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우스의 정체에 대한 논의
“우리의 자유는 대체 어디에서 얻어진 것이며 누가 준 것인가 하는 것이오. 그것은 민중에 의해서였는가, 혹은 과두제에 의해서였는가, 그렇지 않으면 독재제에 의해서였는가? 결국 내 견해는 우리가 오직 한 인물에 의해서 자유의 몸이 된 것이기 때문에 끝까지 이 체제를 견지해야 한다는 것과 그것이 아니라도 이 훌륭한 조상 전래의 독재제 관습을 파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오. 만알 이것을 파기한다면 결국 재난만이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오.”
2013.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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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케메네스왕조 페르시아제국은 제2대 캄비세스가 이집트 원정 중에 동생인 바르디야와 마고스의 종교지도자인 가우마타 등이 반란을 일으켜 페르시아 본토를 장악했고 캄비세스가 급사하는 바람에 제국은 해체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때 아케메네스 집안의 방계에 속하는 다리우스를 비롯한 페르시아 귀족들이 결의해서 가우마타 등에 의한 일종의 ‘종교 공산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정권을 타도하고 여러 부족의 반란을 진정시킨 다음 제국을 다시 통일했다. 이때가 기원전 522년의 일이었다.
한편 가우마타에게 반기를 들었던 공로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앞으로의 행방에 대해 토의했다. 초점은 저절로 누구를 부흥한 제국의 황제로 옹립할 것인가와 새로운 정권은 어떤 정치 형태를 취할 것인가로 압축되었다.
헤로도토스는 토론의 모습을 매우 상세하게 기술했다. 스스로 “그 자리에서 주장된 많은 논의에서 일부 그리스인을 믿기 어렵다는 말이 분명이 나왔다”라고 이유를 적어놓을 정도로 생생하고 박력이 넘친 논의가 전개되었다. 그 장면을 헤로도토스의 입을 통해 살펴보자. 먼저 대귀족이었던 오타네스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들 중 한 사람만이 독재자가 된다는 것은 즐거운 일도 좋은 일도 아니기 때문에, 이제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내 의견이오. 여러분은 캄비세스 왕이 얼마나 폭정을 행했는지 잘 알고 있으며, 또한 마고스의 폭정도 개인적으로 체험하지 않았소?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무슨 일이든 행할 수 있는 독재제가 어찌 질서 있는 제도가 될 수 있겠소? 이러한 독재제하에서는 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이라 할지라도 일단 왕의 자리에 오르면 예전의 심성을 잃게 되오. 독재제의 전형적인 악덕은 질투심과 자만심이오. 질투심은 천성적인 인간의 약점이며, 자만심은 현재의 부귀영화가 그로 하여금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인간으로 착각하게 하는 데서 생겨나오. 그리고 이 두 가지 악덕은 모든 악의 근원이오. 그리하여 야만적인 행위와 무자비한 폭력을 불러일으키게 마련이오.(중략)
이에 반해 대중에 의한 정치는 첫째로 만민 평등이라는 참으로 훌륭한 명분을 갖고 있고 둘째로 이 체제하에서는 독재 체제하에서 일어나는 일이 행해지지 않소. 관리들은 추점에 의해 선출되고 책임감을 갖고 직무를 수행하며 모든 국가 정책은 여론에 의해서 결정되오. 그러므로 나는 독재제는 단념하고 국민주권을 확립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의하오. 만사는 다수의 의견에 의해 결정되어야 하기 때문이오.”
그러자 과두정치(적은 수의 우두머리가 국가의 최고 기관을 조직하여 행하는 독재적인 정치 체제)가 좋다고 여겼던 메가비조스가 이렇게 말했다.
“오타네스가 독재제를 폐기해야 한다고 말한 데 대해서는 나도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주권을 민중에게 맡겨야 한다는 견해는 잘못이라고 보오. 대중은 쓸모없을 뿐만 아니라 무식하고 무책임하며 폭력적이오. 따라서 독재자의 악정을 피하기 위해서 폭도의 광포한 손에 빠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오. 왕은 그래도 최소한 의식적으로 심사숙고해서 행동하지만 군중은 그렇지 않소. 본래 무엇이 옳고 정당한지 배운 일도 없고 이것을 스스로 깨달을 능력도 없는 자들이 어떻게 그런 자각을 할 수 있겠소? 대중은 마치 분류하는 강물처럼 무턱대고 국사를 밀고 나갈 뿐인 것이오. 따라서 민주정치란 페르시아의 적들만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이오. 우리는 가장 우수한 일단의 인재들을 선발하여 이들에게 주권을 부여해야 하오. 그리고 물론 우리들 자신도 당연히 그 속에 포함되어야 하오. 가장 우수한 인간들에게서 최선의 정책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니겠소?”
마지막으로 다리우스가 말했다.
“나는 메가비조스가 대중에 대해 말한 것은 옳다고 생각하지만, 과두정치에 대한 발언은 부당하다고 생각하오. 즉 여기에 제시된 세 가지 체제?민주제, 과두제, 독재제가 각각 최선의 상태로 실행되고 있다고 가정할 경우, 나는 그 마지막 제도가 다른 두 제도보다 훨씬 더 우수하다고 단언하오. 가장 뛰어난 한 사람에 의한 통치 체제보다 더 훌륭한 체제가 나타날 수는 없기 때문이오. 그러한 인물이라면 그 탁월한 식견을 발휘해 민중을 훌륭히 다스릴 것이며, 적에 대한 정보도 어떠한 체제하에서보다 비밀 유지가 잘될 것이오. 그러나 과두 체제하에서는 공익을 위해 공적을 쌓으려고 애쓰는 사람들 사이에서 격심한 개인적 적대 관계가 생기기 쉽소. 누구나 자기가 우두머리가 되려 하고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려고 하다보면 결국 서로 격렬히 대립하게 되어 거기에서 내분이 생기고 그 내분은 유혈을 불러일으켜 유혈 속에서 독재제로 귀착되고 마오. 이것을 보아도 독재제가 최선의 제도임을 잘 알 수 있소.
한편 민주제의 경우에는 악이 만연하는 것을 피할 수 없소. 더욱이 이 경우에는 공공의 업무에 악이 만연될 때 악인들 사이에서는 개인적인 적대 관계가 아니라 강력한 우애감이 생겨, 국가에 해악을 끼치는 자들이 결탁하여 모반을 꾀하게 되오. 이러한 사태가 벌어지면 결국 누군가가 국민의 선두에 서서 악인들을 쳐부수고, 국민들에게 칭송을 받아 마침내 독재자로 추대 받게 되오. 이렇게 볼 때 독재제가 최고의 통치 체제임이 명백하지 않소?
한마디로 말하면 우리의 자유는 대체 어디에서 얻어진 것이며 누가 준 것인가 하는 것이오. 그것은 민중에 의해서였는가, 혹은 과두제에 의해서였는가, 그렇지 않으면 독재제에 의해서였는가? 결국 내 견해는 우리가 오직 한 인물에 의해서 자유의 몸이 된 것이기 때문에 끝까지 이 체제를 견지해야 한다는 것과 그것이 아니라도 이 훌륭한 조상 전래의 독재제 관습을 파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오. 만알 이것을 파기한다면 결국 재난만이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오.”( 『역사』 헤로도토스 지음, 박광순 옮김, 범우사 pp.287~288)
결론은 7명의 출석자 가운데 4명이 다리우스의 생각에 찬성했다. 페르시아제국의 정체는 독재 체제의 유지로 결정되었다. 그렇지만 결정의 방법은 다수결이었다.
어떻든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해주는 토론이었다. 우리처럼 민주주의의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위에서 말한 다리우스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할 수 있는 정신과 자립심을 갖고 있다.
페르시아 제국의 정복자 다리우스 1세
한편 이 토론 덕분인지 모르지만 다리우스는 독재 전제군주로서 등극했다. 다만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다리우스가 쉽게 황제로 결정된 것이 아니고 왕위 경쟁의 후보를 사퇴한 오타네스를 제외한 6명이 경쟁에 참가했다.
왕위 계승자의 선발 방식은 6명이 말을 타고 성 밖으로 멀리 달려 나가서 일출과 함께 가장 먼저 울음을 터뜨린 말을 타고 있는 사람이 왕위에 오르는 것이었다.
결국 다리우스는 오이바레스라는 영리한 말구종에 의해 무난히 왕위를 손에 넣었다. 다리우스의 말이 예전부터 마음에 들어 했던 암말(일설에 따르면 그 국부의 냄새)을 가까이에 오게 해서 말이 울게 만든 덕분이었다. 앞에서 본 정치체제론도 그렇고 이 ‘말 울음소리 경쟁’ 모두 그 진위를 가리기 힘들지만 예부터 전해지는 유명한 일화다.
이때 아케메네스 집안의 방계에 속하는 다리우스를 비롯한 페르시아 귀족들이 결의해서 가우마타 등에 의한 일종의 ‘종교 공산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정권을 타도하고 여러 부족의 반란을 진정시킨 다음 제국을 다시 통일했다. 이때가 기원전 522년의 일이었다.
한편 가우마타에게 반기를 들었던 공로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앞으로의 행방에 대해 토의했다. 초점은 저절로 누구를 부흥한 제국의 황제로 옹립할 것인가와 새로운 정권은 어떤 정치 형태를 취할 것인가로 압축되었다.
헤로도토스는 토론의 모습을 매우 상세하게 기술했다. 스스로 “그 자리에서 주장된 많은 논의에서 일부 그리스인을 믿기 어렵다는 말이 분명이 나왔다”라고 이유를 적어놓을 정도로 생생하고 박력이 넘친 논의가 전개되었다. 그 장면을 헤로도토스의 입을 통해 살펴보자. 먼저 대귀족이었던 오타네스가 이렇게 말했다.
그러자 과두정치(적은 수의 우두머리가 국가의 최고 기관을 조직하여 행하는 독재적인 정치 체제)가 좋다고 여겼던 메가비조스가 이렇게 말했다.
“오타네스가 독재제를 폐기해야 한다고 말한 데 대해서는 나도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주권을 민중에게 맡겨야 한다는 견해는 잘못이라고 보오. 대중은 쓸모없을 뿐만 아니라 무식하고 무책임하며 폭력적이오. 따라서 독재자의 악정을 피하기 위해서 폭도의 광포한 손에 빠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오. 왕은 그래도 최소한 의식적으로 심사숙고해서 행동하지만 군중은 그렇지 않소. 본래 무엇이 옳고 정당한지 배운 일도 없고 이것을 스스로 깨달을 능력도 없는 자들이 어떻게 그런 자각을 할 수 있겠소? 대중은 마치 분류하는 강물처럼 무턱대고 국사를 밀고 나갈 뿐인 것이오. 따라서 민주정치란 페르시아의 적들만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이오. 우리는 가장 우수한 일단의 인재들을 선발하여 이들에게 주권을 부여해야 하오. 그리고 물론 우리들 자신도 당연히 그 속에 포함되어야 하오. 가장 우수한 인간들에게서 최선의 정책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니겠소?”
마지막으로 다리우스가 말했다.
“나는 메가비조스가 대중에 대해 말한 것은 옳다고 생각하지만, 과두정치에 대한 발언은 부당하다고 생각하오. 즉 여기에 제시된 세 가지 체제?민주제, 과두제, 독재제가 각각 최선의 상태로 실행되고 있다고 가정할 경우, 나는 그 마지막 제도가 다른 두 제도보다 훨씬 더 우수하다고 단언하오. 가장 뛰어난 한 사람에 의한 통치 체제보다 더 훌륭한 체제가 나타날 수는 없기 때문이오. 그러한 인물이라면 그 탁월한 식견을 발휘해 민중을 훌륭히 다스릴 것이며, 적에 대한 정보도 어떠한 체제하에서보다 비밀 유지가 잘될 것이오. 그러나 과두 체제하에서는 공익을 위해 공적을 쌓으려고 애쓰는 사람들 사이에서 격심한 개인적 적대 관계가 생기기 쉽소. 누구나 자기가 우두머리가 되려 하고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려고 하다보면 결국 서로 격렬히 대립하게 되어 거기에서 내분이 생기고 그 내분은 유혈을 불러일으켜 유혈 속에서 독재제로 귀착되고 마오. 이것을 보아도 독재제가 최선의 제도임을 잘 알 수 있소.
한편 민주제의 경우에는 악이 만연하는 것을 피할 수 없소. 더욱이 이 경우에는 공공의 업무에 악이 만연될 때 악인들 사이에서는 개인적인 적대 관계가 아니라 강력한 우애감이 생겨, 국가에 해악을 끼치는 자들이 결탁하여 모반을 꾀하게 되오. 이러한 사태가 벌어지면 결국 누군가가 국민의 선두에 서서 악인들을 쳐부수고, 국민들에게 칭송을 받아 마침내 독재자로 추대 받게 되오. 이렇게 볼 때 독재제가 최고의 통치 체제임이 명백하지 않소?
한마디로 말하면 우리의 자유는 대체 어디에서 얻어진 것이며 누가 준 것인가 하는 것이오. 그것은 민중에 의해서였는가, 혹은 과두제에 의해서였는가, 그렇지 않으면 독재제에 의해서였는가? 결국 내 견해는 우리가 오직 한 인물에 의해서 자유의 몸이 된 것이기 때문에 끝까지 이 체제를 견지해야 한다는 것과 그것이 아니라도 이 훌륭한 조상 전래의 독재제 관습을 파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오. 만알 이것을 파기한다면 결국 재난만이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오.”( 『역사』 헤로도토스 지음, 박광순 옮김, 범우사 pp.287~288)
결론은 7명의 출석자 가운데 4명이 다리우스의 생각에 찬성했다. 페르시아제국의 정체는 독재 체제의 유지로 결정되었다. 그렇지만 결정의 방법은 다수결이었다.
어떻든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해주는 토론이었다. 우리처럼 민주주의의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위에서 말한 다리우스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할 수 있는 정신과 자립심을 갖고 있다.
페르시아 제국의 정복자 다리우스 1세
한편 이 토론 덕분인지 모르지만 다리우스는 독재 전제군주로서 등극했다. 다만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다리우스가 쉽게 황제로 결정된 것이 아니고 왕위 경쟁의 후보를 사퇴한 오타네스를 제외한 6명이 경쟁에 참가했다.
왕위 계승자의 선발 방식은 6명이 말을 타고 성 밖으로 멀리 달려 나가서 일출과 함께 가장 먼저 울음을 터뜨린 말을 타고 있는 사람이 왕위에 오르는 것이었다.
결국 다리우스는 오이바레스라는 영리한 말구종에 의해 무난히 왕위를 손에 넣었다. 다리우스의 말이 예전부터 마음에 들어 했던 암말(일설에 따르면 그 국부의 냄새)을 가까이에 오게 해서 말이 울게 만든 덕분이었다. 앞에서 본 정치체제론도 그렇고 이 ‘말 울음소리 경쟁’ 모두 그 진위를 가리기 힘들지만 예부터 전해지는 유명한 일화다.
- 유목민의 눈으로 본 세계사 스기야마 마사아키 저/이경덕 역 | 시루
이 책은 그동안 야만족, 미개인이라고 치부되었던 유목민들이 은을 중심으로 한 국제적인 경제체제를 갖추고 있었으며, 오아시스에 사는 정주민들의 고립을 막아주는 문화 교류자였으며, 그들이 사용한 아람어가 소그드문자를 비롯해 위구르문자와 만주문자, 한글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등의 그동안 전혀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밝히고 있어 신선한 충격을 준다. 《유목민의 눈으로 본 세계사》는 그동안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왜곡, 축소되었던 유목민들의 역사를 하나하나 되짚음으로써 동과 서로 단절되었던 세계사를 연결시켜 비로소 역사의 실체를 마주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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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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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스기야마 마사아키
1952년 시즈오카에서 태어나 교토대학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교토여자대학 조교수를 거쳐 현재 교토대학 교수다. 주요 연구 주제는 몽골 시대사로 일본 내에서 몽골 연구의 최고 권위자로 꼽힌다. 1995년 《쿠빌라이의 도전》으로 산토리 학예상을 수상했고, 2003년 시바료타로상, 2006년 《몽골제국과 대원 울루스》로 일본학사원상을 수상했다.
sh8509
2013.05.03
브루스
2013.04.30
많은걸 생각하게 하는 구절입니다. 잘보고 가네요