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럼 연주는 클래식이 될 수 있을까
『스마트 클래식 100』은 클래식이 생각보다 어렵거나 먼 곳에 있는 음악이 아님을 이야기한다. 누구나 한 번쯤 CF의 배경음악이나 영화 OST를 통해 들어봤을 법한, 낯설지 않은 클래식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클래식에 접근하는 방법부터 유명 음악가들과 그들의 작품에 대한 설명까지 담고 있는 이 책은, 클래식 입문자에게는 친절한 가이드 역할을 해 줄 것이다. 또한 클래식 애호가들에게는 미처 알지 못했던 무대 뒤편의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흥미로운 에세이가 될 것이다.
2013.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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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었다. 출근 길 차 안에서 라디오 방송을 들을 때도, 퇴근 후 집에 돌아와 TV 광고와 드라마를 시청할 때도, 주말에 극장을 찾아 영화를 관람할 때도, 그곳엔 클래식이 있었다. 그런데 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클래식을 어렵고 낯선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클래식이 특별한 날, 특정한 장소에서나 들을법한 노래로 인식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클래식이 실제로 어렵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클래식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긴 제목을 읽어내는 것부터가 쉽지 않은 일이다. 제목에 포함된 숫자와 음악 기호들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같은 곡이라 해도 언제 누구에 의해 연주되었느냐에 따라 다양한 버전이 존재하기 때문에 음반을 선택하기도 쉽지 않다. 이러한 이유들로 사람들은 ‘클래식은 어려운 음악’이라는 편견을 갖게 되었다. 클래식과 친해지려는 이들에게 그 편견은 클래식에 다가갈 수 없는 이유이자 장애가 되었고, 클래식 애호가들에게는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았다.
『스마트 클래식 100』 클래식은 어렵다는 편견에 맞서다
『스마트 클래식 100』을 펴낸 김성현 기자 역시 클래식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같은 고민을 해왔다. 조선일보의 문화부 음악 담당 기자로 일하며 그는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보다 친숙하게 클래식 음악을 이야기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했다. 그리고 클래식의 세계에 첫 발을 내딛는 사람들을 위해 그 문턱을 낮춰주려 노력해왔다. ‘클래식 ABC’라는 이름으로 조선일보에 칼럼을 연재하고 예술의 전당 월간지에 현대 음악 작곡가들 시리즈를 기고하는가 하면, EBS 라디오 프로그램 <한영애의 문화 한 페이지>에 출연해 음악계 소식을 전해주기도 했다. 활발한 저술 활동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오늘의 클래식』을 시작으로 『클래식 수첩』 『365일 유럽 클래식 기행』 등 클래식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직접 글로 쓰고, 『다니엘 바렌보임』과 『사이먼 래틀』 같은 클래식계의 거장들의 전기를 번역했다.
이 모든 활동들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원칙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에서 서양 고전음악이 탄생했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그 연관 고리와 맥락을 짚어보는” 것이었다. 클래식이 지금 우리의 삶과 동떨어져 있는 음악이 아님을 전달하기 위해 선택한 방식이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클래식 음악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비발디의 <사계> 중 1악장은 영화 <올드 보이>에 삽입되었던 음악으로, 2악장은 가수 이현우의 곡 ‘헤어진 다음날’에 샘플링 된 음악으로 소개하는 식이다.
이처럼 클래식은 어렵다는 편견에 맞서는 김성현 기자의 이야기 방식은 『스마트 클래식 100』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그는 책에 실린 100편의 짧은 글들을 통해 클래식 입문자들이라면 한 번쯤 궁금해 했을 법한, 하지만 ‘이렇게 기본적인 걸 물어봐도 될까’ 싶어서 망설였을 법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아이와 동행하는 첫 음악회는 언제가 좋을지, 실내악의 장르는 어떻게 구분되는지, 오케스트라의 많은 이름들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인지와 같은 기초적인 정보들을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고전과 현대를 넘나들며 다양한 지휘자들과 연주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한편 클래식계의 숨은 이야기와 식지 않은 논쟁들, 각각의 음악들에 감춰진 사연들을 소개한다. 그 결과 『스마트 클래식 100』은 클래식이 낯선 이들에게는 어렵지 않고 클래식 애호가들에게는 심심하지 않은, 양쪽 모두를 만족시키는 클래식 이야기가 되었다.
아직도 클래식을 듣기만 하세요?
지난 6월 25일,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김성현 기자와 독자들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예스24와 예술의전당이 함께 주최하는 ‘책 읽는 풍경’을 통해 이루어진 만남이었다. <오늘의 클래식 풍경>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이 날의 행사에서 김성현 기자는 『스마트 클래식 100』의 저자로서 클래식의 어제와 오늘에 대해 이야기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고전을 바라보는 두 가지의 상충된 시각이 존재합니다. 인문학 열풍에서 볼 수 있듯이, 한 편에는 고전이 우리 삶에 무한한 지혜를 줄 거라는 낙관적인 시각이 있습니다. 그 반대편에는 고전은 지금의 삶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무관심이 있고요. 이러한 현상을 보면서 저는 매일 질문하게 됩니다. ‘과연 지금 우리에게 문화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저는 우리 시대에 고전을 해석하는 방식에 관한 6편의 영상을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들과 함께 문화나 고전, 혹은 클래식이 우리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살펴보고 싶습니다.”
첫 번째 영상은 지난 2008년 베를린의 공연장에서 ‘베를린 고음악 아카데미’가 비발디의 <사계>를 연주한 공연 실황이었다. 저자는 그 중 「겨울」의 1악장을 독자들과 함께 감상했다. 화면 속에는 연주자들과 함께 무용수가 서있었다. 그는 바이올린 연주자(미도리 자일러) 머리 위로 눈을 흩뿌리고, 연주 중인 자일러를 번쩍 들어 올려 기울이기도 했다. 그때마다 자일러가 메고 있던 화살집에서는 화살들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마찰음을 냈다. 그 소리는 겨울바람에 꺾이는 나뭇가지를 연상시켰다. 그리고 주위의 연주자들은 모닥불을 피우듯 악기를 한 데 모아 불쏘시개처럼 쌓아두었다. 도대체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일까. 김성현 기자는 이해를 돕기 위해 비발디가 <사계>의 「겨울」 악장에 적어놓았던 짧은 글귀를 소개했다. “얼어붙을 듯이 차가운 겨울. 산과 들은 눈으로 뒤덮이고 삭풍은 나뭇가지를 잡아 흔들다. 이가 딱딱 부딪힐 만큼 극심한 추위다”. 베를린 고음악 아카데미는 비발디가 표현하고자 했던 겨울의 모습을 전달하기 위해 연주와 무용을 결합시킨 것이다.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활용하는 방식으로 <사계>의 「겨울」을 공감각적으로 재구성한 시도였다. 이처럼 다른 장르와의 결합을 통해 고전을 재구성하는 작업이 우리 시대 클래식의 트렌드 중 하나라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이어서 그는 피아니스트 ‘레이프 오베 안스네스’가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을 연주하는 영상을 보여주었다. 2009년 6월 노르웨이의 리조르에서 열린 실내악 페스티벌의 한 장면이었다. 「전람회의 그림」은 무소륵스키가 자신의 친구였던 화가 빅토르 하르트만이 타계한 뒤, 그의 추모 전시회를 둘러보며 받았던 감흥을 담아낸 곡이다. 「전람회의 그림」을 구성하는 열 개의 곡은 모두 하르트만의 그림에서 제목을 따왔는데, 이 날 독자들에게 공개된 영상은 그 중 마지막 곡인 「키예프의 대문」을 연주하는 모습이었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안스네스 뒤로 펼쳐진 이 놀라운 영상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영상 아티스트인 ‘로빈 로드’가 제작한 것이었다. 로빈 로드는 안스네스의 초청을 받고 「전람회의 그림」을 들으며 떠올린 이미지들을 영상으로 만들어냈다. 북유럽과 남아프리카의 지리적 거리, 클래식과 힙합이라는 문화적 차이, 청각에 호소하는 피아니스트와 시각 이미지를 활용하는 미디어 아티스트라는 서로 다른 직업을 뛰어넘어 두 예술가가 이루어낸 앙상블의 순간이었다.
“이런 식으로 우리 시대의 클래식은 단순히 곡의 해석에 그치는 게 아니라 그 의미를 재해석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텍스트, 악보에만 그치지 않고 그것이 갖고 있는 맥락을 중요시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베를린 고음악 아카데미’가 연주한 비발디의 <사계>가 무용과 결합했다면, 안스네스와 로빈 로드의 「전람회의 그림」은 미디어 영상과 결합했다는 게 차이점이죠.”
당대의 모습 그대로 클래식을 재현하다
하지만 우리 시대의 클래식이 이와 같은 파격적이고 급진적인 시도만 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한 편에서는 고전 음악의 악기와 연주법을 그대로 재현하려는 노력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저자는 지휘자 ‘요스 판 이메르세일’이 고음악 연주 단체인 ‘아니마 에테르나’와 함께 2009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베토벤 교향곡 5번을 연주한 공연을 소개했다. 베토벤 교향곡 5번은 우리에게 「운명」으로 익숙한 곡이다. 김성현 기자는 이메르세일과 ‘아니마 에테르나’의 공연 실황이 담긴 「베토벤 5번의 재발견」이라는 제목의 영상 중에서도 1악장에 해당되는 부분을 독자들에게 공개했다. 그리고 영상 속에 담긴 이메르세일과 오케스트라의 노력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것은 베토벤이 「운명」 교향곡을 연주할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려는 노력이었다.
이와 같은 시도는 당대의 연주 풍경을 재현하는 의미뿐만 아니라, 베토벤이라는 음악인에 대해 재해석하는 의미까지 갖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베토벤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는 청력을 잃어가면서도 시대의 고통과 싸운 악성(樂聖)의 그것이다. 그런데 과연 당대에도 그는 엄숙한 성인 혹은 종교적인 이미지로 존재했을까. 고전 음악의 옛 모습을 재현하려는 고음악 단체들은 이러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그들의 지적 호기심과 탐구야말로 ‘시대 연주 흐름’이 가져다 준 20세기 후반의 가장 큰 성과라고 평가했다. 그들의 노력 덕분에 우리가 향유할 수 있는 클래식의 양식이 보다 이전의 과거로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이어서 그는 2003년 영국의 고음악 단체인 ‘잉글리시 콘서트’가 런던의 템스 강에서 헨델의 「수상음악」 연주 모습을 재현한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의미 있는 시도였다고 소개했다.
드럼 연주는 클래식이 될 수 있을까
김성현 기자가 소개한 네 편의 영상, 「사계」 「전람회의 그림」「베토벤 교향곡 5번」 「수상음악」이 과거의 클래식에 대한 오늘의 재해석 노력을 보여줬다. 저자는 이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후대에 클래식으로 평가될만한 곡들을 소개했다. 그 중 말러의 교향곡인 「부활」은 인류애를 상징하는 고전 음악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곡은 특히 ‘뉴욕 필하모닉’에게 굉장히 의미가 깊은 곡이다. 작곡가인 말러가 타계하기 전까지 지휘자로 재직했던 악단이 바로 뉴욕필하모닉이었다. 그리고 말러가 타계한 후에도 뉴욕 필 하모닉과 「부활」의 인연은 계속 이어져, ‘레너드 번스타인’은 뉴욕필하모닉의 지휘를 맡고 있을 때 케네디 전 대통령의 암살 사건 뒤에 추모의 뜻을 담아 이 곡을 연주했다. 그리고 2011년 9월 11일, 9ㆍ11 테러 10주기를 추모하는 공연에서도 뉴욕 필 하모닉은 ‘앨런 길버트’의 지휘에 맞춰 <부활>을 연주했다. 저자는 당시의 실황 영상 중 「부활」의 4악장 모습을 독자들과 함께 감상했다.
그리고 이어서 마지막 영상을 공개했다. 타악기 연주자 ‘마틴 그루빙거’가 2010년 쾰른에서 「타악기의 행성」을 연주하는 모습이었다. 지금까지 클래식에서 타악기는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타악기 협주곡이나 독주곡을 남긴 유명한 작곡가는 찾아볼 수도 없는 현실이었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대중음악의 힘이 어느 때보다 강해지고 사람들이 리듬과 파워에 열광하게 되면서, 타악기를 전면에 내세운 곡들이 연주되고 있다. 마틴 그루빙거는 그러한 변화의 한 가운데 서 있는 주목받는 신예다. 저자가 준비해 온 영상 속에서 마틴 그루빙거는 타악기만으로도, 그리고 타악기를 중심으로 다른 악기들을 아우르면서도 얼마든지 연주가 가능함을 몸소 입증해 보였다. 이 날의 공연을 위해 그는 아시아, 유럽, 미국, 호주에 이르기까지 다섯 개 대륙에 있는 작곡가들에게 타악기가 중심이 되는 작품을 받아 연주했다.
“이 음악이 과연 클래식인지 아닌지, 궁금하실 겁니다. 저도 궁금하고요. 그런데 사실 이런 질문은 부질없다고 할 수 있죠. 왜냐하면 결국 고전의 잣대를 가늠해줄 것은 우리 이후의 세대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죠. 고전이든 클래식이든, 지금 우리에게 즐거움을 줄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 체험의 장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결국 고전은 그것이 서양의 것이든 동양의 것이든, 우리 인류의 지혜가 담긴 저수지와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저수지에서 우리가 얼마나 많은 물을 마시고 삶을 즐겁게 만들어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로 관점을 바꾸는 순간, 클래식을 다르게 즐길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이 생겨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가 강연을 마치며 강조한 것은 클래식이 결코 먼 곳에 있는 음악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오래된 음악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클래식이 지금의 삶과 무관하다고 여기지만, 그것은 사실도 아닐뿐더러 그렇게 생각해서도 안 된다는 이야기였다. 김성현 기자에게 클래식이란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과 교감하려는 노력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일상 속에서 향유하고 즐기는 고전으로써 클래식이 존재하지 못하는 현실을 우려했다. 지금 우리에게 클래식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즐겨야하는 음악’으로 막연한 당위로만 다가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우리 마음속에 있는 문화에의 욕구를 믿었다. 문화에 더욱 다가가서 그것을 향유하고자 하는 욕구의 존재를 믿었다. 강연을 통해 오늘의 세상과 교감하려는 고전 음악의 노력을 보여준 이유는, 그 순수한 열망이 발현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다. 김성현 기자와 독자들이 함께한 ‘책 읽는 풍경’은 그 마음들이 만나는 장이 되었다.
‘베를린 필하모니’ 와 ‘베를린 필하모니커’는 서로 다른 이름?
<운명> 교향곡은 대부분 30분 안팎의 시간동안 연주되는데요, 기자님은 그동안 온전히 집중하시나요?
실제로 집중하는 순간 혹은 열망의 순간, 감동의 순간은 그렇게 길수가 없습니다. 재미있는 건 감동의 순간이든 흥미의 순간이든 도취의 순간이든, 그것은 언제 찾아올지 모른다는 데 매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감동은 예기치 못한 순간에 오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연주 시간 동안 지속되지는 않습니다(웃음).
‘베를린 필하모니’ 관현악단은 ‘베를린 필하모니커’라고 하기도 하고 그냥 ‘베를린 필’이라고 하기도 하는데요, 정확한 명칭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예전에 독일권에서 ‘필하모니 오케스트라’로 썼죠. 그리고 영어권에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로 썼고요. 그래서 과연 어떤 이름이 맞는냐를 가지고 국립 국어원이나 (신문사)교열부에서도 가끔 논쟁을 합니다.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는 재단 독립을 하면서 ‘필하모니커’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 세 가지 이름-영어권에서 쓰는 ‘필하모닉’ 과 예전 독일어권에서 썼던 ‘필하모니’, 재단 독립 이후에 21세기 들어와서 쓰고 있는 ‘필하모니커’가 혼동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어떤 명칭을 쓰셔도 상관없습니다. 예를 들면 예전에 우리 음반에서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런던 교향악단’이라고 번역했습니다. ‘런던 필하모니 오케스트라’는 ‘런던 관현악단’이라고 표기했고요. 하지만 지금은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런던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라는 영어명으로 부릅니다. 이렇게 명칭이 다른 것은 그 사회의 그룹에서 당대에 통용되는 약속일뿐입니다. 우리가 마오쩌둥이 맞느냐 모택동이 맞느냐를 가지고 논쟁할 필요가 없듯이 ‘필하모닉’ 과 ‘필하모니’ 와 ‘필하모니커’ 중에 무엇이 옳은지 단정 지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각 명칭들의 유래와 이유들만 알면 되는 것이죠.
프랑스 파리로 1년 동안 해외연수를 떠나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파리에서는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셨나요?
연수를 떠나기 몇 년 전부터 ‘파리에서 1년 동안 무엇을 할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일단 저는 ‘공부하지 않겠다’를 원칙으로 세웠습니다. 그리고 유럽을 가기로 결정이 된 이후에 ‘그 1년 동안이 아니면 절대 할 수 없는 짓을 하자’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은 하지 않겠다, 할 수 없는 일만 하겠다’고 생각한 거죠. 그래서 유럽의 공연장들을 찾아다니기로 했어요. 처음에는 가산 탕진이 목표였습니다(웃음). 그 정도 선에서 공연을 즐기려고 했는데 마지막 순간에는 패가망신 해버렸죠(웃음). 유럽의 저가 항공 비행기를 타고서 공연장들을 돌아다니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 1년 동안의 기록들을 모아서 『365일 유럽 클래식 기행』이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고요.
파리에 머무시는 동안 가장 감명 깊었던 공연은 무엇인가요?
한국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고전 낭만과 같은 장르가 아닌, 절대 들어볼 수 없는 음악들을 들어보고 싶었어요. 이를테면 지금 당대에 작곡되는 음악들 같은 거죠. 그런 개인적인 목표가 있었어요. 그리고 공연을 보면서 ‘머레이 페라이어’, ‘안드라스 쉬프’, ‘라두 루프’, ‘소콜로프’ 이 네 명의 피아니스트가 얼마나 위대한 피아니스트인가를 느끼고 온 것 같습니다. 물론 그들도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우리가 기억 속에 간직한 예전 모습 그대로일 거라고 생각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1년 동안 네 명의 피아니스트가 저에게는 사천왕 같은 존재였습니다.
『스마트 클래식 100』 클래식은 어렵다는 편견에 맞서다
『스마트 클래식 100』을 펴낸 김성현 기자 역시 클래식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같은 고민을 해왔다. 조선일보의 문화부 음악 담당 기자로 일하며 그는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보다 친숙하게 클래식 음악을 이야기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했다. 그리고 클래식의 세계에 첫 발을 내딛는 사람들을 위해 그 문턱을 낮춰주려 노력해왔다. ‘클래식 ABC’라는 이름으로 조선일보에 칼럼을 연재하고 예술의 전당 월간지에 현대 음악 작곡가들 시리즈를 기고하는가 하면, EBS 라디오 프로그램 <한영애의 문화 한 페이지>에 출연해 음악계 소식을 전해주기도 했다. 활발한 저술 활동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오늘의 클래식』을 시작으로 『클래식 수첩』 『365일 유럽 클래식 기행』 등 클래식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직접 글로 쓰고, 『다니엘 바렌보임』과 『사이먼 래틀』 같은 클래식계의 거장들의 전기를 번역했다.
이 모든 활동들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원칙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에서 서양 고전음악이 탄생했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그 연관 고리와 맥락을 짚어보는” 것이었다. 클래식이 지금 우리의 삶과 동떨어져 있는 음악이 아님을 전달하기 위해 선택한 방식이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클래식 음악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비발디의 <사계> 중 1악장은 영화 <올드 보이>에 삽입되었던 음악으로, 2악장은 가수 이현우의 곡 ‘헤어진 다음날’에 샘플링 된 음악으로 소개하는 식이다.
이처럼 클래식은 어렵다는 편견에 맞서는 김성현 기자의 이야기 방식은 『스마트 클래식 100』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그는 책에 실린 100편의 짧은 글들을 통해 클래식 입문자들이라면 한 번쯤 궁금해 했을 법한, 하지만 ‘이렇게 기본적인 걸 물어봐도 될까’ 싶어서 망설였을 법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아이와 동행하는 첫 음악회는 언제가 좋을지, 실내악의 장르는 어떻게 구분되는지, 오케스트라의 많은 이름들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인지와 같은 기초적인 정보들을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고전과 현대를 넘나들며 다양한 지휘자들과 연주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한편 클래식계의 숨은 이야기와 식지 않은 논쟁들, 각각의 음악들에 감춰진 사연들을 소개한다. 그 결과 『스마트 클래식 100』은 클래식이 낯선 이들에게는 어렵지 않고 클래식 애호가들에게는 심심하지 않은, 양쪽 모두를 만족시키는 클래식 이야기가 되었다.
아직도 클래식을 듣기만 하세요?
“지금 우리 사회에는 고전을 바라보는 두 가지의 상충된 시각이 존재합니다. 인문학 열풍에서 볼 수 있듯이, 한 편에는 고전이 우리 삶에 무한한 지혜를 줄 거라는 낙관적인 시각이 있습니다. 그 반대편에는 고전은 지금의 삶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무관심이 있고요. 이러한 현상을 보면서 저는 매일 질문하게 됩니다. ‘과연 지금 우리에게 문화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저는 우리 시대에 고전을 해석하는 방식에 관한 6편의 영상을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들과 함께 문화나 고전, 혹은 클래식이 우리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살펴보고 싶습니다.”
첫 번째 영상은 지난 2008년 베를린의 공연장에서 ‘베를린 고음악 아카데미’가 비발디의 <사계>를 연주한 공연 실황이었다. 저자는 그 중 「겨울」의 1악장을 독자들과 함께 감상했다. 화면 속에는 연주자들과 함께 무용수가 서있었다. 그는 바이올린 연주자(미도리 자일러) 머리 위로 눈을 흩뿌리고, 연주 중인 자일러를 번쩍 들어 올려 기울이기도 했다. 그때마다 자일러가 메고 있던 화살집에서는 화살들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마찰음을 냈다. 그 소리는 겨울바람에 꺾이는 나뭇가지를 연상시켰다. 그리고 주위의 연주자들은 모닥불을 피우듯 악기를 한 데 모아 불쏘시개처럼 쌓아두었다. 도대체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일까. 김성현 기자는 이해를 돕기 위해 비발디가 <사계>의 「겨울」 악장에 적어놓았던 짧은 글귀를 소개했다. “얼어붙을 듯이 차가운 겨울. 산과 들은 눈으로 뒤덮이고 삭풍은 나뭇가지를 잡아 흔들다. 이가 딱딱 부딪힐 만큼 극심한 추위다”. 베를린 고음악 아카데미는 비발디가 표현하고자 했던 겨울의 모습을 전달하기 위해 연주와 무용을 결합시킨 것이다.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활용하는 방식으로 <사계>의 「겨울」을 공감각적으로 재구성한 시도였다. 이처럼 다른 장르와의 결합을 통해 고전을 재구성하는 작업이 우리 시대 클래식의 트렌드 중 하나라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이어서 그는 피아니스트 ‘레이프 오베 안스네스’가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을 연주하는 영상을 보여주었다. 2009년 6월 노르웨이의 리조르에서 열린 실내악 페스티벌의 한 장면이었다. 「전람회의 그림」은 무소륵스키가 자신의 친구였던 화가 빅토르 하르트만이 타계한 뒤, 그의 추모 전시회를 둘러보며 받았던 감흥을 담아낸 곡이다. 「전람회의 그림」을 구성하는 열 개의 곡은 모두 하르트만의 그림에서 제목을 따왔는데, 이 날 독자들에게 공개된 영상은 그 중 마지막 곡인 「키예프의 대문」을 연주하는 모습이었다.
이날 공연에서 안스네스가 마지막 곡인 「키예프의 대문」을 장엄하게 연주할 즈음, 무대 뒤편에 설치된 화면에서는 피아노가 서서히 물에 가라앉는 영상이 나왔습니다. 연주가 끝날 무렵 피아노는 물에 완전히 잠겼고, 검은 피아노와 흰 물결은 뚜렷한 시각적 대조를 이뤘지요. 무대 위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화면으로는 피아노를 수장시키는 영상을 맞물려서 신선한 충격을 안겼습니다. (p.290~291) | ||
“이런 식으로 우리 시대의 클래식은 단순히 곡의 해석에 그치는 게 아니라 그 의미를 재해석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텍스트, 악보에만 그치지 않고 그것이 갖고 있는 맥락을 중요시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베를린 고음악 아카데미’가 연주한 비발디의 <사계>가 무용과 결합했다면, 안스네스와 로빈 로드의 「전람회의 그림」은 미디어 영상과 결합했다는 게 차이점이죠.”
당대의 모습 그대로 클래식을 재현하다
하지만 우리 시대의 클래식이 이와 같은 파격적이고 급진적인 시도만 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한 편에서는 고전 음악의 악기와 연주법을 그대로 재현하려는 노력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저자는 지휘자 ‘요스 판 이메르세일’이 고음악 연주 단체인 ‘아니마 에테르나’와 함께 2009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베토벤 교향곡 5번을 연주한 공연을 소개했다. 베토벤 교향곡 5번은 우리에게 「운명」으로 익숙한 곡이다. 김성현 기자는 이메르세일과 ‘아니마 에테르나’의 공연 실황이 담긴 「베토벤 5번의 재발견」이라는 제목의 영상 중에서도 1악장에 해당되는 부분을 독자들에게 공개했다. 그리고 영상 속에 담긴 이메르세일과 오케스트라의 노력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것은 베토벤이 「운명」 교향곡을 연주할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려는 노력이었다.
이메르세일은 악기와 편성, 청중의 규모까지 작곡가 당대의 분위기를 그대로 살렸습니다. 개량을 거친 현대식 악기 대신 베토벤 당대의 옛 악기를 사용하고, 현대식 오케스트라의 절반에 불과한 35명 안팎으로 연주했으며, 당대 귀족의 궁정처럼 청중도 단 50명만 초대했습니다. (중략) 플루트는 금속 대신 목재를 사용했고, 호른이나 트럼펫 같은 금관 악기에서도 음높이를 조절하는 밸브를 찾기 힘들었지요. 현악기 역시 현대실 철현(鐵絃) 대신 양의 창자를 정제해서 만든 거트(gut) 현을 사용했고, 가느다랗게 음을 떠는 비브라토를 최대한 절제해서 훨씬 여백이 많고 넉넉하며 따스한 소리를 살렸습니다. (p.176) | ||
드럼 연주는 클래식이 될 수 있을까
김성현 기자가 소개한 네 편의 영상, 「사계」 「전람회의 그림」「베토벤 교향곡 5번」 「수상음악」이 과거의 클래식에 대한 오늘의 재해석 노력을 보여줬다. 저자는 이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후대에 클래식으로 평가될만한 곡들을 소개했다. 그 중 말러의 교향곡인 「부활」은 인류애를 상징하는 고전 음악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곡은 특히 ‘뉴욕 필하모닉’에게 굉장히 의미가 깊은 곡이다. 작곡가인 말러가 타계하기 전까지 지휘자로 재직했던 악단이 바로 뉴욕필하모닉이었다. 그리고 말러가 타계한 후에도 뉴욕 필 하모닉과 「부활」의 인연은 계속 이어져, ‘레너드 번스타인’은 뉴욕필하모닉의 지휘를 맡고 있을 때 케네디 전 대통령의 암살 사건 뒤에 추모의 뜻을 담아 이 곡을 연주했다. 그리고 2011년 9월 11일, 9ㆍ11 테러 10주기를 추모하는 공연에서도 뉴욕 필 하모닉은 ‘앨런 길버트’의 지휘에 맞춰 <부활>을 연주했다. 저자는 당시의 실황 영상 중 「부활」의 4악장 모습을 독자들과 함께 감상했다.
그리고 이어서 마지막 영상을 공개했다. 타악기 연주자 ‘마틴 그루빙거’가 2010년 쾰른에서 「타악기의 행성」을 연주하는 모습이었다. 지금까지 클래식에서 타악기는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타악기 협주곡이나 독주곡을 남긴 유명한 작곡가는 찾아볼 수도 없는 현실이었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대중음악의 힘이 어느 때보다 강해지고 사람들이 리듬과 파워에 열광하게 되면서, 타악기를 전면에 내세운 곡들이 연주되고 있다. 마틴 그루빙거는 그러한 변화의 한 가운데 서 있는 주목받는 신예다. 저자가 준비해 온 영상 속에서 마틴 그루빙거는 타악기만으로도, 그리고 타악기를 중심으로 다른 악기들을 아우르면서도 얼마든지 연주가 가능함을 몸소 입증해 보였다. 이 날의 공연을 위해 그는 아시아, 유럽, 미국, 호주에 이르기까지 다섯 개 대륙에 있는 작곡가들에게 타악기가 중심이 되는 작품을 받아 연주했다.
“이 음악이 과연 클래식인지 아닌지, 궁금하실 겁니다. 저도 궁금하고요. 그런데 사실 이런 질문은 부질없다고 할 수 있죠. 왜냐하면 결국 고전의 잣대를 가늠해줄 것은 우리 이후의 세대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죠. 고전이든 클래식이든, 지금 우리에게 즐거움을 줄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 체험의 장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결국 고전은 그것이 서양의 것이든 동양의 것이든, 우리 인류의 지혜가 담긴 저수지와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저수지에서 우리가 얼마나 많은 물을 마시고 삶을 즐겁게 만들어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로 관점을 바꾸는 순간, 클래식을 다르게 즐길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이 생겨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가 강연을 마치며 강조한 것은 클래식이 결코 먼 곳에 있는 음악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오래된 음악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클래식이 지금의 삶과 무관하다고 여기지만, 그것은 사실도 아닐뿐더러 그렇게 생각해서도 안 된다는 이야기였다. 김성현 기자에게 클래식이란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과 교감하려는 노력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일상 속에서 향유하고 즐기는 고전으로써 클래식이 존재하지 못하는 현실을 우려했다. 지금 우리에게 클래식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즐겨야하는 음악’으로 막연한 당위로만 다가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우리 마음속에 있는 문화에의 욕구를 믿었다. 문화에 더욱 다가가서 그것을 향유하고자 하는 욕구의 존재를 믿었다. 강연을 통해 오늘의 세상과 교감하려는 고전 음악의 노력을 보여준 이유는, 그 순수한 열망이 발현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다. 김성현 기자와 독자들이 함께한 ‘책 읽는 풍경’은 그 마음들이 만나는 장이 되었다.
‘베를린 필하모니’ 와 ‘베를린 필하모니커’는 서로 다른 이름?
<운명> 교향곡은 대부분 30분 안팎의 시간동안 연주되는데요, 기자님은 그동안 온전히 집중하시나요?
실제로 집중하는 순간 혹은 열망의 순간, 감동의 순간은 그렇게 길수가 없습니다. 재미있는 건 감동의 순간이든 흥미의 순간이든 도취의 순간이든, 그것은 언제 찾아올지 모른다는 데 매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감동은 예기치 못한 순간에 오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연주 시간 동안 지속되지는 않습니다(웃음).
‘베를린 필하모니’ 관현악단은 ‘베를린 필하모니커’라고 하기도 하고 그냥 ‘베를린 필’이라고 하기도 하는데요, 정확한 명칭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예전에 독일권에서 ‘필하모니 오케스트라’로 썼죠. 그리고 영어권에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로 썼고요. 그래서 과연 어떤 이름이 맞는냐를 가지고 국립 국어원이나 (신문사)교열부에서도 가끔 논쟁을 합니다.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는 재단 독립을 하면서 ‘필하모니커’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 세 가지 이름-영어권에서 쓰는 ‘필하모닉’ 과 예전 독일어권에서 썼던 ‘필하모니’, 재단 독립 이후에 21세기 들어와서 쓰고 있는 ‘필하모니커’가 혼동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어떤 명칭을 쓰셔도 상관없습니다. 예를 들면 예전에 우리 음반에서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런던 교향악단’이라고 번역했습니다. ‘런던 필하모니 오케스트라’는 ‘런던 관현악단’이라고 표기했고요. 하지만 지금은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런던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라는 영어명으로 부릅니다. 이렇게 명칭이 다른 것은 그 사회의 그룹에서 당대에 통용되는 약속일뿐입니다. 우리가 마오쩌둥이 맞느냐 모택동이 맞느냐를 가지고 논쟁할 필요가 없듯이 ‘필하모닉’ 과 ‘필하모니’ 와 ‘필하모니커’ 중에 무엇이 옳은지 단정 지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각 명칭들의 유래와 이유들만 알면 되는 것이죠.
프랑스 파리로 1년 동안 해외연수를 떠나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파리에서는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셨나요?
연수를 떠나기 몇 년 전부터 ‘파리에서 1년 동안 무엇을 할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일단 저는 ‘공부하지 않겠다’를 원칙으로 세웠습니다. 그리고 유럽을 가기로 결정이 된 이후에 ‘그 1년 동안이 아니면 절대 할 수 없는 짓을 하자’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은 하지 않겠다, 할 수 없는 일만 하겠다’고 생각한 거죠. 그래서 유럽의 공연장들을 찾아다니기로 했어요. 처음에는 가산 탕진이 목표였습니다(웃음). 그 정도 선에서 공연을 즐기려고 했는데 마지막 순간에는 패가망신 해버렸죠(웃음). 유럽의 저가 항공 비행기를 타고서 공연장들을 돌아다니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 1년 동안의 기록들을 모아서 『365일 유럽 클래식 기행』이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고요.
파리에 머무시는 동안 가장 감명 깊었던 공연은 무엇인가요?
한국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고전 낭만과 같은 장르가 아닌, 절대 들어볼 수 없는 음악들을 들어보고 싶었어요. 이를테면 지금 당대에 작곡되는 음악들 같은 거죠. 그런 개인적인 목표가 있었어요. 그리고 공연을 보면서 ‘머레이 페라이어’, ‘안드라스 쉬프’, ‘라두 루프’, ‘소콜로프’ 이 네 명의 피아니스트가 얼마나 위대한 피아니스트인가를 느끼고 온 것 같습니다. 물론 그들도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우리가 기억 속에 간직한 예전 모습 그대로일 거라고 생각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1년 동안 네 명의 피아니스트가 저에게는 사천왕 같은 존재였습니다.
- 스마트 클래식 100 김성현 저 | 아트북스
왜 사람들은 클래식을 ‘듣기는 어렵지만 꼭 듣고 싶은’ 음악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일까? 클래식에 입문하는데 도움이 되는 소소한 정보부터 클래식 동네의 숨겨진 이야기들, 지휘자 이야기와 하나의 곡에 담겨진 사연, 그리고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연주자들 이야기까지, 클래식음악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100편의 짤막한 글들에 빼곡히 채워 담았다. 기자다운 재기발랄하고 명쾌한 글쓰기 덕분에 어렵고 고루하게만 느껴졌던 클래식을 친숙하게 접할 수 있다. 클래식 초심자에게는 든든한 준비운동이, 애호가에게는 즐거운 읽을거리가 될 것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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