첫번째 주제를 마침내 노래합니다. 마치 숲속에서 새가 지저귀는 듯한 경쾌한 느낌의 주제입니다. 여기에 목관과 바이올린, 이어서 팀파니가 가세하면서 음악이 점차 격동적인 춤으로 발전합니다. 풀룻과 바이올린이 연주하는 두 번째 주제도 힘차고 경쾌합니다.
2악장은 많이 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부분입니다. 교향곡 3번 ‘에로이카’의 2악장과 유사한, 장송행진곡 풍의 약간 느릿한 악장입니다. 소나타 형식이 아니라 3부 론도 형식입니다. 목관악기들이 어둡고 불안한 느낌의 화음을 던지고 이어서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 등의 저현 악기들이 주제를 제시합니다. 뭔가 애틋한 느낌을 머금은 선율입니다. 잠시 후 클라리넷과 바순이 연주하는 부드럽고 평화스러운 느낌의 선율이 부차적인 주제로 등장합니다. 다시 첫 주제로 돌아왔다가 두번째 주제로, 그리고 마침내 종결부에 들어서서 첫번째 주제를 다시 한번 연주합니다. 그리고 현의 짧은 피치카토에 이어서 단호한 느낌으로 악장의 막을 내리지요. 뭔가 고개가 툭 떨어지는 듯한, 삶의 마지막을 암시하는 듯한 마무리입니다.
3악장은 빠른 프레스토 악장입니다. 2악장에 비하자면 약간 소란스러운 느낌으로 리듬의 향연이 펼쳐집니다. 짧은 음표들을 빠르게 몰아치는 악구들이 매우 흥겹습니다. 그러다가 템포가 갑자기 느려지면서 밝고 따뜻한 분위기의 중간부(트리오)가 등장합니다. 클라리넷이 주도하는 목가적인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이어서 음악이 점점 고조되다가 한차례 클라이맥스를 거친 다음, 다시 템포가 빨라지면서 악장의 머리에서 등장했던 빠른 주제로 되돌아옵니다. 그리고 다시 부드럽고 목가적인 트리오, 이어서 다시 템포가 빨라지면서 원래의 주제로 악장을 끝맺습니다.
4악장은 1악장과 마찬가지로 다시 소나타 형식입니다. 빰바라밤 하면서 힘찬 화음을 한차례 짧게 던진 다음 곧바로 첫번째 주제로 격렬하게 들어섭니다. 바이올린과 금관악기들이 어울려 힘찬 리듬을 주제로 제시합니다. 4악장에서 빈번히 반복되는 강렬한 리듬형입니다. 바이올린이 제시하는 두번째 주제는 어딘지 유머러스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4악장을 들을 때는 반복적으로 펼쳐지는 역동적인 리듬형을 몸속에 꼭 새겨두시기 바랍니다. 베토벤의 7번 교향곡이 왜 ‘술의 신’ 디오니소스(로마신화에서는 바쿠스)의 음악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지점이 바로 4악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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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문학수
1961년 강원도 묵호에서 태어났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에 소위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서양음악을 처음 접했다. 청년시절에는 음악을 멀리 한 적도 있다. 서양음악의 쳇바퀴가 어딘지 모르게 답답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구 부르주아 예술에 탐닉한다는 주변의 빈정거림도 한몫을 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음악에 대한 불필요한 부담을 다소나마 털어버렸고, 클래식은 물론이고 재즈에도 한동안 빠졌다. 하지만 몸도 마음도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재즈에 대한 애호는 점차 사라졌다. 특히 좋아하는 장르는 대편성의 관현악이거나 피아노 독주다. 약간 극과 극의 취향이다. 경향신문에서 문화부장을 두차례 지냈고, 지금은 다시 취재 현장으로 돌아와 음악담당 선임기자로 일하고 있다.
2013년 2월 철학적 클래식 읽기의 세계로 초대하는 <아다지오 소스테누토>를 출간했다.
닝닝
2014.0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