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답은 무엇인가?
만년의 톨스토이가 기독교 사상에 입각하여 사랑과 근로와 자기 희생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면서 쓴, 재미있으면서도 인생의 깊은 의미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한 단편 모음집이다. 톨스토이는 이 작품들을 통해 자기 희생적인 소박한 신앙에 의한 인간 구원의 길을 찾고 있다.
2013.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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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간략 소개
만년의 톨스토이가 기독교 사상에 입각하여 사랑과 근로와 자기 희생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면서 쓴, 재미있으면서도 인생의 깊은 의미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한 단편 모음집이다. 톨스토이는 이 작품들을 통해 자기 희생적인 소박한 신앙에 의한 인간 구원의 길을 찾고 있다.
작품 소개
어느 날 레프 니콜라예프 톨스토이는 농부들에게 부탁을 받게 된다. 자신들은 글을 잘 읽지도 못하고 어려운 글을 이해하기도 어려우니 농부들을 위한 쉬운 책을 써달라는 요청이었다. 그 요구에 기꺼이 응한 톨스토이는 농부들을 위한 쉬운 소설을 집필하게 된다. 톨스토이의 단편선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통해 그들을 위한 저자의 세심한 배려를 느낄 수 있다. 그는 귀족의 자녀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왜곡된 사회질서와 사상에 회의를 느끼게 되었고 인간의 내면과 삶의 본질에 대해서 고민하고 탐구하는 자세를 유지했다. 그 결과 수많은 걸작을 남기며 러시아의 대문호, 세계적인 작가로 명성을 떨칠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가 비록 농부들을 위한 쉬운 글쓰기에 따른 작품을 담고 있다고 하나, 한 편 한 편 작가의 사상과 삶에 대한 통찰이 깊이 배어있음을 느낄 수 있다. 총 7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는 책에서 톨스토이는 민중의 편에서 시대를 고발하고, 독자들에게 그런 부조리한 삶 가운데서도 정의를 따라 성실하게 살아갈 것을 촉구한다.
특별히 소설 속 인물들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잘 드러내 보여 주는데, 한없이 복잡해 보이는 것이 사람이라지만, 작품 속에서 나타나는 사건들에서 만나게 되는 인물들은 시대와 문화를 뛰어넘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묘사된다.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 사람에게는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능력이 주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두 번째로 웃었습니다.
단편집의 첫번째 소설이자 책의 제목이기도 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에서 우리는 무엇을 구하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나게 된다.
가난한 구두 수선공 시몬과 그의 아내 마트료나. 어느 추운 겨울(러시아의 겨울이니 얼마나 추웠겠는가!) 길에서 거의 얼어죽기 직전인 미하일을 발견하게 되고 그를 집으로 데려와 목숨을 구해주고 구두 수선 기술을 가르쳐주어 6년 간 함께 일하며 지내게 된다. 후에 그가 하나님의 벌을 받고 땅에 내려온 천사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하나님으로부터 세 가지 질문에 대한 진리를 알게 되기 전까지는 다시 하늘로 올 수 없다는 명령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듣게 된다. 그 세 가지 질문이 바로-사람의 마음에는 무엇이 있는가,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였다.
미하일을 처음 발견한 추운 겨울, 사실 시몬은 그를 버려두고 그냥 지나쳐버리려 했다. 본인이 해를 당할까 두려워서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죽음을 신경 쓸 정도로 여유가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내 발길을 돌려 미하일에게 돌아와 그의 목숨을 구해주게 된다. 바로 여기서 사람의 마음에는 무엇이 있는지 알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사랑’이다. 단순한 이야기 이지만 이 안에 인간의 본성과 또 다른 본성을 잘 묘사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완전하게 선한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면야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이겠냐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렇지 못하다. 다른 사람을 탓할 필요가 없다.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얼마나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데에만 온 에너지를 쏟아 붇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한 편으로 양심이라는 것이 존재하여 어려운 사람들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누구나 ‘선’을 추구해야 함이 ‘옳음’을 본능적으로 안다. ‘선’은 결국 ‘정의’와 연결된다. ‘정의’는 ‘사랑’과 맞닿아있다.
위에서 소개한 본문과 같이 사람은 자기 자신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지 못한다. 책에서는 장화를 부탁한 부자에게 미하일이 곧 죽음이 닥칠 것을 예견하고 장례 때에 죽은 사람에게 신기는 가죽 슬리퍼를 만들어 건네게 되는데 실제로 그 부자는 바로 그 당일에 목숨을 잃게 된다. 이처럼 단 1초 앞의 미래도 어떤 일이 발생할지 알지 못하는 인간은,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지 못한다. 물질적인 것 뿐만 아니라 어떤 삶을 추구하며 살아야 하는지도 알지 못한다. 자신의 삶을 위해 힘을 쏟고 열정을 기울여 살아가지만 결국 이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다만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라는 정도만 인식할 뿐이다.
그렇다면 마지막 질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답은 무엇인가?
아마 눈치를 챈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 짧은 리뷰에 답을 말해버리면 재미도, 의미도 퇴색될 듯 하여 이쯤에서 마무리를 지으려고 한다. 그 답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땅에서의 목숨이 끝나는 날까지 그것을 어떻게 실현해 나가야하는가 하는 것은 평생의 숙제이다. 나 또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예스24 파워문화블로그 불변하는 진리 님이 작성하신 리뷰입니다.
작가 및 작품 세계 소개
톨스토이는 15세 때까지 그곳에서 지냈는데, 그 동안에 2세 때에 어머니를, 9세 때에는 아버지를 여의었다. 그 후에는 먼 친척인 타치야나와 알렉산드라라는 두 부인에 의해 양육되었다. 타치야나는 ‘사랑하는 일의 행복’과 ‘꾸밈없는 조용한 생활의 아름다움’을 톨스토이에게 가르쳐 그의 생애에 큰 영향을 미쳤고, 알렉산드라는 그의 어린 영혼에 신앙심을 심어 주었다고 전해진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은 톨스토이는 고독하고 내성적인 나날을 보내게 되는데, 일찍부터 성인 세계의 부정(不正)을 감지하여 의혹의 눈길을 보내며 인생의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소년으로 성장하였다.
그는 15세 때에 카잔 대학에 입학하여 처음 2년 동안은 동양어학과에서, 진급 시험에 낙제한 후에는 법학과에서 2년의 대학 생활을 보냈지만, 자신이 공부에 열중하지 않은 일은 생각지 않고 ‘대학은 학문의 무덤’이라 단정하여 1847년에 자퇴(自退)하고 말았다. 그 후 농업경영에 전력하기로 결심하고, 자신이 상속받게 되어 있던 영지(領地)인 야스나야 폴랴나로 돌아갔다. 그의 나이 19세 때였다. 이후 4년간의 농촌 생활은 <지주(地主)의 아침>(1856)에 상세히 그려져 있다.
하지만 너무 일찍 현실의 벽에 부딪쳐 자신의 이상(理想)이 맥없이 무너져 버렸음을 알고 또한 자신의 행동에서 허위의 냄새를 맡은 톨스토이는, 절망과 자기혐오에 빠져 술과 여자와 도박으로 도피하게 된다. 이것은 그의 생애에서 최초의 위기였다. 1852년에 그는 이러한 생활을 단념하고 군대 복무를 지원하여, 레르몬토프와 인연이 있는 고장인 카프카즈에서 군무(軍務)에 종사하게 되었다. 평원(平原)뿐인 중앙 러시아에서는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높은 산악으로 둘러싸인 카프카즈의 대자연은 톨스토이를 부활시키고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신(神)의 존재에 다시금 눈을 돌리게 하였다.
1853년에 크림 전쟁이 시작되자 혈기 왕성한 톨스토이는 곧 도나우 군(軍)에의 전속을 지원하여, 1854년 11월부터 이듬해 8월에 걸친 유명한 세바스토폴리 포위전(包圍戰)에 참가, 성(城)을 지키는 데 따르는 온갖 괴로움과 전투의 처절함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 전투에서 죽음과 대결하고 있는 동안에 그는 계시(啓示)에 의해 자기 생애의 목적을 뚜렷이 파악하게 되었다. 그것은 기독교에 의한 온 인류의 합일(合一)이라는 꿈이었지만, 시기는 아직 무르익어 있지 않았다.
전쟁이 끝난 후의 수년 동안은 세바스토폴리 전투의 용사로서 또 신진 작가로서 두 도시에서 방탕한 생활을 보내고 몇 차례의 외국 여행도 즐겼지만, 그는 항상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강하게 느꼈고 지주(地主)로서 거기에 정착하여 새로운 생활을 개척하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의 이러한 희망은 34세 때인 1862년에 실현되었는데, 그로부터 약 50년 동안, 몇 차례의 여행을 제외하고는 고향을 떠나지 않았다.
결혼하여 조상 대대로 물려온 영지(領地)에 틀어박힌 톨스토이는 지주로서의 농촌 생활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도시 지식인들과의 교제를 피하며 영지의 경영과 창작 활동에 전념했다. 그가 자신의 작가로서의 천분(天分)을 자각한 때는 카프카즈 시절이며, 당시 그는 처녀작 <유년시대(幼年時代)>를 써서 《현대인》지(誌)에 익명으로 발표했다.
<유년시대>는 그 속편인 <소년시대>, <청년시대>와 함께 톨스토이 자전(自傳) 소설의 3부작을 이루는데, 같은 의미에서 그의 초기의 작품, 이를테면 <세바스토폴리 이야기>, <지주의 아침>, <카자흐 사람들> 따위도 이 작가의 내면 생활을 묘사한 자전적 소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톨스토이는 몇 번이나 자신은 작가가 아니라고 말하고 문학 이외의 훨씬 중요한 목적을 품고 있음을 암시했으며, 마침내는 그때까지의 자신의 작품을 모두 부정하게 되었지만, 그러나 역시 그는 타고난 작가였다. 펜을 잡는 일이야말로 그의 천직(天職)이었고 또 실제로 그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펜을 놓지 않았다.
러시아 귀족의 명문(名門)에서 태어난 톨스토이는 당시 러시아 일반 사회, 특히 농민의 비참한 생활을 목격하곤 언제나 양심의 가책을 받아 번민했으며, 특권을 가진 귀족 지주는 불우한 일반 대중에게 그 대가를 지불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농민의 생활을 향상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그는, 자신의 영지에 농민을 위한 학교를 창설하고 교과서까지 스스로 만들어 교육에 진력했으며, 농민 해방 운동에도 협력을 아끼지 않았다.
《안나 카레니나》 집필 중에 세 아이와 예의 두 친척아주머니를 잃은 톨스토이는 인생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어, ‘예술은 인생의 거울이다. 인생이 의미를 가질 수 없게 되었을 때, 이미 거울의 유희(遊戱)는 흥미를 끌지 못한다’고 하여 마침내 예술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철학이나 과학도 삶과 죽음의 문제에 해답을 내려주지 못했다. 톨스토이는 절망하고 괴로워했다. 그러한 그에게 구원의 손을 뻗쳐 절망으로부터 그를 다시 소생시켜 준 것은, 민중의 소박한 신앙-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을 위해 살아간다는-이었다.
1870년대 말부터 1880년대에 걸쳐 일어난 톨스토이의 전기(轉機)는, 《안나 카레니나》의 주인공 중 한 사람인 레빈, 즉 톨스토이 자신에 의해 일찍부터 예언되었다. 그는 3년 동안 열심히 교회에 다니며 어떻게든 경건한 기독교도가 되려고 노력했지만, 인습(因習)에 젖은 러시아 정교회라는 벽이 그러한 그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사형 제도와 전쟁을 공공연히 긍정하고 다른 종파에 증오의 눈길을 보내는 러시아 정교회의 실태를, 그의 이성(理性)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마침내 구원받을 길 없는 러시아 정교회와 완전히 손을 끊고 복음서의 연구에 몰두한 톨스토이는, 그 성과를 <교의신학비판(敎義神學批判)>, <4복음서의 요약 색인과 번역>, <우리는 무슨 일을 해야 할 것인가>, <요약 복음서> 등의 종교적 논문으로 정리하였다. 그리고 그 집대성(集大成)이 《나의 신앙》이고, 거기에 이르는 영혼의 고뇌를 기록한 것이 《참회록》이었다. 톨스토이는 철학이나 과학에는 인류를 이끌 힘이 없다고 생각하고, 모든 인간은 자신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존재, 즉 ‘하느님’을 위해 살아가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이다.
이른바 톨스토이이즘의 기본이 되어 있는 것은 ‘산상(山上)의 수훈(垂訓)’이며, 그는 노여워해서는 안 된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 맹세해서는 안 된다, 악으로써 악에 대항해서는 안 된다, 어떠한 사람의 적도 되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톨스토이는 이를 다섯 가지의 계율[五戒律]이라 부르고 있다)은 결국 ‘하느님을 사랑하고, 또 자신의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말로 요약된다고 말하고 있다.
인간의 이성(理性)은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진리를 알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고 또 인간의 유일한 이성적 활동은 사랑이라는, 복음서에 의거한 톨스토이의 독자적인 교의(敎義)는, 전 세계 지식인들의 마음에 깊은 감명을 주었으며, 그중 ‘악에 대항하지 말라’는 주장은 인도의 간디에 의해 계승되었다.
톨스토이는 문학이나 예술은 무의미하다고 선언하고, 그 전기(轉機) 이후로 도덕적ㆍ종교적인 평론이나 논문의 집필 쪽으로 관심을 돌리게 되었지만, 그래도 끊기 어려운 욕구에 이끌리어 소설 쓰는 일을 계속하였다. 자신의 손자가 《안나 카레니나》를 읽고 있는 걸 보고 “왜 좀더 유익한 책을 읽지 않고, 그런 쓸모없는 책을 읽느냐”고 말한 톨스토이는, 종교 활동에 유익한 작품을 쓰겠다는 구실로 1886년에는 《이반 일리이치의 죽음》을, 1889년에는 《크로이체르 소나타》를, 그리고 1899년에는 《부활》을 발표하였다. 그는 역시 본질적으로는 뭐니 뭐니 해도 작가였던 것이다.
하지만 톨스토이가 종교적인 평론을 쓰거나 복음서 연구에 몰두하고 있을 동안은 아직 참고 있던 부인이나 아이들도, 그가 귀족 지주의 생활양식을 버리고 농민과 같은 생활을 시작하자 그에게 등을 돌리고 말았다. 이전에는 가정적인 사랑으로 《전쟁과 평화》나 《안나 카레니나》 집필을 도와 준 부인 소피아도, 이제는 혐오감을 안겨 줄 뿐이었다. 톨스토이는 고독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서린 야스나야 폴랴나도 그에게는 더 이상 안주(安住)의 땅일 수 없었다. 부부의 반목은 날이 갈수록 격화되어 갔다.
《부활》에 묘사된 감옥 내의 예배당 장면을 문제 삼은 러시아 정교회에 의해 정식으로 교회로부터 파문(破門)을 선고받았을 때, 톨스토이의 노여움은 최고조에 달했다. 그는 항상 ‘악에 대항하지 말라’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그 자신이당시의 러시아의 악과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악에 대항하지 말라’는 가르침의 가장 충실한 사도(使徒)였던 톨스토이가 러시아 혁명의 가장 강력한 추진자이며 선구자가 된 비밀이 여기에 숨어 있다. 가정 안에서는 고립되고 정부로부터는 위험인물로 백안시당하게 된 톨스토이는, 모든 것을 버리고 혼자가 되는 데서 최후의 해결책을 구하였다. 그는 1910년 10월 29일 아침, “생애의 마지막 며칠 동안을 고독과 정적 속에서 지내고 싶다”는 글이 쓰인 쪽지를 남기고 몰래 집을 나와 방랑길에 올랐다. 가출(家出)의 비밀을 알고 있던 사람은, 가족 중의 유일한 이해자(理解者)였던 장녀 알렉산드라와 친구인 의사뿐이었다.
이윽고 톨스토이가 랴잔-우랄선(線)의 조그마한 간이역인 한랭한 아스타포보 역에서 폐렴으로 쓰러졌다는 뉴스가 온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1901년에도 며칠 동안 가출했던 적이 있는 톨스토이는, 이리하여 마침내 그 처절한 바람을 이룬 것이다. 며칠 후에 질환이 급변하여 그는 마침내 불귀(不歸)의 객(容)이 되었다. “지상에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괴로워하고 있다, 그런데 왜 당신들은 나 한 사람의 일에만 구애되는가?”라고 불만을 나타내고, “진리를…… 나는 정말 사랑한다…… 왜 사람들은……”이라고 한 것이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1910년 11월 7일(신력[新曆]으로는 11월 20일)의 일이다.
그의 유체(遺體)는 82년의 생애 대부분을 보낸 회상의 땅인 야스나야 폴랴나의 조용한 숲 속에 장방형으로 마련된, 묘비도 없는 무덤 속에 조용히 잠들어 있다.
톨스토이의 생활 원칙은 루소의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사상이며, 원시적이며 간소한 생활이야말로 최상의 것이라 하여, 도시 문명과 결부되는 모든 것을 배척하였다. 톨스토이의 마음을 끌어당긴 것은 ‘자연인(自然人)’의 생활이며, 그가 동경한 것은 어머니인 대지(大地)에 직결되는 생활이었다.
이 신조(信條)는 그의 생활뿐만 아니라 예술에도 통하는 것이었다. 톨스토이에 의하면 진정한 예술은, 첫째 인간의 생활에 기여하는 것이어야 하고, 둘째 오늘날 유행하고 있는 예술처럼 미(美)나 향락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 감정에 의거한 것이어야 하며, 셋째 하나의 국민이나 하나의 계급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널리 일반 대중에게도 이해되는 보편적인 것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그 표현과 형식이 간소하고 단순 명료해야 했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 책에 수록된 네 편의 단편은 그 조건을 완전히 갖춘 것이라 할 수 있다.
러시아 고전 문학은 일반적으로 인생을 위한 문학, 교훈을 가진 문학으로 알려져 있다. 이 교훈적인 경향은 특히 톨스토이 문학에서 절정에 이르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경향을 역겨워할 사람도 있겠지만, 이는 어쨌든 톨스토이 자신이 수십 년 동안의 정신적 고뇌 끝에 체득한 사랑의 복음이자 톨스토이 문학의 정수(精髓)이기도 하므로, 그 길이의 짧음에 관계없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겠다.
19세기말의 톨스토이만큼 온 세계의 지식인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친 작가는 없으며, 그는 살아 있을 때부터 이미 신화적인 존재여서 모든 사람들이 그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였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광활한 러시아 대지의 아들에 걸맞게 반세기 이상이나 러시아 국민의 정신 생활의 중심이었고, 현재에 이르러서도 지구상의 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 점은 참으로 경탄할 만한 일이다. 확실히 그는 지금도 우리 가슴 속에 살아 있다.
‘여러분은 왜 나를 스승이라 부르는가? 나는 스승이 아니다. 죄(罪)에 있어서나 부활(復活)에 있어서나 나는 여러분의 형제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11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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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정희
독서교육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미리네
2013.06.28
빨간바나나
2013.06.27
톨스토이의 단편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는데 짧은 이야기지만 강한 울림이 느껴질 것 같아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답은 평생 찾아야 하겠지만 톨스토이의 혜안도 듣고 싶네요.
아니 그와 함께 고민해 보고 싶네요.
뽀로리
2013.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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