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 소설 속, 색채를 읽다
“하루키 신간 읽었어?” 요즘 서점가에서 자주 들리는 이야기다. 하루키를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3년만에 발표한 하루키의 신작 『색채가 없는 다자키 츠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출간 60일을 넘긴 지금도 여전히 화제의 중심에 있다.
2013.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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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초판 50만 부를 찍고 1주일 만에 100만 부를 찍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국내에서는 하루 만에 2쇄, 출판사의 8월 중순 집계에 의하면 현재까지 35만 부가 판매됐다. 예스24 블로그에는 93개의 리뷰가 등록됐다.(8월 29일 기준) 문학에 관심이 없는 독자일지라도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몇 개의 문화 기사만 클릭했더라도 하루키가 신작을 냈다는 소식은 물론, 대략의 스토리는 들었을 것이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철도회사에 일하는 주인공 ‘다자키 쓰쿠루’가 과거를 찾기 위해 순례를 떠나는 이야기다.
소설을 처음 접한 독자들은 ‘색채’라는 단어에 의문을 가질지도 모른다. ‘색채가 없다’는 의미는 주인공 다자키의 고등학교 친구들 중 다자키의 이름에만 색깔과 관련 있는 한자가 없기 때문에 붙여진 수식어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의 표지 이미지는 미국의 색면추상화가 모리스 루이스의 마지막 작품 ‘불기둥(Pillar of Fire)’이다. ‘색채 없는’ 다자키의 이야기이지만 이미지는 모순된다. 다자키의 친구들 이름에는 빨강(赤), 파랑(靑), 흰색(白), 검정(黑)을 뜻하는 한자가 있다. 하루키는 성적이 탁월한 아카에게는 빨강, 럭비부원으로 체격이 건장한 아오에게는 파랑, 피아노를 잘 치는 모델 같은 외모의 시로는 흰색, 총명하고 시니컬한 유머가 있는 구로에게는 검정의 이름을 붙여줬다. 다만, 다자키에게만 ‘만들다’라는 의미의 ‘쓰쿠루(作)’를 선사했다. 소설에서 다자키는 수도 없이 ‘만일 내게도 색깔이 있는 이름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며, ‘그랬더라면 모든 것이 완벽했을 텐데’라고 자문한다. 그런데 혹여, 다자키의 이름에 색채가 있었다면, 그는 친구들과 헤어지지 않았을까.
다자키는 고등학교를 졸업 후, 홀로 나고야를 떠나 도쿄에 있는 대학 토목공학과에 입학했고, 네 명의 친구들은 나고야에 남았다. 다자키는 자평하기를 ‘이렇다 할 특징이나 개성이 없는’ 인물이었지만, 같은 이유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길 꺼렸다. 대신 혼자서 시간을 보내며 예전보다 훨씬 많은 책을 읽었다. 그러다 대학 수영장에서 물리학과 학생 하이다(灰)를 만난다. 다자키는 그의 이름을 들었을 때 ‘여기에도 색이 있는 인간이 있다. 미스터 그레이. 회색은 물론 눈에 잘 안 띄는 색깔이지만’이라고 생각했다. (다자키가 하이다에게 호감을 가진 건, 시로(흰색)와 구로(검정)의 모습이 혼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이다는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를 다자키에게 털어놓으며 아버지가 만난 한 재즈 피아니스트 미도리카(綠)의 이야기를 꺼낸다. 다자키는 혼잣말로 속삭인다. “여기도 색이 있는 인간이 있다. 녹색.” 대부분의 독자들은 이 단락에서, 『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이의 숲)의 주인공 와타나베의 여자친구 미도리를 떠올릴 것이다. 미도리는 솔직하고 거리낌 없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인물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노르웨이의 숲』을 출간할 당시, 직접 표지 이미지를 정했는데, 상권은 빨강, 하권은 초록색 이미지를 사용했다. 하루키는 과거 일러스트레이터 안자이 미즈마루와의 대담에서 “이 소설은 무척이나 강렬한 감정을 가진 이야기이기 때문에 선명하고 강렬한 색을 쓰고 싶었다. 그래서 빨강과 초록을 택했다”고 말했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의 표지 이미지 ‘불기둥’에서도 빨강과 초록이 가장 눈에 띈다. 두 색깔은 반복되며 순서를 바꾼다.
하루키에게 빨강과 초록은 특별한 색, 생명과 죽음을 잇는 상징이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에서 하루키는 재즈 피아니스트 미도리카에게 초록의 상징을 부여했다. ‘가능한 빨리 죽어 버리고 싶다’고 말하던 미도리카는 “아, 솔직히 말해 산다는 게 정말 귀찮아. 이대로 죽은들 요만큼도 섭섭하지 않아. 어떤 수단을 찾아서 적극적으로 목숨을 끊을 열정 같은 건 없지만 조용히 죽음을 받아들이는 정도는 할 수 있어(p.107)”라고 했다. 『노르웨이의 숲』의 미도리와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의 미도리카는 반대의 성격을 지녔지만 하루키는 같은 색의 이름으로 그들을 명명했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의 주요 인물 중 하나인 다자키의 연상 여자친구 기모토 사라는 다자키와 마찬가지로 색채가 없는 이름을 가졌다. 사라는 다자키가 과거를 찾는 여행을 하게 되는 발단을 제공해주는 인물이다. ‘사라(Sarah)’는 성경에 나오는 히브리인의 조상이 된 이삭의 어머니, 곧 신이 선택한 민족의 어머니다. 일본인 이름에서 ‘사라’는 ‘사라수’라는 식물을 의미하는데, 사라수는 불교에서 신성하게 여기는 나무로 단단한 나무라는 뜻을 가졌다. 문득, 하루키의 이름이 떠오르는데 ‘하루키’는 한자로는 촌상춘수(村上春樹)라고 쓰며, 춘수(봄의 나무)를 의미한다.
두부를 좋아하고 재즈를 즐겨 들으며 달리기와 수영을 즐기는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 트루먼 커포티를 좋아하고 무채색 계열의 옷을 선호하는 렉서스 예찬론자 하루키에게 ‘색채가 있는’ 이름이 주어졌다면 그는 조금 다른 취향을 가졌을까.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에서 미도리카와는 말했다. “세상에는 기분 좋은 색깔이 있는가 하면 보기 괴로운 색깔도 있어. 즐거운 색깔이 있는가 하면 슬픈 색깔도 있지. 빛이 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엷은 사람도 있고.”(p.109)
다자키는 독백한다. 創보다 作이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하지만 그 덕분에 ‘인생의 짐’이 많이 가벼워졌느냐에 대해서는 의문을 던진다. (‘작가’ 하루키는 글을 짓고, 다자키는 철도역을 짓는다. 두 사람 모두 색채 없는 이름을 가졌지만, 무언가 짓는다. 그리고 作(만들 작) 안에는 이미 創(이룰 창)의 의미가 들어있다) 다자키의 이름에 색채가 있었더라면 그는 친구들에게 거부 당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하지만, 화려한 색채를 자랑하던 친구들은 세월이 흐르자 점점 흐릿해졌다. 스스로 인식하지 못했지만 모든 색채를 품고 있었던 건 다자키 자신이었다. 다시,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의 표지 이미지 ‘불기둥(Pillar of Fire)’으로 돌아가 보자. 빨강, 초록, 황토색 등의 물감이 불기둥처럼 세워져 있다. 이 모든 색을 섞으면 어떤 색이 나오는지, 독자들은 알고 있다.
소설을 처음 접한 독자들은 ‘색채’라는 단어에 의문을 가질지도 모른다. ‘색채가 없다’는 의미는 주인공 다자키의 고등학교 친구들 중 다자키의 이름에만 색깔과 관련 있는 한자가 없기 때문에 붙여진 수식어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의 표지 이미지는 미국의 색면추상화가 모리스 루이스의 마지막 작품 ‘불기둥(Pillar of Fire)’이다. ‘색채 없는’ 다자키의 이야기이지만 이미지는 모순된다. 다자키의 친구들 이름에는 빨강(赤), 파랑(靑), 흰색(白), 검정(黑)을 뜻하는 한자가 있다. 하루키는 성적이 탁월한 아카에게는 빨강, 럭비부원으로 체격이 건장한 아오에게는 파랑, 피아노를 잘 치는 모델 같은 외모의 시로는 흰색, 총명하고 시니컬한 유머가 있는 구로에게는 검정의 이름을 붙여줬다. 다만, 다자키에게만 ‘만들다’라는 의미의 ‘쓰쿠루(作)’를 선사했다. 소설에서 다자키는 수도 없이 ‘만일 내게도 색깔이 있는 이름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며, ‘그랬더라면 모든 것이 완벽했을 텐데’라고 자문한다. 그런데 혹여, 다자키의 이름에 색채가 있었다면, 그는 친구들과 헤어지지 않았을까.
“고등학교 시절에 만난 색채가 선명하고 자극적인 네 남녀에 비한다면, 누구랄 것도 없이 하나같이 활기도 없고 밋밋하면서 개성이 없어 보였다.” (p.36) | ||
이 책이 발매되었을 때 저자 자신이 직접 장정한 빨강과 초록의 참신한 디자인이 화제가 되었다. 피를 연상시키는 상권의 빨간색은 생명력의 세계를 나타내고 깊은 숲을 연상시키는 하권의 초록색은 죽음의 세계를 상징한다. 또한 각 권의 제목은 각기 반대색으로 인쇄되어 있어 “죽음은 삶의 대극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일부로서 존재하고 있다”라는 저자의 생각이 여기에도 반영되어 있는 것 같다. 더구나 죽음의 세계를 상징하는 숲의 초록이 생명력을 상징하는 여성의 이름(미도리)에 붙여진 것만 보더라도, 그리 단순한 해석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작품인 것 또한 사실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북」 『文學界』 1991.4 | ||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의 주요 인물 중 하나인 다자키의 연상 여자친구 기모토 사라는 다자키와 마찬가지로 색채가 없는 이름을 가졌다. 사라는 다자키가 과거를 찾는 여행을 하게 되는 발단을 제공해주는 인물이다. ‘사라(Sarah)’는 성경에 나오는 히브리인의 조상이 된 이삭의 어머니, 곧 신이 선택한 민족의 어머니다. 일본인 이름에서 ‘사라’는 ‘사라수’라는 식물을 의미하는데, 사라수는 불교에서 신성하게 여기는 나무로 단단한 나무라는 뜻을 가졌다. 문득, 하루키의 이름이 떠오르는데 ‘하루키’는 한자로는 촌상춘수(村上春樹)라고 쓰며, 춘수(봄의 나무)를 의미한다.
두부를 좋아하고 재즈를 즐겨 들으며 달리기와 수영을 즐기는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 트루먼 커포티를 좋아하고 무채색 계열의 옷을 선호하는 렉서스 예찬론자 하루키에게 ‘색채가 있는’ 이름이 주어졌다면 그는 조금 다른 취향을 가졌을까.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에서 미도리카와는 말했다. “세상에는 기분 좋은 색깔이 있는가 하면 보기 괴로운 색깔도 있어. 즐거운 색깔이 있는가 하면 슬픈 색깔도 있지. 빛이 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엷은 사람도 있고.”(p.109)
“다만 ‘쓰쿠루’라는 이름에 해당하는 한자를 創으로 하느냐 作으로 하느냐에 대해서는 아버지도 많이 망설였던 것 같다. 읽을 때는 똑같은 발음이라도 글자에 따라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다. 어머니는 創을 추천했지만 며칠이 지나 숙고를 거듭한 끝에 아버지는 보다 온건한 作을 선택했다. 아버지의 장례식이 끝난 다음 어머니는 그때 일을 떠올리고는 그에게 가르쳐 주었다. ‘創이라는 글자가 이름에 들어가면 인생의 짐이 꽤 무거워질지도 모른다고 아버지가 그러시더라. 발음이 똑같이 ‘쓰쿠루’라도 作으로 하는 쪽이 본인에게 가볍지 않을까 하고. 어쨌든 네 이름에 대해서는 아버지가 정말 신중하게 생각했어’.”(『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p.75) | ||
-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저/양억관 역 | 민음사
무라카미 하루키가 3년 만에 발표한 장편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일본에서 50만 부라는 파격적인 초판 부수로 기대를 모으고, 출간 이후에는 7일 만에 100만 부를 돌파하는 등 베스트셀러의 역사를 다시 쓴 세계적 화제작이다. 철도 회사에서 근무하는 한 남자가 잃어버린 과거를 찾기 위해 떠나는 순례의 여정을 그린 이 작품은 개인 간의 거리, 과거와 현재의 관계, 상실과 회복의 과정을 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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