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언컨대, 저보다 어머니의 인기가 훨씬 많아요
아들은 여행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엄마의 모습을 남기고자, 그리고 다신 없을 이번 여행을 생생하게 기록하고자 자신의 블로그 ‘둘이 합쳐 계란 세 판, 세계여행을 떠나다’에 포스팅을 시작했다. 그런데 예상치도 못했던 블로그 팬들이 생겨났다. 하루 방문자만 수백여 명. 금세 여행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면서 이 가냘픈 모자는 갑작스레 세상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여행의 주인공이 되었다.
2013.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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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햇살과 때 이른 가을바람이 묘하게 섞인 어느 날, 키만 큰 30세 아들과 깡마른 60세 엄마의 300일간 세계여행을 담은 『엄마, 일단 가고봅시다!』의 태원준 작가를 한 카페에서 만났다. 첫 책을 펴낸 작가답게 그는 연신 쑥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카페에는 이미 많은 독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이 책의 주인공을 기다리고 있었다. 소개와 함께 자리로 들어서는 태원준 작가는 책에 실린 사진보다 체격이 좋은 훈남이었다. 때문에 그가 자리에 앉기까지 많은 여성 독자들의 환호성이 이어졌다.
첫 책 『엄마, 일단 가고봅시다!』가 출간과 동시에 각 인터넷 서점 오늘의 책에 선정되었지요. 주위의 반응은 어떤가요?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이라, 사실 아직도 실감이 안 납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독자분들을 만나보니 실감이 나네요. 주말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와주셔서 정말 기쁩니다. 많은 관심 감사합니다.
초기에 관심을 많이 받은 데에는 운영하는 블로그 <둘이 합쳐 계란 세 판, 세계여행을 떠나다>의 영향이 큰 것 같아요. 블로그의 글이 책으로 탄생되었을 때 느낌이 어땠나요?
처음에는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어요. 전문 작가가 아니다 보니 초고를 여러 번 수정하기도 했죠. 책을 손에 들었을 때 내가 쓴 책이라는 자각이 없었어요. 그래서 어떤 한 작가의 여행기라고 생각하고 읽어봤어요. (웃음) 읽으면서 새로웠고, 재미있기도 했어요. 오래전에 연락이 끊긴 친구들이 책을 보고 연락을 해오기도 했는데, 그때 아… 내가 책을 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니의 반응도 궁금해요.
어머니 입장에서는 아들이 책도 내고 사람들의 관심도 받으니까 아주 좋아하셨어요. “이미 여행은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보니 우리의 여행은 계속되고 있구나!”라고 말씀해주셔서 굉장히 기뻤어요. 그 말씀을 들으니 여행 떠날 때의 설렘이 다시 떠올랐어요.
책에서 보면 어머니의 음식점을 정리하고 떠났다는 내용이 나와요. 이 부분에서 많은 분들이 어머니의 돈으로 여행한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할 것 같아요.
제가 어머니 음식점을 찾아간 것은 함께 해외여행을 가자고 설득하기 위해서였어요. 무작정 여행을 가자는 아들의 말에 한 번에 오케이해줄 어머니는 많지 않으시니까. (웃음) 어머니를 설득하며 음식점에서 함께 일을 했죠. 어머니가 여행을 가겠다, 마음먹었을 때 운 좋게 음식점도 팔렸어요. 주저 없이 여행을 떠났지요. 물론 여행 경비는, 여행을 떠나기 전 제가 약 2년 반 정도 일을 하면서 모아두었던 돈으로 해결했어요. 넉넉한 환경에서 여행한 건 아니었지요. 유럽을 돌 때는 자금이 부족해서 한국에 있는 누나에게 원조를 받기도 했고….
책을 보면 글 못지않게 사진도 정말 감성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평소 사진 찍는 걸 좋아해요. 그러다보니 사진 관련 일도 했고요. 사소한 풍경이라도 마음에 닿은 장면은 반드시 사진으로 남겨둬요. 이번 여행에서는 어머니라는 훌륭한 모델이 있으니까 더욱 열심히 셔터를 눌렀던 것 같아요. 아, 어머니도 작은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가셨는데, 어머니는 아름다운 풍경보다 그 풍경 속에 있는 저의 모습만 찍으시더라고요. “어머니, 여기 아름다운 풍경 많으니 여기를 찍으세요.” 했더니, “풍경은 네가 많이 찍을 텐데 뭘, 난 네 사진을 찍고 싶어.”라고 하시면서요. 귀국 후 어머니 카메라를 보니 마치 스토커처럼 (웃음) 1만 장 이상의 제 사진을 가지고 계시더라고요. 덕분에 저도 몰랐던 제 모습을 볼 수 있었죠. 혼자 여행을 다니는 편이라 제 사진이 많지 않은데, 이번 기회에 원 없이 많은 사진을 갖게 됐죠. (웃음)
부모님과 여행을 하고 싶은데, 혹시나 싸우게 되지 않을까, 그래서 사이가 더 멀어지진 않을까 걱정이 돼 출발을 못하는 분들이 많아요. 여행 도중 어머니와 위기도 있었죠?
여행을 가기 전부터 어머니와 여기저기 많이 다녀서 그만큼 가까웠고 신뢰가 있었어요. 그래서 여행을 가도 문제가 없겠지, 라고 생각을 했는데… 큰 착각이었지요. (웃음) 여행 초반에는 서로 힘들어서 의지를 하다보니 그럭저럭 잘 지냈어요. 그런데 여행 중반이 되고 여행에 어느 정도 요령이 생기니까 오히려 싸우게 되는 일이 많아지더라고요. 사소하게 다툰 적은 엄청 많아요. 크게 다툰 부분은 책에도 썼는데, 인도네시아에서였어요. 어머니를 잘 모시고 여행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과 돈을 계획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어머니의 의견이나 감정은 돌아볼 여유가 없었어요. 어느 순간 돌아보니 제가 어머니께 강행군을 강요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무조건 쉬면서 대화를 나눠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인도네시아에서 5일을 있었는데 숙소 안에서 거의 반을 보냈죠. 숙소에서 서로에게 쌓아두고 말하지 못했던 것을 하나씩 풀어냈더니 관계가 더욱 돈독해졌어요. 덕분에 다음 일정도 즐겁게 소화해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대화 없이 좋지 않은 감정만 쌓아두고만 있었다면…, 아마 여행 중간 크게 싸우고 귀국했을지도 몰라요. 생각만 해도 아찔하죠.
장시간 많은 나라를 둘러보려면 아무래도 경비 부분이 가장 신경 쓰일 것 같아요. 경비는 어떻게 조율하셨어요?
이번 여행은 귀국 날짜를 정해놓고 떠난 게 아니에요. 그래서 경비를 최대한 아끼려고 했어요. 오늘 아끼면 하루를 더 여행할 수 있으니까. 숙소도 저렴한 걸 많이 찾았죠. 그래도 그 도시에만 있는 어떤 것을 먹거나, 타거나, 볼 때는 경비를 아끼지 않았어요. 예를 들어 곤돌라는 베네치아에서만 탈 수 있으니 무조건 탔죠. 이런 걸 해보지 않고 돌아가면 항상 생각이 나더라고요. 해봤어야 했는데, 하면서.
리뷰를 살펴보면, 많은 분들이 어머니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것 같아요. 솔직히 조금 서운하진 않으세요?
단언컨대, 저보다 어머니의 인기가 훨씬 많아요. (웃음) 특히 블로그에서요. 블로그 댓글이나 안부글을 보면 대부분 “어머니 대단하세요!” 이런 글들이 많아요. 아마 어머니라는 존재는 누구에게나 애틋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물론 제가 옆에서도 봤지만 정말 대단할 만큼 세계여행을 잘 소화하셨어요. 그래서 많은 분들이 관심과 격려를 보내주시는 것 같아요.
『엄마, 일단 가고봅시다!』에서 여행이 끝나지 않죠? 2권도 준비 중이라고 들었어요.
네. 유럽 이야기를 다룬 『엄마, 결국은 해피엔딩이야!』는 가을쯤 출간될 것 같아요. 저희 여행은 유럽을 기준으로 극명하게 분위기가 나뉘어요. 아시아는 아무래도 친숙하고 편한 느낌이었다면, 유럽은 문화적인 차이를 더 많이 느낄 수 있는 에피소드들이 많죠. 풍경도 아주 다르고, 사람도 다르고…. 특히 유럽에서는 카우치서핑을 했는데, 그러면서 각 나라의 분위기와 역사도 알게 되고, 현지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어요. 그래서 2권에는 사람들 이야기가 많이 나올 거예요. 어머니께서 유럽 친구들에게 비빔밥이나 칼국수도 많이 만들어주셨는데, 참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죠. (웃음) 유럽에서도 정말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았어요. 이 이야기는 차차 책으로 할게요.
여행을 가면 많은 사람들이 여행지에서의 아름다운 로맨스를 꿈꾸죠. 혹시 그런 건 없었나요?
어머니랑 계속 같이 다녀서 두근거리는 로맨스는 없었어요. 여행할 때는 말 그대로 거지 몰골로 다녔기 때문에 로맨스는 꿈도 못 꿀 상황이었어요. 그 대신 숙소에서 만난 여성분들이, 어머니와 함께 여행을 한다니까 저를 좋게 봐주시기는 했죠. 후훗. 유럽 여행에서는 많이 외로웠어요. 유럽은 길거리에서도 자연스럽게 애정행각을 하니까. 그래서 어머니께서 주무실 때 몰래 나가 맥주를 마시기도 했어요. 아… 여기에 대해서도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이것도 2권에서 공개할게요. (웃음)
여행은 귀국할 때 아쉬움이 많이 남는 것 같아요. 한국에 돌아올 때 기분이 어땠어요?
여행을 할수록 어머니가 저보다 더 여행을 즐기셨어요. 처음에는 6~7개월 정도로 예상하고 떠난 여행이었는데, 여행에 대한 어머니의 열정이 여행을 연장시켰죠. 그렇게 300일을 돌고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이 됐어요. 저는 사실 체력이 살짝 바닥이 난 상태였어요. 아무래도 누군가를 이끌며 여행한다는 건 피곤함과 긴장을 낳으니까요. 그래서 그런지 시원섭섭했어요. 뭔가 시원하면서도 이렇게 여행이 끝나는구나, 하는 아쉬움, 만감이 교차했죠. 그런데 어머니는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남미에도 가보고 싶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때 저는 남미에 가게 되든, 아니든 일단 한국으로 돌아가서 체력을 쌓아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웃음)
300일이면 상당히 많은 도시를 돌아보셨을 것 같은데, 어머니께서 가장 좋아하신 곳은 어디였나요?
도시를 말하라면 파리, 나라를 말하면 터키예요. 음… 어머니와 저의 종합된 의견을 말하자면 터키가 가장 좋았어요. 터키는 여행자들이 꿈꾸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어요. 나라도 아주 넓고 그만큼 볼거리도 많지요. 활기찬 도시, 숨 막히는 절경, 역사적 유물, 아름다운 해변, 조용한 마을 등 다양한 모습이 숨겨져 있어요. 아시아와 유럽 사이에 있으며 3개의 바다를 끼고 있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세상에 이런 곳이 있을까 싶은 풍경도 볼 수 있죠. 어머니도 터키가 무척 마음에 들어서 터키 티셔츠를 사가지고 오셨어요. 귀국 후 티셔츠를 잘라 쿠션으로 만드셨죠. 저희 집 소파에는 마치 터키에서 산 듯한 쿠션이 놓여 있어요. (웃음)
여행을 하면 인생에 무언가 변화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게다가 어머니와 길지 않은 시간 동안 해외여행을 하셨는데, 일상이 조금 바뀐 것이 있나요?
유럽에서 카우치서핑을 한 경험을 살려 저도 카우치서핑을 하고 있죠. 아직 우리나라에 잘 알려져 있지는 않은데, 쉽게 말해서 카우치서핑은 조건 없이 잠자리를 제공해주는 배낭여행자들의 커뮤니티예요. 친구를 초대하는 사람이 호스트, 초대를 받은 사람이 서퍼예요. 돈을 아끼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분들도 있어요. 하지만 카우치서핑을 하면 오히려 돈이 더 많이 들어요. 식사도 함께하고 함께 놀러 다니기도 하니까. 카우치서핑을 하는 이유는 정말 순수하게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예요. 그것도 국적이 다른 친구들. 참 매력적이죠. 멋진 풍경을 보면서 추억을 쌓을 수도 있지만, 사람과 쌓는 추억은 더 값지다고 생각해요. 이번 여행의 첫 카우치 호스트가 카우치서핑 베테랑이었는데, 앞으로 여행이 끝날 때까지 카우치서핑을 하라고 하더라고요. 엄청난 추억을 만들 수 있다고. 직접 해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서로 다른 문화에서 산 사람들이 만나 친구가 되니 생각지도 못했던 경험을 하게 되더라고요. 혹시 여행을 하게 된다면 카우치서핑을 추천합니다. 그리고 카우치서핑을 통해 좋은 추억이 생겼다면, 그 경험을 살려 귀국 후에도 카우치서핑을 하세요. 받은 만큼 다른 여행자들에게도 돌려줘야 하니까요.
질의응답 시간에 한 독자는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를 이야기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덧붙여 작가에게 이렇게 책으로라도 대리만족을 할 수 있게 해주어 고맙다는 말도 전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은 카페의 모든 독자들은 함께 공감했고, 아파하며 격려와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작가와의 만남이 끝난 후에는 사인회가 이어졌다. 태원준 작가뿐 아니라 함께 참석한 작가의 어머니에게도 사인을 받으려는 이들이 많았다. 수줍게 펜을 들어 사인을 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엄마는 태어나 처음으로 내일이 막 궁금해져!”라는 여행 속 어머니의 대사가 떠올랐다. 300일간의 여행은 비록 끝났지만, 앞으로의 일상도 여행할 때처럼 궁금한 내일로 가득 차길 바라본다.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이라, 사실 아직도 실감이 안 납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독자분들을 만나보니 실감이 나네요. 주말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와주셔서 정말 기쁩니다. 많은 관심 감사합니다.
초기에 관심을 많이 받은 데에는 운영하는 블로그 <둘이 합쳐 계란 세 판, 세계여행을 떠나다>의 영향이 큰 것 같아요. 블로그의 글이 책으로 탄생되었을 때 느낌이 어땠나요?
처음에는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어요. 전문 작가가 아니다 보니 초고를 여러 번 수정하기도 했죠. 책을 손에 들었을 때 내가 쓴 책이라는 자각이 없었어요. 그래서 어떤 한 작가의 여행기라고 생각하고 읽어봤어요. (웃음) 읽으면서 새로웠고, 재미있기도 했어요. 오래전에 연락이 끊긴 친구들이 책을 보고 연락을 해오기도 했는데, 그때 아… 내가 책을 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니의 반응도 궁금해요.
어머니 입장에서는 아들이 책도 내고 사람들의 관심도 받으니까 아주 좋아하셨어요. “이미 여행은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보니 우리의 여행은 계속되고 있구나!”라고 말씀해주셔서 굉장히 기뻤어요. 그 말씀을 들으니 여행 떠날 때의 설렘이 다시 떠올랐어요.
책에서 보면 어머니의 음식점을 정리하고 떠났다는 내용이 나와요. 이 부분에서 많은 분들이 어머니의 돈으로 여행한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할 것 같아요.
제가 어머니 음식점을 찾아간 것은 함께 해외여행을 가자고 설득하기 위해서였어요. 무작정 여행을 가자는 아들의 말에 한 번에 오케이해줄 어머니는 많지 않으시니까. (웃음) 어머니를 설득하며 음식점에서 함께 일을 했죠. 어머니가 여행을 가겠다, 마음먹었을 때 운 좋게 음식점도 팔렸어요. 주저 없이 여행을 떠났지요. 물론 여행 경비는, 여행을 떠나기 전 제가 약 2년 반 정도 일을 하면서 모아두었던 돈으로 해결했어요. 넉넉한 환경에서 여행한 건 아니었지요. 유럽을 돌 때는 자금이 부족해서 한국에 있는 누나에게 원조를 받기도 했고….
책을 보면 글 못지않게 사진도 정말 감성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평소 사진 찍는 걸 좋아해요. 그러다보니 사진 관련 일도 했고요. 사소한 풍경이라도 마음에 닿은 장면은 반드시 사진으로 남겨둬요. 이번 여행에서는 어머니라는 훌륭한 모델이 있으니까 더욱 열심히 셔터를 눌렀던 것 같아요. 아, 어머니도 작은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가셨는데, 어머니는 아름다운 풍경보다 그 풍경 속에 있는 저의 모습만 찍으시더라고요. “어머니, 여기 아름다운 풍경 많으니 여기를 찍으세요.” 했더니, “풍경은 네가 많이 찍을 텐데 뭘, 난 네 사진을 찍고 싶어.”라고 하시면서요. 귀국 후 어머니 카메라를 보니 마치 스토커처럼 (웃음) 1만 장 이상의 제 사진을 가지고 계시더라고요. 덕분에 저도 몰랐던 제 모습을 볼 수 있었죠. 혼자 여행을 다니는 편이라 제 사진이 많지 않은데, 이번 기회에 원 없이 많은 사진을 갖게 됐죠. (웃음)
부모님과 여행을 하고 싶은데, 혹시나 싸우게 되지 않을까, 그래서 사이가 더 멀어지진 않을까 걱정이 돼 출발을 못하는 분들이 많아요. 여행 도중 어머니와 위기도 있었죠?
여행을 가기 전부터 어머니와 여기저기 많이 다녀서 그만큼 가까웠고 신뢰가 있었어요. 그래서 여행을 가도 문제가 없겠지, 라고 생각을 했는데… 큰 착각이었지요. (웃음) 여행 초반에는 서로 힘들어서 의지를 하다보니 그럭저럭 잘 지냈어요. 그런데 여행 중반이 되고 여행에 어느 정도 요령이 생기니까 오히려 싸우게 되는 일이 많아지더라고요. 사소하게 다툰 적은 엄청 많아요. 크게 다툰 부분은 책에도 썼는데, 인도네시아에서였어요. 어머니를 잘 모시고 여행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과 돈을 계획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어머니의 의견이나 감정은 돌아볼 여유가 없었어요. 어느 순간 돌아보니 제가 어머니께 강행군을 강요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무조건 쉬면서 대화를 나눠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인도네시아에서 5일을 있었는데 숙소 안에서 거의 반을 보냈죠. 숙소에서 서로에게 쌓아두고 말하지 못했던 것을 하나씩 풀어냈더니 관계가 더욱 돈독해졌어요. 덕분에 다음 일정도 즐겁게 소화해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대화 없이 좋지 않은 감정만 쌓아두고만 있었다면…, 아마 여행 중간 크게 싸우고 귀국했을지도 몰라요. 생각만 해도 아찔하죠.
장시간 많은 나라를 둘러보려면 아무래도 경비 부분이 가장 신경 쓰일 것 같아요. 경비는 어떻게 조율하셨어요?
이번 여행은 귀국 날짜를 정해놓고 떠난 게 아니에요. 그래서 경비를 최대한 아끼려고 했어요. 오늘 아끼면 하루를 더 여행할 수 있으니까. 숙소도 저렴한 걸 많이 찾았죠. 그래도 그 도시에만 있는 어떤 것을 먹거나, 타거나, 볼 때는 경비를 아끼지 않았어요. 예를 들어 곤돌라는 베네치아에서만 탈 수 있으니 무조건 탔죠. 이런 걸 해보지 않고 돌아가면 항상 생각이 나더라고요. 해봤어야 했는데, 하면서.
리뷰를 살펴보면, 많은 분들이 어머니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것 같아요. 솔직히 조금 서운하진 않으세요?
단언컨대, 저보다 어머니의 인기가 훨씬 많아요. (웃음) 특히 블로그에서요. 블로그 댓글이나 안부글을 보면 대부분 “어머니 대단하세요!” 이런 글들이 많아요. 아마 어머니라는 존재는 누구에게나 애틋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물론 제가 옆에서도 봤지만 정말 대단할 만큼 세계여행을 잘 소화하셨어요. 그래서 많은 분들이 관심과 격려를 보내주시는 것 같아요.
『엄마, 일단 가고봅시다!』에서 여행이 끝나지 않죠? 2권도 준비 중이라고 들었어요.
네. 유럽 이야기를 다룬 『엄마, 결국은 해피엔딩이야!』는 가을쯤 출간될 것 같아요. 저희 여행은 유럽을 기준으로 극명하게 분위기가 나뉘어요. 아시아는 아무래도 친숙하고 편한 느낌이었다면, 유럽은 문화적인 차이를 더 많이 느낄 수 있는 에피소드들이 많죠. 풍경도 아주 다르고, 사람도 다르고…. 특히 유럽에서는 카우치서핑을 했는데, 그러면서 각 나라의 분위기와 역사도 알게 되고, 현지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어요. 그래서 2권에는 사람들 이야기가 많이 나올 거예요. 어머니께서 유럽 친구들에게 비빔밥이나 칼국수도 많이 만들어주셨는데, 참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죠. (웃음) 유럽에서도 정말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았어요. 이 이야기는 차차 책으로 할게요.
여행을 가면 많은 사람들이 여행지에서의 아름다운 로맨스를 꿈꾸죠. 혹시 그런 건 없었나요?
어머니랑 계속 같이 다녀서 두근거리는 로맨스는 없었어요. 여행할 때는 말 그대로 거지 몰골로 다녔기 때문에 로맨스는 꿈도 못 꿀 상황이었어요. 그 대신 숙소에서 만난 여성분들이, 어머니와 함께 여행을 한다니까 저를 좋게 봐주시기는 했죠. 후훗. 유럽 여행에서는 많이 외로웠어요. 유럽은 길거리에서도 자연스럽게 애정행각을 하니까. 그래서 어머니께서 주무실 때 몰래 나가 맥주를 마시기도 했어요. 아… 여기에 대해서도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이것도 2권에서 공개할게요. (웃음)
여행은 귀국할 때 아쉬움이 많이 남는 것 같아요. 한국에 돌아올 때 기분이 어땠어요?
여행을 할수록 어머니가 저보다 더 여행을 즐기셨어요. 처음에는 6~7개월 정도로 예상하고 떠난 여행이었는데, 여행에 대한 어머니의 열정이 여행을 연장시켰죠. 그렇게 300일을 돌고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이 됐어요. 저는 사실 체력이 살짝 바닥이 난 상태였어요. 아무래도 누군가를 이끌며 여행한다는 건 피곤함과 긴장을 낳으니까요. 그래서 그런지 시원섭섭했어요. 뭔가 시원하면서도 이렇게 여행이 끝나는구나, 하는 아쉬움, 만감이 교차했죠. 그런데 어머니는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남미에도 가보고 싶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때 저는 남미에 가게 되든, 아니든 일단 한국으로 돌아가서 체력을 쌓아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웃음)
300일이면 상당히 많은 도시를 돌아보셨을 것 같은데, 어머니께서 가장 좋아하신 곳은 어디였나요?
도시를 말하라면 파리, 나라를 말하면 터키예요. 음… 어머니와 저의 종합된 의견을 말하자면 터키가 가장 좋았어요. 터키는 여행자들이 꿈꾸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어요. 나라도 아주 넓고 그만큼 볼거리도 많지요. 활기찬 도시, 숨 막히는 절경, 역사적 유물, 아름다운 해변, 조용한 마을 등 다양한 모습이 숨겨져 있어요. 아시아와 유럽 사이에 있으며 3개의 바다를 끼고 있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세상에 이런 곳이 있을까 싶은 풍경도 볼 수 있죠. 어머니도 터키가 무척 마음에 들어서 터키 티셔츠를 사가지고 오셨어요. 귀국 후 티셔츠를 잘라 쿠션으로 만드셨죠. 저희 집 소파에는 마치 터키에서 산 듯한 쿠션이 놓여 있어요. (웃음)
여행을 하면 인생에 무언가 변화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게다가 어머니와 길지 않은 시간 동안 해외여행을 하셨는데, 일상이 조금 바뀐 것이 있나요?
유럽에서 카우치서핑을 한 경험을 살려 저도 카우치서핑을 하고 있죠. 아직 우리나라에 잘 알려져 있지는 않은데, 쉽게 말해서 카우치서핑은 조건 없이 잠자리를 제공해주는 배낭여행자들의 커뮤니티예요. 친구를 초대하는 사람이 호스트, 초대를 받은 사람이 서퍼예요. 돈을 아끼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분들도 있어요. 하지만 카우치서핑을 하면 오히려 돈이 더 많이 들어요. 식사도 함께하고 함께 놀러 다니기도 하니까. 카우치서핑을 하는 이유는 정말 순수하게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예요. 그것도 국적이 다른 친구들. 참 매력적이죠. 멋진 풍경을 보면서 추억을 쌓을 수도 있지만, 사람과 쌓는 추억은 더 값지다고 생각해요. 이번 여행의 첫 카우치 호스트가 카우치서핑 베테랑이었는데, 앞으로 여행이 끝날 때까지 카우치서핑을 하라고 하더라고요. 엄청난 추억을 만들 수 있다고. 직접 해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서로 다른 문화에서 산 사람들이 만나 친구가 되니 생각지도 못했던 경험을 하게 되더라고요. 혹시 여행을 하게 된다면 카우치서핑을 추천합니다. 그리고 카우치서핑을 통해 좋은 추억이 생겼다면, 그 경험을 살려 귀국 후에도 카우치서핑을 하세요. 받은 만큼 다른 여행자들에게도 돌려줘야 하니까요.
질의응답 시간에 한 독자는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를 이야기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덧붙여 작가에게 이렇게 책으로라도 대리만족을 할 수 있게 해주어 고맙다는 말도 전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은 카페의 모든 독자들은 함께 공감했고, 아파하며 격려와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작가와의 만남이 끝난 후에는 사인회가 이어졌다. 태원준 작가뿐 아니라 함께 참석한 작가의 어머니에게도 사인을 받으려는 이들이 많았다. 수줍게 펜을 들어 사인을 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엄마는 태어나 처음으로 내일이 막 궁금해져!”라는 여행 속 어머니의 대사가 떠올랐다. 300일간의 여행은 비록 끝났지만, 앞으로의 일상도 여행할 때처럼 궁금한 내일로 가득 차길 바라본다.
- 엄마, 일단 가고봅시다! 태원준 저 | 북로그컴퍼니
어느 한 곳, 어느 한 순간도 놓칠 수 없는 여행 이야기로 채워진 『엄마, 일단 가고봅시다!』는 중국과 동남아시아, 중동의 이야기를 먼저 엮은 것으로, 여행 1막에 해당한다. 책 속에는 ‘정말? 과연? 실제로 그랬어?’ 싶은 흥미로운 이야기들과 여행 내내 엄마에게 재롱잔치라도 부리는 듯한 아들의 조금은 철이 없는, 하지만 훈훈한 속내가 가득해 읽는 이로 하여금 잔잔한 엄마미소를 짓게 만든다. 더불어 여행의 여운이 생생하게 담긴 사진도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여행 2막인 모로코에서부터 런던까지의 이야기, 『엄마, 결국은 해피엔딩이야!』는 오는 10월 출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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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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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윤혜민
재미있는 소재를 감각적으로 담기 위해 노력하고
새로운 만남을 주저하지 않는다.
chunching
2014.02.28
sera1005
2013.10.08
괜시리 엄마가 보고싶네요~~~
danae55
2013.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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